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황제가 결단을 내렸다.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의 제국에 대한 헌신을 의심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황의 곁에서 인류의 안녕을 위해 싸웠고, 제국의 검으로서 제국의 적을 일소하고, 공신으로서 과인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준 그의 업적은 찬양받아 마땅할 것이다.
허나 공과 과는 엄격하게 구분해야할 것이다.
근래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가 보여준 언행은 시정잡배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는 시정잡배가 아닌 제국 공신이자 대공이며 그가 끼친 해악은 시정잡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공은 과에 대한 면벌부가 아니며 공에 대한 상을 이미 누리고 있다면 과에 대한 벌은 받아야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것이 법의 도리이다.
그러니 여는 명한다.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를 잡아 여 앞에 대령하라. 지금껏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에 대한 지탄이 만인의 입에서 오르내리도록 방기한 것은 여의 부덕의 소치이니 여가 직접 그를 벌하겠노라.”
황제는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를 잡아들이라는 황명을 내렸다. 이 소식을 일찌감치 접하게 된 양식 있는 자들은 황제 만세를 외쳤다. 그들은 그 오만방자한 자에게 드디어 정의의 철퇴가 떨어졌음을 즐거워했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의 반려 혹은 딸의 정조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음을 기뻐했다. 그들은 드디어 자신의 자식이 진짜 자신의 자식인지 의심하지 않아도 되었음을 기뻐했다. 그리고 몇몇은 드디어 자신이 마음에 든 창 녀를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게 되었음을 기뻐했다. 제국역사상 최악의 난봉꾼이 드디어 죗값을 치르게 되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걱정과 공포가 빠르게 그 자리를 채웠다. 그들은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 쥐가 고양이에게. 아니. 쥐가 호랑이에게 방울을 다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는 ‘제국최악의 난봉꾼’이라는 칭호 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칭호를 가진 자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만 추려보자면.
검의 대가들의 모임인 검 회랑의 대표가 되었기에 얻은 ‘검좌의 주인’
그가 창안한 검술이 주류 검술이 된 이후 얻은 ‘모든 검사의 스승’
제국의 의지에 따라 제국의 적을 일소하며 얻은 ‘제국의 검’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초대 황제가 내려준 작위 ‘씨아이 대공’
인류를 구원한 일곱 용사 중 언제나 선봉에 섰기에 얻은 ‘칠용사의 선봉’
하나하나가 국가 간의 힘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아홉 자루의 명검을 소유하였기에 얻은 ‘아홉 검의 주인’
지옥의 악마들조차 학을 뗄 정도로 위험한 ‘겹쳐진 세계’를 수십 차례 탐험하고 돌아왔기에 얻은 ‘겹쳐진 세계의 탐험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던 재앙들을 막으면서 얻어낸 ‘재앙 종식자’
아벨란트가 검으로만 얻은 칭호들이었다. 심지어 이 칭호들은 강대하지만 사악하고 잔인한 악마들에게도 통용되는 칭호들이었다. 아무리 결단력이 뛰어난(혹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악마라도 아벨란트와의 충돌이 예상되면 하던 일을 내팽개치거나 자신의 계획을 재고했다. 아벨란트가 가진 아홉 자루의 명검 중 셋은 악마 대장장이들이 지옥의 지배자들에게 바쳤던 물건들이었다. 그것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아벨란트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악마의 종언’이라는 칭호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를 잡아들이라는 황명이 떨어졌다. 누구든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본디 영광스러울 황제의 집행관 자리가 이 순간만큼은 사형수의 교수대와 맞먹게 되었다.
그래서 제국 역사상 가장 더러운 역(逆)정치질이 시작되었다.
하루 전만하더라도 호쾌하게 사냥을 다녔던 모 후작은 갑자기 중병을 앓기 시작했고, 사람 만나기 좋아했던 모 백작은 두문불출하여 손님을 쫓아냈다. 의무와 책임을 중하게 여기던 모 판사는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회유와 협박, 금과 독, 뇌물과 신체의 일부들이 제국역사상 그 어떠한 때보다 많이 돌아다녔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리멸렬한 시간이 흐르자 아벨란트의 성격을 겪어본 사람들은 끔찍한 단어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반역.
안하무인, 막무가내, 단순무식, 개념상실, 유아독존, 적반하장, 잔학무도 등등. 안 좋은 성격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를 마구잡이로 붙여도 틀린 게 거의 없는 아벨란트의 성격을 고려하면 이 두 음절의 글자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었다. 아벨란트는 황제가 자신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성을 낼 위인이었다.
