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 것인가
윤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파면판결에 안도했다.
그렇다고 해서 계엄이후 4개월동안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이 보여준 온갖 문제적 행태에까지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일부 군인들의 진술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에도 사실 의구심이 없지 않고, 이재명을 막기 위해서 짧은 기간동안이나마 장점을 열심히 전달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도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 판결이 최선의 판결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판결이 더이상의 분열과 대립을 막고자 하는 대국민 메세지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유의 사태 앞에서 헌재는 절묘한 균형감각을 보여 줬다. 대통령 이외의 모든 탄핵시도가 기각된 것도 그런 한 수였다.
2025년 4월이라는 이 시간에 대한민국에 다른 무엇보다 필요한 건 분열과 대립의 극복이다. 헌재판결은 그 첫걸음을 떼는 디딤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이들이 이른 바 “계몽” 을 당하면서 윤석열 지지자가 되었다.
나는 윤대통령의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지지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 편이다. 헌재조차 인정했던 대통령의 답답함은 나 자신이 겪은 일이기도 했으므로.
계엄 소식이 들렸을 때 곧바로 “좌파독재에 우파계엄” 이라고 썼던 것도, 이른바 ‘진보’의 여러문제들을 길게는 20년, 짧게는 10년 몸으로 겪은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도 나는, 노무현을 사랑한다고 했던 윤석열이 짧은 기간에 극단적 반공주의자가 된 사태조차 긍정하진 않아도 이해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30년전 냉전체재로 돌아가는 건 퇴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죄는 순식간에 그런 반목을 만들고 심화시켰다는 데에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권력행사라는 독재긍정의 주장부터, 오죽하면, 이라는 심정적 동조까지 이끌어낸 그 ‘공적 대응’의 이면에, 실은 김건희나 명태균등 ’사적사태‘타개라는 목적이 없었다는 보증은 당연히 없다. 그 이전에 그런 ’사적’ 상황을 만들어버린 책임도 물론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대통령 윤석열은, 개인사를 둘러싼 대응에서도 공적인 사안을 둘러싼 대응에서도, 판단을 그르쳤을 뿐 아니라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줬다.
계엄을 다시 할까봐가 아니라, 내부분열을 더 심화시킬 수 있어서 윤석열은 위험했다.
지지율 50 %란, 그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지지율의 위험징후를 올바로 읽어내지 못한 국힘당이(이재명의 높은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 국가가 아니라 국민의 평화를 일방적으로 깬 윤석열 개인에게 충성하는 행태를 보인 건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흐름이었다. 3년전 선거에서도 인물이 없어 외부에서 대통령후보를 빌려 와야 했던 국힘당의 이번 행보는, 국힘당이 이대로는 결코 앞으로 가지 못 할 거라는 걸 보여준 사태다.
12월3일 계엄이 남긴 교훈은 이렇게 찾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만, 분열과 대립과 혼돈의 도가니였던 지난 4개월을 넘어설 수 있다. 그래야만 대선을 전쟁이 아니라 축제로 만들 수 있다.
90 년대이후 세계화 흐름이 종식중인 움직임 속에서 보면 작금의 한국이 잘 보인다.
북한에서 김정은이 핵무장에 나서고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세계를 상대로 무법자적 행동에 나서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이재명 이라는 사람이 민주당 대표가 되고, 그가 장악한 당의 횡포에 맞서 현직대통령이 군을 앞세워 독재를 시도하려 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적 양극단이 목소리가 커진 것도.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은 그런 세계에 한발을 담그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작금의 정신적 내전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을지 여부가 되어야 한다. 말로만 통합이 아니라 구체적 비전을 갖고 있고 행할 수 있는 이라야 한다.
3년전 이상으로 ’이재명 막기‘는 중요해졌지만, 3년전을 그저 반복하는 건 확실하게 역사적 퇴보로 가는 길이다.
누가 그 막중한 임무를 해낼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여전히 유효한 말을 계승하면서도 윤대통령이 심어버린 갈등을 더 키우는 게 아니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밖으로는 북한과도 일본과도 그리고 미국과도, 당당하고 단호하면서도 호혜적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누구를 지지하든, 출발점은 이 질문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