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마를 죽인 - 또한 성자 미카엘라를 그 손으로 처형한 -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사내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엔 대부분 방에 틀어박혀 보내고, 밖에 나와 뭔가를 할 때도 눈빛은 여전히 죽어 있었다.
하지만 모험가로서 받은 의뢰만은 제대로 해결하고 있었다. 주로 무언가를 죽이거나 죽기 직전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들.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대부분이 모르지만, 무참하게 찢겨나간 채로 넘겨진 목표물의 시체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교단의 일처리 방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 스스로도 교단과 언젠가 갈라서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었지만, 이런 방식은 예상 외였다. 교단의 뒷모습을 처음 본 그로서는 약간이나마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악마가 그의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오즈마를 죽였지만, 환청은 계속되었다.
언제나처럼.
오즈마를 죽였음에도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교단을 나온 뒤, 그는 처음으로 자신 - 안의 악마 - 에게 살해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찢어버리고 싶다. 짓밟고 내던지고 썰어버리며 몸부림치는 생명을 끊어내고 싶다. 그 욕망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져, 몇번이고 계속해서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괴로워했다.
교단에 있을 땐 그들이 말하는 적을 죽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 '적' 이 과연 모두 적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뛰쳐나온 상태에선 그런 것에 기댈 수 없었다.
어쩌면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냥개처럼. 짐승을 죽이기 위해 짐승을 부리는 것.
뭔가 해야 했다고 변명하지만 그저 죽이기 위해 의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감추고 싶어 지금까진 혼자 할 수 있는 의뢰만을 맡아왔다. 하지만 며칠 전,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누군가가 '반드시 그 정도의 실력자가 해야만 하는 일' 이라며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일을 제안했다. 그는 본래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 안의 악마는 혼자서는 쓰러뜨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상대를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런 모습' 을 보이는 건 꺼려져 몇 번이나 취소할까 고민하였다. 그냥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처리한다면...
-재미가 없지. 어차피 네놈이 재밌으려고 하는 거 아니었나?
그는 결국 취소하지 못했다.
그 동료라는 사람이 일 시작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다 연락해오기까지 했으니,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온 게 분명하다.
-한번 피 맛을 보면 쉽게 잊지 못하지. 네놈이 죽인 녀석들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죽이게 되는 거야. 인정해. 넌 그 녀석들과 같아지고 있어.
그는 자존감이 부족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교단을 떠나서는 그가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에 대해, 그가 가진 저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교단 내에서도 차별받았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이들, 검은 성전의 공포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자신에게 흘러나오는 어두운 기운을 알아챈 사람이 생길까 두려워.
-나약한 인간이 널 짓밟을까 두렵다면 먼저 짓밟아버리는 건 어떤가. 간단하지 않나?
그런 그에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일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하지만,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면 여러 모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지금 달빛주점의 구석진 곳에 앉아, 같이 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온 건 오랜만이라 긴장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정도를 넘어, 경계한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을 들어서는 사람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도의 기운이었다.
그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모든 것의 시초, 검은 성전을 일으킨 사도 오즈마와 그를 지키려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성자 미카엘라에게서 느껴졌던 같은 기운. 그 기억이 지금 여기서 다시 떠올랐고, 이곳에서 당장 도망쳐야 할지 그 상대를 죽여야 할지,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약해졌는지 환청이 평소보다 큰 소리로 들렸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지금 앞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던 듯 했다.
"---씨 맞아? 그런데, 괜찮아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 기운의 주인이었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의 눈앞에는 작은 마계인 소녀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흔히 보이는 마계인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었고, 순간적으로 그가 착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할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 그러니까 일을 함께 할 동료라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정도의 일이라면 그녀도 실력이 있는 자여야 자연스러웠다.
