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할 만해?"
"할 만할 리 있겠냐... 머리 아파 죽겠어... 어으..."
오르시스 나셸의 비밀 의뢰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바르바스와 오리피아는 각자의 사정으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스카일러, 알핀과 엘피나의 세 사람이 불법으로 점거해 생황하던 오비탈리 시티의 마천루가 의뢰를 거치던 동안 개보수 공사에 들어가 더 이상 그곳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별 수 없이 오르시스의 도움을 전제로 로제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고, 그 조건 중 하나로서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하는 것이 붙게 되어 검정고시를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위 '야매'로 배워온 지식들로는 한계가 있었기에 세 사람 모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간단한 계산 정도면 일상에는 별 지장이 없을텐데, 왜 굳이 이런 어려운 수학 공식들까지 풀어야하냔 말이야... 어으으..."
"나는 풀이는 하겠는데, 식을 못 써내려가겠어..."
"그렇게라도 푸는게 어디냐. 나는 풀지도 못 하겠어..."
"듀얼에 뭔 원주율을 쓸 일이라도 있나, 팩토리얼을 쓸 일이 있나... 아오, 머리야..."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어쩌겠어. 그 아저씨가 우리를 도와주는 대신 이것저것 조건을 붙였잖아."
"아저씨가 아니라 큰아버지 아냐?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그 샤키르 나셸이고 그 분은 아버지의 형이니까."
"알게 뭐야... 아으..."
아버지를 잘 둔 것인지, 잘못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유명한 SEM 사의 현 CEO인 오벨리우스 나셸의 아버지되는 오르시스 나셸을 친척으로 두게 된 샤키르의 사생아들이었지만 세 사람 입장에선 그런 사람과 친척 관계라는 사실이 아직은 다소 낯설고 어색했다.
"그 이야기 나와서 생각한건데, 왜 그 아저씨는 우리같은 떨거지들을 구태어 챙겨주려고 하는 걸까? 챙겨주는 거라면 그 두 사람만으로도 족했을텐데."
스카일러의 질문이었다. 오르시스가 바로 로제와 키벨이 말한 그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이 거의 정론에 가까운 것은 그렇다쳐도, 왜 구태어 자신들같이 없어지는 편이 여러모로 나셸 가문 입장에선 속이 편한 사생아들을 챙겨주려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던 그였다.
"뭔가 불편해? 아니면 불안한거야?"
"둘 다. 생각해보자고. 저기 잘난 셈(SEM)인지 덧셈인지하는 회사 입장에선 괜히 우리같은 애들 살려놔봐야 귀찮고 성가실 것이 분명하거든.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가 그 샤키르 나셸의 자식들이니까."
오르시스 등이 보이는 호의를 다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니 그들 입장에선 섭섭할지는 몰라도, 스카일러는 '모든 것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다'는 것을 일종의 진리처럼 여기고 있었기에 그 호의에 감춰진 진의가 과연 자신들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말하면 좀 나쁘게 들리겠지. 하지만 뭔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나로선 굉장히 찜찜해.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암흑 날개의 대장의 자식들을 뭐가 아쉬워서 받아주냔 말이야. 귀찮고 걸리적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일 우리들을 말이야."
그 말에 알핀과 엘피나도 말 자체는 일리가 있어 섣불리 반박하지 못 했다. 기업에 있어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미지였다. 비록 전 CEO가 개인적으로 챙겨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암흑 날개의 수장이었던 샤키르 나셸의 사생아들을 몰래 챙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SEM 사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엮이기 싫은 샤키르 나셸과 암흑 날개와 또 다시 직간접적으로 엮이는 꼴이 되기에 시큐리티 포스에 의해 공식적으로 구출된 로제와 키벨은 그렇다쳐도 나머지 사생아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그들을 떼어놓고 싶어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난 여기에 있는게 뭔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어. 이용만 당하다가 쥐뿔도 못 남기고 인생 끝장날까봐."
"너무 부정적인 거 아냐?"
"너무 낙관적인 것보단 나아."
엘피나의 말에도 스카일러는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확신하고 있었다.
"갈 곳이 없어서 여기 머물고는 있지만... 솔직히 난 우리 형이나 둘째 누나가 좀 부러워. 각자 알아서 지낼 방법이 있잖아."
"하지만... 떠도는게 힘들어서 펜트하우스에 눌러앉으려 했던 거잖아. 그리고 우리는 아직 다른 곳에서 살아남을 방법도 없고. 지하 듀얼도 한계가 있잖아."
"끙... 그러니까 부러운거지..."
하지만 현실은 스카일러의 편이 아니었다. 알핀의 말대로 떠도는게 힘들어 비어버린 마천루의 펜트하우스에 눌러앉을 생각을 했던 스카일러였고, 그나마도 갈 곳이 사라져버린 이상 불안감은 느낄지언정 군말할 입장은 아니었다.
*
그런 세 사람에게도 즐거움 정도는 있었다.
"나 왔어~!"
막내 에르제였다. 그의 어머니되는 리스가 자신의 재능을 헛되이 소모한 나머지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녀의 탁월한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에르제는 그런 재능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다. 이미 작은 정령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지배했을 정도로 에르제의 재능은 확실했으니 그에게 부족할지도 모를 인간성을 조금이라도 채워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우리 왔어. 공부는 잘 되어가?"
