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는 성층권을 부유하는 우주선 속에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왼쪽을 둘러봐도 오른쪽을 둘러봐도 그동안 TV속에서나 보던 전설의 듀얼리스트들이 눈에 비치는 이 황공한 자리에서, 그들을 제치고 임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중압감이 브레이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흥, 네놈은 그냥 길안내만 잘 하면 된다. 그 이상은 기대도 안해."
"하여간 카이바 네놈은..."
"어려울 때일수록 즐기면서 하는거야!"
"킹이 함께한다. 걱정할 것 없겠지."
"우리의 인연이 있다면 문제될건 없다."
"우리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너는 우리만 믿고 당당하게 걸으면 돼!"
"그래! 동료들이 함께니까! 캇토빙이야!"
"너는 주어진 역할만 잘 하면 돼."
"듀얼을 또 이런 일에 사용하다니, 용서 못해."
"""물론이지."""
"너라면 할 수 있어, 브레이크!"
"......"
본부를 떠나 각지로 흩어진 우주선. 그러나 에프터라이프의 각 활동구역으로 날아간 다른 우주선은 모두 양동일 뿐, 플랜 저스티스의 본부대는 전설의 듀얼리스트들과 브레이크, 사일런스가 탄 이 우주선이었다.
"작전내용을 다시 말해봐라, 브레이크."
"아, 네! 제 카, 카드의 떨림을 따라 스트의 영혼이 있는 에, 에프터라이프의 본거지를 습격해 붙잡힌 영혼들을 해, 해방하는 겁니다!"
"목소리가 완전히 뒤집어졌네!"
"하하! 그렇게 놀리지 말라고, 조이!"
"...훗."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이 일부러 과장되게 웃는 조이와 쥬다이와 유마와 크로우. 그들을 말리는 유희와 아키, 유야즈, 유미. 신경쓰지 않는다는듯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카이바와 유성, 잭, 카이트, 유찬. 반응은 각각 달라도 모두 자기를 신경써주고 있다는게 느껴져 브레이크는 긴장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러자 손에 꼭 쥐고 있던 스트의 카드가 갑자기 거세게 떨리기 시작했다.
"사일런스씨!"
"반응포착. 에프터라이프의 본거지 후보중에 해당장소 발견. 지금부터 플랜 저스티스는 2단계에 돌입한다."
"좋았어!"
"유야, 유토, 유고, 유리.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앉아."
"알았으니까 밀지 마."
사일런스의 말에 함내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사일런스가 우주선을 조작하자 구름 위를 비행하던 선체가 앞으로 기울어 급강하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큐리티요원을 미끼로 쓴 기습작전. 기회는 단 한번뿐인 시간과의 승부. 브레이크는 자신의 몸이 중력에서 벗어나 붕 떠오르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오오오오오!""
""꺄아아아아.""
군데군데서 조그마한 비명소리와 함께 시작한 낙하는 1분도 안되어 막을 내리고, 우주선이 땅에 착륙한 것을 확인한 사일런스는 신속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전 개시!"
사일런스의 호령과 함께 문이 열리고, 전설의 듀얼리스트들이 안전벨트를 풀러 밖으로 뛰쳐나간다. 브레이크도 낙하의 충격에서 벗어나 한발 늦게 우주선에서 뛰어나갔다.
"와..."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모래사막. 그 한가운데에서 해가 떠오를 시간이 되어 땅 아래에서 올라오는 빛을 뒤에 두르고, 그리스풍의 신전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은 기둥에 푸른 화염처럼 새겨져있는 줄무늬, 기둥과 같은 재질로 보이는 검은 벽에는 고대의 상징처럼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있고 그 위에 얹혀있는 삼각형 지붕에는 삼두견의 조각상이 위풍당당하게 브레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지옥의 입구라도 되는 것 같아..."
아키가 중얼거린 발에 브레이크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두가 안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한 그때, 브레이크의 눈앞에 흰색 코트가 나풀거렸다.
"지옥의 문이라. 그거 좋지."
당당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카이바. 브레이크가 본 옆얼굴엔 공포는 커녕 환희가 엿보였다. 곧이어 천년퍼즐을 한손으로 꼭 잡고 유희가 걸어나갔고 조이가 그 뒤를 이었다.
"헤헹, 역시 전설의 듀얼킹이라니까."
"지옥이라면 몇번이고 들어가주지."
"그곳이 지옥이라고 해도 킹의 불꽃으로 지옥조차 태워주겠다."
"캇토빙이야, 나!"
"AI도 죽으면 지옥에 가는 걸까."
차례차례로 앞으로 나아가는 전설의 듀얼리스트들. 그럼에도 역시 주저하게되는 아키의 어깨에 유성이 손을 얹었다.
"괜찮아."
"응."
유성을 따라 앞으로 걸어가는 아키. 브레이크는 그 둘의 모습을 보며, 안에 붙잡혀있을 스트를 생각했다. 언제나 잔소리가 심하고, 자기생각만하고, 옆에 있어줬던 소녀를. 그리고 그녀를 빼았아간, 그 녀석들...
"호잇."
"우앗!"
생각에 잠겨있던 브레이크의 눈앞에 갑자기 꽃 한송이가 나타났다. 고개를 드니, 유야가 반대쪽 손에서도 마술처럼 꽃을 꺼내며 베시시 웃고 있었다.
