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실에서 나온 잇토키가 찾아간 곳은
치료 구역이었다.
그러나
이번 목적지는
트레이시의 병실이 아니었다.
잇토키는
병실 중 한 곳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목불인견의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미약한 신음 소리만
겨우 흘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서,
잘생기고 젠틀한
츠네타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잇토키가 침대로 다가가자,
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잇토키가 말했다.
“……조금 전에 막 잠들었는데요.”
간호사가 말했다.
“말할 수 있습니까?”
잇토키가 다시 물었다.
간호사는
잇토키가 한 질문의 의도를
그제야 이해했다.
잇토키는
그가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말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가능은…… 합니다.”
간호사의 말을 들은 잇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는
병실 밖에서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요원의 모습을 보았고,
문을 닫고 나갔다.
“히로시.”
병실에 두 사람만 남자
사쿠라바 잇토키가
츠네타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츠네타카는
잇토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반응이 없었다.
코뼈와 턱뼈,
그리고
갈비뼈가 골절되었다고 했다.
고통이 심할 것이다.
잠들지 못할 정도의 고통일 터인데,
츠네타카는 잠들어 있었다.
강한 진통제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
잇토키는
그렇게 생각하며
츠네타카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을 잡고, 맥을 확인한 후
약하게
진기를 불어 넣었다.
잇토키의 손에서 흘러 들어간 진기는
츠네타카의 온몸을
부드럽게 타고 움직이며
그의 신경을
조심스럽게 자극했다.
고통을 주기 위한 진기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히로시.”
어느 정도 진기가
츠네타카의 몸을 회복시켰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잇토키는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츠네타카가 반응을 보였다.
그의 눈이 뜨였고,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그러나
퉁퉁 부어 있는 그의 눈도,
깁스로 고정되어 있는 목도 그리 많이 움직이지는 못했다.
“말할 수 있겠나?”
츠네타카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내 말은 들리나?”
잇토키가 다시 물었다.
츠네타카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잇토키는
그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우선은 듣고만 있으라고.”
츠네타카의 목을 고정하고 있는 깁스 때문에
츠네타카는
고개를 끄덕이지는 못했지만,
잇토키는
그가 긍정을 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자네를 습격한 놈들은
시마다가 보낸 놈들이더군.”
잇토키는
거의 뜨지 못한
츠네타카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눈에 담겨 있는 놀람을 보았다.
잇토키는
중의원이라는 이야기도,
이름이 아리히로라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츠네타카는
시마다라는 성만으로
한 사람을 특정했다.
“뭐,
시마다도 그렇고,
자네도
애블린을 어찌해 보겠다고 일을 벌인 것은
이해가 가는데,
이건 모르겠단 말이지.
어떻게
시마다가
어제가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말이지.”
잇토키는
여전히 츠네타카의 눈을 보고 있었다.
츠네타카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잇토키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 뭐랄까.
복잡한 기분이야.
솔직히 자네에게 화가 나.
그 감정이 가장 큰데,
다른 한편으로는 좀 안쓰럽달까.
그런 기분도 드는군.
무슨 말인지
자네는 이해하지 못할 거야.”
잇토키는
약간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군.
말도 못 하는 사람에게
괜히 길게 이야기해 봤자 힘들기만 할 테니
짧게 이야기하지.
여기는 미국 대사관의 의료실이네.
주일 미국 대사관.
자네가
왜 병원이 아닌 이곳에 있는지 아나?”
츠네타카의 눈빛에 놀라움이 번졌다.
잇토키는
당연히 그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자네가 미국 법정에 서야 하기 때문이지.”
잇토키가 던진 폭탄이
즉각적으로 반응을 나타냈다.
“그, 그게 무, 무슨…….”
츠네타카가 입을 벌렸다.
그의 입에서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잇토키는 살짝 웃었다.
“말할 수 있었군.
다행이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권자인 애블린 허드슨에게 피해를 입힌
용의자 두 명을 찾아냈네.
용의자 두 사람을 미국 법정에 세우고,
미국 법에 따라서 처벌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두 명 중 한 사람이
일본 국회의 중의원인 시마다라는 것이지.
이해되나?”
거기까지 말한 잇토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병실 한쪽에 놓인 냉장고를 열고
안에서 생수병 하나를 꺼냈다.
츠네타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공소장에는 이렇게 적힐 거야.
자네는
에블린에게
데이트 강간 약물인 GHB를 투여했고,
정신을 잃게 만들었지.
