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종합심리평가보고서 첫 장에는 '자폐 스펙트럼은 발견되지 않음' 이라 적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같은 학급의 비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소아정신과 전문가들에게도 그런 의심을 받았었던 모양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 양친도 이러한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소아정신과 이전에 자폐 스펙트럼 및 발달장애 아동을 다루는 특수학교에 잠시 들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설 종사자들은 딱히 업무상 과오를 저지르지는 않았고, 시설 자체는 모범적이라고까지 평가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 곳의 모든 것들이 정말 마음에 안 들었었다.
나는 응용행동분석 요법의 일환으로 주어졌던 내 몫의 과제들을 손바닥 뒤집듯이 해치워놓고서는, 다음 쉬는 시간까지 수십 분간 소리를 지르거나 침을 흘리거나 우두커니 있거나 하는 아이들이 인내심 많은 특수교사들에게 둘러싸여 관심과 주전부리(긍정적 강화)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어린 나는 이런, 모자란 녀석들이 많이 받는 모습이 대단히 불공평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참지 못하고 시정을 요구했지만, 당연하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러한, 불공평하고 부당하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몇 차례 더 흘러간 뒤, 마침내 해방의 시간이 찾아왔다. 대부분의 아동은 교사의 인솔을 받아 셔틀버스(특수학교는 님비 시설이므로, 상당히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동들마다 옆에 교사가 배석되어 있었다.)에 올랐지만, 증상이 좀 더 심각한 아동들은 부모가 자가용을 가지고서 직접 데리러 와야 했다. 이 부모들은 몸부림치고 소리지르며 반항하는 자녀들(자폐아들은 부모의 것을 포함한 일체의 신체적 접촉을 못 견디곤 한다)을 완력으로 제압해서 말 그대로 질질 끌고서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끌려가던 중증 자폐아 하나가 바지를 내리더니 그 자리에서 대변을 싸질러서 내 쪽으로 집어 던졌다. 교사들 한 무리가 달려와서 막아서는 저 편에서 중년 여성의 고함소리가 들려 왔다. "너 같은 괴물을 낳아서 내 인생이 이 지경이 됐어. 죽어, 죽어 버려!"
자폐아들은 자비롭게도 남의 입장이라는 데 공감이란 걸 할 능력(그런 걸 갖고 있었다면 "스스로에게 갇혔다"는 의미의 병명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을 갖추지 못했지만, 나는 그렇질 못 했다. 나는 옆 자리에 앉은 인솔교사에게 이러한 '가슴 따뜻한 정경'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그다지 따뜻하지 못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지만, 교사들은 시종일관 괴물 놀이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그들은 "아이는 어디에서 나오나요"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마냥 완고하고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자 교사라는 작자들이 사실이나 의견을 말하는 대신 '비겁하게 얼버무리는' 모습을 보고서 굉장히 화가 났다.
그러니, 내 모친이 특수학교에서 방출된 문제아에게 분노와 신세 한탄을 퍼붓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나는 그 때, 내 모친도 저 장애아 부모들처럼 집 안의 골칫거리가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딱하게도 특수학교 교사들은 위에서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따뜻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변명 비슷한 것조차도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내게 걸맞는 수준의 변명이란 것을 할 수 있었다면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책과 비슷한 것을 써 냈을 것이다. "자폐의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은 연대기이기도 하지만, 자폐인 운동가의 선전물 역시 겸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가능한 한 낙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들이 자주 밟힌다. 따라서 제목에서 은유하는 것과 달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불편부당한 역사서와 거리가 멀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자폐아는 가망이 없으니 어디 시설에 처박아버리고서 새 삶을 살아가라는 발달심리학자의 제안을 '비과학적'이라고 일축하던 저자가, 여기 반대하는 어머니가 설립한 조직이 '슈퍼비타민 요법' 따위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대체요법들을 언급하는 장면에서는 아무런 트집을 잡지 않는 대목에서 쓴웃음이 나왔다)
이 책은 우생학 선전이 판을 치고 KKK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 미국 남부 소도시의 수구적인 사회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인류 최초로 자폐 판정을 받은 '도널드 트리플렛'의 장황한 이야기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 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의도해서 배치한 것이다) 그의 부모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들의 풍족한 자원을 이용한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결국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은 상당한 금액을 건네주고서 아들을 교외 시골 지역 농가의 부부에게 떠맡겨 버렸다. 아들은 단조로운 농촌 생활에 훌륭하게 적응했고, 결국 재활에 성공. 대학교까지 진학해 부친의 사업체에서 전화 상담원으로 일하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어떤 사람은 자폐 스펙트럼의 가장 파괴적인 형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증거"라 추켜세우며, "그가 부유한 계층에서 태어난 것과 별개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라는 평을 했다. (후술하겠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이것과 완전히 반대극단에 서 있다.)
