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거 생각보단 쉽지 않겠어."
트와일라잇 시티의 어느 주택. 이복남매 아홉의 맏이인 바르바스는 로제의 고민 거리인 키벨의 체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키벨의 운동 플랜을 짜는 중이었다. 핵심은 장시간의 듀얼은 물론 야외 활동에서도 충분히 버텨줄 정도의 체력을 올려주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 여러가지로 알아보던 바르바스는 키벨과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하고, 효율적인 운동 루틴과 이를 위해 필요한 영양 섭취 등을 찾는 등 분주히 머리를 쓰고 있었다. 유전적인 결함으로 인한 느린 성장 속도와 작은 키 등 불리한 신체 조건은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고, 그로 인해 체력을 늘리는 것에도 한계는 있었지만 그렇다해도 아무 것도 안하고 손을 놓는 것보다는 나았다.
"으어어... 찾느라 애먹었군. 하지만 이걸로 어느 정도 플랜은 짜여졌네."
식사까지 걸러가면서 키벨을 위한 운동 루틴과 계획을 짠 바르바스는 가볍게 몸을 풀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무언가를 하는 건 바르바스에겐 고역이었지만 같이 동고동락했던 키벨을 유달리 아끼는 로제의 마음을 차마 무시할 수도 없었기에 자신의 본성을 억눌러가며 동생을 위한 계획을 짜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략적인 틀이 잡힌 만큼 남은 건 로제와 키벨로 하여금 자신의 플랜을 납득케하는 일이었다.
*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은 기초 체력을 끌어올리는 일이었다.
"후우... 후우... 진짜... 힘드네..."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이건 네 큰 누나가 신신당부한 일이거든. 너도 받아들였고."
"알아... 끄응..."
천리길의 시작은 한 걸음부터였고, 바르바스는 그 한 걸음을 뗄 힘을 키워주는 중이었다. 키벨 자신도 그 점은 체감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바르바스의 계획을 순순히 따르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 생각 이상으로 부족한 기초 체력때문에 그는 상당히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우는 소리는 할 수 없었고, 키벨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I wanna get physical
Let's get into physical
Let me hear your body talk, your body talk
Let me hear your body talk
그런 키벨에게 힘을 주는 건 노래였다. 하준 조차도 키벨의 음악 취향에 대해선 상당히 오래된 곡들을 즐긴다며 신기하게 여기고, 다른 친구들에게는 왜 그런 구닥다리 노래를 듣냐는 소리가 종종 나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키벨에겐 'Old But Gold'라는 어구대로 오래되었어도 여전히 매력적인 곡들이었다.
"후아아..."
"고생했어."
집중 관리는 운동 이후에도 이어졌다. 식사량이 부족한 것이 문제였지, 가려먹지는 않는 키벨 덕분에 식단을 짜면서도 내심 신경이 쓰였던 바르바스는 자신의 계획을 잘 따라주는 동생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근육의 형성에 필요한 단백질을 중심으로 짜인 식단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호불호를 느낄 법했지만 키벨은 부족한 식사량에 대한 호소 이외엔 군말없이 큰 형이 짜준 식단을 잘 따라줬고, 그런 동생을 위해 막내 에르제를 뺀 모두가 합심하여 그의 체력 단련 프로젝트를 지원해주고 있었다.
*
기초 체력 훈련을 시작으로 지구력, 민첩성, 유연성 등의 전반적인 신체능력 향상을 위하여 남매들은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주고 있었다.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도 있었다.
"음... 이건 이렇고..."
덱 연구였다. 가장 중요한 것이야 물론 체력 단련이었지만 키벨의 본질은 듀얼리스트였고, 그 시작은 자신의 덱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역할 놀이를 위해 구축한 [지박] 덱과 자신의 메인 덱인 [TG] 외에도 새로이 [열차] 덱과 [초중무사] 덱도 구축하고 연구하기 시작한 키벨의 눈빛은 어지간한 프로 듀얼리스트 못지 않게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 카드는 어때?"
"음, 한 번 생각해볼게요."
