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을 기록한 사관의 평
사신은 논한다. 공로에 보답하는 것은 국가의 막중한 행사이다. 막중한 행사인데도 사람들에게 가볍게 시행하였으니 어찌 매우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호종한 것을 녹공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육지(陸贄)가 일찍이 말하였다.
가령 육지가 조금이나마 공로에 보답하는 방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시에 호종한 신하들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더구나 요리나 하고 말고삐나 잡던 천한 자들까지 모두 익운의 반열에 참여시켜 이름이 맹부(盟府)에 들어 있는 자가 35인이나 되게 하였으니 어떻게 후세의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는가.
왜적을 토벌하는 공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비록 중국 장사(將士)들의 공이라고는 하나 대진(對陣)하여 승전한 공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호종한 신하들은 많이 참여시키고 싸움에 임한 장사들은 소략하게 하였으니, 공에 보답하는 방도를 잃었다고 할 만하다.
추가
사신은 논한다. 위 헌공이 망명했다가... (중간생략)... 원균은 주함(舟艦)을 침몰시키고 군사를 해산시킨 죄가 매우 컸다.

(IP보기클릭)118.235.***.***
(IP보기클릭)2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