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울면서 사과하는 보닌과 보닌을 달래주는 유스빈.
그 둘을 바라보니 셰리드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셰리드는 보닌을 싫어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한다.
자신의 선(善)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그 태도가 과거 셰리드를 마녀혐의로 불태운 사제와 그 모습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을 경멸하는 태도와 자기중심적인 태도. 이 둘까지 겹쳐지자 싫어하지 않으려야 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겉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셰리드는 기본적으로 분쟁을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이 일행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제일 불리한 것은 셰리드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셰리드는 일행에 합류한지 1년도 되지 않았다. 반면에 보닌은 칼리만과 유스빈과 일행이 된지 7년이나 되었다. 분쟁이 일어나서 누군가가 일행을 떠나야하게 된다면 떠나는 것은 셰리드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참지 못했다.
분명히 셰리드의 기준에서 보자면, 그리고 대다수의 도덕에서 보자면 보닌이 한 짓은 도리에서 벗어난 짓이었다. 순간적인 화를 못 참고 동료를 죽이려고 했다. 아니 꼭 동료일 필요도 없다. 순간적인 화를 못 참고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보닌이 열한 살의 어린애라는 것을 알았을 때, 상황은 좀 더 복잡해졌다.
유스빈이 ‘단편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못 이기고 그것을 겉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 어른도 그러한데 아직 정서적으로 발달이 덜 된 어린애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 어린애가 한 주먹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점까지 결합되면……
셰리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깊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용사님.”
“응?”
“옷 벗고 침대에 누우세요.”
아랫배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물감.
욱신욱신 하면서도 근질근질한 것이 영 불편하다. 그렇다고 배에 손을 대면.
찰싹!
“뼈가 확실하게 붙을 때까지 손대면 안 돼요. 어긋나서 붙으면 부러뜨리고 다시 치료해야한다고요.”
셰리드가 눈에 불을 켜고 말린다.
“아프고 가려워.”
“참으세요. 잘 치료됐다는 증거니까요.”
“싸울 때처럼 순식간에 못 고쳐?”
“그게 쉬운 건줄 아세요? 강신(降神)을 하면 저도 엄청 피곤해진다고요.”
셰리드는 치료도구를 정리하며 쏘아 붙였다.
이 용사님은 기적을 너무 쉽게 보는 면이 있다. 뭐, 주위에서 기적이라고 말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내는 용사님이니 어쩔 수 없나?
치료도구를 정리해서 짐 속에 넣은 뒤 셰리드는 근처에 비어있는 의자를 침대 앞으로 끌어와서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몇 번째일지 모르는 질문을 다시 던졌다.
“용사님, 은퇴하신다면서요?”
“응.”
“왜요?”
“지루하니까.”
“흐음.”
여기까지는 똑같다. 지금까지 겪은 바에 의하면 이 뒤는 아무리 칼리만이라도 알 수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은퇴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만류하겠지.
아무래도 자신이 은퇴하는 것은 잘못 된 행동인 것 같다. 왜 일까? 유스빈에게 물어보면 자세히 말해주겠지만 지금 유스빈은 보닌을 달랜다고 여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그러면 셰리드에게 물어보는 수 밖에 없겠지.
셰리드가 은퇴하지 말라고 하면 이유를 물어보자.
이렇게 결론을 내린 칼리만은 셰리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셰리드가 입을 열었다.
“은퇴하시면 계속해서 용사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네요? 그러면 어떻게 부를까요? 칼리만 오빠? 칼리만 오라버니? 칼리만 씨? 칼리만 아저씨?”
이건……예상 밖이다.
“셰리드는 안 말려?”
“제가요? 아뇨. 왜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은 다 말렸어.”
“다른 사람이 말린다고, 제가 말려야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그렇긴 하다.
“그리고 용사님이 은퇴하신다는 데 다른 사람이 무슨 상관이래요? 은퇴하시고 싶으시면 은퇴하시면 되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말리던데?”
셰리드는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분쟁은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을 비웃는 것은 좋아한다. 셰리드 스스로도 나쁜 성격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지만 고칠 생각은 없었다.
“무시하세요. 자신들의 일을 ‘한 사람’에게 다 떠넘겨 놓고, 그 사람이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난리치는 사람들이에요.”
칼리만에게 셰리드가 하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스빈은 칼리만이 이해할 수 있게 잘 풀어서 말해주지만 셰리드는 자신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보닌은 주먹부터 날아오니 논외고.
“무슨 말이야?”
셰리드는 대답하는 대신 칼리만에게 역으로 질문했다.
“용사님. 용사님은 용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칼리만의 눈이 위를 향했다. 생각을 할 때의 버릇이었다. 잠깐의 생각 후 칼리만은 대답했다.
“신의 선택을 받은 자, 악을 응징하는 자, 사람을 구원하는 자,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가져오는 자, 슬픔을 끊어내는 자……”
셰리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틀렸어요.”
“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맞겠죠. 하지만 답은 아니에요.”
칼리만은 역시 셰리드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이 달라서 틀렸다고? 이건 또 무슨 말이래?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묻고 지금은 답을 먼저 물어보자.
칼리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럼 뭔데?”
“적은 비용으로 괴물을 퇴치할 수 있는 도구에요.”
칼리만에게 용사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셰리드처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다.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한다는 식으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그것을 수단이 된 사람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비웃는 것을 좋아하는 냉소주의자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셰리드 같은.
“괴물이 나타나면 용사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용사는 괴물을 퇴치한다. 그게 왜 당연한 건데요?”
한 때 칼리만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는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안 당연 한 거야?”
“안 당연 한 거예요.”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찾은 게 당연했다.
어째서라는 답을 찾기 이전에 당연한가를 먼저 따졌어야했다. 그리고 셰리드의 말에 따르면 당연하지 않은 것이었다.
“용사가 없어도 사람들은 괴물을 처치할 수 있어요. 옛날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에요.”
용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 시절에도 괴물은 있었다. 용사가 아무리 분주하게 뛰어다녀도 결국에는 가지 못하는 곳이 존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다.
“그래서 용사님이 용사를 그만 둘 때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 한 거예요.”
“어? 그러면 나 은퇴해도 되는 거야?”
“하세요. 다른 사람은 알게 뭐에요? 용사님이 은퇴하겠다는데. 지금까지 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칼리만은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칼리만은 셰리드가 한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타성에 젖어 셰리드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기에 칼리만이 셰리드의 말에서 얻어낸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칼리만은 이것 하나 만은 이해했다.
셰리드는 칼리만의 은퇴를 지지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준다. 이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지금까지 생각 없이 본성대로, 그리고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살아온 칼리만이 처음으로 느껴보는 종류의 기쁨이었다.
바로 그 때.
칼리만과 셰리드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사람이 죽는다.”
유스빈이었다.
“칼리만, 네가 은퇴하면 사람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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