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르 옴니버스 에서 "부친 살해" 라는 용어가 나옵니다. 오딘이 토르에게 해주는 이야기인데 , 필멸자들의 비유로 한 남자가 더이상 아버지의 명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존재가 아닌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필요하다면 아버지의 뜻도 거스를 수 있는 존재- 어른으로 거듭나는 변화를 비유한 용어라고 하지요. 물론 그뒤에 "신들의 세계"에선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라고 나오지만요. ^^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소설 속에서 황제 = 주인공의 양아버지 이기 때문입니다. 사생아인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끈임없이 양부의 살해위협속에서 살아갑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스스로를 단련시킬수 밖에 없었고 , 그후 힘을 얻은 후에도 계속되는 숙명의 위협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살아남고 ,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내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끝없이 싸우고 강해지기를 반복하는 이야기가 마왕전생 RED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굳이 황제 가 양아버지라고 표현한건 진짜 황제가 주인공의 양부라서가 아닙니다. 양어버지가 맏았던 역할을 그대로 황제가 이어받기 때문입니다. 양아버지가 주인공의 생명을 위협했지만 그건 따로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혈통이 아닌 카를 (주인공) 이 자기 재산을 상속받아 자기 진짜 자식들의 지분이 줄어들기 때문에 행한 자연스러운 행동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이런 류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3류 악당과 달리 양아버진 최소한 이복자매들과 주인공의 친어머니에게는 제대로된 가장으로서 그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그래서 성장한 뒤에 주인공도 양부에 대한 복수가 아닌 화해 (라기 보단 이해) 를 하게 되죠.
그러한 구도는 곧 주인공과 황제와의 관계에서도 반복됩니다. 황제는 주인공을 세계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로 보고 감시하며 여차하면 죽이거나 능력을 빼앗고 가두려 하고 주인공은 그에 반발하여 자신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단련하고 강해져서 도전합니다. 하지만 패하고 힘을 잃고 갇히게 되죠.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이긴 하지만 그렇게해서 돌아온 주인공은 황제를 넘어서는 힘을 손에 넣었지만 복수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폭군인줄 알았던 황제는 사실은 자신의 사심을 버리고 세계의 멸망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진정한 수호자였던 겁니다 . 카를은 그의 눈에 일종의 위험물로 찍혀서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거구요. 물론 그의 박해에 희생당한 사람중 하나인 카를은 그를 용서하진 않습니다. 그의 철권통치를 미화하지도 않고요.
(이후 에필로그에서 황제의 최후에 대해 어느정도 언급되는데 아마 황제의 철권 통치에 신음하던 오세니아는 몰라도 드리패스 지역에선 어쩌면 신화적인 존재로 숭배의 대상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황제 - 스캇 게르마쿠스의 이야기는 보는 시야에 따라서 전형적인 영웅 일대기도 될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소설의 제목은 "황제 게르마쿠스 전기 외전 - 반역의 이야기 카를 네레스티아" 정도가 될듯 합니다. ^^)
그러나 자신과 대적하는 이가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대의를 품고 그걸 실현을 하기 위해 희생하는 존재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와 손을 잡기도 하지요. 물론 실제로 이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진 않습니다. 그런 위치에 오기까지 주인공과 황제 뿐 아니라 무수한 주변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져 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낳습니다. 아쉬운 것은 그런부분에까지 충실한 묘사와 납득할 만한 전개를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기본이 대여점용 판타지다 보니 어느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주로 과거의 적들이 세계의 위기가 닥치자 일단 손을 잡고 서로 협력하는 - 마지 못해서라도 - 모습인데 이부분을 무리없이 유연하게 묘사해야 하는데 이게 좀 부족합니다. 아마 이걸 제대로 했다면 진짜로 판타지 대하소설이 되었을 겁니다.
결국 이소설은 자신의 양아버지를 이해하고 넘어서는 이야기입니다. 성장이 테마이긴 하지만 흔히 보이는 드래곤볼식 전개보다는 이렇게 주인공의 내면적 성장에 할애를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국내 판타지 소설에 어느정도 흥미가 남아 있는 분은 일독해 볼만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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