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그오로 2년만에 다시 올림포스를 깼습니다.
개인적으론 재미있게 즐겼네요. 제가 사쿠라이 문체에 혐오감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제 취향을 제외하더라도 올림포스 스토리가 완전히 혹평을 들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저에게 있어 가장 엉망인 스토리는 읽고 있는데 대체 등장인물들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흐름인데요.
보통은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겠군요. 아니면 전개를 뒤죽박죽으로 하던가요.
이점에 있어서 올림포스 스토리는 꽤 단순명료합니다. 진입했더니 제우스가 번개를 꽝! 스톰보더를 못쓰니 구다마슈가 정찰 나감.
정찰간 곳에서 올림포스 시민들과 세계관 소개. 적으로서 노출됨. 무사시 합류. 파신동맹 쌍둥이 합류. 지하기지로 피신.
제우스가 바로 칼데아를 못죽이는 건 올림포스 세계 전체를 운영해야 해서 기능의 대부분을 거기에 할애중.
신들이 개별적으로 덤벼 오는 건 신들 특유의 자존심(자만) + 기존 파신동맹을 모조리 격파한 실적.
카이니스 합류와 블랙배럴 투입으로 데메테르 격파 -> 칼리굴라 해동(?) 이후 칼리굴라의 보구를 이용해서 아프로디테 격파.
이런 식으로 쭉 a를 하기 위해 b가 필요해서 칼데아는 b를 구함. b로 a를 격파 ... 퀴리누스/아레스의 도움으로 제우스 격파까지 동일합니다.
그와 별개로 올림포스 스토리에 여러 단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점에 대해선 올림포스로 검색해보면 좋은 글들이 꽤 있으니 생략합니다.
여기선 스토리가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두가지 점만 써보고 끝내려 합니다.
1. 무사시는 데메테르전쯤에서 퇴장, 카이니스가 제우스전까지 주요 서포터였다면?
일단 무사시가 초반에 합류한 지점까진 좋습니다. 올림포스 초반은 아군에게 최악의 상황인데 이 정도 서포팅은 있어야죠.
개연성 면에서도 이미 아틀란티스 도입부와 마무리에 무사시가 등장함을 예고했기에 괜찮습니다.
실제로 조커로서의 무사시는 2부 1장 러시아편에서도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냈었고요.
하지만 깜짝 조커가 해당 이문대 전투의 클라이막스를 차지해서야 곤란합니다. 안타깝게도 작가진은 그렇게 해버렸고
결국 스토리 내내 무사시에게 필요 이상의 비중이 할애되었며 이게 영 조화롭게 섞여들어가질 못했죠.
그렇게 무사시가 도달한 공의 경지 혹은 일본 검술의 미학을 스토리에 녹여내고 싶었다면 굳이 카오스를 갑툭튀시킬 것이 아니라
데메테르에게 특수한 장갑이나 보호막이라도 부여해서 이걸 깨부수는 데 무사시가 결정적 역할을 한 뒤 퇴장했으면 더 좋았을듯 하네요.
물론 나스는 카오스가 일종의 허공 같은 존재라 그런 카오스의 개입 경로를 잘라내는 데 있어서 무사시의 공의 검이 어울린다고 봤지만
결과적으로 이 아이디어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걸 잘 전개하지 못한 사쿠라이나 무리한 조합을 조건으로 준 나스나 공동책임 같군요.
데메테르전은 첫 기신 진체와의 전투였던데다가 스케일과 난이도 모두 상당했으므로 여기서 무사시가 대활약한 뒤 퇴장했어도
충분히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사시의 활약 + 기존 영령들이 마련한 무슨무슨 마력포로 데메테르를 격파했다면
너무 일찍 블랙배럴을 꺼냄으로써 최종 병기 특유의 비장함이나 극적인 느낌이 약해지는 일도 피할 수 있었을 거고요.
