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마지막 일곱해를 사셨다.
아들도 몰라보고 어데서 온 누구냐고 시도 때도 없이 물
어쌓는
망령 난 구십 노모를 미워하면서,
가난한 아들한테서 나오는 몇푼 용돈을 미워하면서,
절뚝절뚝 산동네 아래 구멍가게까지 걸어내려가
주머니에 사 넣는 한갑 담배를 미워하면서,
술 취한 아들이 밤늦게 사들고 들어와
심통과 함께 들이미는 군밤을 미워하면서,
너무 반가워, 그것도 너무 반가워
말보다 먼저 나가는 야윈 손을 미워하면서,
돌아가셔도 눈물 한방울 안 보일,
남편의 미운 짓이 미워 눈물 한방울 안 보일
아내를 미워하면서,
시신을 덮은 홑이불 밖으로 나온
그의 앙상한 발을 만지며 울 막내를 미워하면서,
고향 선산까지 그를 실어갈 낡은 장의차를 미워하면서,
죽어서도 떠나지 못할 산동네를 미워하면서,
산동네를 환하게 비출 달빛을 미워하면서,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이 지번에서 아버지는 지금도 살고 계신다.
사진관집 이층
신경림, 창비시선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