더러운 정치질에 다급함이 가미되자 추악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치질의 진행속도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빨라졌지만 그 누구도 결코 자신이 이 일을 맡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반역을 막는 일을 떠넘기기 위해 거의 내전이 일어날 뻔 했으나 제국의 귀족들은 아벨란트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양식이 있는 자였다.
집행관이 결정되었다. 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태라고 불리는 일이 여럿 있었지만 어쨌든 결정되었다.
명목상으로는 ‘유능하기에’ 실질적으로는 ‘가문이 영세하고 짬밥이 딸리기에’ 이번 일을 맡게 된 황제의 집행관은 순순히 자신의 책무를 받아들였다. 사실 다른 귀족들의 원조를 빙자한 압박에 한탄을 할 겨를이 없었다. 어쨌든 무제한의 원조를 받아 일사천리로 일을 마무리 지은 그는 집행에 나섰다.
“죄인 아벨쿠엑!”
집행관은 아벨란트 씨아이 디하이거를 체포할 때 일어날 모든 상황을 고려했다. 그가 예상한 대부분의 결과에서 그 자신이 죽게 되었기에 그는 유서를 쓰는 등 주위를 정리해두고 이번 체포에 나섰다. 하지만 그런 그도 ‘얼굴에 깃털베개를 맞고 한 바퀴 돈 후 바닥에 머리를 처박아 혼절하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과연 검의 정점에 선 사람다운 베개던지기구나’같은 정신 나간 감탄을 하고 무책임하게 혼절해버렸다.
졸지에 최고 책임자가 부재한 상황에 처하게 된 체포조는(혹자는 자 살조라고 부르는) 졸속한 과정으로 구성된 자들답게 당황하여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아벨란트는 온갖 고귀한 칭호가 붙으신 분답게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황에서 위엄 있는 말투로 물었다.
“너희는 뭐야, 새 끼들아.”
그리고 높으신 분답게 으레 하는 그 말을 내뱉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황제의 집행관과 그 수하들이라면 으레 듣는 말이다. 그러나 황제의 집행관은 황제의 의지를 수행하는 자들답게 그런 말에는 얼마든지 비웃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번에 그들이 체포할 대상은 검을 든 인류의 정점에 선 사람이었다.
“이 시발 놈들이 뒤질려고.”
덤으로 성격까지 더러웠다. 그리고 황명도 무시할 확률이 높은 자였다.
아벨란트는 눈을 비비며 침대 옆에 손을 뻗었다. 그의 기대와는 달리 손이 허공을 쥐었다.
“뭐야?”
아벨란트는 고개를 돌렸다. 분명 어젯밤에 그가 검을 세워 두었건만 지금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검 중에는 자기 혼자 움직일 수 있는 검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최근에 아벨란트가 들고 다니는 검은 물화된 관념(예를 들어서 ‘죽음’이라던가)까지 벨 수 있는 명검이었지만 외력이 없다면 혼자서 움직일 수 없다는 점만 본다면 평범한 검이었다.
“와하하하하하핫!”
검이 없다는 사실을 자신 앞에 들이닥친 이들과 연관시킨 아벨란트는 웃었다. 아벨란트는 자신의 옆 자리를 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며칠 동안 자신과 함께 뒹굴었던 아홉 명의 미녀들은 하나도 없었다. 열 명이 한 번에 올라가도 충분할 거대한 침대 위에는 오직 아벨란트만 있었다.
“아. 그러니까. 나랑 뜨거운 밤을 보낸 그 여자들도 너희들의 작전의 일부였단 말이지? 그 여자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으니 너희들도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알고 있으렷다. 그리고 내가 잠들고 난 후에 내 검을 숨겨놓고 이렇게 들이닥친 거로군.”
아벨란트는 자신의 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진짜 오랜만이네. 이런 새끼들.”
아벨란트는 침대에서 벗어났다. 알몸이었다. 그러나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그의 몸 여기저기에는 영혼이 다치면서 낫지 않게 된 상처와 악마의 저주, 재앙의 마지막 단말마, 멋있으니까 일부러 남겨 둔 상처 같은 것으로 가득했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존재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흔적들.
또한 그는 맨몸이지만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검의 대가들은 그 무엇이라도 검처럼 다룰 수 있었다. 나뭇가지나 둘둘 만 손수건, 머리카락 같은 것으로 두터운 갑옷을 가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벨란트의 수준까지 오르게 된다면……
“히익!”
체포조의 누군가가 기성을 흘렸다. 아벨란트가 허공을 움켜쥐고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거대한 느티나무 침대를 수백조각 낸 것을 목격한 직후였다. 아벨란트의 수준에 다다른다면 허공을 움켜잡아 그것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존재들을 도륙한 자의 위용을 직시하게 된 체포조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하얗게 질렸다.