그런 키벨을 도와주는 것은 다름아닌 브레이크와 스트 부부였다. 하준을 통해 하림과 인연이 생기고, 그 인연을 거쳐 브레이크 내외와도 연이 닿은 키벨은 그 둘의 조언을 따라 자신의 덱을 재차 점검하고 정비하고 있었다. 한 편으로는 그 둘에게서도 듀얼 훈련을 받고 있었고, 프로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던 한 편, 장시간의 듀얼에도 이전에 비해 덜 지치는 것을 느낀 키벨은 자신의 방전된 체력을 감추고자 없는 기운을 짜내가며 연기했던 때에 비하면 자신의 체력 문제가 점진적으로 해결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 그 때 제대로 승부해보자."
그렇게 좋은 스승을 두면서 듀얼을 하다보니 하준과의 대결은 친구 사이의 대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실력이 어느 정도까지 일취월장했는지를 확인하는 일종의 진검승부도 되었다.
"진짜 좋다. 키벨의 몸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그렇지만, 저 듀얼을 봐봐. 초등학생들의 대결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내용이 훌륭하다니까?"
"그러게. 저 둘이면 언젠가 국대 자격으로 참전한대도 놀라울 것이 없을 것 같아."
그 둘의 대결을 지켜보는 로제와 로벨리아는 [마계극단] 덱을 플레이하는 키벨과 [초중무사] 덱을 플레이하는 하준을 보며 그 둘이 보여주는 듀얼의 수준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심지어 서로의 덱을 바꾼 채 듀얼하는 와중임에도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입장이었기에 마치 자신의 덱인 것마냥 능숙하게 플레이하고 있었기에 더욱 놀라웠다.
"그런데 언니는 늘 스마트폰으로 두 사람의 듀얼을 촬영하던데, 혹시 그거야?"
"으, 응?"
"'어린이보다 좋은 건 더 어린이'라던가."
"아니, 그런 말은 어디서 또 배웠대..."
그런 와중에도 로벨리아는 특유의 무뚝뚝한 톤으로 자신의 큰 언니인 로제를 슬쩍 놀리기도 했다.
*
"형들도, 누나들도 요즘 나한테 너무 관심을 안 줘."
"에르제도 참..."
이렇게 키벨에게 다른 남매들의 시선이 쏠리다보니 막내인 에르제는 요즘따라 자신이 관심을 못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토라지기도 했고, 그런 에르제를 어르고 달래는 건 차녀인 오리피아의 몫이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집에 남겨지는 어린 아이들과 자주 놀아준 경험이 많았고 오리피아 못지 않게 이런 일을 잘하는 로제는 키벨에게 좀 더 신경을 써주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나저나 에르제는 나랑 언니 품에 안기는 걸 참 좋아한다니까."
"응. 이렇게 있으면 왠지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어."
자신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안겨있는 에르제를 보며 오리피아는 그 말이 다소 엄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걸 막내가 알까 싶은 마음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엄마없이 자신의 어머니의 인격과 기억을 모방한 기계의 보살핌 속에서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지 못 한 채 자라왔을 막내에게 조금은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보고 싶어."
"에르제..."
"알 건 알아. 엄마는 엄청 나쁜 사람이고, 그래서 벌을 받았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
리스의 악독함과 표독스러움을 똑똑이 목격했음에도 에르제는 엄마의 품이 그리웠고, 그런 막내를 보며 오리피아는 왜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런 악랄한 인간에게 반했던 것이냐며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도 자신의 품에 안긴 에르제를 보며 오리피아는 그의 누나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할 뿐이었다.
"엄마니까..."
"그래... 그렇겠지..."
자신에게 안긴 채 깜빡 잠이 든 에르제의 머리를 쓰담아주며 오리피아는 부모의 도움 하나 없이 스스로 살아남아야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도 모두가 그 기간의 길고 짧고와 상관없이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뿐이었다.
"잘 자."
그렇게 속삭여주며 오리피아는 에르제를 위해 작게나마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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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터도 바꿨겠고 덕질도 쉬었겠다 간만에 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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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의 압박이 크군요 ??? : 요즘 누가 디지몬을 봐요 | 23.10.08 0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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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아주 오랫만에 글쓴겁니다 | 23.10.08 10:4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