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이면 놈들도 독이 오를 대로 올랐겠지, 안 그러냐?"
"그게 또 재밌는 거지. 쫓는 놈들이 많을 수록 더 재밌는 거라고."
위치를 특정지을 수 없는 어느 깊은 지하 공간에서, 자그레우스는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를 지닌 어느 남성과 통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시큐리티 포스가 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둘은 다소 지나칠 정도로 태평했지만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시큐리티 포스의 위치 추적을 차단하고 있었기에 그 정도는 여유는 충분히 부릴 만했었다.
"오늘 사냥은 어땠어?"
"나름 할 만했어. '블루 메이든'인가 뭔가하는 여자가 그 중 가장 눈에 띠긴 했지. 하지만 내 [트라이브리게이드]에겐 대적이 안 되더만."
자그레우스는 닥터 헤이트가 '실험'을 위해 따로 챙긴, 못 해도 수십개 이상은 되는 유리관 속의 육신들을 둘러보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실적 좋으시군. 누구하곤 다르게 말이야."
"당연하지. 애초에 신의 일곱 눈 중에서 네가 제일 최약체라는 건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실적 잘 내서 좋으시겠수다."
다소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는 발언에도 자그레우스는 태연히 대답할 뿐이었다. 애초에 본인부터가 실력은 둘째치고 듀얼 실적만 따지면 가장 형편없는 실적을 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데다 전화기 너머의 인물이 말한 '신의 일곱 눈'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앞장서서 적의 포화를 맞아주는 소위 '탱커'를 맡고 있었기에 자그레우스는 별 불편함없이 받아넘길 뿐이었다.
"뭐, 그만큼 네가 고생많은 것도 알지. 그런데, 그 이야기를 꺼내서 하는 말이다만 할멈하고 영감이 새로운 몸을 얻었단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대? 요새 이야기가 통 안 들려서 말이지."
오르쿠스가 말한 '나머지 하나'라는 말에 자그레우스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자신이 아는 선에서 대답해주고 있었다.
"'세라피스' 이야기라면, 지금은 시큐리티 포스 어딘가에서 적당히 농땡이피우는 중일거야. 아마도."
"뭐,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그보다도 슬슬 경찰 아저씨들이 날 쫓을 것 같으니 술래잡기 준비나 해야겠어."
"그래, 괜히 잡히지나 마라. 그랬다간 농담 거리가 될테니까."
"걱정도 많다. 네 몸 걱정이나 해."
자그레우스는 그의 핀잔 아닌 핀잔에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일을 마치고 돌아온 멜리노에가 있었다.
"누구였어?"
"'오르쿠스'. 아까 전에도 시큐리티 포스의 앞잡이랑 친한 친구 하나를 족쳤다더라. 사냥은 잘 했나보네, 멜리노에?"
"당연하지. 누구 농담 거리가 될 일이 있겠냐고."
멜리노에 역시 다음 활동을 위해 준비된 육신들이 담긴 유리관들을 바라보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AI가 어쩌고 하면서 들이댄 그 기계는 비록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에 사용할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다음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쓸지도 모를 위험한 기계를 들이댄데도 안 이상한 남자였다.
"실은 아까 전에 닥터 헤이트를 만났어."
"아, 그 나사를 잘못 끼운 것 같은 녀석말이지."
본명은 따로 있지만 '닥터 헤이트'라는 이름으로 자주 불리는 그 남자는 기계공학이나 AI 공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탑 클래스의 실력을 자랑하는 남자였지만 윤리의식과는 담을 쌓아도 한참은 쌓은 위험한 인물이었고, 어디까지나 윤리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탐구욕을 충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애프터라이프에 가담한 인물이기에 그 실적과는 별개로 최소한 자그레우스와 멜리노에는 그를 썩 내켜하지는 않았다.
"AI가 어쩌고 하더니만 내가 영혼을 빼낸 시큐리티 녀석의 몸뚱이에 처음보는 기계로 장난질을 하더라고. 그 몸뚱이로 뭔 짓을 하든 우리 알 바는 아니지만, 마카리아 녀석... 졸지에 귀찮은 녀석을 데려온 것 같은데."
"뭐, 마카리아가 데려왔으니 본인이 책임을 지겠지. 그리고 설령 그 녀석이 뱀같은 놈이라고 한들, 적어도 지금은 우리 뱀이잖아."
"반박할 수 없군."
잠시 닥터 헤이트에 대해 뒷이야기를 나누던 자그레우스와 멜리노에는 닥터 헤이트의 '다용도실'을 벗어나 어둠에 발을 들였고, 그 어둠에서 모습을 다시 드러내 '신의 일곱 눈'이 주로 모이는 곳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그곳은 '신의 일곱 눈'을 위해 준비된 일종의 휴식 공간이었고, '애프터라이프'의 음산한 이미지에 걸맞게 테이블부터 소파, 화장대 등 곳곳이 고딕 풍의 장식들과 배경으로 꾸며져있었다.
"다들 어서 와. 오르쿠스 소식은 들었어?"
"들었수다, 할멈. 뭔 파란 아가씨인가 뭔가를 족쳤다고 하더만요."
그 곳에 놓여진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는 스틱스가 홍차가 담긴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 둘을 제일 먼저 반겨주고 있었고, 카론 역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함께 그 둘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반갑다. 오르쿠스도 건강하게 잘 돌아다녀서 다행이군."
"시큐리티 포스와의 추격전을 즐길 정도로 팔팔합니다. 그런데, 마카리아?"
"왜 그래?"