만약 그녀의 실력이 사도와 관계된 것이라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그 또한 비슷한 사정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눈앞의 소녀를 경계했다. 수많은 생각이 동시에 몰려들어 그녀의 말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런 것이, 사정을 모르는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오해를 사기 쉬운 타입이었다.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데. 사람 잘못 본 건가?
혹시 아직 안 왔나? 아니 약속시간은 지금이고..."
"저 맞습니다만... 죄송합니다."
뒤늦게라도 대답했다. 애매한 대답이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죄송한거야? 어쨌든, 다행이네. 잘 부탁해요. 이번 일."
소녀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잠시 당황했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떨어져나가 있다 보면 당연한 것도 잊게 되는 법이다.
"악수하자고요.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은건가, 혹시? 그럼 그냥 돌아갈까요?"
그제서야 손을 잡았다. 소녀는 보기보다 손 힘이 강했다.
그 때 소녀가 등 뒤에 띄우고 다니는 무기가 날을 세운 창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저걸 휘두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는 소녀가 전투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잠시... 머리가 아팠어서. 가끔 이렇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듣고 살아온 자라도 초면인 상대에게 자신이 죽인 악마의 기운과 환청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털어놓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소녀는 완전히는 못 믿는 눈치였다.
사실은, 그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왜 숨기는 것인지 계산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닐지라도, 의심을 습관적으로 해 오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너무 쉽게 믿으면 위험해진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녀도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굳이 캐물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소한 궁금증을 풀려다 그를 놓쳐버릴 수 있었고, 검증된 전력을 잃어 일을 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녀는 눈치가 빨랐다.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소녀는 살기 위한 마법을 수련해 왔다. 이론에만 집착하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마계라는 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단련했고, 마법의 응용법을 익혔으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기에 강해지려 했다.
그 강함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해지는 것, 그것만이 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얻은 것은 테라에서 신화로 전해져내려오는 존재, 테아나의 힘이었다. 다른 배틀메이지와는 다른, 고대 테아나와 같은 종류의 힘.
사도의 힘.
그녀도 자신이 가진 힘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라드에서 사도란 존재가 어떤 인식인지도. 그리고 그 인식은 대부분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힐더 님도 온전히 믿고 있진 않았기 때문에. 아라드에 전이된 사도가 피해를 준다는 것은 그녀가 직접 본 사실이었다.
그녀 또한 몇 번 전이된 사도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오히려 마계에서보다 더 자주 본 것 같았다. 그 때마다 그녀의 힘의 근원, 고대 테아나를 만든 힘과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강한 힘을 얻었고, 그걸 완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힘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기운을 눈치채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라드에서 실제로 사도를 본 사람들의 수는 몇 없었다.
사도를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적었다고 해야 할지도.
그런 점에서 눈앞의 남자에게선 조금 흥미로운 점이 느껴졌다.
어딜 보나 평범한 인간이고, 조금 어둡긴 해도 프리스트 복장을 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힘을 얻을 때 느꼈던 어두운 부분과 아주 비슷했다.
비슷한 느낌을, 아주 다른 곳에서 받은 적이 있었다.
디레지에의 환영이 나타났을 때.
그렇다고 그가 죽은 자는 아닐 것이다.
그를 유심히 뜯어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불안해보이던 사람이 더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았다.
소심한가... 안 어울리게.
역시 이런 거 물어보는 건 무리겠지, 같이 일하면서 알아보자. 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가 제일 보이기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물론 모르고 있겠지만.
이유는 다르지만 서로 말을 않는 바람에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생각에만 빠져 있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상당히 기묘한 모습이었다.
뭐 원래 목적대로라도 딱히 할 얘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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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메랑 어벤저 커플링... 을 영업당해서..
딱히 이건 커플같진 않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모험가로서 받은 의뢰만은 제대로 해결하고 있었다. 주로 무언가를 죽이거나 죽기 직전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들.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대부분이 모르지만, 무참하게 찢겨나간 채로 넘겨진 목표물의 시체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교단의 일처리 방식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 스스로도 교단과 언젠가 갈라서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했었지만, 이런 방식은 예상 외였다. 교단의 뒷모습을 처음 본 그로서는 약간이나마 배신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악마가 그의 마음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오즈마를 죽였지만, 환청은 계속되었다.
