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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설명들은 시간나면 한번 쯤 읽어보시라고 퍼왔습니다 ;;
*악진*
중국 후한 말기의 장수로 조조를 섬겼다. 자(字)는 문겸(文謙)이며 양평(陽平) 위국(衛國) 출신이다.
-악진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장수들 못지않은 용맹을 과시하여 서황, 장합, 우금(于禁), 장료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장으로 인정받았다. 진수가 서술한 《삼국지》에서는 이 다섯 사람을 묶어 〈장악우장서전〉으로 분류되어있기도 하다.-
*장포*
중국 후한 말기의 인물이다. 촉의 명장 장비의 장남이며 남동생은 장소(張紹)고, 두 여동생은 유비(劉備)의 아들인 후주(後主) 유선(劉禪)의 황후다. 아들로는 장준(張遵)이 있다.
-소설 《삼국지통속연의》에서 각색되어 소설의 후반부에서 활약한다. 실은 장비가 장무 원년(221년)에 죽었는데, 장포가 요절하여 장소가 뒤를 이었으므로 장포는 이보다도 먼저 죽은 것이다.-
*서서*
중국 후한 말 ~ 위(魏)의 정치가로, 자는 원직(元直)이며 예주(豫州) 영천군(潁川郡) 사람이다. 본래 이름은 서복(徐福)이었다.
-서서의 모친이 조조군의 포로가 되었다. 서서는 유비에 작별 인사를 하고 조조에게 갔고, 위(魏) 건국 후에는 팽성상(彭城相)을 지내는 한편우중랑장(右中郞將) · 어사중승(御史中丞)까지 승진하였으며 석도는 태수와 전농교위(典農校尉)를 역임하였다.훗날 제갈량은 북벌(北伐)을 할 때, 서서와 석도의 관직을 듣고는 "위에는 인재가 얼마나 많기에 그들이 중용받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한탄하였다고 한다.-
*순욱*
중국 후한말기 조조(曹操)를 섬겼던 정치가이자 군사이다. 자(字)는 문약(文若)이다. 시호는 경(敬). 당시 조조의 최고 책사로 조조의 곁에서 수많은 헌책을 내서 조조의 패업의 기초를 만들었다.
-삼국지의 저자 진수는 그와 연장자인 조카 순유, 그리고 모사 가후, 이 세 사람을 같은 권에 넣었다.(삼국지 위서 10권). 진수의 순욱에 대한 평가는 순욱은 청아한 풍모와 왕좌의 풍격, 그리고 선견지명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뜻을 달성하는 것에는 뛰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던 배송지는 '당시 난세를 평화로 이끌었던 조조에게 협력한 것밖에는 없었다.
이 일로 인해 한나라는 살아나지 못했지만, 백성들은 구할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또한 배송지는 가후를 싫어하여 순욱이란 인물을 가후 등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였다. 또 범엽은 순욱을 후한왕조에게 순사한 충신으로 평가하여 후한서에 순욱의 전기를 따로 싣었다.-
*마속*
자는 유상(幼常)이며, 양양(襄陽) 의성 출신으로 마량(馬良)의 막내동생이다.
-관직은 참군(參軍)이었으며 사마의(司馬懿)를 거짓소문으로 한때 물러나게 한 적도 있어 제갈량(諸葛亮)의 총애를 받는다.
228년, 가정(街亭)의 큰 싸움에서 군량의 중요한 보급로인 산을 맡아 보는 중책을 짊어지게 되는데, 마속은 소홀하여 산을 빼앗기고, 촉군은 후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갈공명은 패전 지휘자 마속에 그 책임을 물어 결국 목을 치게 된다.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그를 참하는 모습에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나왔다.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
참고로 사람들은 가정 전투에 산을 맡아보는 중책에 대해 경험이 많은 오의(吳懿), 위연(魏延)이 추천되기도 했지만 묵살되고 마속이 이를 담당했다고도 한다.-
*법정*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효직(孝直)이며 사례(司隷) 부풍군(扶風郡) 미현(郿縣) 사람이다.