그리고
미리 고용한 어린놈들 몇 명을 이용해
어딘가로 납치한 다음
성폭행을 하려고 했고.
그러다가
그 어린놈들과 의견 충돌이 일어났고,
그 어린놈들이
우발적으로 자네를 폭행했고.
뭔가 문제가 커질 것을 알게 된 놈들은
애블린을 두고 도망가려다가
마침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미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발각되면서
애블린도 구출하게 되었다고.”
잇토키는
한 손에 물병을 들고
츠네타카에게 걸어가면서 말했다.
츠네타카의 눈에 공포가 서리는 것이 보였다.
아니야. 아직 멀었어.
그 눈을 보면서
사쿠라바 잇토키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 물론 알고 있어.
자네는 그저 약물만 썼다는 것을.
하지만 말했잖아.
시마다, 중의원이니까.
어쩔 수 없지.
자네만 미국으로 가게 될 거라더군.”
잇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츠네타카에게 보여 주었다.
“마실 텐가?”
츠네타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갈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목을 고정하고 있는 깁스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안 되겠군. 치료 중이니까.”
잇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대신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자네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군,”
츠네타카의 부어있는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내가 말했지만 웃기는군.
내 여자 친구를 탐한 자네가 안쓰럽다니.
뭐,
사실 안쓰럽다는 감정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야.
솔직한 심정으로
자네가 이렇게 엉망진창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주먹을 날렸을지도 모르지.
사실
자네 상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그럴까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잇토키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츠네타카에게
공포를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이번 일이
100% 자네의 욕망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네.
물론
그 시작이
자네의 욕망인 것도 알고 있어.
부정하려 하지 말게.
나를 자극할 수도 있으니까.”
잇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츠네타카의 얼굴을 보았다.
“단순히 욕망 때문이었다면
일을 이렇게 크게 벌리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진행을 한 이유는
결국
회사가 자네의 등을 밀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더군.
자네가,
똑똑한 자네가
단순히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일을 독단적으로 진행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잇토키는
다시 물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츠네타카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킬 시간을 주기 위해서,
“또 한 가지 안쓰러운 점은,
자네가 미국 교도소로 가게 된다는 사실이지.
미국 법정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상당히 보수적이지.
배심원단은 더욱 보수적이고
거기에 감정적이지.”
츠네타카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어가고 있었다.
“미국 시민권자를 성폭행하기 위해
마약을 사용했다.
모르겠군.
공소장에 성폭행을 했다고 적힐지도.
갱스터도 동원했다.
검사는
조직범죄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말할 거야.
자네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배심원들이
자네를 미워하게 만들기 위해서.”
잇토키는
잠시 말없이 츠네타카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최소 20년.”
잇토키의 말에
츠네타카의 몸이 떨렸다.
“20년.
긴 세월이지.
짧지 않은 시간이지.
다녀오면 노인이 되어있겠군.
아니,
돌아왔을 때를 걱정할 때가 아니지.
20년을
교도소에서
어떻게 버텨 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되겠군.
미국 교도소는 거칠고,
자네의 새 친구들이
자네의 엉덩이를 원할 테니까.”
잇토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이 기분 나쁜 대화를 끝낼 때가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히 말하지.
미국은 미일범죄인인도협정에 따라
자네를 넘기라고 요구할 것이고,
일본 정부는 그 요청을 받아들일 거야.
내기해도 좋아.
카미카제의 나라 일본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 싸울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츠네타카의 얼굴을
공포라는 감정이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츠네타카도 그렇게 생각했다.
양국의 외교 관계에서
일본은
단 한번도 미국에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일본 정부에는 기대할 수 없고,
결국 마지막 희망은
자네의 등을 밀어준 회사뿐인데…….
일본에서는
이직을 많이 하면
신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고용을 꺼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랬지.
자네 회사가
자네에게 신의를 보여줄지 모르겠군.
기껏해야
변호사를 고용해주는 정도겠지만……
모르겠군.
코시자와중공업이 의리 있는 회사였으면 좋겠군.”
그렇게 말하고
잇토키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으로 걸어가 손잡이를 잡았다.
“잘 가게.”
잇토키가 말했다.
“도, 도와줘…….”
그런 잇토키의 귀에
츠네타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잇토키는 뒤를 돌아보았다.
츠네타카가
그를 보고 있었다.
“시, 시게노 상무.”
츠네타카가 말했다.
“시마다……에게……
시게노 상무가…… 말했을 거야.
겨……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츠네타카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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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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