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난 한가한 낮 시간이었다. 평소라는 말이 제법 어울릴 법한 선선한 하늘 아래에서, 레이무와 유카리는 짧은 담소를 끝없이 이어붙여가며 정처없는 비행을 계속해가나고 있었다. 다급함은 없고, 비행은 그저 대화라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기다긴 유카리의 물음에 비하여선 레이무의 대답은 한없이 짧아 대화의 맥을 이어나가는 데 애로사항이 있을 뻔하였으나, 유카리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나름은 대화다운 대화는 왕성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몸을 멈추고 답을 않는 레이무에 의하여 완전히 대화는 끊어졌고, 주위엔 바람소리만이 감돌았다. 말소리가 없는 적막함을 깬 것은 의외롭게도 레이무였다.
"잠시 걸어볼까? 오늘은 그럴 기분인데."
"응? 좋아!"
항상 제안하는 것은 자신의 몫인지라, 뜻밖의 일이라 생각한 유카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어찌 긍정을 보였다. 레이무는 서서히 활강하며 바닥에 가볍게 안착했다. 따라오는 유카리가 온 것을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레이무는 입을 뗐다.
"날씨가 선선해."
"그~러게~"
"그래서 잠시 걷고 싶었어."
항상 화창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유카리를 따라, 레이무도 어렴풋하지만 미소를 지었다.
"뭐,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고."
"얘기?"
"응, 얘기."
"레이무가 먼저?"
"……."
가늘게 떠진 레이무의 눈이 유카리에게 지그시 꽂혔다. 짧게 쏘아지기까지한 눈길에, 유카리는 그리 으르지말라며 뒷걸음질치다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옛날을 알고 싶었다고 했었잖아."
"아, 응… 그렇지."
"그러니까, 너니까 알려주려는 거야."
살짝 이르게 가던 레이무의 발걸음이 늦춰지며 뒤따르던 유카리와 오가 맞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올려 눈을 맞추고는 다시 잠구어졌던 입을 열었다.
"…막상 말하려니까 뭐부터 말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네. 딱히 뭘 말하자니…."
"일단 뭐든지 좋아! 듣고싶어!"
"그렇게까지 특이한건 없어. 기대하진 마."
초롱초롱 빛나는 눈이 머쓱한지 레이무는 뒷목을 살짝 긁었다.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여 운을 띄우는 데 까지는 느린 걸음이 다섯이나 필요했다.
"아…니, 나름은 특별했으려나. 보통이라고 말할 수 없을 환경이기는 했으니까."
"주로 어떤 쪽으로?"
"할아버지한테 어렸을 때부터 요괴퇴치술을 배웠었어. 하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특별한 건지도 몰랐었네."
"……."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지 마. 어디까지나 호신용을 뿐이었으니까."
부연적 설명이 이어졌음에도 굳어버린 유카리의 표정은 풀릴 기색이 없었다. 레이무는 이야기나 이어나가기로 결정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정말 애지중지하시던 분이셨어. 내가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이다보니 그런 경향이 유독 심하셨지. 퇴마술도 그 이유 때문에 가르치셨던 것 같아. 듣기론 내 부모님은…. 아니다."
레이무가 잠시 말을 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굳이 유카리의 면전에서 요괴에게 부모님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그랬다간 괜한 죄책감 따위나 가지게 될 거다. 그렇기에 레이무는 다른 이야기로 물꼬를 틀어 과거의 감상을 다시 만끽하기로 결정했다. 레이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야기는 술술 다시 이어지고, 그에 따라 감정은 부유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착잡함과 아련이라, 레이무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말 간에 틈새가 너무 커지기까지 하자, 유카리는 연유를 물었다.
"왜 그래?"
"옛날에 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거든."
"응?"
"내가 퇴마술을 처음 배웠을 때 말이야, 요령만 대강 듣고는 할아버지가 보이셨던 기술을 따라할 수가 있었어. 그간 눈으로 봤던 것들도 있고 해서 말이야. 보통 한 번만에 완벽히 따라하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 난 그래서 칭찬받을수 있을 거라고 기뻐했었었지."
"……?"
레이무가 씁쓸한 미소를 한 차례 지었다.
"그런데 아니었어. 할아버지는 내가 기술을 따라하자마자 지금 나같은 표정을 지으셨었지. 절대 기쁜은 아닌 감정을 말이야. 금세 표정을 바꿔서 싱글벙글 웃으시며 칭찬하시긴 했다만, 그건 좀… 잊을 수가 없더라."