-214년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한 후, 법정은 촉군태수가 되고 양무장군(揚武將軍)을 겸하게 되었다. 유장의 부하였던 허정(許靖)은 성도가 포위당했을 때 성벽을 넘어와 항복하려 했는데, 이 때문에 유비는 익주를 차지하고도 허정을 쓰려 하지 않았다. 법정은 유비를 설득하여 허정을 발탁하도록 했다.
217년 법정은 유비를 설득하여 한중을 공격하게 했고, 219년에는 계책을 내어 조조군의 이름난 장수인 하후연(夏候淵)을 죽였다. 한중을 차지한 유비는 한중왕으로 등극하고 법정을 상서령(尙書令) 겸 호군장군(護軍將軍)으로 삼았다. 220년 법정이 죽자 유비는 법정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익후(翼侯)라는 시호를 내리고 아들 법막(法邈)을 관내후(關內侯)로 봉했다.
222년 유비가 육손(陸遜)에게 대패하자, 제갈량은 법정의 직설적인 화법과, 다혈질이었던 성격 탓에 '효직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주군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요화*
중국 후한 말 ~ 삼국시대의 장수로, 자는 원검(元儉)이며 형주(荊州) 양양군(襄陽郡) 중로현(中盧縣) 사람이다. 본래 이름은 순(淳)이었다.
-경요(景耀) 5년(262년), 강유는 군세를 이끌고 적도(狄道)로 진출하자 요화는 이와 같이 말하며 그를 비판하였다.
"전쟁을 그치지 않으면 필시 우리는 곤경에 처해질 것이다. 지략이 적에 미치지 못하며 역량 또한 그러하거늘, 억지로 계속한다 하더라도 성공할 수가 있겠는가? 《시경(詩經)》에서 "나보다 앞서지 않고, 나보다 뒤쳐지지 않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일컫는 것이다.”
이듬해 위가 침공하자, 강유 · 장익과 함께 검각(劍閣)을 수비하여 마지막까지 위나라에 저항하였으나, 성도(成都)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의 종회(鍾會)에게 항복하였다.
함희(咸熙) 원년(264년), 낙양(洛陽)으로 연행되던 도중 병사하였다.-
*유엽*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대신이다.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서자(庶子) 부릉질왕(阜陵質王) 유연(劉延)의 자손이며, 양주(楊州) 회남군(淮南郡) 성덕현(成悳縣) 사람으로, 자(字)는 자양(子揚)이다.
-곽가의 추거로 조조를 섬겼으며, 원소와 싸울 때 발석거를 개발하여 심배의 전술을 무력화시켰다. 이 발석거는 원소 군대에서 '벽력차'라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우금*
중국 삼국 시대의 위나라의 무장으로, 자는 문칙(文則)이며 연주(兗州) 태산군(泰山郡) 거평현(鉅平縣) 사람이다. 위나라 오장군(五將軍)의 한 명이다.
-건안 24년(219년), 관우(關羽)가 양양을 점령하고 명장 조인(曹仁)이 지키는 번성(樊城)을 포위하자 위기감을 느낀 조조는 우금과 7군을 구원군으로 보내는데, 10여 일 동안 내린 비에 한수가 범람하여 칠군이 모두 물에 잠긴다. 관우가 큰 배를 타고 와서 우금 등을 공격하자 결국은 투항해서 옥에 갇힌다. 오래도록 자신을 섬긴 우금이 항복했다는 소식에 조조는
"내가 우금을 30년 동안 알고 지냈지만 위난에 처하자 방덕(龐德)보다 못하리라는 것을 어찌 짐작했겠는가."며 탄식했다.
관우는 이 때 포로로 잡은 우금의 3만 병사를 먹이는 데 군량이 부족하여 손권(孫權)이 상관에 보관해 둔 쌀을 탈취하는데, 이는 손권이 관우를 공격하는 명분이 된다.
