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에는 이미 유미가 와있었다. 그녀는 굉장히 수축해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빈약해 보였던 가냘프게 보이던 모습이 오늘은 더욱. 그녀의 영혼은 지니랑 같이 있다는 듯이 지금은 이승에는 미련이 없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향냄새는 그 시간을 더욱 애달프게 만들었다. 내가 보던 사자의 모습과 그녀가 보던 사자의 모습은 달랐을 테니까.
그녀들을 만난 건 단순한 우연이었다.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내가 그녀들 사이에 끼인채로 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녀들 중 한사람과 창가쪽에 앉아있던 나의 자리가 바뀐것이었다. 서로다른 남고와 여고가 같은 날 같은 비행기에서, 유일하게 겹치는 열과 칸에 앉은 우리들. 그리고 흔들리는 비행기속에서 왜일까 그녀들은 이미 싸워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큰소리로 떠들 수 없기에, 그보다도 그정도의 감정을 서로 갖고 있었기에, 내가 산업혁명이전의 전보라도 되는 듯이 둘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종이컵 전화기가 된 것 같았다. 실제로는 종이컵 전화기가 더욱 먼거리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게 없었다면 거짓 말일 것이다. 서로의 학교의 일정은 대부분 비슷해서 자주 왕래가 있었고, 결국에는 마지막날에 몇 커플 정도가 연락을 교환하여 돌아가기도 하였다고 들었다. 그 둘의 연락처 또한 착륙하기 전에 급히 받아두었고, 꽤나 유용하게 이용당했다. 거인국 프로그램, 마라도 일정, 성산일출봉 등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동시에 우리들도 급속하게 친해졌다. 청춘들의 시간속에 감정으로 꿍해있는 시간은 너무나 사치였을까, 그녀들과 나는 어느 덧 친해져 가까운 숙소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그녀중 하나가 어디선가 갖고온 맥주를 나누어주었다. 꽤나 성숙하게 생겼던 지니였을 게 확실하다. 그때부터 그녀는 대학생 남자친구가 이미 있었으니까. 지니는 마일드세븐을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입에 물었다. 꽤나 어른스럽게 보여서 그녀에게 나 자신도 이런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해 보이려는 제스처를 취하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가 너무도 서툴렀던 것 같다. 오히려 유미는 그런 우리둘을 한심하게 생각했을 수 도 있다. 유미를 슬쩍 보고 잠시 흡연장으로 나와 마일드세븐을 입에 문다.
말문을 처음 터트린건 유미였다. 지니의 남자친구는 옆 학교의 3학년 지나가던 후배들 꽤나 돈을 뜯어냈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그녀들은 1학년이었다. 그 남자가 최근에 바이크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고비를 마련할 수가 없던 모양이었던 듯 하다. 그 사고비를 같이 마련해주면 안되겠냐는 일로 서로가 싸운 것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건 천벌받은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누가 남에돈을 뺏으래." 유미는 의문문인지 아닌지 모를 끝맺음을 했다. 그건 오해라며, 그건 주위 동생들에게 위엄을 보이기 위한 형식상의 절차였으며 사실 얼마되지도 않았고 겁만 준거라고 지니는 반박했다. 그녀들의 남자취향은 꽤나 다른듯 보였다. 내가 그 사이에 끼어들 틈같은 건 없었지만, 왜일까 그때 지니가 피고있던 뺏어 깊게 들이 마셨었다. 깊은 공기는 허파를 관통하여 살짝 적신뒤에 코와 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을 통해 빠져나왔다. 마치 마술이라도 본듯이 그녀들은 폭소와 박수갈채를 내게 보냈다. 기린이치방 맥주를 터프하게 따서, 눈깜짝할 사이에 반잔을 비어냈다. 담배도 술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상으로 그녀들이 손을 잡아주었다. 아마 유미만 없었다면 그날 처음으로 지니와 키스를 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인생 첫 키스를.
담배를 입에문채 빨아드리고 있질 않는다. 그저 흡연부스에 냄새만 맡고 있을뿐이다. 멍하니. 유미는 지니와 좀 달랐다. 오렌지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던 그녀는 일본만화속에 나오는 여주인공 같았다. 탈색을하고나서 색을 집어넣어서 그런 색이 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짝가슴이 불만이라고 했다. 졸업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은 성장판에 대고 나머지 가슴마저 부풀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때 바지가 좀 짧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야기할 차례는 내가 되었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그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도 그녀들에게 진실이건 거짓이건 분별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즉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단순히 그녀들을 웃기기 위한.
(NEXT)
말을 아낀다는 건 그만큼 벙어리가 되겠다는 무언의 무방비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편이 나을때는 반드시 있다는 것을 좀더 주의했어야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