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팬픽은 포켓몬스터 3세대와 그 리메이크작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시고 읽으시는 걸 권장합니다.>
포켓몬스터 유성의 7일 1화 등화도시의 관장님
서둘러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7일, 짧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쓰러져 있어도 될 정도로 넉넉하진 않습니다.
“빨리....... 움직여야.......하는데.......”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쓰러진 채 점점 굳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네요. 손가락 끝을 움직이는 게 고작입니다.
“버서서.......”
옆에서 버섯꼬가 안절부절하고 떨고 있습니다. 괜찮다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 하지만, 역시나 몸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어라, 이 장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던가요. 그건 꿈? 아니면 현실? 어쩌면 내 상상......? 으으, 머리가 멍해져서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버서섯......!”
버섯꼬가 작게 외치고는 뒤쪽으로 돌아 저 멀리로 달아납니다. 얼마 안 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숲을 헤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버섯꼬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어딜 가는 걸까. 이제는 눈을 뜨고 있는 것 마저 힘겹습니다. 머릿속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라? ...섯꼬? ... 어, 왜 그러...? 따라...?”
숲 안쪽에서 들린 희미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치아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나무킹! 리프블레이드!”
“꿀꺽몬! 버티면서 비축하기!
나무킹의 리프블레이드가 꿀꺽몬에게 명중했지만, 아무래도 큰 피해는 입히지 못한 듯 했다.
그도 그럴게 꿀꺽몬의 방어와 특수방어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상성 역시 내 풀타입을 견제할 생각으로 꺼낸 독타입의 꿀꺽몬이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트레이너란 뜻이다. 현재 배지도 5개나 모았다고 했고, 이 정도면 나도 배지를 건네줘도 될 것이다.
“꿀꺽몬, 오물공격!”
나무킹이라면 저 공격을 피하는 건 물론, 지금이라도 꿀꺽몬을 시합불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적당히 져주기로 했다. 나무킹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것도 관장의 업무 중 하나다.
나뭇-!
결국 꿀꺽몬의 공격은 나무킹에게 직격했다. 상성에다 자속 공격이다. 나무킹은 쓰러졌다.
“나무킹, 시합 불가능! 도전자 승리!”
기뻐하는 도전자에게 품에서 배지를 꺼내 건네주었다.
“훌륭하군요. 여기, 등화체육관을 돌파한 증거. 리프 배지입니다.”
“좋아, 이걸로 6개째! 감사합니다. 관장님!”
도전자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체육관을 나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체육관 안은 기분 탓인지 쌀쌀해진 것 같았다.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해 심판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예약한 도전자는 저 분으로 끝인 거죠?”
“예, 그렇습니다. 거의 저녁이 다 되었네요. 혹시나 하는데, 설마 일부러 져주신 건가요?”
“그런 말보단 트레이너의 기량을 끌어낸 거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벌써 퇴근시간이잖아요. 뒷정리는 제가 할 테니, 먼저 들어가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주말 동안 잘 쉬십쇼. 레인 관장님!”
심판은 인사를 하고 체육관을 나갔다. 조용한 등화체육관 창문 사이로 붉은 노을이 비쳤다.
등화도시에서 관장을 맡은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기간으로 치면 10년 즈음 되려나. 이 일 자체에는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협회에서 돈도 꼬박꼬박 나오기도 하고. 덕분에 생활에는 아무 걱정이 없다.
하지만 내 목표는 관장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내 관심사는 하나 뿐이다.
레쿠쟈. 천공 포켓몬
어릴 적부터, 무언가에 홀린 듯 레쿠자를 쫒고 있다. 이유랄 것도 없다. 레쿠쟈는 아버지가 쫓던 전설의 포켓몬이니까.
“고민되는 게 있으면, 네가 하고 싶은 걸 고르도록 하렴. 아버지는 레쿠쟈를 골랐단다.”
아버지가 즐겨하시던 말이었다.
그 말을 내 생일날에도 하셨다는 게 문제지만. 연구자로서는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실격이다.
