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사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초능력의 일종인 '주력'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면 전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커다란 바위를 산산조각 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다. 인간은 높은 덕성을 가진 덕분에 결국 신의 힘인 주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이 세계에서 웬만한 일들은 전부 주력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단순노동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요괴쥐'에게 시킨다. 우리는 단지 주력을 연마하며,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울타리 안에서 즐겁게 뛰어놀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행복한 세계가 어디 있으랴.
이 안에 있으면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 여기는 아름다운 나의 집이며, 이상적인 나의 고향이다. 더구나 인간에게 반항할 자는 아무도 없다. 당연하다. 신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감히 누가 반항하랴.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갔던 하계 캠프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학교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가?
어른들은 왜 항상 철저하게 아이들을 관리하고 있는가?
악귀는 무엇이고 업마는 또 무엇인가?
어른들은 왜 그토록 그들을 두려워하는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다 거짓이었던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역사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암투, 살육과 복수의 기록이었단 말인가?
내 이름은 스퀴라.
나는 인간을 신으로 섬기며, 인간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있는 요괴쥐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자치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의 생존은 모래성보다 더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주력을 이용하면, 수천, 수만 개체가 살고 있는 콜로니 하나를 멸망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리 부조리한 일이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역사의 무대에서 처참하게 사라지게 되리라. 하지만 우리는 하찮은 벌레나 짐승이 아니다. 높은 지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지성만으로 보면 인간에 비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인간과 다른 점은 오직 한 가지, 우리에게는 주력이라는 악마의 힘이 없다는 것뿐이다.
생존이란 무엇인가?
이대로 숨을 죽이고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지배자는 계속 지배하고, 피지배자는 계속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지성을 가진 존재에게는 똑같은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은 왜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악귀와 업마다.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인간을 벌레처럼 죽여버리니까.
하지만 우리 처지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악귀나 업마가 아닐까?
미래의 모습은 어떠할까?
미래에는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을까?
미래에도 과연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미래에 대한 궁금증은 우리의 달콤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동안 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쏟아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앤디 워쇼스키의 <매트릭스>, H.G.웰즈의 <우주전쟁>등......
그동안 우리가 접한 미래 이야기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뛰어난 과학기술과 그에 비례하여 점점 극으로 치닫는 공포.
여기에 또 하나의 미래가 있다.
무대는 천 년 후의 일본. 주인공은 사키라는 소녀. 그녀가 살고 있는 가미스 초의 인구는 3천여명으로, 일본의 전체 인구도 약 5,6만 명에 불과하다. 이 세계에는 과학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신기술은 시민회관의 확성기에 의한 안내방송뿐이고, 운송수단은 운하를 왔다 갔다 하는 배뿐이다. 그 대신, 사람들은 모두 초능력의 일종인 주력을 가지고 있다. 주력이 없는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더할 수 없이 순종적이었던 요괴쥐가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사키는 생각한다.
애당초 요괴쥐는 누구인가?
짐승인 요괴쥐가 어떻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왜 하필 가장 추하게 생긴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 지능을 주어 요괴쥐로 만들었는가?
더구나 우리는 그들에게 완벽한 자치를 인정해주었는데 그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을까?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사실을....그렇다면 이제 피를 흘릴 수밖에 없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잃지 않기 위해서는....
(중략)
권력의 속성은 무엇일까?
권력자들은 왜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실들은 과연 진실일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아닌 누군가에게' 엄청난 과오와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발판 역자 후기에서 발췌.
....앗, 혹시 지금까지 제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속았다!'를 외치신 분 계신가요?? 이거 죄송;;
그치만 역자분이 너무 멋들어지게 해설과 후기를 쓰셔서, 도저히 소개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었어요ㅠㅠ 이 작품의 본질을 꿰뚫고 계시거든요. 과연 역자!
역자분은 이 후기에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생각했을지 하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대체 얼마만큼의 분야를 공부했을지;; 찾아야 할 자료가 방대해서 역자분도 유난히 고생한 작품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구상기간이 무려 30년 가까이 된다는데, 과연 납득될 정도의 대작이에요. 2008년 일본SF대상을 수상했다는데, 그럴 만 합니다.
또 역자분은,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번역할 때면 매번 현기증이 나고,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작품의 마지막 문장.)
신세계에서를 끝내고 난 후에는 '온몸의 물기가 마르고 완전히 탈진상태에 빠졌'으며, '그후로 1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지내야'했을 정도로 후유증에 시달렸고, 작업 중에도 '안타까움과 애절함,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쉽사리 '책을 들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행간에 치밀한 복선이 깔려있다'는 점, '이 작품의 묘미는 한 번만 읽어서는 제대로 알 수 없다. 행간마다 숨어 있는 복선과 작가의 거대한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번은 읽어야' 할 거라는 점을 지적하셨는데, 저 또한 애니를 이미 보신 분이라도 한 번 더 보기를, 그리고 원작을 보지 않았다면 부디 읽기를, 원작을 이미 읽었더라도 읽고 또 읽고 또 읽을수록 좋다는 권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 또한, 다시 볼 때마다 모든 게 새롭거든요. 최근에 다시 읽다가 또 한번 불붙어서, 이렇게 글도 잔뜩 쓰고 있고 말이죠.>_<
여담으로 맨 위의 그림은 애니판의 최초 키비주얼. 끝나고 나서 보면 정말이지 엄청난 그림이에요;; 이 작품의 주인공과 또 다른 주인공을 꿰뚫고 있을 뿐 아니라...저 문구..사실 요괴쥐가 인간을 신으로 섬기고 있지만 그 둘의 정체를 알고 보면 신이고 뭐고 참 씁쓸하고 잔혹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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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소설 설정이랑 반전이 정말 충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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