언제나처럼.
오즈마를 죽였음에도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더 절망하게 만들었다.
교단을 나온 뒤, 그는 처음으로 자신 - 안의 악마 - 에게 살해욕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찢어버리고 싶다. 짓밟고 내던지고 썰어버리며 몸부림치는 생명을 끊어내고 싶다. 그 욕망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워져, 몇번이고 계속해서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괴로워했다.
교단에 있을 땐 그들이 말하는 적을 죽였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 '적' 이 과연 모두 적인가, 라는 의문을 품고 뛰쳐나온 상태에선 그런 것에 기댈 수 없었다.
어쩌면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냥개처럼. 짐승을 죽이기 위해 짐승을 부리는 것.
뭔가 해야 했다고 변명하지만 그저 죽이기 위해 의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감추고 싶어 지금까진 혼자 할 수 있는 의뢰만을 맡아왔다. 하지만 며칠 전, 그의 실력을 눈여겨본 누군가가 '반드시 그 정도의 실력자가 해야만 하는 일' 이라며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하는 일을 제안했다. 그는 본래 거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그 안의 악마는 혼자서는 쓰러뜨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상대를 죽이고 싶어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그런 모습' 을 보이는 건 꺼려져 몇 번이나 취소할까 고민하였다. 그냥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처리한다면...
-재미가 없지. 어차피 네놈이 재밌으려고 하는 거 아니었나?
그는 결국 취소하지 못했다.
그 동료라는 사람이 일 시작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다 연락해오기까지 했으니,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온 게 분명하다.
-한번 피 맛을 보면 쉽게 잊지 못하지. 네놈이 죽인 녀석들처럼,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라도 죽이게 되는 거야. 인정해. 넌 그 녀석들과 같아지고 있어.
그는 자존감이 부족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교단을 떠나서는 그가 과연 인정받을 수 있을지. 그에 대해, 그가 가진 저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교단 내에서도 차별받았다. 그렇다면 알지 못하는 이들, 검은 성전의 공포만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자신에게 흘러나오는 어두운 기운을 알아챈 사람이 생길까 두려워.
-나약한 인간이 널 짓밟을까 두렵다면 먼저 짓밟아버리는 건 어떤가. 간단하지 않나?
그런 그에게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일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하지만,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가지면 여러 모로 고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지금 달빛주점의 구석진 곳에 앉아, 같이 일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 온 건 오랜만이라 긴장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는 정도를 넘어, 경계한다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을 들어서는 사람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그것은 분명 사도의 기운이었다.
그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모든 것의 시초, 검은 성전을 일으킨 사도 오즈마와 그를 지키려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성자 미카엘라에게서 느껴졌던 같은 기운. 그 기억이 지금 여기서 다시 떠올랐고, 이곳에서 당장 도망쳐야 할지 그 상대를 죽여야 할지,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정신력이 약해졌는지 환청이 평소보다 큰 소리로 들렸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지금 앞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던 듯 했다.
"---씨 맞아? 그런데, 괜찮아요?"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그 기운의 주인이었고-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의 눈앞에는 작은 마계인 소녀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흔히 보이는 마계인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눈빛이었고, 순간적으로 그가 착각한 것은 아닐지 생각할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기서 만나기로 한 사람, 그러니까 일을 함께 할 동료라면 그건 또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가 해야 할 정도의 일이라면 그녀도 실력이 있는 자여야 자연스러웠다.
만약 그녀의 실력이 사도와 관계된 것이라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그 또한 비슷한 사정이 있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눈앞의 소녀를 경계했다. 수많은 생각이 동시에 몰려들어 그녀의 말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런 것이, 사정을 모르는 그녀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오해를 사기 쉬운 타입이었다.
