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왕이 하는 일!> 5권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쿠구이 마치의 정체
산성앵화 쿠구이 마치 양의 또 하나의 정체가 관전기자 쿠구이라는 사실은 5권 감상전에서 밝혀집니다.
한국어 번역의 한계 때문에 정발판에서는 1권에서 이미 눈치챈 사람도 많겠지만, 일본어판에서는 쿠구이 기자의 독음은 1권 관전기 끝에 딱 한번만 나온 뒤로는 독음 없이 '鵠'라고만 나오고, 鵠라는 한자가 일상생활에서는 그다지 쓸 일이 없다는 이유도 있어서 훨씬 눈치채기 힘들죠.
하지만 1권부터 4권까지 잘 읽어본다면 사실 훨씬 전부터 여기저기 복선이 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카야오쿠 선생님......이라면 아야노 양은 쿠구이 씨의......?"
"예. 제가 사매에요. 쿠즈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언니에게 자주 들었답니다. 오늘도 이걸 가지고 가라며 주셨어요."
아야노 양은 교토풍 전통과자가 들어있는 종이봉투를 나에게 건넸다.
-1권 제4보
아야노 양은 애정과 긍지가 반반씩 섞인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표정만으로도 카야오쿠 선생님이 지도자로서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지 짐작이 됐다.
애초에 카야오쿠 선생님은 4대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키요타키 일문과 동문이며, 현역 여류 타이틀 보유자도 제자로 둔 교토의 명문이다.
-2권 제2보
이렇게 쿠구이 양이 아야노 양의 사저라는 사실은 초반에 몇 번 언급됩니다.
본문만이 아니라 각 장 앞부분에 수록된 기사 카드를 꼼꼼하게 읽어봐도 역시 쿠구이 마치 양과 아야노 양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죠.
한편 4권에서는 관전기자 쿠구이 씨의 정체에 대해 은근슬쩍 떡밥을 던집니다.
"저기, 쿠구이 씨?"
"네?"
"당신......왜 도쿄에 있는 거죠? 칸사이에 살지 않았어요? 설마 챌린지 매치를 중계하려고 일부러 도쿄에 온 건가요?"
(중략)
"자주 나오는 문장은 미리 문자 하나로 변환되게 설정해 두거든요. 예를 들자면----"
[s]->살짝 고민한 후, ▲9팔향. 선수는 동굴곰을 노리고 있다.
[k]->금은 네 개로 멋진 동굴곰이 완성됐다.
[y]->역시 동굴곰은 견고했고, 결국 동굴곰이 압승했다.
이 사람, 동굴곰을 너무 좋아하네.
(중략)
"히나츠루 양은 서로걸기가 특기인가요?"
"아, 쿠구이 씨는 아이의 장기를 처음 보나요?"
"예. 여동생은 연수회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는 것 같지만요."
(중략)
"솔직히 말해서 장기 해설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그럼 나는 없어도 되겠네요. 쿠구이 씨라면 장기 해설 정도는 거뜬히 해낼 테니까요......"
관전기자가 되려면 상당한 장기 실력이 필요하다.
(중략)
쿠구이 기자 또한 웬만한 여류는 덤빌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4권 제1보
위 대목은 힌트이면서 서술트릭이기도 한데, 아마 감이 좋은 사람들은 여기서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단 저 시점에서 작중 등장한 '동굴곰을 특기로 삼는 칸사이 장기 기사'는 쿠구이 마치 양이 거의 유일했죠.
뒤에 언급된 '여동생'역시 여초연 맴버들 중 한 명일 텐데, 그 중 사저가 있다고 언급된 건 아야노 양 한 명이고요.
또 '어지간한 여류기사보다 강하다'면서 은근슬쩍 쿠구이 기자가 남성일 수 있다는 떡밥을 뿌리지만, 1권 감상전을 꼼꼼하게 읽어봤다면 '혹시?' 싶은 대목이기도 하죠.
본격적으로 쿠구이 씨의 정체가 드러나는 5권에서는 초반부터 떡밥이 던져집니다.
관전기자인 쿠구이 씨도 사진을 마구 찍어대고 있었다.
(중략)
하지만 사저의 사진을 찍느라 꽤 악전고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류 2관, 좀 웃어보세요"
"......" (진심으로 싫어하는 표정)
"소라 선생님, 부탁이에요. 붙임성 있게 구는 것도 타이틀 보유자의 책무잖아요."
"......여류 타이틀 보유자의 사진이 필요하다면 저보다 더 적임인 사람이 있지 않나요? 항상 싱글벙글 웃고 있는 사람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 있나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
-5권 제1보
하와이에 온 사람들 중 여류 타이틀 보유자는 긴코 말고 아무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위화감이 드는 대목이죠.
그리고 후반부에 결정적인 단서가 나옵니다.
츠키요미자카 료는 한밤중인 휴게소에서 뜨거운 커피를 샀다.
"............젠장......"
이전 대국이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 순간, 츠키요미자카는 충동적으로 도쿄에 있는 자기 집을 뛰쳐나온 후 바이크를 타고 대국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 휴게소에서 기보를 확인한 그녀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현지에 있는 쿠구이 마치가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보낸 짤막한 메시지와 사진을 보지도 못했다.
-5권 제5보
히나츠루 여관에 관전기자 쿠구이는 등장하지만 쿠구이 마치는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죠. 저도 여기서 '아 그렇구나' 싶었습니다.
뭐 그 바로 뒤에 쿠구이 씨의 정체와 사연이 전부 밝혀지니 조금 일찍 깨달았다는 것 말고 별 의미는 없었지만요.
2. 오니자와 단의 모티브
이전에 올렸던 캐릭터의 모티브 정리글에 깜빡하고 빼먹은 사람이 한 명 있어서 추가해봅니다.
2권 초반에 등장해서 그 뒤에도 가끔씩 얼굴을 비추는 조역, SM소설의 거장 오니자와 단 선생님.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모티브는 소설가 古단 오니로쿠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하부 명인만큼 유명한 분이니 그다지 소개하는 의미가 없는 것도 같지만...
대표작으로는 영화로도 여러번 만들어진 <꽃과 뱀>과 <오욕의 꽃> 등이 유명하죠. 작중 언급된 <끈과 살>도 실제로 출간된 소설이고요.
또 작중 나온 것처럼 실제로 애기가이기도 해서 일본 아마추어 장기협회 공식 잡지의 발간을 맡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한편 기력은 소설의 묘사보다 더 뛰어났는데, 생전에는 아마추어 단수 중 가장 높은 6단이었고 일설에 따르면 거의 프로기사 직전 수준이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2권에 나온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키면서 SM소설을 썼다'는 것도 실화 기반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니고 중학교 선생님이었지만.
이 일화에는 사실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있는데, SM소설을 쓴 이유는 카바레 클럽을 경영하다가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든가, 교실에서 원고를 완성하면 바로 앞에 앉아있던 학생한테 우체국에 부치게 시켰다든가(...) 하는 어마무시한 전설들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분이 남긴 일화들을 보면 정말 사람의 삶은 소설 이상으로 파란만장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작중 나온 장기계 관련된 일화 쪽도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이것저것 찾아보던 와중에 일본 쪽에 굉장히 잘 정리된 블로그가 있어서 그쪽 링크로 대신합니다.
작중 에피소드 소재 정리 : http://petitbourgeois.hatenablog.com/entry/2017/07/19/232836
인물이나 대국 같은 비교적 유명한 소재들이야 그렇다쳐도, 대사까지 실제 기사들의 발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건 생각도 못했네요.
다음에는 애니메이션판에 등장한 기보들에 대해서 정리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