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지금이요...?"
용사의 갑작스러운 부탁에 성녀의 표정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찻잔을 입가로 옮기던 하얀 손이, 우아스럽게 손잡이를 잡은 가는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 하지만, 용사님. 여기는 보는 눈도 많은데..."
성녀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길드의 유명인사인 용사가 이곳에 등장한 것만으로 이미 대기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저하는 성녀를 지켜보던 용사는 재촉하는 것처럼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뒤이어 이마를 마루바닥에 붙이고 고개를 조아리자 사람들의 시선은 웅성거림으로 번졌다.
"곧 큰 전투를 치뤄야합니다."
그의 완고한 태도에 불구하고 성녀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작은 입술만 오물거리며 침묵만을 유지했다.
손은 갈 곳을 잃고 옷자락을 만지작 거리거나 꼼지락 거렸다.
앉은 자세는 몇 번이고 고쳐앉았다.
"흠흠..."
이내 결심을 한 듯, 성녀는 목을 가다듬었다.
어느 새 식은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자 머리카락이 차분히 귀 뒤로 들러붙었다.
이미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있었다. 하지만 얼핏 보이는 귀는 유난히 타오르듯 새빨갛게 익어있었다.
"시, 시도 때도 가리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기어다니기나하고..."
모두가 성녀가 불러주는 축복의 주문을 기대하던 가운데, 그녀 입에서 나온 건 그런 성스러운 게 아니었다.
"바닥을 기면서 느끼는 건 인간 실격이잖아. 바, 발정 난 숫캐 녀석..."
울 것처럼, 아니 이미 울고 있는 것처럼 어물거리며 힘겹게 뱉어내는 건 어색한 매도였다.
"하이힐에 밟히면서 흥분해서 곤란해지는 주제에, 용사라니... 역겨워. 변태 자식..."
'역겹다'라는 말이 나올 때, 성녀의 눈에는 정말 눈물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성녀는 가는 발을 내밀었다.
어울리지 않는 하이힐이 신겨진 발이 용사의 머리 위로 사뿐히 내려앉을 때, 그녀의 눈이 질끔 감기며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카페트처럼 바닥에 깔려 성녀에게 짓밟히고 있는 용사의 몸이 미묘하게 떨렸다.
얼핏 보이는 입가는 씰룩거리며 미소를 참고 있는 듯 했다.
이게 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