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내가 학생 시절 신문 배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의 일이다.
지금 떠올려도 그만큼 끔찍한 광경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의 경험이었다.
내가 담당했던 구역 외곽에 A씨라는 가정이 있었다.
A씨 댁은 노부부가 돌아가며 신문을 구독하는 ‘교대 독자’였고,
정기적으로 계약을 맺어주는 단골 손님이었다.
참고로 ‘교대 독자’란,
여러 신문사와 번갈아 가며 정기적으로 계약을 바꾸는 고객을 말한다.
대부분은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사은품이 탐나서 계약을 바꾸는 경우인데,
중에는 지나치게 요구가 많은 사람들도 있다.
A씨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필요 이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만, 사은품 욕심 때문에 계약을 연달아 해버리는 바람에
계약이 중복되는 일이 잦았고,
그때마다 “계약 기간을 조정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른 신문사보다 내가 먼저 계약했다면,
내 계약이 우선돼야 맞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런 말이 쉽게 나왔는지,
A씨는 언제나 내 계약을 뒤로 미뤄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래서 미안했는지,
다른 신문사와는 보통 6개월 계약을 맺지만
나랑은 1년 계약을 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차이를 두긴 했다.
하지만 그도 점점 요금 납부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계약에 성실하지 않은 구독자는
대개 돈 문제에도 성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A씨도 그러다 보니 점점 2개월, 3개월씩 연체하기 시작했다.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완납하긴 했지만,
내가 직접 여러 번 방문해야만 했고,
A씨가 정해준 날짜에 다시 찾아가야 할 일도 많아졌다.
그런데 막상 약속된 날 찾아가도
“지금 돈이 없다”며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고,
“다른 신문사에서 밀린 요금을 먼저 냈더니 돈이 없다”는 말까지
전혀 미안한 기색 없이 해댔다.
그러다 내가 조금이라도 강하게 나서면
A씨 남편이 커다란 돌을 들고 나를 쫓아오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A씨한테 굳이 계약 안 받아도 되겠다” 싶어
아예 계약을 권하지 않게 되었다.
그 해 계약이 끝날 무렵,
이상하게도 이번엔 늘 돈을 주던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나와서 요금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은 평소에 신문을 별로 반기지 않는 사람 같았기에,
나 역시 계약을 권유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달,
무사히 구독료를 수금했을 때
‘이걸로 A씨랑은 인연 끝이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또다시 A씨가 신문을 계약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확장원’이라 불리는 외주 영업 사원이
새로운 계약을 따낸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수금을 하러 갔고,
오랜만에 A씨 아내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80~100kg쯤 되었을 체형이
거의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어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주머니. 잘 지내셨어요?”
“아유, 신문 아가씨… 나 엄청 살 빠졌지? 입원했었거든.”
“괜찮으세요?”
“응, 이제는 괜찮아.”
그렇게 별일 아닌 듯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이번 달 요금도 지불했다.
이번 계약은 3개월.
A씨 치고는 굉장히 짧은 계약이었다.
보통은 최소 6개월, 길게는 1년씩 계약하곤 했으니까.
‘확장원이 준 사은품 때문에 짧게 계약했나?’ 싶었지만,
이전의 연체 문제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그 다음 달도, 또 그 다음 달도
요금은 문제없이 지불되었지만,
달이 지날수록 A씨 아내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다.
‘아… 오래 못 가실 것 같다.’
내가 담당한 구역에는 고령의 구독자가 많았고,
A씨처럼 건강이 나빠지는 분들도 드물지 않았다.
당연히, 돌아가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달에도 나는 계약을 권하지 않았고,
A씨 아내 역시 처음으로 계약을 꺼내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년쯤 지났을 무렵, A씨 댁에서 다시 3개월짜리 계약이 시작되었다.
수금을 위해 찾아가자, 이번에도 남편이 돈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수고 많습니다” 같은 인사도 건네는 걸 보면 사람이 달라진 건가 싶을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상냥했다.
그다음 달에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입원하신 걸까?’ 생각했지만
괜히 묻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조용히 넘어갔다.
그렇게 3개월 계약이 끝났고, 마지막 수금을 하러 갔을 때였다.
남편이 현관으로 나와 “이거 신문값”이라며 퉁명스럽게 돈을 건넸다.
그리고는 “이걸로 끝이지?”라고 물었고,
내가 “네, 이번 계약으로 끝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신문 아저씨.”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분명 A씨 아내의 목소리였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답했다.
그러자 아내는 말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보다 다음 계약 얘긴데요…”
목소리는 현관 옆 거실 쪽에서 들려왔다.
마침 거실 유리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거실 안쪽을 들여다봤다.
그때—
이상하게 어두웠다.
낮인데도, 전등이 꺼져 있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A씨 댁은 남향이고 채광도 좋은 편이라
이 정도로 어두울 리가 없었다.
‘이건 어두운 게 아니야… 검은 거야.’
그리고 그 검은 것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것은 수많은 파리들이 소용돌이치며 만든 검은 회오리였다.
열댓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백 마리, 이백 마리도 부족할 만큼
방 안 전체를 날아다니며 거대한 검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파리떼에서 나는 날갯짓 소리는
듣기만 해도 오싹한, 이 세상 것이 아닌 기분을 들게 했다.
나는 태어나서 그런 끔찍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던 계절이었지만,
아직 거실 한가운데엔 코타츠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그 주위를 중심으로 파리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코타츠가 놓인 곳에선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뒤쪽 어딘가에 있는 듯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문 아저씨, 사은품 많이 두고 가요. 계약할 테니까요.”
너무나도 기괴한 광경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내의 목소리도…
정말로 저세상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생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낮고 쇳소리 같은 말투로,
모습 없는 아내가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오른쪽에 서 있는 남편을 바라봤다.
남편은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애타게 ‘가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 오늘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와서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러자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다릴게요. 꼭 계약하러 와요…”
나는 그 순간 어떻게든 그 자리를 피하려는 변명을 지어내고
거기서 도망치듯 물러났다.
하루빨리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고 고개를 깊이 숙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그로부터 얼마 후,
문득 A씨 집이 걱정되어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집 안엔 사람의 기척이 전혀 없었다.
마침 근처의 다른 구독자 댁에서 신문을 수금하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근처의 A씨 댁, 이사 가신 걸까요?”
그러자 그 분이 말했다.
“신문 아저씨, 그거 몰랐어요? A씨 아주머니… 돌아가셨어요.”
A씨 댁에는 손녀 셋이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된 아이 하나,
4~5살쯤 된 아이 하나,
그리고 2~3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
언제나 A씨 부부와 함께 있었기에,
아이들 부모는 맞벌이 중인가 보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감옥에 있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버리고 사라졌다고 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남편도 입원했다는 말이 있었고
어쩌면 사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손녀 셋은 시설에 맡겨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요금이 연체되었을 때
내가 너무 날카롭게 말한 기억이 떠올랐고,
그 자리에 있던 손녀들이 곤란한 얼굴을 했던 게 눈앞에 아른거렸다.
비록 일이긴 했지만,
그 사정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았다면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후회만 남는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A씨 댁 근처를 지나다 보면 생각하게 된다.
그 손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A씨 댁은 지금도 폐가로 남아 있으며,
당시의 섬뜩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주택가 한구석에 조용히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