다른 곳에 놓여진 긴 소파에 앉아있던 마카리아를 발견한 멜리노에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닥터 헤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가 추천한 머리 이상한 녀석을 만나고 왔어. 좀비 메이커라고 해야하나, 그런 걸 들고 왔더라고."
"아, 이번에 닥터 헤이트가 새로 개발한 육신 조종 장치 말이구나. AI 개선이 필요한 프로토타입이지만, 제대로 완성한다면 우리에게 대적하는 어리석은 반항자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마카리아의 모습에 멜리노에는 괜한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닥터 헤이트의 '다용도실'에 있는 육신들도 마카리아가 그의 편의를 봐주는 김에 겸사겸사 내어준 것이었기에 멜리노에의 입장에선 그녀가 그에게 너무 지나칠 정도로 편의를 봐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있었다.
"그 전에 우리 뒤통수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줄 거란 생각은 안 해봤고? 그 녀석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재밌어서 여기에 온 거지, 우리의 신에게는 별 관심도 없잖아."
멜리노에의 불평에 자그레우스도 거들어주고 있었다. 확실히 닥터 헤이트의 능력은 인정할 만했지만 그의 충성심은 아직 증명이 되지 않았기에 아차하는 순간 자신들에게 그 위험한 물건을 들이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마카리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신의 일곱 눈의 자리 중 하나를 그가 대신해도 괜찮겠지. 어차피 그는 인간들이 정한 소위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을 이미 초월한 남자니까. 설령 우리의 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의 행동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신의 재림을 위한 초석이 되어주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태평하시군. 하긴, 지금은 우리 뱀이니까."
"너희 둘이 걱정이 너무 많을 뿐이야. 그리고 네 표현을 빌리자면, 자그레우스, 앞으로도 우리 뱀일테니 너무 긴장하진 말라고."
마카리아의 태연한 반응에 멜리노에와 자그레우스는 더 이상 가타부타하지 않기로 했다. 입도 아프거니와, 어쨌든 마카리아의 기대대로 닥터 헤이트는 순조롭게 나름의 실적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더는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오르쿠스는 차원을 넘나들면서 고생하는 중인데, 세라피스는 지금 뭐하는 중이래?"
그래서 자그레우스는 화제를 돌려 '신의 일곱 눈'중 한 명인 세라피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도 세라피스가 시큐리티 포스에 잠입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알지 못 한 것도 있었다.
"세라피스는... 네 표현을 빌리자면 농땡이부리는 중이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들을 흘리는 중이야."
"호오."
"조금 전에는 여러 실력자들의 영혼들을 확보해 기계 육신에 이식, 우리에게 대항하는 플랜을 세웠다는 모양이야."
마카리아를 통해 세라피스가 흘려준 정보를 확인한 나머지 신의 일곱 눈 멤버들은 시큐리티 포스가 생각 이상으로 절박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여유가 있다고 하면 굳이 이런 식으로 반격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어지간히도 절박했나보네.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대항할 계획을 세우다니."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우리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마카리아의 말대로 시큐리티 포스는 애프터라이프의 공세에 맞서는 과정에서 수많은 요원들과 대원들을 잃어버렸고, 실속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런 혼란한 와중에 세라피스의 잠입을 허용했기에 시큐리티 포스에게 승산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기들 조직에 스파이가 심어져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는 모양이니, 설령 무슨 계획을 세운들 결국은 그게 그거겠지."
"그래, 세라피스가 실수하지만 않으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세라피스가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고 시큐리티 포스에서 활보하며 그들이 세운 여러 계획을 흘려줌으로서, '신의 일곱 눈'은 시큐리티 포스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보라는 강력한 힘을 거머쥔 만큼 애프터라이프는 그들의 사각을 통해 여러 차원을 공격, 어둠의 신의 부활을 위한 수많은 제물들을 바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시큐리티 포스 내에서 중요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전달해주겠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 정보들을 토대로 공격을 이어가면 돼."
"정말 오르쿠스와 세라피스가 고생이 많네. 걔들한테 상이라도 줘야하는 거 아냐?"
"어둠의 신이 깨어나는 날, 우리 모두 그에 걸맞는 보상을 받을 거야. 그 때까지는 자원봉사하는 셈치자."
"훗, 어쩔 수 없구만."
마카리아와 자그레우스의 대화 도중에 뭔가 생각난 것이 있었는지, 멜리노에가 스틱스와 카론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 맞다. 에스트렐라의 영혼은 어떻습니까? 저항이 심했잖습니까."
"지금은 조용해. 우리에게 순응하지는 않지만, 기운이 다 빠진 것 같아."
스틱스와 카론에게 맡긴 에스트렐라의 영혼은 아직까지도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육신을 잃어버린 영혼의 저항은 한계가 있었다.
"곧 있으면 그녀의 영혼도 한계에 부딪히고 말거야. 제 아무리 고집을 부린들 결국 정해진 수순을 밟을 뿐이야."
"어리석은 발버둥이지만, 그런 만큼 재미는 있었어."
부질없는 저항을 이어나가는 에스트렐라를 향한 둘의 비웃음을 끝으로 신의 일곱 눈이 있었던 공간은 다시 고요함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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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유희왕의 전통 중 하나였던 7인의 악역을 내세워봤읍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확 커지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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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너무 확 커져버려서 어안이 벙벙했읍니다 2. 저는 왠만하면 세라피스의 정체가 늦게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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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솔직히 너무 확 커져버려서 어안이 벙벙했읍니다 2. 저는 왠만하면 세라피스의 정체가 늦게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22.05.27 00:3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