손권이 형주(荊州)를 점령한 후, 손권에게 인계되었다, 조비(曹丕)가 즉위한 이듬해인 황초(黃初) 2년(221년), 본국으로 돌아갔다. 조비는 순림보와 맹명시의 고사를 들며 우금을 안원장군(安遠將軍)에 임명한다. 그러나 후에 오에 사자로 보내면서 조조의 능묘에 참배하도록 했는데, 조비는 미리 관우가 싸움에서 이기고 방덕이 분노하며 우금이 항복하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우금은 이를 보고 부끄럽고 분한 마음에 병을 얻어 죽는다.-
*이전*
연주(兗州) 산양군(山陽郡) 거야현(鋸野縣)[1] 사람으로 후한 말 조조(曹操)를 섬긴 장수이며, 자는 만성(曼成)이다. 초평 연간 조조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을 때 그 휘하에 들어가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209년 12월부터 장료(張遼)를 따라 합비(合肥)를 지키게 되었는데, 예전부터 이전은 장료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215년 8월 손권(孫權)이 10만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공격해 왔을 때 장료는 이전이 자신의 생각을 따르지 않을 경우를 우려했으나, 이전은 사적인 감정을 생각지 않고 장료와 함께 손권을 무찔렀다.
36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황초(黃初) 6년(225년) 조비(曹丕)는 이전의 공을 추념하여 시호로 민후(愍侯)를 내렸다.-
*조식*
위왕 조조의 다섯 번째 아들로 자는 자건(子建)이다. 최종 봉국은 진(陳)나라며 시호는 사(思)로 진사왕(陳思王). 아버지 조조, 형 조비와 함께 시작에 능통하여 삼조라 일컬어졌다.
-정사에는 처음엔 총명한 조식이 총애를 받았으나, 조비에 비하면 처세가 좋지 않고 음주에도 절제가 없는 모습을 보이는 점과 수레를 타고 천자만이 다니는 길을 지나갔던 사건 때문에 후계자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조식을 중심으로 커진 세력을 경계한 조조가 조식을 보좌하는 양수를 주살하자 조식은 점점 불안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인이 번성에서 관우에게 포위당했을 때 조조가 조식을 장군으로 임명해 보내려고 불렀는데, 술에 취해 이를 받들지 못하는 일까지 생겨 그의 직위는 박탈되었다.
《삼국지》진사왕식전에 인용된 《위씨춘추》에서는, 조비가 억지로 취하게 했다고 한다. 조비가 왕위에 오르고 나자, 양수와 함께 조식의 보좌를 맡던 세력들도 다 조비에게 죽임을 당하여 조식은 자기 봉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봉국에서 조식은 자주 장문의 상소를 올려 나라의 일에 대해 논하며 자신의 재능을 펼칠 관직을 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고, 아내가 살해당하고 연이어 딸도 잃는 등 절망하고 근심 속에 살다가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노숙*
중국 후한 말기의 세력가인 손권(孫權)의 참모이다. 자는 자경(子敬)이다. 양주 임회(臨淮)군 동성(東城)현 사람이다.
-208년 조조(曹操)가 하북에 원소(袁紹)와의 관도대전에서 승리하고, 하북을 평정하여 유종(劉琮)에 형주마저 점령하니 조조는 강동을 노리기 시작했다.
이에 손권에 신하들은 모두 조조에게 항복하여 오나라의 평화를 지키자고 주장하였으나, 노숙은 홀로 유비(劉備)와 결탁하여 형주를 점령, 조조와 항전하자고 주장하였다.
노숙은 당양으로 가서 유비와 동맹을 맺고, 주유의 활약으로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대패한다. 210년 주유를 이어 강동에 군권을 거느리게 되었다. 217년 여몽(呂蒙)을 후임으로 선정하고 병사하였다. 노숙은 손권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하였으며, 사람됨이 온화하였다.-
*서성*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군이며, 자는 문향(文嚮)이다. 원래는 산동 낭야(瑯耶) 사람이지만 전란을 피해 오군(吳郡)으로 이주했다.