"왜 그러셨을까…?"
"확실하진 않은 내 가정이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평범하기를 바라셨던 거야. 온 천지에 천재로서 추앙받기보다는, 오히려 이름을 알리지 않을 정도의 재능 정도를 바라셨던 거지. 재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주위로 사건은 몰려들 테니까. 또 잃지 않기를 원하셔서."
레이무는 그 이유를 보통의 인간이 아닌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살아가게 되어,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시간은 많았을거늘,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걸까. 옛 감회에 빠져있지도 못할 정도로 자신이 과거를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일까.
레이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뜬금스레 부유해버린 울적한 감정을 다스리려 입술을 살짝씩 잘근거렸다. 이미 세상을 떠나버린 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가슴의 시큰거림과 같은 슬픔과 그리움 뿐이었다.
"뭐…, 가족 이야기는 더 할 게 없네. 한다고 해야 애정표현이 과하셨다는 정도. 뭐만 하면 껴안으시면서 예쁜 손녀라고 뽀뽀하고 그러셨거든."
"그건 좀 부럽네에…."
"뭐야 그게."
목끝까지 차올랐던 울컥임을 도로 삼키면서, 레이무는 입을 가리고 일부러 피식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의적인 감정이 본연의 것에 덧씌워지자, 그제야 급히 마쳐진 이야기의 다음이 이야기될 수 있었다.
"다음 이야기를 하자면…, 음. 친구 이야기나 해볼까. 유카리, 나 친구는 몇 명이나 있었을 것 같아?"
"한 다섯? 레이무는 깊고 좁게 사귈 것 같은데."
"땡. 그런데 비슷하게 말하긴 했네. 성격은 맞췄어. 나는 깊고 좁게 사귀려 했지만 친구 때문에 발이 넓어졌었거든."
"으응…."
요즘 자신이 하는 일과 유사한 느낌이 들어, 제발이 저린 유카리는 표정을 힘들게 숨겨내었다. 부채를 펴 얼굴을 부쳐대고, 괜한 콧소리로 말에 호응을 넣어주면서.
"세이자는 날 엄청나게 끌어들였었지. 처음 한 두번은 귀찮아서 때려치웠다가, 어쩌다보니 놀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아는 애가 점점 많아지고, 재미있게 놀고. 어떻게 무리에서 대장짓도 해보고…."
손가락을 꼽아가며 설명하던 레이무가 잠시 시선을 돌렸다. 나름 느긋한 속도로 걷는다 생각했건만, 벌써 마을에 도달해선 짧은 검문을 거쳐야만 했었다. 레이무는 짧게 경례를 받아주고, 거의 없다시피한 절차를 끝내 마을에 발을 디뎠다. 그제야 끊어졌던 말은 다시 이어졌다.
"뭐, 분위기 타고 놀아서인지 항상 재미있었긴 했는데. 절제란 걸 몰라서 그만큼 위험했던 짓도 많이 했었지. 한 번은 따끔하게 혼나 맞은 적까지 있었으니까."
"에."
"담력시험을 하겠답시고 애들끼리 산 속 깊숙히까지 들어간 적이 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요괴들에겐 손쉬운 먹잇감이 제발로 기어든 셈이었지. 실제로 만나기까지 했었고."
"헉. 그러면 레이무의 무지막지한 요괴 퇴치는 그 때부터 서막을…."
"아니거든. 더 말 안 해준다?"
"입 싹 닫고 있을게…."
나름 경청의 자세로서 넣은 호응이었건만 역효과가 난 걸까. 유카리는 제 입에 지퍼를 잠구는 티를 내며 자제의 의미를 보였다.
"만난 건 그냥 놀래키기만 하는 요괴였어. 하지만 밤이기도 했고, 애들이기도 했으니까. 그거에도 기겁해선 울고불고 자기들끼리 도망쳤었지. 그러다보니까, 한 명을 못 데리고 도망쳤던 거야."
"그러면 그 애는…?"
레이무가 눈을 감고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유카리는 얼을 잃어 절레절레 저어지는 고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피식거리는 레이무의 비웃음이 들린 건 그 다음이었다.
"왜 그래. 아무일도 없었다는 건데."
"아 뭐야……."
"놀래키기만 하는 요괴랬잖아? 오히려 문제는 그 요괴보단, 코스즈를 다시 찾으러 가던 도중에 발생했지. 그쪽 경로가 텐구의 구역 끝자락과 겹치는 장소인 탓에, 경비를 서던 백랑텐구와 마주쳤으니까. 할아버지가 곁에 계시기는 했다만, 무섭더라. 그 때는."
