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은 피고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애
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며 점방에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
꽃이 지고 찔레가 여물고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
이 나고 그애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애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애를 찾아 헤매었나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나루 분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그애가 보였다. 산골읍 우체국에서,
두꺼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그애가 보였다. 활석 광산 뙤
약볕 아래서, 힘겹게 돌을 깨는 그애가 보였다. 서울의 뒷골
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물점에서, 그애를 거
듭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엄마가 되어 있는, 할
머니가 되어 있는, 아직도 나를 잊지 않고 있는 그애를 보
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하얀 찔레꽃은 피고,
또 지고.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