그리고 그 곁에는 로제와 키벨이 있었다. 그들을 먼저 맞이한 건 스카일러였고, 그 뒤에 쌍둥이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잘 안 돼. 노력은 하고 있는데,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에르제는 벌써부터 중학교 문제를 풀던 것 같던데."
"에르제가 너무 대단한거지, 너희가 못난 건 아니잖아. 열심히 해봐. 그러면 뭔가 다른 길이 보일지도 모르잖아."
"말이라도 고마워, 누나."
로제에게 약간의 위안을 얻은 스카일러는 뒤이어 에르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에르제~! 친구들하곤 잘 지내고 있어?"
"나? 잘 지내! 나는 대단하니까!"
"하하하! 그거 다행이네!"
이유는 몰라도 에르제만 보면 왠지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풀리는 스카일러는 곧장 그와 놀아줄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까 전까지 자신들의 현실에 대해 푸념하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던 알핀은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까는 이용당하네 마네 하더니... 결국은 에르제가 없어서 그랬던 거야?"
"아, 이거하고 그건 별개지. 에르제, 오늘은 뭐하고 놀래?"
"뭐든 다 좋아! 그래도 일단은... 듀얼하자, 듀얼!"
"하하! 그럴까!"
그러거나 말거나 스카일러는 에르제를 데리고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고, 그런 두 사람을 보던 로제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식사 준비에 나섰다.
"스카일러가 있으니 에르제가 비뚤어질 일은 없겠네. 아, 알핀하고 엘피나는 저녁 준비 좀 도와주고 키벨은 스카일러 방으로 가서 에르제와 같이 놀아줘."
"알았어. 맡겨줘."
키벨은 계단을 따라 스카일러의 방으로 향하고, 로제는 쌍둥이를 데리고 저녁 식사 준비에 나섰다. 두 사람만 지내던 집에 비록 어머니는 다를지언정 네 명의 새로운 형제자매들이 들어오니 집안에서 느껴지는 온기의 정도가 확실히 달랐다.
"그나저나 너희들도 여기서 지내게 되어서 기쁘지만, 에르제를 데려오길 정말 잘한 것같아."
"본론은 에르제지? 알아."
"흥. 에르제가 귀여운걸 어쩌겠어."
특히 로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에르제였다. 물론 막내의 천재성이나 재능 등등에 발끝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막내가 자신들과 잘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이 로제 입장에선 일종의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어린 소년, 특히 귀여운 소년에게 사족을 못 쓴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흠이긴 했지만 그래도 알핀과 엘피나 모두 로제가 정말 좋은 사람이란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건, 에르제를 자기 몸 대신으로 쓰려던 리스인지 린스인지 하는 악녀를 걔 몸에서 쫓아냈다는 거야."
"맞아. 알베르 아저씨 때문에 속 터져 죽는 줄 알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을 무슨 2회차 내지는 부계정마냥 써먹으려던 그 못된 여자를 쫓아낸 건 확실히 다행이었지."
그리고 세 사람 모두 그런 에르제를 자신의 뜻대로 이용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자신의 2회차처럼 써먹으려던 리스에 대해서는 사념이라고 해도 지독함을 넘어 악독하고 표독스러운 인물이란 것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었다.
"어라... 이런 제안을 막 받아도 괜찮을까..."
한 편, 오리피아와 바르바스는 카페 파라디소에서 만나 자신들에게 날아온 한 통의 편지를 두고 깊은 고심에 빠져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는지는 둘째치고, 프로 듀얼리스트로 전향할 기회인 건 사실이다. 오리피아, 넌 어찌할 거지? 난 일단 되든 안 되든 가보기로 했다."
"음... 나도 프로 듀얼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막상 그 꿈의 기회가 가까워지니까 두렵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하고 아무튼 그래..."
모 프로 듀얼팀에서 보냈다고 적혀있는 오디션 안내. 샤키르 나셸의 사생아라는 신분적 약점이 다소 마음에 걸렸지만 바르바스는 되든 안 되든 일단 그 제의를 받아보기로 했다.
"최대한 짧게 생각해. 생각이 길어지면 결과는 나빠진다."
"오빠도 참... 그럼, 가보자. 뭐가 되든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오리피아도 짧은 고민 끝에 오디션에 참가하기로 했다. 비록 이번 오디션에서 합격하더라도 2군 혹은 그 아래의 팀에서부터 시작하겠지만 프로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여 초장부터 1군의 가능성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커리어를 착실히 쌓고, 그 과정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킴으로서 1군의 눈에 띠는 것이 정도(正道)였다.
"그래, 뭐가 되든 어떻게든 되겠지."
==========
간단 간단 실제 간단
(IP보기클릭)1.238.***.***
(IP보기클릭)211.198.***.***
본편의 분위기를 보아 해피 엔딩을 맞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외전들의 방향에 따라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 23.08.12 23:27 | |
(IP보기클릭)220.83.***.***
(IP보기클릭)211.198.***.***
'죽은 사자보단 산 당나귀가 낫다' 오늘도 평화로운 | 23.08.13 00: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