명백히 느껴지는 적의에 몸을 떨었던 기억을 레이무가 잠시 새록새록 떠올렸다.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 채로 할아버지의 뒤로 몸을 숨겨 옷깃을 꽉 잡고 벌벌 떨던 과거의 자신은 지금 보면 절로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겁이 많은 아이였다. 아니, 지금이 너무 겁이 없는 것이고, 그 떄가 정상적인 것이었을까.
"그쪽에선 경고를 한 번 했어. 들어오는 순간 우리와 적대하는 걸로 판단하여 배제하겠다고.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봐주겠다면서 말이지. 일단 뒤로 몸을 빼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 건 아니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급했어.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느꼈지. 할아버지도 그 생각이셨는지 주춤거리다가 설득을 시도하셨어. 그런데, 일단 텐구의 구역이기는 했잖아?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 그러니 텐구가 검을 겨누면서 공격태세를 갖췄지. 그렇게…."
"레이무-!"
"?"
호명하는 목소리에 이야기가 도중에 끊겼다. 낯익은 목소리가 자신을 부르자 레이무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사선 방향에선 앨리스가 손을 크게 흔들며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고개를 꾸벅이는 사나에의 인사도 한 차례 늦지만 뒤따라서 이루어졌다. 레이무는 고개를 까닥이며 걸음을 측면으로 돌렸다. 앨리스의 짧은 불평은 그 직후에 들려왔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 이제야 봐주는 거야-"
"무슨 일인데."
"딱히 용무는 없긴 하지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뭐 그렇긴 한데."
"까칠함은 여전~ 하시구만."
사나에의 옆에서 스와코가 빈정대었다. 앨리스에게 모리야가 붙어있는, 연관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합에 레이무는 머리를 약간 갸웃이며 의문을 가졌다.
"그럼 넌 뭐하고 있었어?"
"사나에가 우리, 그러니까 모리야의 신화를 토대로 한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만들어줄 수 있냐고 설득하고 있었다. 나는 낯부끄럽기도 하고- 이게 그리 만만한 일도 아니니까 좀 걱정이 많이 되서 거절하려 했다만, 우리 사나에가 워낙 열혈한 아이이니, 기세에서 진 탓에 이곳에서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었지."
스와코는 지루하다는 듯 가늘게 뜬 눈과 한숨을 쉬는 입을 특히 돋보이도록 표정을 이죽거렸다. 옆에서 사나에는 주먹을 꽉 쥐어가며 열혈함을 표하고 있었다.
"우선 신님께 접근이 쉬워야 관심이 생기고, 또 신도가 되지 않겠어요? 관련 서적도 어찌어찌 찾았겠다! 한 번 시도해볼 생각이예요!"
무리라는 마미조의 말은 벌써 잊은 지 오래였다.
"저기, 레이무. 우리 갈 길…"
"접근성을 따질거면 요괴의 산에 터를 짓는 것부터 하지 말았어야 할 것 같은데에~ 뭐! 그건 카나코의 똥고집이었으니 너로서는 무리인 일이었겠지. 나름 불만이 많았구나?"
"그, 그건 아니에요오…."
"이런 불만은말해도 신벌같은 건 내리지 않아~ 카나코가 좀 문제가 많은 거야 사실이니까. 신의 위엄이 중요하다고 신도가 오기도 힘든 산 꼭대기 쪽에 신사를 세우지 않나, 조금 놀렸다고 해서 내 머리를 땅바닥에 쳐박아버리지를 않나. 아, 이건 놀린 내 잘못인가. 아무튼!"
"그런 이야기야. 레이무는?"
"뭐, 산책 겸 잡담."
"시간 돼? 인형극. 보여주고 싶은데."
"미안한데 오늘은 좀 그렇네. 옆에 보이지? 볼 빵빵하게 부풀려서 삐진 티 내는 거. 무리야 아마도."
"아는데 왜 무시하는 거야아…!"
"으음… 시간 되면 꼭 보러 와줘."
"그래."
짧은 착잡함을 마음에 숨기고, 앨리스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남은 이들의 배웅에도 회답하며 레이무는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볼을 부풀린 유카리의 투정은 시야에 그녀의 지인이 없게 되고서야 끊겼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참 조급해. 어차피 너한테밖에 안 할 이야기인걸."
"그래도, 질투나는 걸."