"자, 스마일, 스마일! 어때, 꽤 잘하지?"
"지금이 그러고 있을때냐, 유야!"
"유야에게도 생각이 있겠지. 유고 너는 항상 생각없이 움직이지만 말야."
"유리, 이 자식이!"
"나참 너희들은... 먼저 들어가자."
"야, 유토, 말리지 마!"
먼저 안으로 들어가는 다른 동료들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던 유야는 다시 브레이크를 바라보며, 두송이의 꽃을 브레이크에게 건네주었다.
"저 안에 네 친구가 있는거지? 그럼 그렇게 험악한 얼굴하지 말고 웃어야지. 그래야 친구도 웃을 것 아냐?"
"...네. 그렇죠. 고맙습니다!"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들도, 지금 눈앞에서 웃어주는 이 사람도, 모두 지금의 자기 이상의 고통을 겪어온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함께인데, 대체 자신은 무얼 걱정하던 것일까.
"유야치고는 좋은 말이네. 엔터메 듀얼리스트 다 됐어?"
"나도 이제 프로 듀얼리스트니까 당연하지!"
"후훗, 그럼 가자, 브레이크."
"네!"
눈앞에 서있는 지옥의 입구를 향해 브레이크도 힘차게 발을 내딛었다. 다시 저기서 나올때는, 옆에서 스트도 같이 웃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
신전의 지하에 존재하는 동공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어, 째서..."
"그건 대체 뭐에 대한 이유를 묻는 걸까? 영혼을 모으는 거? 여기 자리잡은거? 아니면..."
마카리아가 한바퀴를 빙그르 돌자 공중에 나부끼는 그녀의 진청색 머리가 빛을 발했다. 그리고 주위에 널부러진 금속이 그 빛을 반사해 마치 나이트 조명처럼 공간 전체를 비춘다.
"너희들이 습격해올걸 알고 미리 안드로이드 대책까지 세워둔거?"
방금전까지 전설의 듀얼리스트의 육체를 대신하고 있던 안드로이드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손짓 한번에 고철덩이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영혼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고 이곳에서 움직이는 건 그녀와 브레이크와 사일런스만이 남았다.
"극비리에 개발한 안드로이드를 해킹하다니... 설마 조직에 스파이가 있는건가?"
"글쎄? 어느쪽이든 여기서 우리한테 수집될 너희들에게는 알 필요도 없는 일 아닐까?"
"이 자식...!"
마카리아의 도발적인 언행에 사일런스의 표정이 일순 험악해졌지만, 시큐리티 포스의 엘리트답게 다음순간에는 다시 냉철함을 되찾았다.
"이렇게까지 준비한 이상 퇴로도 막아뒀다고 보는 게 맞겠지. 일어나라, 브레이크.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어."
"하지만, 전설의 듀얼리스트가 손도 못쓰고 당했는데, 우리끼리 어떻게..."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거야."
사일런스는 주먹으로 브레이크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곳에 있는 건 새하얀 두송이의 꽃. 그 꽃을 준 사람의 말이 브레이크의 가슴에 떠올랐다.
"우리의 목적은?"
"친구를 구하는 겁니다."
"그래. 그들은 육체를 잃는다고 호락호락 당할 양반들이 아니야. 분명 다른데서 싸우고 있을거다."
근거라곤 하나도 없는 말임에도 브레이크는 그 말이 너무나 든든했다. 그래. 분명 영혼인 상태로도 그들은 틀림없이 싸우고 있을거다.
"듀얼로 구속하겠다, 마카리아!"
"어머, 무서워라. 남자 둘이서 여자 한명한테 덤비면 안되지. 도와줘요, 기사님!"
마카리아의 외침에 그녀의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둠속에서 휘청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브레이크도 사일런스도 아는 사람이었다.
"시리우스 선배!"
존경하는 선배의 등장에 순간 기뻐했던 시리우스는, 머리에 헬멧을 쓰고 팔다리에 고리가 걸려 마치 좀비처럼 걸어오는 모습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이 자식! 선배한테 무슨 짓을 한거냐!"
"닥터가 듀얼테스트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기껏 잡아놓고 잡몹들 상대 시키기는 아깝잖아? 그래서 네가 올 줄 알고 무슨 얼굴을 할지 기대되서 데려왔지!"
마치 깜짝파티를 성공한 아이처럼 장난기있게 말하는 마카리아. 사일런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지만, 어디까지나 시큐리티 포스의 일원으로서,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려고 했다. 단순한 듀얼 AI라면, 분명 듀얼실력은 마카리아보다 월등하게 떨어질 터. 여기서는 자신이 마카리아를 맡아야 한다고.
"...브레이크, 마카리아를 부탁한다."
"...네."
시큐리티 포스의 책임보다는 감정에 치우쳐버린 자신의 모습을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일런스는 듀얼디스크를 시리우스를 향해 내밀었다.
"듀얼!"
"이야, 선배를 구하기 위해 선배의 좀비에 카드를 겨누는 후배!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야!"
"네 상대는 나다."
브레이크는 시큐리티 포스에게 받은 듀얼디스크를 조작해 마카리아에게 강제로 듀얼을 신청했다. 재밌는 구경거리를 방해받은 마카리아는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이 브레이크를 노려봤다.
"지금 네가 정말 내 상대가 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에스트렐라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카드나 뽑으시지!"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참으며 브레이크는 마카리아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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