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서 있는 이유.]
늘 같은 자리에서 노래를 불러왔다. 이유는 얼굴도 이름도 모를 나의 팬들과 만나기 위해서. 언제나 7시가 되면 문을 닫는 학생 식당 앞에서 엠프하나 없이 기타만 달랑 들고 앉아서는 이런 저런 노래로 사람들을 모으다가 내가 만든 노래를 수줍게 선보였다. 그러면 늘상 그 곳에 있는 얼굴이 있었다.
나와 같은 나이의 그녀. 늘 내 노래의 마지막까지 들어주고 박수를 쳐주던 사람. 어쩌면 그 여인만을 위해서만 노래를 하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후에도 노래를 하는 걸 보면 꼭 그런것 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런 물음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이다. 우리가 이별을 하고 벌서 두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미 방학은 시작되었고 조금있으면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가겠지. 어쩌면 오늘이 그녀가 보는 나의 마지막 노래일지도 모른다.
"이번 부를 노래는 이등병의 편지입니다."
엠프가 없다 보니 모든 말들을 배에 힘을주어 말해야 한다. 내 말에 몇몇 사람들의 아쉬운 탄성이 들려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보였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그녀의 얼굴이었다. 어떤 표정인지 사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나는 평소보다 짧게 호흡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땅을 보고 노래하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왜 항상 땅을 보고 노래하는거야?"
그녀는 노래하는 나에게 항상 물었었다. 사실 나도 이유는 모른다.
"이유가 없으면 그냥 얼굴을 들고 불러. 이렇게."
그 작은 두 손으로 내 턱을 잡고 들어올리는 모습. 그 아스라이 스치는 그림자에 나는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마치 자린고비가 천장에 메단 고등어를 보듯 그녀의 얼굴을 한번 아껴 바라본다. 계속 보고 싶지만 닳을지도 모른다. 조금씩 오래오래 보고 싶은 그 얼굴. 한번 스트럼을 내리고 그녀를 보고 다시 스트럼을 내리고 그녀를 보고 내 얼굴은 점점 미소가 번져간다. 고개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지 사실은 몰랐다. 그저 습관처럼 땅만 보고 살았다.
그녀의 말대로다. 걸을때에도 말을 할 때에도 심지어 노래를 할 때에도 나는 땅을 바라보았나보다. 이렇게 아름답고 벅찬 풍경을 보지도 못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날 꾸짖은거다.
"왜 가사들이 다 우울한거야?"
넌 그런 가사를 좋아했던거 아니었니?
"좋아하지. 하지만 가끔은 밝은 노래도 좋잖아. 날 만났으니까 이제 행복한 노래를 불러야지."
참 넉살도 좋은 사람이다. 다시금 미소가 번진다. 내 목소리엔 슬픈 노래가 어울려.
"그 눈웃음에는 밝은 노래가 어울려."
간주를 치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자리에 있다. 한동안 그녀를 잊고 살았던 걸까? 잊은척 했던 걸까? 확실하지 않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모든것이 혼란스럽다. 그러나 마치 항상 기다려왔던 것 처럼 너무도 반가웠다.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내 귓가에는 그녀의 목소리만 들린다.
노래는 끝이났다. 보통은 이렇게 6곡 정도를 부르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슬슬 짐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다.
"오늘은, 한 곡 더 부를까 합니다."
작은 환호성이 들린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자작곡입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르게 될 것 같아요. 제목은........'작은 별'입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대로 노래를 시작했다.
한번 천천히 스트럼한다. 6개의 현은 따로인듯 함께 울었다.
'그 기억은 저기 저 작은 별 처럼'
아무런 기교도 없이 조용히 노래를 한다. 그래, 이 노래에는 기교를 넣을 수가 없었다. 그저 담백함과 진솔함만을 담고 싶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반짝임으로'
'까만하늘을 가득 담은 눈 속엔'
'그 반짝임만이 남아 있는데'
'어쩌면 저 별은 이미 죽었을지 몰라.'
'먼, 밤 하늘을 건너 오려'
'여기 나에게 닿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을테니;'
나는 드디어 고개를 내려 그녀를 바라본다.
'그래서 난 눈을 뗄 수 없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반짝임을 담으려.'
'고개 돌릴 수 없어. 이제는 다시 못 볼 그 반짝임을 담으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네가 다시 여기에 올 것을. 그래서 기다렸겠지. 그리고 이 노래를 만들었겠지. 오늘을 끝으로 나 또한 여기에 나올 수 없어.
나는 어울리지 않는 애틋함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르페지오로 한 현씩 뜯으며 내 마음을 녹여보았다. 조용한 가운데 내 마음만이 그녀의 귀를 통해 가슴으로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난 눈을 뗄 수 없어. 마지막일지도 모를 그 반짝임을 담으려. 고개 돌릴 수 없어. 이제는 다시 못 볼 그 반짝임을 담으려.'
노래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나는 더 크게 내 마음을 전했다.
"혹시 원망할지도 몰라. 왜 이제서야 나타났냐고."
"그 어둔 밤을 날아서 한 없이 나를 찾았다고."
"그래서 난 눈을 떼지 않아. 마지막일지도 모를 널 잊지 않으려"
"고개 돌리지 않아. 나도 너를 찾아. 이 어둔 밤을 헤맸으니까."
내 노래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까지 써오던 작은 페이지가 끝이 났다. 나는 차마, 더 이상 그녀를 보지 못하고 서둘러 기타를 가방에 넣고는 의자와 기타를 들고 자리를 뜬다.
가끔 묻곤 한다. 우리가 왜 헤어졌지? 헤어진 이유는 아주 많거나, 혹은 없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얼버무려도 본다. 그리고 언제나 되묻는다. 그럴 때마다 아리는 이 가슴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시 만나봤자 또 헤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제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조금만 더 배려하면 되는데 그게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이해가 안가기도 하다.
그리고 끝으로는 결국엔 우리가 너무 어렸다고 말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이 아니라 나이를 먹고 더 많이 사랑한 다음에 만났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 서로의 옆에 기적처럼 서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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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편도 언젠가는.....ㅎㅎㅎ | 16.09.06 11:5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