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소울/엘든링]이름 없는 왕과 붉은 전쟁 처녀
#타다남은 제작
#5화
미친 듯이 붉은 노을 아래.
케일리드의 남부 들판 역시 피로 점철되어 붉게 물들었다.
장군 라단이 이끄는 적사자군 기사.
미켈라의 칼날 말레니아가 이끄는 귀부기사를 비롯해.
그들이 전장으로 이끌고 온 수 만의 병사, 사제, 죄인, 약탈자, 노예, 흉조의 짐승, 데미갓, 도가니의 기사 등등.
그들이 어떠한 숭고한 사명을 품었고, 어떠한 사정으로 비굴하게 이곳으로 끌려왔건간에.
그들 모두에게 죽음은 평등했다.
그들은 대전쟁이 선사하는 파괴적인 죽음을 피할 수 없었고, 전장에 차곡차곡 쌓여 빚어진 핏빛 풍광에 불과했다.
오직.
파쇄전쟁에서 가장 강했던 둘로 꼽히는 데미갓.
별 부수는 라단과.
미켈라의 칼날 말레니아만이.
수백의 적사자 기사와 귀부기사를 박살내며 무사히 전력을 보전해 양측 지휘관의 결전으로 이어졌다.
둘은 호각을 이루며 오랫동안 합을 이어나갔으나 승기는 확실해졌다.
붉은 전쟁 처녀라 칭송받던 말레니아는 의수도만으로 라단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두 자루의 별 부수는 대검과 말레니아의 의수도가 펼치는 물새난격이 부딪치기를 수백 합.
말레니아의 의수도가 더 이상 충격을 견내내지 못하고, 조그마한 소리를 내며 오른쪽 어꺠에서 탈착되었다.
조그마한 소리였지만, 죽음을 예감하는 끔찍한 소리였다.
지금까지 말레니아의 의수는 불패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치켜든 의수에서 날개를 봤다고 한다.
패배를 모르는 가열한 의지의 날개를.
그러나.
말레니아의 불패는 오늘 끝났다.
끝났어야 했을 터다······.
라단은 결투에서 무방비한 상태의 적을 베는 건 장군으로서의 명예가 아니라는 듯 그저 기다렸고.
말레니아는 이를 악물며 오른쪽 어깨에서 탈착된 의수를 다시 부착시키며 결심했다.
붉은 부패의 부름에 저항하는 사람으로서의 긍지를 포기하기로.
말레니아의 의수도가 철컥 소리를 내며 오른쪽 어깨에 부착되기 무섭게, 양측 지휘관의 결투는 다시 시작되었다.
「Superflorescit」
(다시 꽃 피운다)
「Superflorescit denuo」
(다시 한번 꽃피운다)
「Malenia Quibis」
(말레니아 넌 할 수 있을거야)
「Flore Aeoniam Malenia」
(에오니아를 꽃 피우렴 말레니아)
「Aeoniam flore」
(에오니아를 꽃 피워라)
「Denuo to ipsum」
(다시 한번 자신을)
「Pulchre flore」
(아름답게 꽃피워라)
「Denuo te ipsum」
(다시 한번 자신을)
「Florem Secundus Florem Secundus」
(두 번째 꽃을 두 번째 꽃을)
「Aeoniam··· illam···」
(저···에오니아를···)
「Speciem···illam···」
(저 외관을···)
「Floris Maleniam···」
(꽃의 말레니아를···)
「Vide! Maleniam!」
(보아라! 말레니아를!)
금기이자 최후의 수단이었던 붉은 에오니아 꽃이 라단의 몸 위에서 개방되었다.
온몸이 붉은 부패에 좀 먹히며 누군가의 속삭임이 머릿속에서 웅웅 울려퍼졌다.
여신의 강렬한 부름에 정신을 빼앗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몸은 금빛을 잃고, 피는 부패하여 붉은 꽃을 피우니.’
‘그대는 이제 기나긴 꿈을 꾸게 되리라.’
‘썩어라!’
말레니아는 마음 속 깊이 절망했다.
‘미켈라, 나의 언니······말레니아는 결국 붉은 부패의 유혹에 졌습니다······부디, 무사하기를.’
이 전쟁의 승자는 라단도, 말레니아도 아닌 붉은 부패의 여신이었다.
붉은 에오니아 꽃을 피운 말레니아를 제물로 붉은 부패의 여신은 케일리드의 남부 평원에서 깨어났다.
말레니아의 추억이 멋대로 속삭이며 여신에게 기도를 했다.
「Superflorescit」
(다시 꽃 피운다)
「Aeoniam florebis···」
(넌 에오니아를 꽃 피울거야···)
붉은 에오니아 꽃에서 흩뿌려진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온 세상에 흩뿌려지며 기도한다.