"해줄게 해줄게. 텐구가 공격태세를 갖추니, 고작 그 때의 내가 뭐를 어쩌겠어. 뒤로 천천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지. 이를 갈고 있는 백랑텐구가 우리에게서 눈을 돌릴 때까지 말이야."
자신의 선택이기도 했고, 할아버지의 선택이기도 했다. 자신은 공포에 바싹 쫄은 탓에, 조부는 남은 단 하나의 가족마저 비일상에 연관시킬 용의가 없기에. 그는 개인으로서 요괴라는 집단에 도전과 복수를 들이미는 것이 어리석은 용기에 불과함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난 무서워서, 그런 요괴에게 코스즈가 어떻게 됐을지 짐작이 안 가서, 돌아가던 도중에 한참을 울어버렸어. 내가 우니까 할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만 이 악물고 계속 하시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한참을 울고, 왠지모르게 텐구가 노려보던 때를 떠올리다 보니까 머릿속이 조금씩 새햐얘지더라고. 할아버지가 요괴를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을 밥 먹듯이 하던 게 그제야 좀 이해가 되더라. 너무 무서웠었으니까. 요괴란 게."
요괴란 인간의 공포가 근원이 되어 생겨난 존재이기에, 그리고 약자의 입장으로서 그 두려움을 직접 체험하였기에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레이무의 표정은 그 때의 두려움을 상기하는 것이라기엔 의미가 멀어보이는 모습. 인상을 찌푸리고 있되 눈망울은 반짝거려서. 착잡함과 서러움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표정은 레이무를 부르는 이가 눈앞에 생김과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안녕하세요 레이무."
"카센 그리고,"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어떠셨나요? 듣고 있는 거죠?"
길거리 음식을 한 아름 안은 채 인사하는 카센의 옆에는 그간 자주 보지 못하였던 메이링이 있었다. 그녀는 굳이 두 번이나 물어가며 대답을 재촉했다. 한 번을 물었을 때의 대답이 늦어 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레이무는 두 번째로 물음을 받고서야 눈을 짙게 깜빡이고는 피식거리는 웃음으로 대답해주었다.
"그래, 그래. 들었어. 안부는 한 번이면 충분해. 너무 텀이 짧잖아."
"안부는 중요해요- 말이 서투른 이라 하더라도 어색하게나마 상대와의 이야기를 이을 수 있는 다리가 되어주는 걸요."
"적어도 넌 그러지는 않아도 될 거 같다."
"저야 그렇죠~ 하지만 제 스승님은 말이 서투르셔서 말이죠. 항상 안부인사를-"
"거기까지만 해주겠니."
"저희 스승님은 말이 서투르셔서 말이죠-"
"그만해."
카센은 미소를 지으면서 덤덤한 체하며 말했다. 레이무는 눈을 살짝 감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또 메이링의 분위기에 빨려들어가선 빠져나오지 못해버렸으니. 주제나 돌릴까. 카센과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카센, 너 사나에는 계속 가르쳐주고 있어?"
"네, 나름은요."
자기도 당하는 쪽의 분위기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지, 카센은 레이무의 말에 신속히 대답했다.
"하지만 요즘 바쁘다고 조금씩 빠지려 해서 걱정되는 면은 있어요."
"최대한 빠트리게 하지 말아줘. 내가 가르치려 할 때도 조금씩 빼려는 구석을 보여서 좀 걱정된다."
"네, 알겠어요. 뭔 일이신지 부탁까지 하시니."
"아, 되도록이면 훈련 강도도 좀 빡세게."
"그건, 좀… 지금도 힘들다고 눈물 땀을 막 흘리는 걸요."
"다치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순수한 걱정으로부터 우러나온 관심이었지만, 사나에는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은 자세를 잡고 힘을 늘리는 것조차 그녀는 버거워했으니. 레이무도 그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강도를 늘리기를 소원했다. 만약 사나에가 단순한 환상들이를 하여 인간마을의 일원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면 모를까, 지금 그녀는 텐구의 구역 한복판에서 그들을 퇴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무녀로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가 노려지지 않는 것은 텐구가 굳이 인간을 적대하여 하쿠레이와 마찰을 빚으려 하지 않고 싶어하는 탓이니.
"좀 많이 힘들어하면, 가끔 칭찬해주면 될 거야."
"…그럴려나요."
"그럴걸요? 칭찬받으면 나름 버티고 싶어져요. 물론 힘든 건 똑같아서 때려치고 싶단 생각은 들지만요."
"수련 하는 동안 그런 생각하고 있었니?"