-213년 1월 조조(曹操)가 유수구(濡須口)에 쳐들어왔을 때 폭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군을 향해 돌격하여 손권의 칭찬을 받았으며, 221년 7월 유비(劉備)가 형주를 공격해 왔을 때 육손(陸遜)의 지휘를 받으며 이릉(夷陵)에서 촉군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다.
유비가 백제성(白帝城)으로 달아나자 손권에게 유비를 계속 뒤쫓을 것을 청했으나, 육손이 조비(曹丕)의 침공을 대비하여 군사를 물렸기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다.
그 해에 위나라에서 태상(太常) 형정(邢貞)이 손권을 오왕(吳王)으로 책봉하기 위해 오나라에 왔는데, 처음 왔을 때 거만한 태도를 보이자 서성은 분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렸다.
형정은 이 일을 전해 듣고 오나라의 복종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222년 9월에는 오를 공격해온 조휴(曹休)의 군사들을 상대로 분투하여 공을 세웠다. 이 싸움 후 손권은 서성을 안동장군(安東將軍)에 임명하고 무호후(蕪湖侯)로 봉했다.
224년 8월 조비가 오나라 정벌군을 일으키자, 서성은 나무에 갈대를 입혀 성과 누각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전함을 많이 띄워 위군을 속이고자 하였다. 얼마 후 도착한 조비는 오군이 쌓은 성벽이 수백 리나 이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철수했다. 이를 위성계(僞城計 - 거짓 성벽)이라 한다.
서성은 황무(黃武: 222년~229년) 연간에 죽었다고 기록되어있을 뿐 정확한 사망시기는 알 수 없다.-
*육항*
삼국 시대 오나라의 장군이다. 자는 유절(幼節)이며, 육손(陸遜)의 둘째 아들이고, 손책(孫策)의 외손자다. 쓰러져 가던 오나라 말기에 최후의 명장이라 칭송받는다.
무창좌부독 설영이 투옥되자 상소를 올려 용서해 주기를 구했다. 봉황 2년(273년) 봄, 육항은 대사마가 되고 형주목을 겸임했으나, 이듬해 여름 병이 들었다. 임종 때까지도 손호에게 글을 올렸다고 한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서릉과 건평은 국가의 변방 장벽인데, 이곳은 장강 하류에 위치하여 적국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적군이 배를 띄워 물의 흐름을 타고 내려오며 천리를 걸쳐 배를 이어 걸쳐 번쩍이는 유성처럼 신속하게 도달한다면 다른 곳의 구원병이 와서 위급한 상황을 풀어주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결국 그는 274년 죽게 되고, 기둥이 무너진걸 안 진의 익주자사 왕준(王濬)이 오를 치자고 권해 오는 결국 멸망하게 된다.
*장소*
중국 삼국시대 오의 문관이다. 자는 자포(子布)로 서주(徐州) 팽성국(彭城國) 사람이다. 손책의 유명을 받들어 손권을 보좌하여 보오장군(輔吳將軍), 누후(婁侯)에 책봉되었다. 시호는 문후(文侯).
-황룡 3년(231년) 10월, 공손연이 오의 번국이 되기를 청했다. 손권은 기뻐하여 사신 장미와 허안을 요동에 보내 공손연을 연왕에 임명하려 했다.
당시 군신들의 논의는 반대였는데, 장소 역시 이것은 공손연의 본심이 아니라 하여 간언했다. 손권과 장소의 논쟁은 더욱 깊어졌고, 손권은 감당하지 못해 칼을 만지며 장소를 협박했다.
장소는 자기 말이 쓰이지 않을 줄 알면서도 옛날 오태부인의 조명을 받았기에 항상 충성을 다했다며 울었고, 손권은 칼을 던지고 장소와 함께 울었으나, 결국 장미와 허안을 공손연에게 보냈다.
장소는 분히 여겨 병을 칭탈하여 조회에 나오지 않았고, 손권도 이를 한하여 장소 집 문을 흙으로 막았다. 과연 공손연은 장미와 허안을 죽였다.
