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서는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주말, 드물게 일이나 급한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았던 나는 이치카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두툼한 회색 구름이 바로 저기까지 몰려오고 있다.이건 억수같이 쏟아질 것 같다.
일기예보를 보고도 우산을 잊어버린 얼빠진 나를 저주하며 목적지로 서두른다.
이치카의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이내 방 안쪽에서 쿵쿵 발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어서오세요!"
기세좋게 문이 열리고 실내복 차림의 이치카가 한쪽 발로 샌들을 짓밟으며 힘차게 마중을 나왔다.
심플한 흰색 원단 한가운데 검은 글자로 Justice라고 새겨진 룸웨어에 반바지라는, 평소의 깔끔한 교복과는
대조적인 러프한 모습에서 여고생의 생생한 생활감이 물씬 풍긴다.
"별로 재미있는 건 없는데요~? 예전에 왔을 때랑 전혀 달라지지 않았슴다."
두리번두리번 방안을 보고 있는데 차를 끓이던 이치카가 그렇게 한마디 했다.
방은 흰색과 연분홍색 바탕의 코디로 여자아이다운데 전체적으로 물건이 적고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갖추고 있다.
살풍경까지는 아니지만 낭비를 없앤 듯한 공간에 그녀의 개성이 드러나는 듯하다.
타인, 특히 이성의 방이라는 것은 여러 번 봐도 신선하고 지루하지 않다.
등받이 좌식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이치카가 차와 과자를 날라왔다.
가져온 과자인 버터쿠키는 정의실현위원회 멤버 몇 명과 함께 만든 것으로 츠루기가 힘을 잘못 써서 계란을 마구 으깨거나,
하스미가 몰래 집어먹거나, 그 밖에도 몇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치카와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툭툭 창문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오네요."
이치카가 커튼을 살짝 열고 밖의 모습을 살핀다.
비는 순식간에 폭우로 변했고 희미한 빗소리는 거센 두드림으로 바뀌었다.
창문에 맺힌 굵은 빗방울이 주위의 물방울을 집어삼키며 마치 운석처럼 유리창을 타고 흘러간다.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비."
무뚝뚝한 기상캐스터는 주말 내내 비가 많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요일에 약속했던 데이트는 아쉽게도 취소될 것 같다.
"에휴, 뭐 어쩔 수 없슴다. 그 전에 할 일도 있고요."
이치카는 양손으로 커튼을 치며 불만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게 밀착하듯 앉았다.
"선생님! 이거 봐주셨으면 좋겠슴다! 지난 일요일에 외출했을 때 찍은 사진임다만."
이치카는 순진하게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사진 목록에 늘어선 풍경이나 음식, 기타 다양한 사진.
친구나 동아리 멤버들과 외출했을 때의 사진일까.
"여러가지 발견한 게 있어서 사실 이번 주말에 선생님이랑 같이 가려고 했거든요~"
평소 정의실현위원회로서 임무에 힘쓰는 그녀의 여고생다운 면모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이치카가 한 장의
사진을 탭해 표시하게 했다.
"우선 여기임다! 시계탑이 보이는 카페! 최근에 생긴 카펜데, 돈까스 샌드위치와 카페라떼가 정말이지~~~~ 일품이고!"
쿵쿵, 하고 심장이 뛰었다.
그녀가 주문했다는 돈까스 샌드위치와 카페라떼는 낯이 익었다.
지난 일요일, 나는 카페에서 똑같은 것을 주문했었다.
그리고 카페 테라스에서는 커다란 시계탑과 광장을 바라볼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가게인데, 이 사진에 찍힌 곳은
바로 그 카페 테라스였다.
"수제 허니 머스타드가 어쨌든 좋았죠~ 코를 빠져나가는 머스타드의 상큼한 매운맛과 뒤에서 부드럽게 다가오는 단맛…
절묘한 하모니라는 녀석임다!"
이치카가 즐거운 듯이 말하는 한편, 나는 한 가지 우려에 의식을 빼앗기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이치카가 방문했던 그 카페에 나도 방문했던 셈인데 문제는 거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쿄야마 카즈사도 함께였다는 것이다.
학생과 단둘이 나가거나 숙박할 경우 반드시 사전에 연락을 하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이를 게을리 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연이 있는데 한 번쯤이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결과가 이것이다.
만약 가게에 온 타이밍이 겹쳤다면 그녀는 우리의 존재를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깨닫고 나서 나를 시험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그것은 그녀의 표정에서는 읽을 수 없다.