저자는 뒤이은 장에서, 자폐인에 대한 근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순순히 인정한다. 현대 의학의 대두 이전에는 정신장애인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통제하려는 시도가 없었기에, '백치', '정신박약' '저능아' 따위 오늘날에는 욕설로나 쓰이는 모호한 표현들이 일상은 물론 의료현장에서도 널리 쓰였고, 상세한 기록이라고는 귀족의 기벽이나 신내림을 받은 거룩한 존재로서 사회에 받아들여진 사례들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록에 남지 않은, 평민 계급 '백치' '정신박약' '저능아' 대다수는 짧고 비참한 삶을 살았음이 거의 틀림없겠지만 저자는 이러한 야사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2차 대전 직후, 나치와 우생학이 가져다 준 트라우마 때문에 발달장애에 대한 유전적 측면의 연구는 수 십년간 학계에서 금기시되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라고는 대중의 무관심의 장막 저 편에 자리잡은 한 줌 비주류 연구자들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는 아마추어의 얼치기 프로이트 심리학이 비집고 들어오게 되었다. 심리학 학위는 없었지만 훌륭한 언변과 미국으로 탈출한 유대인 생존자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던 브루노 베텔하임이라는 사내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냉장고처럼 냉담한 모친이 아이를 '얼어붙게' 만들어 마음을 닫게 만들었다" 는 주장을 했고, 이러한 풍조는 당시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정신장애가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환경. 다시 말하면 부모 관심을 못 받고 자란 탓이 되지 않겠는가. 따라서 베텔하임은 마지막에는 TV 쇼에서 대놓고 "자폐아의 모친은 아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라는 주장까지 했다고 한다.(저자는 여기 대해 아무런 평을 남기지 않았다. 거짓말보다는 침묵 쪽이 낫다고 여긴 것이리라.) 그는 한동안 얼치기 심리학자로서 잘 나갔지만 학위가 있는 진짜 연구자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호주의 로즈메리 크로슬리에 의해 '촉진적 의사소통(Facilitated Communication)이라는 언어치료 기술을 통해 자폐아와 '문장 수준의 양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등장했다. 이는 몇 년간 각광받았지만, 이 '의사소통법'을 통해 자폐 소녀가 가족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고발했으나 실은 언어치료사가 꾸며낸 무고로 밝혀진 사건 이후 등록자가 극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FC는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밖에도 LSD 투여나 멀티비타민 요법 따위 온갖 애처로운 시도들이 있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치료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죽기를 바라는 마음만큼 강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47%의 자폐아를 "거의 정상으로 바꿔놓는다"(이 수치는 논란을 일으켰지만, 오랜 세월을 통해 사실로 증명되었다고 한다)고 주장한다는 기적 같은 요법이 등장하게 된다. '응용행동분석'.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을 둔 이 요법은 거칠게 요약한다면 인간동물(강형욱 씨)이 비인간동물(카니스 파밀리아리스)을 조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라 하는데, 이는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인격이니 정서니 하는 것을 손톱만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이 기법을 자폐아에게 도입했던 이바 로바스 교수는 늘씬한 몸매의 건장한 호색한으로서,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연구한 자폐아들이란) 작은 괴물들이다. 눈코입이 있지만 사람이 아니라 심리학 피험체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발언에 "결함을 지나치게 솔직하게 묘사했다"는 평을 달았다.) 따라서 초창기 응용행동분석에는 전기 충격이나 체벌 따위 강렬한 혐오자극이 동원되기도 했는데, 후속 연구로 반드시 혐오자극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이 밝혀져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한다. (내가 전기충격봉을 피하게 된 건 그러한 후속 연구 덕이라는 얘기다.)
