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습니다.
책을 찾고 있었는데 그게 엄청 옛날에 나온 거에다가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해서 구하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운이 좋게도 책을 찾아 해맨지 반나절도 안 되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신께서 도우신거지요.
이건 관용어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신께서 도우신겁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행운과 악운과 우연들이 겹치고 겹쳐서 제가 도달한 다 쓰러져가는 잡화점에서 주인도 모르는 장소에서 찾던 책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니 이게 신께서 도운 게 아니라면 뭘까요?
제가 믿는 신의 유일한 신도인데 신께서 외면하실 리 없지요.
어쨌든 각설하고.
시간이 늦지 않아서 저녁에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는 연회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낮에만 하더라도 책을 탐색하는 것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용사님의 동료인 걸요. 나중에라도 참가하면 받아주겠죠.
제 예상은 반만 맞았습니다.
왕궁의 연회장으로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연회는 이미 파토 나 있었습니다. 연회장은 음식이나 깨진 접시로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서 시녀들이 연회장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시작한지 반시간도 안 지났을 텐데 이런 꼴이라니.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보닌 씨의 난동입니다.
보닌 씨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엄청 다혈질이니까요. 지난번에 자기 몸을 더듬었다는 이유로 한 영주를 병.신으로 만든 사람이니까요. 여기서 보닌 씨를 변호하자면 그 영주 보닌 씨에게 욕정을 품고 몸을 더듬은 거였습니다. 그 때 용사님이랑 유스빈 오라버니께서 안 계셨으면 그 영주 분명히 죽었을 겁니다.
……음, 생각해보니 보닌 씨가 난동을 부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보닌 씨가 난동을 부렸다면 이 정도로 끝났을 리 없겠죠.
음, 그러면 도대체 이 사태는 뭣 때문에 일어난 걸까요?
그 때 연회장을 청소하고 있던 어린 시녀 하나가 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용사님이 은퇴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이건 뭔 소리래요?
“아까 전 연회장에서 용사님이 은퇴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우와아아아아아.
용사님 또 사고 치셨네.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대충 상상이 됩니다.
용사님이 은퇴한다고 말하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보닌 씨가 용사님께 주먹질을 하고, 유스빈 오라버니가 그것을 말리고…….
그렇다면 지금 용사님과 유스빈 오라버니, 보닌 씨는 우리가 지내고 있는 방에 있겠네요.
저도 가봐야겠습니다.
꼬르르르르륵~!
……그전에 배부터 채우고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제 이름은 셰리드 모노아브.
용사님의 동료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마녀 혐의를 받아 화형 당했다가 지금 믿고 있는 신께 구원받아 살아난 교주입니다.
신도가 저 밖에 없어서 신도를 모집해야 합니다만, 귀찮아질 것 같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이것저것 물어오는 인파를 뚫고 간신히 방으로 들어가니 알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방에 하나 있던 탁자는 산산조각 나있고, 용사님이 유스빈 오라버니와 보닌 씨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유스빈 오라버니는 평소랑 같습니다만 보닌 씨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습니다.
“왔나?”
“보시다시피요. 그런데 뭔 일이라도 있었나요?”
유스빈 오라버니는 대답해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용사님을 제 쪽으로 떠밀었습니다. 그러나 용사님은 순순히 밀리지 않습니다. 용사님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습니다.
“안 돼.”
“괜찮으니까 치료나 받아.”
그래도 용사님은 요지부동입니다. 유스빈 오라버니는 용사님을 계속해서 미는 대신 손짓을 해서 저를 불렀습니다.
“치료해줘.”
“누굴요?”
“칼리만.”
“왜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내상에 골절이다. 자세한 것은 네가 더 잘 알테니, 살펴보고 알아서 치료해.”
“용사님이 다쳤다고요!? 왜요!?”
유스빈 오라버니는 이번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 안 해도 뻔하죠, 용사님을 다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과 실력을 갖춘 사람은 지금 주위에는 한 명 밖에 없을 테니까요.
보닌 씨를 노려보았습니다.
“보닌 씨! 아무리 튼튼하다고 하더라도 용사님도 인간이에요!”
뭐, 그 튼튼함이 보통의 인간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만요. 지난번에 사람을 잡아먹는 거인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냈지만 뼈에 금만 가고 끝났습니다. 용사님은 이미 인간을 초월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해도 그렇지! 진심으로 때리신 거에요!?
제 말에 보닌 씨는 움찔합니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네요. 그래도 한 소리는 해야겠습니다. ‘평소에는 못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할 수 있을지도?’ 라는 생각은 안 했습니다? ……뭐 뭔 일이 터지면 용사님과 유스빈 오라버니가 말려주겠죠.
“보닌 씨는 좀 더 자제력을 키우셔야 해요! 화가 나게 만드는 사람은 막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에요? 더군다나 용사님이 다칠 정도로 주먹을 휘두르다니. 보통 사람은 죽는……”
“셰리드.”
유스빈 오라버니가 절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니 유스빈 오라버니한테도 말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유스빈 오라버니도 잘못했어요! 보닌 씨가 주먹을 휘두르는 동안 오라버니는 뭘 하신 건데요!?”
“시끄러우니까. 입 다물고 치료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조용히 있을 수 있겠어요!”
유스빈 오라버니는 손을 거칠게 흔들었습니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겠죠. 뭔 말을 할지 들어나 봅시다. 제가 입을 다물자 유스빈 오라버니는 거칠게 흔들던 손을 멈추고 그 손으로 용사님을 가리켰습니다.
“칼리만이 다쳤다. 잔소리는 나중에 들을 테니까 치료나 해.”
맞는 말이긴 하군요. 환자를 눈앞에 두고 책임규명부터 하려고 드는 건 도리에 어긋난 일이겠죠.
“칼리만, 치료 받아.”
용사님은 다시 고개를 좌우로 저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나는 괜찮을 거니까, 치료 받아.”
혹시?
“혹시 유스빈 오라버니께 주먹을 휘두른 거였어요?”
유스빈 오라버니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보닌 씨를 바라보니 보닌 씨는 변화없음. 마지막으로 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용사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용사님이 다칠 정도의 위력의 주먹을 유스빈 오라버니께 휘둘렀다고요? 그걸 유스빈 오라버니가 맞는다면?
“보닌 씨, 미.쳤어요!?”
와, 막나가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어?
“유스빈 오라버니께 주먹을 휘두른 거에요!? 미.친 거 아니에요!? 죽는다고요! 유스빈 오라버니는 용사님이랑 다르다고요! 그 주먹에 맞으면 의심의 여지없이 죽는다고요! 저 다친 건 치료할 수 있어도 죽은 건 못 고쳐요! 아니, 저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뒤져도 죽은 사람을 멀쩡히 되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요! 동료잖아요! 동료를 죽이려……”
“닥.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지금 저보고 닥.치라고 한 거……에? 보닌 씨 목소리가 아닌데?
전 용사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용사님은 보닌 씨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용사님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겠죠.
그러면 유스빈 오라버니? ……에이 설마요. 유스빈 오라버니가 닥.치라는 상스러운 말을 목소리 높여서 말 할리 없잖아요.
소거법에 따르면 지금 방 안에 있는 사람 중에서 그 말을 할 사람은 저 밖에 없네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상스러운 소리를 내뱉다니. 저도 아직 멀었네요.
“넌 입 다물고 치료나 해.”
……유스빈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신 거 맞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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