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려고 한다
어떻게 참 잘도, 이발소 같은 데서 물수건을 덮고
얼굴이 벌겋게 익은 채로
面刀 아래 목을 내놓는 짓을 했을까
面刀 아래 목을
등 뒤에 도사견이 와서, 장미덩굴을 붙잡고
병 조각이 삐죽삐죽 꽂힌 담을 단숨에 타넘고도
아픈 줄 몰랐다, 아홉살,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동녘에 지진이 날 거야, 하고 토막잠 들었다가
일본 대지진 뉴스 속보를 덜덜덜, 누운 채로 볼 때
눈을 떴는데 전화벨이 그치지 않을 때
버스가 왔구나, 버스를 타야지, 버스를 탔는데
정류장에 나타나 앉아 있을 때 담배가 없을 때,
사라졌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돌아왔을 때, 비참했다
부활은 소용이 없구나, 담배가 있을 때
개에게 뼈다귀 소중하듯이
나의 슬픔 나에게나 소중했던가*
생각을 안해 못하겠어
가진 것 하나도 없으면서 겁내는 인간은 뭔가가 더
없는지도 모르지만
무수한 괜찮은 것들 사이에서도 나는 아직 괜찮지만
어떻게 참 잘도, 학생 땐 돌을 던지고
군인이 돼선 총질을 해댔을까, 정신을 잃지도 않고
잊지도 못할 말들을 뱉었을까
나는 너무 나 같아서 나 같지 않다
너무 나 같지 않아서 나 같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 배운 것을 잊지 않았다
증오하지 않았다
중무장을 하고 후꾸시마로 들어가는 원전 처리 결사대
처럼,
물샐틈없는 밤을 본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여러번 무사했을까
어떻게, 살려달라고 빌고 나서도
살고 있을까
자려고 불을 끈다
끄려고 한다
불을 끄려고 한다
불 끄는 일은 일이구나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인 사람은,
밤새도록 불 끄는 사람은
아침 해가 실내등을 환하게 감겨주면, 안도한다
나는 잊으려 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죽으려 하지 않았다
안도가 아니어도, 안도에 지쳐
지주알 같은 하얀 잠들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 이성복 시인이 “그들의 눈은 그들에게나/소중했는가, 내 사랑/나에
게나 소중했던가“(「비린내」)를 변용.
나무는 간다
이영광, 창비시선 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