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혹시 기혼자이신가요?"
"응..., 뭐?"
집중 중이셨는지 아님 멍 때리고 계셨는지, 건성으로 대답하려다 말고 급히 질문으로 말이 바뀐다.
그렇게 한 15초쯤 지났을까.
"유우카. 내가 평소에 헛소리를 많이 한다는 건 나도 충분히 자각하고 있어."
에에.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다짜고짜 그런 말을 들으면 선생님도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단다?"
"아, 죄송해요."
요는 서두를 말해달라, 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뜬금없긴 했다.
"그래서 우리 유우카 쨩은 왜 갑자기 내 기혼 여부가 궁금해졌을까?"
당연한 의문이다.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아는 학생이라면 선생님이 '미혼'을 넘어 지금껏 연애경험 한 번 없는 모태솔로라는 건 상식이니까.
갑자기 그런 걸 물으면 노아라도 당황할 것이다.
"그, 별 건 아니고요."
슬쩍 선생님의 눈치를 본다.
다행히 불편한 기색은 안 보이고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실수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찾아온다.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잠꼬대하시는 걸 들었거든요."
"잠꼬대?"
선생님이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까딱이신다.
그러다 생각이 난 듯 짧게 탄성을 뱉으셨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잠깐 낮잠 잤던 적이 있었지그래. 근데 그때 아무도 없었는데?"
날 무서운 거 보듯이 보신다.
"잠깐 서류 전달해드릴 게 있어서 들렀는데 선생님 주무시고 계서서 안 깨우고 바로 나온 거거든요?"
"나 자는 동안 나한테 아무것도 안 했지?"
"네."
"정말로?"
"정말로."
"눈앞에 건장한 남성이 무방비하게 곤히 자고 있는데도 그냥 돌아갔다고?"
"선생님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계신 건가요."
장난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하시니 좀 무섭다.
평소에 습격을 받는 건 알지만 학생 상대로도 위협을 느끼시는 거려나.
좀 안쓰러울지도.
"음, 유우카가 그리 말한다면 믿을게. 응응. 그치. 우리 착한 유우카가 날 면간할 리 없지."
"그런 쪽 이야기였나요!?"
"응?"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진짜 바보 같아.
바보 선생님.
"크흠! 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요."
"아, 맞다. 잠꼬대."
"네. 마침 들어갔을 때 선생님이 잠꼬대를 중얼거리셨는데..."
그 당시를 떠올려 본다.
선생님 외엔 아무도 없는 사무실.
산처럼 쌓인 서류더미와 그 옆에 오밀조밀 놓인 카페인 음료캔들.
옆에 있는 소파에는 선생님이 선잠을 주무시고 계신다.
그곳에 서류만 놓고 나오려 했지만 마음이 바뀌고,
소파로 가서 선생님 머리맡에 앉는다.
나와 선생님밖에 없다는 걸 알지만서도 홀로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있다.
곤히 잠을 이루던 선생님이 별안간 입을 열더니 작게 웅얼거린다.
"... 여보."
"응?"
"'여보. 그러지 마. 부부 사이에 그러는 거 아니야.' 라고 하셨어요."
"아아~."
"그때 무슨 꿈이라도 꾸셨던 거예요?"
기억났다는 반응에 나도 관심이 쏠린다.
대체 누구더러 여보라 한 것일까.
"꿨지. 정말 달콤한 꿈을."
"... 내용이 뭐였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결혼하는 꿈."
선생님의 눈이 살짝 감긴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꿈."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선생님의 말씀 중에 반응이 오는 말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요?"
"응. 제일 좋아하는 사람."
"혹시 그게 누구..."
"헤에~, 신경 쓰이는구나. 유우카 쨩. 이 선생님의 최애가 누군지~."
진지한가 싶다가도 다시금 히죽대는 저 모습이 몹시 짜증난다.
갑자기 마주하면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그래서 누구였나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테니까요."
"너 혼자만 안다, 라.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유우카."
"어째서죠?"
"지금 이곳을 도청, 도촬, 밀청하는 인원만 세 명이거든."
"네에-? 그게 무슨-,"
"참고로 내가 잤던 날도 그랬을걸. 어쩐지 아무 일도 없더라니 유우카가 와 있어서 무사했던 거였구만."
"저기, 그럼, 혹시 제 모습이나 제가 했던 말도..."
"누군가가 보고 들었겠지."
아.
망했다.
"참고로 그중 한 명은 밀레니엄이야. 그렇지 코타마?"
"코타마... 베리타스의 코타마 선배요...?"
"응. 돌아가면 살살해, 살살."
그 이후로는 당번 일을 뭘 했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굉장히 서두르고 밀레니엄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선생님의 그녀가 누구인지도 못 알아냈고.
설마 나, 나는 아니겠지...?
...
그러고 보니 선생님.
좋아하는 사람이 학생이라고 말씀하셨던가?
***
늦은 시각.
선생은 오랜만에 샬레 생활관이 아닌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가끔은 이런 식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도 여흥의 일환이다.
"다녀왔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인사지만 오늘은 어째 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키보토스에 올 때부터 신던 구두를 벗고, 샬레 정복과 그 안의 살짝 색이 바랜 넥타이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둔다.
바쁘지만 않았더라면 매일 같이 다림질도 했을 셔츠는 꼬질꼬질한 냄새와 구겨짐으로 가득하다.
옷을 벗고 잠시 방 한구석에 놓인 서랍장을 바라보던 선생은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선생이 서 있던 창문 앞 서랍장 위에는 한 액자가 있다.
묘령의 여인의 초상이.
외로운 선생의 방 한켠에, 그이만이 알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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