이 때, 저자는 이 시기. 자폐아 가족 단체가 발족되기 시작하고 열악한 환경의 집단 수용시설이 폐쇄되는 6-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상적인 사건 하나를 언급한다. 공군에서 일하던 알렉 깁슨은 심장 발작으로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어린 아들은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고집불통에 소통이 불가능하고 회복될 가망도 없는 자식을 24시간 쉬지 않고 감독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아내는 신앙치료를 한다는 신흥종교로 개종했다. 딸은 성인이 되자 일치감치 집을 떠났다. 그 끝에서, 알렉은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거리에서 놀이터의 여자아이들을 보며 바지를 내리고 수음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저자는 의도적으로, '여자아이들은 이미 성 지식이 있었고, 딱히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리하여 알렉은 아들이 훗날 가망 없는 ㄱㄱ범이 될 것이라 여기고서, 스스로 권총으로 아들을 사살한 다음 즉시 경찰에 자수하고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미국 교육부가 자폐아동을 위해 응용행동분석 요법을 제공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에 불을 붙였지만 당국은 이를 원하지 않았다. 교육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이를 다수 비장애인의 복지에도 사용해야 하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 장애아들을 위해 전문교육을 받은 특수교사 다수가 장시간 동원되어야 하는 비싼 치료법을 제공하는 것은 도무지 수지가 맞는 사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운동가들은 자폐아들이 교육을 받고 사회에 정착하면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덜 쓰게 될 거라는 온건한 설득부터, 나치 및 '악의 평범성'을 언급하는 비방이나 담당자에게 음모론을 덮어씌우는 따위 지저분한 수단까지 동원했다. (저자는 "이는 부당한 일이었지만 필요악이었다"라 평한다.) 결국 자폐아 부모 단체의 청구는 받아들여졌지만 이바 로바스가 제안한 만큼 제공되지는 않는, 운동가와 당국 양측에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형태로 타협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자폐증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것은 2000년대 전후에 이루어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인권운동이 화두로 떠올랐던 6-70년대를 거치며 우생학적 태도가 엷어지고 오늘날에도 괴담의 소재가 되곤 하는 열악한 장애인 수용시설들이 폐쇄된 틈을 타, 미국의 사회귀족층 자폐아 부모-"하위 계급은 스스로 말하지 못한다"-들의 영향력 아래 '레인 맨'을 비롯한 자폐인을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했고,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사회적 관심에 힘입어 전수검사가 이루어졌고, 적게는 166명 중 1명에서 많게는 38명 중 1명까지 자폐아라는 조사 결과가 등장했다. 여기에 편승한,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웨이크필드의 음모론까지 더해진 끝에, 자폐증은 순식간에 사회적 공포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고기능 자폐,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 이 대중의 관심사가 된 것 역시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후일, 아스퍼거는 나치 부역자가 거의 분명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스퍼거 증후군' 이라는 진단명 역시, (중증 자폐증과 같은 진단명으로 묶인다면)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지원이 없어질 것을 우려한 당사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DSM에서 배제되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나치는 특수교육에 상당한 투자를 했는데, 그들은 이삭에서 겨를 걸러내듯이 장애인들 중에서도 '쓸모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걸러내는 것이 사회의 올바른 역할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실용적'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될 위험성 탓에 '검열'된 탓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나치에 부역했을 게 거의 확실한 아스퍼거 박사 역시 자신이 담당하는 '정신 박약아' 무리 중에서 쓸모 있는 이들을 발굴해 훌륭한 나치로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얄궃게도 거의 우연한 계기로 자폐 스펙트럼에서 (비교적) 지적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부류에게 그의 이름이 붙고 말았다. 정작 아스퍼거는 오늘날에 정설로 취급받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관찰한 이들은 '정신박약아'와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자폐아들 중 일부는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현장에서 자폐아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수단으로서 매우 편리했고,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아스퍼거 증후군' 이라는 칭호는 DSM에서 배제된 오늘날에도 임상 현장에서 종종 쓰이고 있다 한다. (아스퍼거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떠난 셈이다)
표지에서 약을 팔고 있는 것과 달리, 책의 저자는 '신경다양성이라는 철학'(저자는 '과학' 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현재 자폐증의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현재 정설로 인정받는 자폐 스펙트럼 개념 역시 하나의 학설일 뿐이다)을 앞세우며 응용행동분석을 포함한 '자폐성을 억압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자폐권리운동에 대해서는 대놓고 어깃장을 놓지는 않아도 꽤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운동가들은 성소수자 운동을 벤치마킹해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편협한 차별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장애인에게 어깃장을 놓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세간의 인식 탓에 여기 대놓고 맞서는 사람은 없지만, 저자처럼 자폐증을 비극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의 운동가들에게 '치료 반대'라는 주장은 무시 내지 비판을 받고 있다. 첫째로,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갖추고서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이 달변가들은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한 자폐 스펙트럼의 더 어두운 부분들을 대변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로, 상당한 지적 능력을 갖춘 부류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자폐인이기 때문에 공감능력이 "결손"(이런 모습은 '신경정형인'들의 눈에는 운이 좋으면 눈치 없음, 고집불통 내지 굳은 신념으로 인식되고, 운이 나쁘면 반사회-비도덕적 습성으로 인식된다) 되어 있기에 자신들보다 더 극단적인 케이스와 그 때문에 고통받는 가족들을 이해할 능력 역시 결손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자폐란 인류라는 옷감에 존재하는 주름이며, 어느 누구도 '주름지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다"는 절충주의적 결론을 내린다. 