어이없게도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레쿠쟈를 조사하다 돌아가셨다.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 날 아버지의 표정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들을 두고 연구를 하러 가면서도 그 표정은 너무나도 즐거워보였다.
처음엔 얼마나 좋아하면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하고 원망했다,
다음엔 얼마나 좋아하면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얼마나 좋아하면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하는 호기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감정을 품던 나는 어느샌가 아버지처럼 레쿠쟈를 쫓고 있었다.
공부도 그쪽 방향으로 해 왔고,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정도가 된 후엔 레쿠자에 대한 문헌이나 전승을 닥치는 대로 찾아보았다. 트레이너로서의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언젠가 레쿠쟈를 만나도 당당한 트레이너가 되려 했고, 그런 노력이 보답받았는지 어느새 나는 체육관 관장까지 되어 있었다.
“관장이 된 건 좋은데. 제법 바쁘단 말이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관장직은 감사한 일이지만, 동시에 관장 업무 때문에 내 연구 시간을 뺏기고 있다. 연구한답시고 관장직을 갑자기 쉴 수는 없다. 이래 뵈도 나름 공무원이니까.
다른 지방의 몇몇 관장들을 관장 일을 하면서도 자기 직업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협회에서 제대로 허가를 받고 하는 거다. 나는 직업이 아니라 개인적인 연구다.
“직접 레쿠쟈를 만나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생각해도 헛소리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찾으러 간다 해도 체육관을 오래 비울 수는 없다. 관장직을 사임할 수도 없고.
‘고민되는 게 있으면, 네가 하고 싶은 걸 고르도록 하렴.......’
아버지의 말씀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고 싶은 선택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한 말이란 게 문제지만.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벌컥-!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며 체육관 문이 열렸다. 한 여성 트레이너가 문을 몸으로 밀면서 들어 왔다.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로 있는 예나다.
“저, 관장님! 급한 일이에요!”
“뭔가요? 설마 도전자라도 왔나요?”
정말 그런 거면 또 시간이 사라진다.
“그게 아니라, 환자에요, 환자! 등화숲에 쓰러져 있었어요.”
“환자?”
자세히 보니 체육관 문 앞에 비치는 저녁노을 아래, 예나는 웬 여자를 업고 있었다.
***
이곳 등화도시는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라는 말이 딱 맞는 평화로운 마을이다. 싸움은 물론 사고가 날 일도 거의 없다. 쓰러진 사람을 보는 일은 처음이다.
“잠시 볼게요.”
처음이든 뭐든, 환자가 먼저다. 서둘러서 문 쪽으로 달려가면서, 가장 먼저 든 의문부터 입에 담았다.
“환자라면 우선 포켓몬 센터에 데려다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갔다 왔는데 간호순님도 제대로 모르셔서, 관장님은 풀 타입 전문가니까 혹시 방법을 알지도 모른다고 하셨거든요.”
“그게 무슨......?”
다가가서 업혀 있는 여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으으으.......”
업혀 온 여자가 낮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호흡이 거칠고 몸이 떨리고 있다.
“등화숲에서 버섯꼬가 소란을 피길래, 뭔가 하고 갔는데 이 분이 쓰러져 계셨어요. 저, 괜찮을까요?”
버섯꼬라면.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갔다. 예나에게 여자를 받아 바닥에 눕혔다.
다시 보니 여자는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 상의의 가슴께에 무늬가 그려져 있다. 바지는 움직이기 편해 보이는 숏팬츠를 입은 데다, 웬 망토를 걸치고 있는, 어디 부족민 같은 느낌의 방랑 생활을 할 것 같은 옷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손목에 푸른 장신구를 차고 있다는 것이다.
“어, 어때요?”
예나가 긴장하며 물었다.
가벼운 경련과 호흡곤란, 버섯꼬, 그리고 도시에선 보기 힘든 복장. 이건.
“포자 중독이군요. 지금에 와선 드문데.”
“포자 중독이요?”
“요 근처에 등화숲에는 버섯꼬가 살잖습니까. 버섯꼬의 피부에서 마비, 수면 및 중독 상태를 일으키는 포자가 분비되거든요.”