"예시죠 예시."
메이링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흐름을 또 넘겼다. 카센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지만 메이링은 품고 있는 미소를 잃지 않고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여 뻔뻔하게 굴었다. 레이무는 이 정도 당부면 될까, 생각하고 말을 계속 삼갔다. 자신이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대화의 흐름은 메이링이 알아서 쭉 이었으니까.
메이링은 이야기를 잇는 동안 주로 골리는 쪽이었다. 그녀의 성격은 촐싹거리는 점이라면 유카리와 비슷하지만, 유카리가 당하는 쪽에 불과한 성격이라면 그녀는 골리는 쪽에 가까웠다. 레이무도 그녀 둘의 성격이 문득 비슷하다고 느꼈으나 공수가 다른 그 차이를 느껴 나름 신기하단 생각을 한 번 했다. 유카리는 또 둘만의 시간이 뺏겨버린 것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지만, 레이무가 자신에게만 과거의 이야기를 해준다는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말한 것을 생각하고는 인내심을 가지고 꾹 참았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른 석양이 아른거릴 때까지 쭉 계속되었다. 레이무도 그 쯤 되니 이제 시간이 급박하다고 느껴져서 헤어짐을 권했다.
"네, 그러면 또 다음에."
"안녕히-! 또 봬요!"
"그래, 그래."
"이제야 끝났어…."
유카리는 허리를 축 숙이고 기운빠진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무는 어색히 미소를 짓고는 이야기를 하려 했다. 그런데 잡담만 몇 시간을 하였으니 과연 기억이 날까. 그녀 장본인조차 가물가물해서 입술을 오물거릴 뿐이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도망쳤다고까지…. 또 코스즈가 어떻게 됐을지 짐작이 안 갔다는 것까지…."
"아아."
거기구나. 레이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행선지를 향해 발을 다시 딛으면서 다시 옛 감회에 빠졌다. 대화가 끊어지기 전, 하려고 했던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런 적대감이 짙었던 텐구를 만났다 보니, 당연히 요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생겼었지. 그래서 그 녀석들이 우리를 적대시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던 거야."
"응응."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말이야."
"……? 왜?"
입술을 달싹이는 레이무를 보며 유카리는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에 대한 과거의 이야기라서 처음으로 관심이 유지되고 있었고, 한 번도 입으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였던 요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주는 것에 더욱 더 관심사가 커졌다.
"모르겠더라고. 길을 빙빙 돌고 돌아서 어떻게 코스즈가 있는 장소를 찾았었는데, 거기에서 본 건 내 생각이나 망상과는 아예 딴판인 광경이었어. 우리를 놀래켜서 내쫓았던 요괴가 우산을 빙빙 과장스럽게 돌려가면서 묘기를 부리고 앉아있고, 또 코스즈는 그걸 보면서 박수치며 깔깔대고 있고.
모르겠더라. 그 모습은 참 이해가 안 갔어. 공포로써 존재하는 요괴가 보이는 모습이라기엔 위화감이 너무 컸거든. 그래서 그건 아직도-"
아니야. 레이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입을 잠구고는 그냥 뚜벅뚜벅 걷기만을 했다. 유카리는 굳이 대답을 촉구하지 않았다. 레이무가 머뭇거린 것은 망설이기 때문일 거란 걸, 그녀는 왜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본능적인 예감은 맞기도 했다.
레이무가 잠구어서 꺼내지 않은 마음의 말은 요괴에 대한 판단의 망설임과 관계되어있기 때문이었으니까. 이해가지 않는다, 이해가지 않는다 말은 하였어도, 그녀 나름대로 지금까지 이 일에 대한 답을 도출해왔었으니 말이다. 다만 언어로서 도출된 그 답이 마음속의 응어리로 덩어리져 질척해진 탓에 빠져나오지를 못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 내뱉어진 것은 거짓인 이해 불가란 말 뿐이고, 판단을 망설인다는 본심은 아직도 그녀의 잠구어진 입처럼 봉쇄되어 빠져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탓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에에-"
"안 돼. 더 못 말해줘. 종점에 도착했으니까."
"종점?"
"응.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는 곳이니까."
유카리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 레이무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을 향했다. 둘러보았는데 눈이 익은 장소인지라 유카리의 고개는 갸웃거려졌다. 성큼성큼, 레이무는 발을 내딛으며 가게의 문을 열고 소개시켜줄 쪽과 소개하는 쪽, 서로에게 말했다.
"소개할게. 모토오리 코스즈. 내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