이 결론만큼은 나도 동의할 수 있다. 광기란 정도의 문제이니까. 자폐 스펙트럼이 대여섯 자리 수의 사칙연산을 해내거나 강당 벽의 벽돌 개수를 정확히 추산할 수 있도록 만든다면,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자폐 스펙트럼이 옷장의 모든 옷마다 분변을 고루 펴발라놓거나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 끊어버리도록 만든다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후기에 들어서야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오늘날 (미국의) 중증 발달장애인들은 반세기 전과 같은 열악한 시설에서 험악한 대접을 받지는 않지만, '대학교 기숙사 같은 시설'에서 최저임금과 기초교육만 받는 관리인들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청년층 자폐인의 절반은 급여를 받는 노동에 고용된 적이 없으며 8할이 노부모에게 얹혀 사는 처지지만 (책에 인용된, 활동가가 자조적으로 한 말에 따르면) "아이가 아니라서 귀엽지도 않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이나 동정을 못 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은 자신들이 죽은 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자녀를 걱정하는 부모에 의해 이루어지는, 산발적인 소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물을 많이 탄 이상론이다. 당장 저자는 응용행동분석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오늘날 기술로 사회화 조치가 불가능한 53%의 자폐아에 대해서도 말을 삼가고 있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던) 피터 싱어가 제시한 동물권 이론에 따르면, 비인간동물은 제한적인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증 정신장애를 앓는 인간동물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동물의 이익을 위해 비인간동물을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대량도살하는 공장식 축산이란 비장애인의 이익을 위해 중증 정신장애인을 대량도살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피터 싱어는 중증 질환을 앓는 인간동물도 중증 질환을 앓는 비인간 애완동물처럼 안락사시키자는 생각을 지지했고, 그 결과 독일에서 입국금지처분을 받았다. 21세기 초 비식자층 대중이 종차별주의 이론을 저질 농담 정도로 취급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 탓이다. 그것이 던지는 질문이란 많은 이들에게 너무 거북하다; "흔히 인간을 일컬어 '사회적 동물' 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는 분명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원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수 없는 개체-중증 정신장애인 및 '싸이코패스', 인간 배아 및 태아 따위-를 우리는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이 흥미로운 트리비아로 가득한 감동적인 *위인전*은, 끝에 가서는 내가 평소 중증 장애인 문제에 대해 갖고 있던 확신-혹은 편견-을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헬렌 켈러가 장애를 극복했던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란, '올리버 트위스트'와 같은 시대에서 가정교사를 고용할 수 있었을 정도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당시, 상류층 태생이 아닌 광인이 갈 곳이란 올리버 트위스트의 옆자리, 구빈원이었다. 헬렌 켈러가 사회개혁가의 길을 걷게 된 것도, 이러한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물론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행복한 장애인이라는 귀족적 사치를 오늘날의 대중들에게도 널리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나, 나는 이러한 이상론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겠다-모든 사람이 같은 권리를 지니고 있는 곳에서는, 대중에게 혐오를 받는 특질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받는 것이 온당하다는 생각은 받아들여지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불특정 소수를 불특정 다수에게서 보호하는 귀족주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생학자들마저도 감히 '합스부르크 주걱턱'을 유럽 귀족들이 평민들보다 열등하다는 증거로서 내세우지 못했으니까) 21세기 초 민주주의 사회의 대중들이란 자신들에게 손실이 가지 않는 한에서-나치처럼 보이기 싫으므로-공식적인 장소에서는 공식 겉치레, 다테마에를 존중하는 시늉을 할 수도 있지만, 무기명 투표장에서는 본심대로 아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특수학교는 님비 시설이므로, 상당히 외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쩌면 예로부터 행해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행해지고 있는 것처럼, 비장애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중증 장애인의 몫으로 '평등하되 분리된 시설'*(주: 미국 대법원에서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썼던 표현.)을 마련해 주고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한 다음 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비장애인 최대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절충안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검열된 대목-사회귀족이 아닌 장애인은 사회에게 어떤 대접을 받는가-를 여러 차례 직접 보고 겪었던 나로서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실관계 자체는 호소력이 있으며 꽤 흥미롭다고까지 생각했지만, 제시하는 메시지에는 거의 동의하지 못했다. 이것은 분명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하나의 답안이지만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건 없지 않겠나. 어찌 되었든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신비로운 괴질에 대해, 대중들이 원하지 않는 종류의 사실 일부까지 포함해 넓게 다루고 있는 꽤나 흥미로운 입문서라 평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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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섹돌왕국
| 23.07.27 01:2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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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하지만, 살다 보면 종종 '어 이거 다시 생각해 보니 킹받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 최근 자폐아가 친 사고가 화두가 되는 걸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 | 23.07.27 01:3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