“네? 그거 사람에게도 드는 거였어요? 그럼 위험한 거 아닌가요? 등화숲이라면 저도 자주 다니는데?!”
예나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헀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거의 산책 코스같은 숲이니까. 울창하긴 해도 크기가 크지 않고, 나오는 포켓몬도 위험하지 않다. 이 사람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예나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지방 사람이라면 모를까, 호연지방에 사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예방 주사를 맞아서 괜찮아요. 예나씨도 종종 제 버섯모랑 놀잖아요. 보통은 별 문제 없어요.”
다시 환자 쪽을 보았다.
“그런데 이 분은 복장도 그렇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었던 것 같네요.”
“치료할 수는 있나요?”
“예. 이거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로젤리아. 아로마테라피!”
허리춤에서 몬스터볼을 꺼내 열었다.
“로젤!”
로젤리아는 아로마테라피를 사용했다.
포켓몬으로 인한 증상은 포켓몬으로 치료하면 된다. 약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이쪽이 효과적이다. 빠르기도 하고. 절대 만병통치약 쓰기 싫어서가 아니다.
“으으.......”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떨리던 몸과 호흡이 진정되고, 안색이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잘 될 줄은 알았지만 다행이다.
“오오! 굉장해요! 역시 관장님!”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예나가 살짝 부담스럽다.
“이 정도는 관장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감사인사는 로젤리아가 받아야죠.”
“아, 고마워 로젤리아~.”
꽃 부분을 만져주자, 로젤리아는 신사처럼 격식 있게 인사했다. 참고로 암컷이다.
“여... 여긴.......?”
환자가 눈을 떴다. 이제 환자가 아니지만.
“안심하세요. 이제 괜찮으니까.”
“어라? 저, 분명히 쓰러져서....... 어떻게 된 거죠?”
여자는 아직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혼란스러워 보였다.
“포자 중독이었어요. 혹시 등화숲에서 버섯꼬를 만지지 않으셨나요?”
“포자 중독?? 얼레? 그러고 보니 난 숲에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죠? 분명 버섯꼬를 쓰다듬은 것까진 기억하는데.......”
“어, 그러니까 말이죠.”
***
간단한 상황설명을 마쳤다. 포자중독에 대한 것과 예나가 여기까지 당신을 옮겨 온 것, 그리고 로젤리아가 아로마테라피로 치료해 준 이야기까지.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아닙니다. 제가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관장은 마을을 대표하는 트레이너로서 마을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러니, 감사는 저보단 여기까지 아가씨를 모셔온 이 분과 포켓몬에게 해 주세요.”
감사인사를 받는 건 익숙하지 않다. 그런 내 말을 들은 예나가 한 마디 했다.
“너무 겸손한 것도 나쁜 거예요. 관장님.”
우리의 대화에 환자였던 아가씨는 잠깐 멍해 있다가,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관장님? 이 분이? 그럼 등화도시 체육관 관장?”
혹시 날 찾아 온 손님이었나.
“네. 제가 등화도시의 관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름 모를 아가씨는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저, 관장님! 그럼 저랑 같이 유성의 폭포까지 가주실 수 있나요?”
“......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따라갈 수가 없다.
갑자기 쓰러진 채로 와서는. 갑자기 깨어나고, 이번에는 갑자기 같이 가자니. 아, 깨운 건 나지만.
여자는 자기가 갑작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내 손을 놓고는 차분히 다시 말했다.
“아, 제가 제 말만 해버렸네요. 우선 제 소개를 먼저 할게요. 저는 유성의 민족의 현 당주. 치아나라고 합니다.”
이상한 소개였다. 하지만 그 다음에 한 말은 더더욱 이상한 말이었다.
“저와 함께 세계를 구하러 가 주실 수 있나요?”
p.s.
1) 예전에 오루알사 에피소드 델타까지 하고 생각했던 이야기인데, 이래저래 바쁘다 보니 이제야 쓰게 됩니다.
2 ) 포켓몬스터 3세대의 스토리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등화도시의 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전임 관장에 대한 언급은 달리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편 이전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관장으로 부임하기 전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