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두앵이 프랑스에 판 예수의 가시관, 노트르담 대성당 소재)
"Baldwin was able to raise a significant army and collect a small fortune from church taxes and mortgaging of his own assets, notably the marquisate of Namur and the Crown of Thorns. The total size of Baldwin’s army was estimated to be 700 knights and 30,000 foot soldiers"
보두앵 2세가 가시왕관 팔아가며 발악하듯 모은 자금으로 700의 기사와 3만의 보병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게 1239년
"In the summer of 1240, Baldwin’s forces attacked and recaptured the strategically vital city of Tzurulum from the Nicaean forces led by John Petraliphas, reasserting Latin control over Thrace. In this engagement, John II Asen sent a force of Cumans to assist Baldwin in his siege."
1240년 보두앵 2세는 불가리아의 이반 아센 2세의 지원을 받아 세바스토크라토르 요안니스 페트랄리파스의 니케아군을 격파하고 동 트라키아의 촐루 지역을 탈환 했다고 합니다.
"The accounts of the events of 1241 are found in an abridged form in the history of George Acropolites and in a more detailed version in two Venetian chronicles. Although Acropolites mentions this engagement as only as a naval battle, the Venetian sources reveal that a combined land and sea assault on Constantinople was led by the Nicaean emperor John Vatatzes, and fought off by Baldwin II and the Venetian podesta`, Giovanni Michiel. The sources depict a decisive Venetian naval victory in which a Venetian fleet of 10 –13 ships defeated approximately 30 Nicaean triremes, capturing half the Greek fleet as prizes in the waters off Constantinople. After their fleet was routed, the Greek army had to retreat, and the siege was lifted sometime between April and June 1241. After this defeat, Baldwin forced Vatatzes to sign a two-year truce."
1241년 니케아의 콘스탄티노플 공격 당시 요안니스 3세에 맞서 베네치아와 함께 맞섰다고 합니다.
이당시 상황을 기록한 로마 학자 아크로폴리테스와 베네치아 학자 마르티노 데 카날의 증언이 다른데, 아크로폴리테스는 해전만 이루어졌으며, 베네치아 함선 10여척이 니케아 함선 30여척을 격파했다고 증언하고, 마르티노는 니케아가 육군, 해군 양쪽으로 협공하고, 베네치아 함대가 니케아의 그리스 함대 절반을 격파했다고 증언합니다.
여느쪽이든 이 전투에서 패한 니케아 측은 2년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합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카스티야로 보내진 편지, 여기서 보두앵 2세의 룸 셀주크와의 결혼 동맹 시도가 언급된다고 함)
불가리아 제국을 동맹으로 끌어들이고, 룸 술탄국 또한 결혼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하는등 전방위로 니케아 제국을 압박하며 니케아를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라틴 제국은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 분열된 그리스 세계의 한 축으로, 삽자군의 괴뢰국이 아닌 진정한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 ㅎㅎ ㅋㅋ ㅈㅅ;;;
...될 뻔했지만 극동에서 온 환경전사들이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까지 싹 쓸어버리며 겸사겸사 트라키아에도 수레바퀴를 굴린 덕에 보두앵 2세의 노력은 도로아미타불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출처: The Mongol invasions and the Aegean world (1241–61)
Layettes du Tresor des Chartes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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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9세: 이건 질러야지 꼴박 가즈아! | 22.07.02 02: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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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덕"이라고 하기엔 요안 3세와 테오도로스 2세가 몽골 눈치 살피느라 불/가/리/아와 ㄹ/ㅜ/ㅁ 당한 두 나라 상대로 적극적인 확장을 하진 못했습니다. 몽골 없어도 이미 니케아가 두 나라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결국 니케아가 승리했을것 이라는 의견도 있긴 하더라고요 음 다만 불가리아가 이반 아센 2세, 룸 술탄국이 케이쿠밧드 2세 치하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니케아가 두 나라로 부터 양면전선의 압박을 받고 있었던건 감안해야 할 듯 합니다 | 22.07.08 17: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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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Troubadour
보두앵 2세가 요안니스 3세로부터 거둔 승리도 사실 소규모 전투 일부에서 격퇴한것으로 볼 수도 있더군요 뭐 저는 전쟁은 잘 모르지만 콘스탄티노플 해전에서공통적인 서술로는 베네치아가 갤리 10여척 동원, 니케아 측이 최소 갤리 30척 동원했고, 베네치아측 서술로는 (갤리 및 기타 함선 포함) 최대 160척 까지 끌고 나온듯 합니다. 그중에서 나포된 니케아 함선도 10여척 된다는데 이게 어느정도 규모인진 저도 잘 몰?루 | 22.07.08 17: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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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케이쿠밧드 2세가 아니라 1세... | 22.07.08 17: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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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동로마에 대한 몽골의 군사 지원 글 쓸때 참고한 자료에서 1220년대 즈음 룸 술탄국의 케이쿠밧드 1세에게 패퇴한 니케아 제국군중 몽골군 출신이 다수 있었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이미 니케아는 몽골 제국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몽골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오자 저자세로 나간게 아닐까 싶습니다 케이쿠밧드 1세 치세가 1220년~1237년인데 케이쿠밧드 치세 초기면 칭기스칸 치세 말기고 몽골의 호라즘 침공이 1220년이니 소식이 닿을법만도 하죠 | 22.07.08 19: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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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정확히는 이피로스는 테오도로스 두카스때 1차 몰락했다 불가리아의 몰락으로 주도권이 니케아로 넘어갔다가 미하일 두카스가 시칠리아 끌어들여 니케아 공격하다 "펠라고니아" 당한거긴 합니다만... | 22.07.08 19: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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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뭐 굳이 몽골 없었어도 극복해냈다는 의견도 많더군요 특히 테오도로스 2세가 불가리아 상대로 여러차례 승전을 거뒀지만 몽골 눈치 보느라 제대로 확장을 못하기도 했고... 수레바퀴 굴러가 "제 2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타르노보까지 박살난 시점이긴 합니다만 | 22.07.08 19: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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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미하일 그새1끼는 그냥 황제 하고 싶어서 찬탈한 진짜 광기 아니던가요 | 22.07.08 19: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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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몽골 없어도 결과적으로 니케아가 이겼다, 오히려 몽골의 개입(?)은 니케아에게 장애물만 됐다 이거는 학계 의견을 찾아본게 아니라 걍 커뮤 의견만 들은거라 걸러도 될 얘기긴 합니다... 케임브릿지 대학 논문이긴 합니다만 오히려 이반 아센, 케이쿠밧드 시기 니케아를 "위기"수준으로 언급하더군요 확실히 최전성기 불가리아만 해도 니케아와 체급차이가 좀 나긴 합니다 당장 니케아가 수복한 트라키아 영토마저도 전부 잃은 시점이라... | 22.07.08 20: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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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수 비교해보면 대충 국력차 나올듯 한데 인구수 같은건 찾기 힘들더라고요 | 22.07.08 21: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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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로 보면 니케아는 이랬고 | 22.07.08 21: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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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는 이랬는데 솔직히 단순 영토 차이만으로 비교하는건 좀 그래서 더 찾아보려 하는데 그부분부턴 머리 아프네요 | 22.07.08 21: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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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Troubadour
다만 요안니스 3세가 세금을 거의 걷지 않고, 정규군을 1만 내외로 유지했는데도 수차례 룸 술탄국을 저지한걸 보면 요안니스 3세가 쌓아둔 국력이 막대하긴 합니다 | 22.07.08 21:5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