카이니스는 스토리상 강함으로 봐도 서포터로 부족함이 없고 스토리면에서도 무사시보다 올림포스에 훨씬 잘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무사시가 조기에 퇴장함에 따라 생긴 여유를 디오스쿠로이와 파신동맹의 쌍둥이에게 좀더 배분할 수도 있었겠죠.
이 두 쌍둥이, 특히 후자는 올림포스 스토리 진행의 핵심인데 정작 본인들의 과거 파트조차 제대로 묘사되질 않습니다.
둘다 쌍둥이에 신과 인간의 세계에 대한 가치관이 정반대였으므로 제대로 대비시켰다면 꽤 흥미로웠을텐데요.
4명 모두 캐디는 또 매우 잘 뽑혀서 이게 더 아쉽네요.
2. 제우스가 마지막까지 자기 운명에 저항하는 신이었다면?
신이 뭔 운명이냐 하겠지만 실제로는 신들조차 자기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북유럽의 신들이 라그나로크에 쓸려 갔듯이
그리스 신들도 세파르에 의해 쓸려 나가고 뒤는 인간의 시대가 되어야 했지만 이문대 제우스는 그 운명에 정면으로 거역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신다운 신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키르슈타리아와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와 결판을 내고 싶어하는 호승심 같은 면이
제우스의 매력이었죠. 신들중의 우두머리이자 동시에 자신이 품은 인간다운 면을 끝까지 관철하려 하는 모순은 분명 보기 좋았습니다.
심지어 최종전 직전까지도 그랬죠.
모든 게 헝클어진 건 제우스가 갑자기 자기들의 원래 프로그램, 혹은 카오스에게 명령받은 사명을 따라야 한다며
지구를 떠나겠다고 말한 시점입니다. 그뒤 카오스가 나오든 말든 이 시점에서 제우스의 위엄은 사라져 버렸죠.
그전까지 다른 이문대의 왕들은 나름 자신들만의 정의를 관철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칼데아와 처절한 사투를 벌였는데요.
다름 아닌 최대최강의 이문대의 왕이자 신중의 신이라 할만한 제우스가 하필 빤스런.....
차라리 카오스가 그런 명령을 내렸더라도 올림포스와 인간들을 자기 방식대로 깊게 사랑했던 신으로서 마지막까지 그에 저항하는
말 그대로 자기 운명에 끝까지 맞서는 신으로서 제우스를 묘사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러다가 폭주해버린 제우스와의 전투가 이문대 왕과의 최종전이라든가 그런 식으로요. 여기서 핵심 cg는 퀴리누스가 맡고요.
인간형 전투 모션도 없었고 심지어 유언조차 못남기고 사라진 제우스를 다시 보니 너무 아깝더군요.
결국 그의 웅장한 하반신은 한참 뒤에야 공개되었고요.
아무튼 1번과 맞물려 굳이 무사시-카오스라는 연결 고리에 집착하지 말고 깔끔하게 제우스와 비장한 전투를 마친 뒤
키르슈타리아전으로 이어졌다면 지금보다 올림포스에 대한 평가가 훨씬 괜찮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장문을 남기는 것도 다 제가 그만큼 올림포스 스토리에 애착이 있고 아쉬움도 크기 때문이겠네요.
그래도 전 앞서 말했듯이 (이번에도) 꽤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연이어 나오는 중간보스들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모로든 존재감이 상당해서 하나씩 격파해 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전투난이도도 전 크립터 이야기의 클라이막스로선 오히려 좋았습니다. 아틀란티스때는 중간보스든 보스든 이쪽에선 영 심심했거든요.
특히 연출과 음악쪽은 뒤에 나온 2부 6장과 비교해도 크게 안 밀릴 정도로, 어떤 부분에선 더 나을 정도라 심심할 일은 없었네요.
크립터 파트, 특히 키르슈타리아의 마지막 이야기는 나스가 쓴 문장들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파트중 하나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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