손권은 여러 번 장소를 위로하고 사과했지만, 장소는 완고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손권이 이로 인해 궁궐 문을 나와 문 앞에서 장소를 불렀지만, 장소는 질병이 중하다며 사양했다.
손권은 문에 불을 질러 장소를 협박했으나, 장소는 다시 방문마저 닫았다. 손권은 사람들을 시켜 불을 끄고, 문 밖에서 오래 있었다. 장소의 여러 아들들이 함께 장소를 붙들어 일으켜, 손권은 장소를 수레에 태워 궁으로 돌아왔고, 심히 자신을 꾸짖었다. 장소는 부득이하여 이후 조회에 참석했다. 《삼국지》시의호종전에서는 이때 호종의 힘이 있었기에 손권과 장소가 화합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장소는 용모가 당당하고, 근엄하며, 위풍이 있었으므로, 손권은 항상 가로되 “나는 장공과 함께 말하면, 감히 망언을 못 하오.”라 했다. 모든 나라가 그를 꺼렸다.-
*정보*
중국 후한 말기의 세력가 손견과 그 뒤를 이은 손책 · 손권 휘하의 장수로, 자(字)는 덕모(德謨)이며 유주(幽州) 우북평군(右北平郡) 토은현(土垠縣) 사람이다.
-손견을 따라 황건을 토벌했고, 양인에서 동탁(董卓)을 무찔렀다.
손견이 죽은 후 손책을 따라 여강(廬江)을 쳤으며, 손책이 장강을 건너 유요(劉繇) 등을 칠 때 많은 공을 세워 병사 2천과 말 50필을 받았다.
손책이 회계로 들어가자 오군도위(吳郡都尉)가 되었고, 단양도위(丹陽都尉)로 옮겼다. 적벽대전 때는 주유(周瑜)와 함께 좌우독으로 임명되어 오군을 통솔하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삼국지》 종실전에 따르면 이때 주유와 불화하여 일을 거의 그르칠 뻔하였다. 이후에도 주유와 함께 남군에서 저항하던 조인(曹仁)을 축출했다. 비장군(裨將軍)이 되었고 강하태수(江夏太守)를 겸임했다.
주유 사후 남군태수(南郡太守)를 겸임했으나, 손권이 남군을 유비(劉備)에게 빌려 주었으므로 다시 강하태수를 겸임했다. 탕구장군(湯寇將軍)으로 승진하고, 죽었다. 위요의 《오서(吳書)》에 따르면, 반역자 수백 명을 불태워 죽였다가 날이 밝은 후 발병하여 백여 일 안에 죽었다고 한다.-
한자 물어보시는분들이 계신데;
저도 일본어 한자 모릅니다;
일어야 히라가나 카타카나 읽을줄만 알아요 ㅎ;
http://www.kma18.com/japanese.html
여기서 한자 참고가 많이됐네요.
장비를 찾는다 하면 뭐 ㅈ 눌러서 장 찾아서 보시면
張 チョウ 이런식으로 되어있는데 그럼 ち(チ)에서 찾아보시면 되는겁니다.
거기에도 없다 하면 わ옆에 두칸에서 찾아보시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없는 한자들도 있는데...잘 찾아보면 있는경우도 있고..정 없으면 속자 찾아서 하거나 그랬네요;
캐릭만들때 마다 네이X백과사전,일어한자 홈피,위키백과 띄워놓고...눈빠지게 찾아댕겼네요;
그냥 제가 만든 한자가 어디어디 있는지 알면 여기다가 올려드리겠지만...;;
저도 따로 뭐는 뭐다 ㅡㅡ;; 적어놓은게 없으니;; 찾으려면 만든시간 만큼 또 걸리니 뭐;;
기존 무장들이 질린다 싶으신 분들은 에디트 무장 한번씩 만들어 보시는것도 좋을거 같네요~
무장파츠야 순전히 제취향과;;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로 만들어 본거라 그냥 이사람은 이렇게 만드는구나 참고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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