그렇다고 활발한 여고생들이 유명한 카페를 찾는 것 자체는 예삿일이고 어쩌다 장소가 겹쳤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너무 깊이 생각했다고 여기고 이치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이치카는 대여섯 장 정도 카페 사진을 내보낸 뒤 다음 행선지로 넘어간다.
"아, 다음은 고양이 카페네요~ 너무 귀여운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여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음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화면에는 장난감을 들고 고양이와 장난치는 이치카의 셀카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가게 내부 인테리어와 하트 무늬가 특징인
간판 고양이 등 카즈사와 함께 들어간 고양이 카페와 똑같은 장소였다.
아까 카페에서 그렇게 거리가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하루에 행선지가 두 번이나 겹치는 일이 있는 것일까?
만약 이치카에게 모두 들통난 것이라면 일찌감치 자백하고 사과해야 할 텐데 확증을 얻기 전까지는 성급하지 않겠느냐며
묘한 희망을 품어 그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개파임까? 아니면 고양이파임까?"
이치카는 고양이 사진을 바라보며 그렇게 질문해 왔다.
뇌리에 지나가는 것은 카즈사의 얼굴.
동요를 깨닫지 못하도록 가급적 평정을 가장하며 개파라고 답했다.
"…아, 개파. 그렇군요~"
이치카는 한 순간을 두고 억양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지 않고 말없이 화면을 스와이프하는 이치카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고 있다. 이건 역시……
그리고 이치카는 생각난 듯 다음 장소를 표시하게 하는 것이었다.
"음, 다음은~…역 앞의 부티크네요. 여기도 요즘 생긴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분위기 좋지 않슴까?
가게 안도 조용하고 좋은 느낌의 음악이 나와서 멋지네~ 라는 느낌이었죠."
두 번 벌어진 일은 세 번째도 있다……일까.
또다시....아니, 역시 그렇다고나 할까, 그곳은 카즈사와 함께 찾아간 장소였다.
옷을 보고 싶다는 카즈사에 이끌려 들어간, 최근 막 생겼다는 부티크.
그리고 의심은 확신으로 변한다.
"아! 이거, 입어보고 사진 찍어봤음다! 어떴슴까? 어울림까?"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눈에 들어온 것은 탈의실 전신거울 앞에서 피스를 하고 있는 이치카의 모습.
그리고 이치카가 입고 있는 옷은 그날 카즈사가 똑같이 입어봤던 옷이었다.
여느 때 같으면 끝없이 나올 칭찬은 완전히 잦아들었고 대신 굳어진 미소로 '잘 어울려'라고만 답했다.
"에헤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사둘 걸 그랬음다."
이치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기쁜 얼굴로 웃는다.
정말로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니 대단한 포커페이스다.
반면 나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땀이 심하게 나 등이 흠뻑 젖어 셔츠가 등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동요는 얼굴에도 나타나고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 무슨 일 있음까? 안색이."
이치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물어봐서 괜찮다고만 대답했다.
"그렇슴까? 선생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이제 완전히 때는 늦었다.
이건 벌이다.
자신의 잘못을 정중히 재확인시키고 마지막에 닥칠 무서운 결말을 상상하며 이 시간을 보낸다.
자백조차 허락하지 않는 듯한 섬뜩함이 지금의 이치카에게는 있다.
이 후 카즈사와 어디로 갔었지... 같은,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죄수 같은 기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다음엔 영화봤음다! 요즘 핫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데, 이야~ 저한테는 너무 안 맞지 않나하는 느낌이었죠.
그리고 앞자리에서 노닥거리던 커플, 특히 여자가 너무 치근덕거려서 짜증났음다. 엔드롤 전에 나와버렸지 말임다."
이치카의 쾌활한 목소리에 노기가 분명히 섞인다.
"그래서 다음이 마지막인가요? 마지막 사진은 ------팔짱을 끼고 영화관에서 나오는 선생님과 어느 학생임다!
이야~ 잘 찍히지 않았음까? 의외로 눈치채지 못하네요. 저, 어쩜 카메라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음다! 에헤헤헤."
얼굴 앞에 들이댄 스마트폰에는 나와 카즈사가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모습.
발뺌은 할 수 없다.
이치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담회색의 두 눈이 나를 사로잡는다.
미소는 사라지고 노가쿠 가면 같은 무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울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로 이치카가 말했다.
"………그래서, 이건 어떻게 된 일임까? 납득이 갈 때까지 설명 부탁드림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