「Supera temet···」
(너 자신을 뛰어넘어···)
「Flore Aeoniam Malenia」
(에오니아를 꽃 피우렴 말레니아)
꽃가루는 아군, 적군, 시체, 식물, 동물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명체를 붉게 부패시켰다.
그건 부패의 여신으로 각성한 말레니아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
이대로라면 케일리드는 붉은 부패로 뒤덮혀 죽음의 땅이 될 게 자명했다.
머지 않아 붉은 부패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온 대륙에 번져 이 땅을 모조리 집어삼킬게 자명했다.
이름 모를 남자가 온 하늘을 불태우지 않았더라면.
「Don’t tell me you see it」
(그대는 보이지 않는 가)
「Look up the sky it burns」
(하늘이 이토록 불타고 있는데)
일식이 드리우며 태양이 검게 물들고.
멈춰있던 수많은 별들이 운행을 다시 시작하는.
온 하늘이 붉게 타들어가는.
세상을 순식간에 뒤바꾸는 압도적인 위용과 힘에 초월적인 외부신인 붉은 부패의 여신조차 잠시 넋을 잃었다.
일식에서 용암처럼 쏟아지는 테양빛을 쫓아 시선을 움직였다.
쏟아지는 태양빛 아래에서 잔불에 휩싸인 사토를 뚫고, 손이 튀어나와 불쏘씨개 나선검을 꽈악 쥐었다.
곧이어 이름 모를 남자가 사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식과 불의 계승을 통한 죽은 자의 재탄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불은 바라보는 자에게 온기를 주는 법.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말레니아가 품은 거대한 룬이 이제는 잊혀진 먼 과거, 장작의 왕들이 계승한 태초의 불에 이끌려 크게 요동쳤다.
기나긴 시간 동안 뒤틀리고, 망가져 버림받은 잔불들이 장작을 갈망하듯.
거대한 룬은 원래의 주인에게로 되돌아가기를 원했고.
그 사실을 모르는 붉은 부패의 여신은 붉은 에오니아의 권능을 다루며 거대한 룬의 약탈자를 공격했다.
“감히 내 것을 빼앗으려하다니, 탐욕스럽군.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여, 다시 썩어 문드러져 죽어라!”
붉은 에오니아 꽃에서 태어난 수천 마리의 에오니아 나비가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이름 모를 남자를 휩쓸었다.
붉은 부패를 품은 나비에 닿은 모든 생명체와 대지가 순식간에 썩어 문드러졌고, 주위에 나뒹글던 수많은 시체가 산화했지만.
이름 모를 남자는 불쏘씨개 나선검을 쥐고, 이 땅에 꿋꿋히 섰다.
「Let him grant death...」
(...그리고 그는 죽이리라)
이름 모를 남자의 온몸이 불타오르며 붉게, 너무나도 붉게 태양처럼 타올랐고.
「To the old gods of □□□, deliverers of the First Flame」
(태초의 불을 계승한 □□□의 오랜 신들을)
남자는 쏟아지는 태양빛 속에서 불쏘시개 나선검을 이 땅에서 뽑아올렸다.
나선검이 뽑히며 기나긴 세월 동안 불의 계승을 통해 힘을 키워온 태초의 불꽃이 해방되었다.
그 불꽃은, 밤하늘로 솟아오르며 온 대지를 뒤흔들고, 온 하늘을 새빨갛게 불태웠다.
불꽃에 바싹 타버린 붉은 부패의 꽃가루와 에오니아 나비. 그리고 축복의 인도가 케일리드에 비처럼 쏟아졌다.
비처럼 쏟아지는 축복의 인도에 인도받아 남자는 이 땅의 정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황금빛 나무를 조용히 올려다봤다.
온 케일리드에 울려 퍼지는 마리카의 속삭임을 들었다.
「과거, 눈동자에서 황금의 축복을 잃고 틈새의 땅에서 쫓겨난 빛바랜 자들에게 축복의 인도를 내리겠노라」
「축복을 잃고 미처 죽지 못한 죽은 자들이여」
「인도를 따라 안개의 바다를 넘어 틈새의 땅으로 향해」
「엘든 링을 알현하라」
「그리고 엘데의 왕이 되어라」
그 오만함에 붉은 부패의 여신이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이름 모를 남자를 툭툭 쏘아보며 한마디 했고.
“빛 바랜 자여. 그래, 불태우고 싶다면 더더욱 불태워라. 불에 타는 장작처럼 평생을 썩어 문드러지는거다.”
불에 타는 장작처럼 평생을 살라는 말에 남자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이내 축복의 인도를 머금어 잿빛색 눈동자가 분노에 찬 황금빛으로 이글거렸다.
남자의 머리 위로 씌어진.
불에 그을리고, 녹아내려버린 왕관이 왕들의 소울과 함꼐 온 하늘의 세레를 받으며 불타올랐다.
「Soul Of Lords」
왕들의 영혼이여.
「Lords Of Cinder's Incarnation」
장작의 왕들의 화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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