"여기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데. 사람 잘못 본 건가?
혹시 아직 안 왔나? 아니 약속시간은 지금이고..."
"저 맞습니다만... 죄송합니다."
뒤늦게라도 대답했다. 애매한 대답이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죄송한거야? 어쨌든, 다행이네. 잘 부탁해요. 이번 일."
소녀는 그에게 손을 뻗었다. 그는 잠시 당황했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떨어져나가 있다 보면 당연한 것도 잊게 되는 법이다.
"악수하자고요.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은건가, 혹시? 그럼 그냥 돌아갈까요?"
그제서야 손을 잡았다. 소녀는 보기보다 손 힘이 강했다.
그 때 소녀가 등 뒤에 띄우고 다니는 무기가 날을 세운 창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저걸 휘두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는 소녀가 전투하는 방식이 궁금해졌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잠시... 머리가 아팠어서. 가끔 이렇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듣고 살아온 자라도 초면인 상대에게 자신이 죽인 악마의 기운과 환청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털어놓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소녀는 완전히는 못 믿는 눈치였다.
사실은, 그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왜 숨기는 것인지 계산하고 있었다. 별 거 아닐지라도, 의심을 습관적으로 해 오며 살았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너무 쉽게 믿으면 위험해진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그녀도 그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챘지만 굳이 캐물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소한 궁금증을 풀려다 그를 놓쳐버릴 수 있었고, 검증된 전력을 잃어 일을 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소녀는 눈치가 빨랐다.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소녀는 살기 위한 마법을 수련해 왔다. 이론에만 집착하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마계라는 곳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단련했고, 마법의 응용법을 익혔으며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기에 강해지려 했다.
그 강함이 어떤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해지는 것, 그것만이 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얻은 것은 테라에서 신화로 전해져내려오는 존재, 테아나의 힘이었다. 다른 배틀메이지와는 다른, 고대 테아나와 같은 종류의 힘.
사도의 힘.
그녀도 자신이 가진 힘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라드에서 사도란 존재가 어떤 인식인지도. 그리고 그 인식은 대부분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그녀는 힐더 님도 온전히 믿고 있진 않았기 때문에. 아라드에 전이된 사도가 피해를 준다는 것은 그녀가 직접 본 사실이었다.
그녀 또한 몇 번 전이된 사도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오히려 마계에서보다 더 자주 본 것 같았다. 그 때마다 그녀의 힘의 근원, 고대 테아나를 만든 힘과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강한 힘을 얻었고, 그걸 완전히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힘을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 기운을 눈치채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그렇지 않더라도 아라드에서 실제로 사도를 본 사람들의 수는 몇 없었다.
사도를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적었다고 해야 할지도.
그런 점에서 눈앞의 남자에게선 조금 흥미로운 점이 느껴졌다.
어딜 보나 평범한 인간이고, 조금 어둡긴 해도 프리스트 복장을 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힘을 얻을 때 느꼈던 어두운 부분과 아주 비슷했다.
비슷한 느낌을, 아주 다른 곳에서 받은 적이 있었다.
디레지에의 환영이 나타났을 때.
그렇다고 그가 죽은 자는 아닐 것이다.
그를 유심히 뜯어보고 있자니 안 그래도 불안해보이던 사람이 더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았다.
소심한가... 안 어울리게.
역시 이런 거 물어보는 건 무리겠지, 같이 일하면서 알아보자. 라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가 제일 보이기 싫어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녀는 물론 모르고 있겠지만.
이유는 다르지만 서로 말을 않는 바람에 상당히 어색한 분위기였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생각에만 빠져 있는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상당히 기묘한 모습이었다.
뭐 원래 목적대로라도 딱히 할 얘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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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메랑 어벤저 커플링... 을 영업당해서..
딱히 이건 커플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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