다행스럽게도 아벨란트는 짜증보다는 오랜만에 겪게 되는 일에 참신함을 느끼고 있었다. 아벨란트는 유쾌하게 말했다.
“새끼들 쫄기는. 쫄지마 새 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면서 덤벼드는 겁을 상실한 놈들을 오랜만에 만난 기념이다. 너희들이 뭘 원하는지 들어주기는 하마. 그리고 죽이진 않으마. 죽이진.”
‘죽을 만큼 괴롭겠지만.’이라고 덧붙인 건 절반은 농담이었다. 이들이 들이 닥친 이유가 흥미롭다면 적당히 괴롭히고 쫓아내겠지만 그 이유가 시답잖고 짜증이 나는 것이라면 다시는 이런 일을 못하게 만들 것이다.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능력의 문제 때문에. 팔 다리를 잘라버리거나 혹은 눈과 귀 안쪽을 쑤셔버릴 생각이었다.
체포조의 얼굴이 흰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용무가 아벨란트의 비위를 거슬리게 할 것임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괜히 아벨란트를 잡아들일 집행관을 뽑기 위해서 그런 소란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아벨란트는 그로서는 드물게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체포조는 자신의 유언이 될 말을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아벨란트의 얼굴에서 짜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체포조의 누군가가 선 채로 기절했다. 아벨란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아벨란트는 깃털 베개를 맞고 기절한 집행관을 가리켰다.
“야, 이 새끼가 너희들 대가리지?”
체포조의 몇몇이 선의와 책임감보다는 자기보존의 욕망에 따라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검’ 이라는 칭호를 가진 자답게 아벨란트의 실행력은 평균을 상회했다. 계획과 실행 사이의 간극은 짧았고 도덕적 장벽도 한 없이 낮았다.
아벨란트는 집행관의 손가락을 꺾어 억지로 깨운 후에 그에게 무슨 이유로 왔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로서는 참으로 관대한 방법이었다.
아벨란트가 왼발로 집행관의 왼손등을 밟고 오른발로 집행관의 왼쪽 새끼손가락을 밀려고 한 그 찰나.
“멈추시게.”
허공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자신의 몸보다 작은 구멍에서 나온 것처럼 남자는 웅크린 몸을 피며 나타났다. 공간을 휘어 목적지와 출발지를 연결하여 단숨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이었다. 체포조 중에는 그 남자를 보고 화색이 도는 자도 있었고 더욱더 사색이 되는 자도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안정시킬 수도 있고 악화시킬 수도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를 통틀어서 아벨란트와 맞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아벨란트와 맞먹을 수 있는 자답게 그 역시도 몇 가지 흥미로운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제국을 넘어서 인류 전체의 지식을 탐구하는 기관 위칼라의 대표이기에 얻은 ‘계몽의 불을 피우는 자’
인류가 파악한 모든 마법을 익히고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 내는 경지에 다다르기에 얻은 ‘마법의 개척자’
지식으로서 제국의 앞길을 밝히기에 얻은 ‘제국의 등불’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 위해 초대 황제가 내려준 작위 ‘할러그 대공’
인류를 구원한 일곱 용사를 지혜로 이끌었기에 얻은 ‘칠용사의 참모’
그 누구보다도 진리에 가깝기에 얻은 ‘진리의 열쇠를 가진 자’
지옥의 악마들조차 학을 뗄 정도로 위험한 ‘겹쳐진 세계’를 수십 차례 탐험하고 돌아왔기에 얻은 ‘겹쳐진 세계의 탐험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으리라 생각되던 재앙들을 막으면서 얻어낸 ‘재앙 종식자’
그리고 강대하지만 사악하고 잔인한 악마들을 두려워 하기는 커녕 연구대상으로만 생각하기에 얻은 ‘악마 연구가’
메이브 할러그 레자옹.
메이브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색이 된 자들은 많았지만 죽은 자들은 없었다. 메이브는 안도하여 말했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메이브는 아벨란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씨아이 대공. 내 들어보니 자네가 이번에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들었다네.”
아벨란트는 메이브가 공적인 자리에서 쓸법한 진중한 말투와 칭호를 쓴 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내용도 놓치지 않았다. 아벨란트는 메이브가 한 말로 자신에게 들이닥친 자들이 무슨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채고 살의를 담아 체포조를 노려보았다. 파랬던 얼굴들이 검게 변했다. 아벨란트는 체포조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메이브의 말투에 맞춰서.
“할러그 대공.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내 살면서 하늘 보기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살았네만?”
