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잃어버린 남자가 생각하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인연과 기회 그리고 다시 오지 않을 찬란했던 순간들의 화려한 영광들 뿐이다. 시간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매일 아침 허기짐에 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한심하다. 일상은 반복된다. 매일 같이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담배꽁초를 물고 있는 그에겐 희망이란 빛은 보이지 않는다. 완기는 생각한다. 지금 내가 할 수있는 것에 대하여. 치릭치릭 빗자루가 움직이는 소리에 쿱쿱한 반지하에서 떨어지는 낙엽과 그 낙엽들을 치우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완기는 다시 생각 한다. 공무원을 향한 질투 보다 공무원이 되었다는 그들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언젠가는 그 공무원이란 직업을 꿈이 없는, 현실에 패배한 한심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은 완기를 비웃듯이 그들의 가진 노력끝에 성취해낸 결과를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빗질소리로 대답한다. 사회의 패배자, 그 말은 즉슨 사회에 아직 정착하지 못한 청소년도 어른도 아닌, 그 중간쯤에 끼인 몸만 커다란 정신은 청소년인 희망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고독한 담배연기 만이 그가 취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신중하고 열정적인 행위이다.
완기의 일생은 정말로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세상은 그 무엇보다 단조로운 것으로 보이니기 때문이다. 학교란 쓰레기를 집어넣은 거름망 속에서 서 나올리 없는 보석을 걸러내는 작업과 같은 것이었고 완기는 그 무엇보다 열렬히 보석이 되고싶어했다. 주위의 기대와 바라지 않았던 환경속에서 자연스레 기대감을 충족해야한다는 사명감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무엇을 원하건 원하지않건, 주변 환경은 보석이 될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들이 충족되어 있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흉내를 내는 것은 간단햇다. 화려한 성적표를 주위의 기대에 부응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럴려면 학교의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완기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완기의 시간은 다양하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덤덤한 완기는 생각하는 힘이 남달랐다. 생각하는 힘이란, 영리하게 문제집에 나온 문제를 풀어서 모든 것을 맞추는 것 같은 게 아니다. 현재의 집중하는 생각의 영역과, 그 밖에 남은 뇌의 역량으로 만들어낸 가상세계 속에 들어가는 생각의 영역이다. 가상세계속 영역은 저 멀리 광산 같은 게 보이고 그 주변은 밝은 초록빛 언덕 속의 어떤 유물들이 널부러져 있는 세계이다. 그리고 광산 주변에 버려져있는 낡은 곡괭이로 언덕들에 곡괭이질을 한다. 유물은 언덕속에 묻혀져있고, 그것들은 그 낡은 곡괭이로 발굴해내야한다.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화장실을 가야할 때가 언제일 때인가를 알듯이.
학기초에, 아니 어떤 상황에서도 완기가 초면인 사람들은 완기를 보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몇번재인가 봤을때 왜이렇게 멍한 표정을 짓는지 그에게 묻는다. 그렇지만 완기가 내버린 결과들을 보면 주위사람들은 완기에 대한 평가를 180도 바꿔 버리며, 그렇게 말했던 자신들을 책망한다. 완기는 천재의 영역에 있지 않다. 대신 어떤 유물이 어떤 언덕에 파묻혀 있는 지를 알듯이, 현실의 영역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자신의 최고의 방어이자 공격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살다보면 결국에 누군가에게 영역을 침범당하는 일이 많다. 완기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 얼빵했던 완기는 물론 친구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그 상대가 완기를 싫어했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완기는 알고 있다. 자신을 싫어하는 인간은, 자신은 갖고있지만 상대는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상대는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해결책은 결국 자신과 상대의 체급차이를 보여주고, 일부러 그 상대가 자신보다 낫다는 것을 어필하면된다. 살짝 부끄럽고 귀찮을 때가 있지만, 한번 머리를 조아리고 다가가면 그들은 친구의 영역속에 완기를 껴준다. 어떻게 보면 서로 윈윈인 관계가 되버린다. 상대는 결국 자신이 이겼다는 안쓰러운 만족감을 얻고, 완기는 자신의 영역을 돌려 받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서나 기대를 충족해왔던 완기가 지금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몇 급인지도 모를 저 공무원이 쓸고 있는 빗자루소리 감탄하며, 당신의 그 빗자루질은 세상그 어떤 오페라가 와도 낼 수 없는 소리를 낼수 있군요 라는 어딘가 비틀린 듯한 생각의 반항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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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가 울린다, 따르릉 소리에 놀란 완기는 물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리고, 그것을 줍고 일어다면서 머리를 책상에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