그 말을 한 당사자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뻔뻔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 아벨란트의 뻔뻔함을 지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고 그 한 명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것을 지적할 생각이 없었다.
메이브는 체포조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들의 능력으로는 태부족이니 물러나게. 내가 설득하겠네.”
사형대에 오르던 중에 사면 된 사형수들과 비견될 감정을 느끼며 체포조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집행관을 챙겨서 도망쳤다. 의무를 떠넘길 새로운 자가 등장하였기에 체포조의 도주에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자들의 머뭇거림이 없었다.
메이브는 체포조가 떠나고 아벨란트와 단 둘만이 남게 되자 방문을 닫고 방의 모퉁이를 돌면서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소리를 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리고 공간은 격리되었다. 아벨란트와 메이브는 방 밖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외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방 안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마법사라면 결코 할 수 없을. 사람들에게 대마법사라고 칭송받는 자들도 오랜 시간을 준비하고도 실패를 각오해야할 마법을 가볍게 펼쳐 보인 메이브는 아벨란트에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제국의 공신이지만 오랜 동료이기도 하고 또한 같은 고향에서 태어나 함께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 소꿉친구이기도 한 둘은 두 사람만 있는 자리에서는 허물없이 대화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황제가 널 잡아들이라는 황명을 내린 거냐?”
“이런 씨 발. 그 새끼가 날 잡으라고 했다고?”
메이브는 아벨란트의 불충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 황제의 고조부인 초대 황제의 동료이기도 했다. 그래서 메이브는 아벨란트는 현 황제를 황제였던 옛 동료의 후손으로밖에 인식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메이브가 공간을 격리시키는 마법을 쓴 이유 중의 하나였다.
황제와 대공 사이에 불화를 조성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었기에 메이브는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되물었다.
“황제가 오죽하면 널 잡으라고 했겠냐!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말해보라고!”
“잇! 썅!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울 짓은 안했다고!”
아마 사실일 것이다. 아벨란트의 기준으로는. 그러나 스스로는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남이 보기에는 충분히 범죄인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메이브는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게 질문을 바꿨다.
“최근에 너랑 성교한 사람들 중에 최소 백작 혹은 그에 준하는 신분 이상인 사람 혹은 그 가족인 사람이 누구였냐?”
메이브는 평소 아벨란트가 문제를 일으키면 높은 확률로 성적인 것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견해를 증명하듯 아벨란트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업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메이브는 이미 결혼 한 귀족 여인들의 이름이 나오자 ‘역시 이 놈은 간통 따위는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벨란트가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업적에서 확연하게 문제가 될 사람들을 발견했다. 10년 동안 아이가 없다가 최근에 아이가 생긴 모 후작부인, 왕위에 오른 자는 이성을 멀리 해야 하는 풍습이 있는 모 왕국의 여왕, 정략결혼이 예정되어 있는 모 공작 영애 등. 메이브는 하나하나가 최상급 추문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아벨란트에게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와 어느 정도 교미에 미 친놈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로 미 친놈이었나?
한참을 듣던 메이브는 어느새 무덤에까지 묻힌 옛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벨란트의 말을 끊었다.
“생존해 있는 사람은 그게 전부냐?”
“내가 함께 열정적인 밤을 보낸 여자들을 잊을 정도로 무책임한 놈으로 보이냐?”
“여성의 명예 따위는 개나주라는 식으로 그것을 공표할 놈으로는 보인다.”
“내가 그렇게 대가리가 비었는줄 아냐? 너니까 말하는 거다! 너니까!”
“너와의 돈독한 우정에 절로 감격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강 간은 없지?”
“내가 그런 쓰레기인 줄 아냐! 마족이랑 악마, 괴물, 범죄자 말고 강 간한 여자는 없어, 이 새끼야!”
“남자는?”
“돌았냐?”
메이브는 지금까지의 수집한 정보를 중간 정리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부족하다. 황제가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유력 귀족과의 반목을 무릅쓰고 그를 잡아들이라는 황명을 내리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비공개적인 서신을 보내는 정도로 끝날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에서 답이 나오겠군.
“자하이스트 교 관계자는?”
아벨란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놓치고 싶어도 놓칠 수가 없는 반응이었다.
메이브는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대답을 종용했다.
“하늘 보기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며. 숨기지 말고 말해.”
아벨란트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도 내심 걱정은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아벨란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맙소사.”
아벨란트의 대답이 뇌에 완전히 스며들기 전에 메이브는 탄식했다.
“맙소사.”
아벨란트의 대답이 완전히 뇌에 스며들자 메이브는 경악했다. 메이브는 되물었다.
“자하이스트 교의 성지에서 성사를 앞두고 있던 성녀를 욕보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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