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카와 하스미.
트리니티 종합학원 정의실현부의 부부장이라 하면, 사람들은 대개 그 이름에서 단정함과 엄격함을 떠올릴 터이다.
실제로 그런 평판에 어울릴 만한 소녀였다.
그러나 요 며칠간 그녀의 눈빛은 계속 창밖 어딘가에 머물렀다.
말없이 흐르는 햇살, 그리고 식어가는 찻잔을 손에 든 채 긴 숨을 내쉴 뿐이었다.
키보토스의 누구에게나 선생은 특별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스미에게 있어 그 존재는 더욱 유일무이한 것이었다.
트리니티의 질서.
정의의 실현.
불의에 대한 무관용.
그 모든 대의의 중심에 그녀는 선생을 두고 있었다.
말하자면, 선생 없이는 그녀의 철학 또한 허공에 떠도는 공허한 껍데기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하스미는 그의 태도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마치 정의감을 시험하듯,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다정한 미소가 자신을 향할 때, 그녀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 입술이 똑같은 온기로 다른 학생들을 향할 때, 깊은 곳에서 검고 무거운 기척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기이한 충동이었다.
자신의 날개로 그를 감싸 안고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해 두고 싶다는 감정.
그 날도 그랬다.
복도 끝에서 선생이 걸음을 헛디뎌 몸을 앞으로 기울일 때, 하스미는 망설임 없이 날개를 펼쳐 그를 감싸 안았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그는 익숙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고마워, 하스미. 네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날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선생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하스미, 고마운데... 좀 답답한걸.”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실례를.”
그녀는 뺨이 붉게 달아오른 채 뒤로 물러섰다.
결국 그녀가 얻은 건,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이 미칠 듯이 뛴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정의로 포장해도 이 감정은 분명히 사적인 것이란 자각이었다.
그녀의 정의관은 분명 트리니티와 선생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과연 그와 무얼 하고 싶은 건지, 어떻게 되고 싶은 건지 본인조차 몰랐다.
지금 이 순간, 선생과 나란히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음에도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녀의 시선은 찻잔 테두리를 빙글빙글 따라가기만 했다.
선생은 그녀의 낯빛을 살피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하스미, 요즘 디저트 디저트 줄였어? 다이어트 중이야?”
그녀는 선생의 존재가 막 떠오른 듯 움찔하며 날개를 파닥였다.
“디, 디저트라뇨! 저는 절제된 식습관을...!”
“하하, 농담이야. 이제야 평소 하스미답네.”
“윽...”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면 못 미덥겠지만 나에게 기대줘. 학생을 돌보는 게 선생의 역할이니까.”
하스미는 시선을 내리깔고, 손끝으로 찻잔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레 매만졌다.
“역시 그런 점이...”
“응? 뭐라고 했어?”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차가... 정말 맛있군요.”
그녀의 고민은 저녁노을이 창밖에 스며들 때까지도 쉽게 식지 않았다.
.
.
.
하스미에게 출격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습관이 있었다.
창가에 앉아, 저격소총의 스코프 너머로 선생의 집무실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녀는 그것이 키보토스의 평화를 위한 정당한 경계라고 믿고 있었다.
선생의 안위를 염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니만큼, 정의실현부의 일환이라 여겼다.
물론 그 행위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오늘도 선생은 혼자서 빽빽하게 쌓인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만큼의 분량.
하스미는 생각했다.
다음 당번이 되었을 때, 선생의 곁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그 문서들을 정리해드릴 수 있기를.
그리고 신뢰받는 조력자로서, 크기만 한 덩치만큼 든든한 존재로 남고 싶다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목이 뻐근해지고 허리가 저려왔다.
슬슬 임무에 나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스코프에서 눈을 떼려는 찰나, 선생의 책상 위로 다른 그림자가 일렁였다.
작은 체구에 앙칼진 뿔, 조약한 날개...
히나, 소라사키 히나가 선생의 사무실에 있었다.
“히나, 당신이...”
하스미는 샬레 당번 순서를 모두 암기하고 있었기에, 오늘은 히나의 차례가 아닌 것도 물론 알고 있었다.
키보토스에는 언제나 선생을 위협하는 존재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히나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스코프 너머, 히나는 선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요망한 눈웃음을 지으며 거리낌 없는 친밀함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하스미의 시야를 서서히 붉게 물들였다.
“풍기위원장이라는 분이, 무척 당돌하시군요.”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녀가 마음에 새기던 태도였다.
그러나 선생이 관여된 일이면 도무지 머리가 차가워지지 않았다.
오른손 검지가 조용히 방아쇠 위에 안착했다.
벽시계의 초침이 째깍, 소리를 남기며 지나간다.
쿵쿵대는 맥박이 귓가를 두드린다.
거리, 각도, 바람의 흐름...
“저격 포인트, 확보했습니다.”
손가락 마디 근육이 수축한다.
쾅-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남은 간격은 단 5mm.
그 순간, 부실의 문이 벌컥 열였다.
“앗, 부부장 여기 있었슴까? 지금 다들 모여있지 말임다!”
예정된 시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치카가 찾으러 온 것이다.
“창틀에 앉아서 엉덩이 쭉 빼고 뭐 하는 검까. 빨리 나오시지 말임다.”
하스미는 놀란 숨을 억누르며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으, 응! 미안, 어서 가자.”
그리고 이치카를 따라 부실을 나서면서 하스미는 스스로에게 명령하듯 반복했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그날, 그녀는 임무 중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
.
.
창밖으로 장대비가 내리며, 흩어진 나뭇잎이 간헐적으로 창틀을 두드렸다.
오늘은 하스미가 당번으로 찾아오는 날이었다.
키만큼이나 식욕이 왕성한 그녀를 위해, 선생은 좋아하던 과자와 따뜻한 홍차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미 하스미가 오기로 한 지 삼십 분을 넘긴 시각.
“차가 다 식어가는데...”
하스미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었다.
단호하고 성실한 그녀가 정의실현부의 부부장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걱정스러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꺼내려던 그때, 진동음이 울렸다.
하스미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 선생님, 급히 할 말이 있으니 트리니티로 와주십시오.
급히 드릴 말이라니.
그녀가 이토록 단도직입적인 문장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선생은 의자에 걸쳐 둔 셔츠를 집어 들고 서둘러 일어섰다.
.
.
.
구두는 진흙에 질척였고, 젖은 머리칼은 이마에 내리붙었다.
비가 내리는 날이라 그런지 트리니티의 복도는 유난히 조용하고 어두컴컴했다.
정의실현부의 부실 앞에 선 그는, 숨을 고른 뒤 문을 두드렸다.
“하스미, 들어가도 될까?”
반응이 없다.
“하스미?”
재차 불렀지만 대답은 오지 않았다.
선생은 어쩐지 싸늘한 예감에 사로잡혀 문을 열고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스미!”
그러나 부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소의 고풍스러운 트리니티 양식과 달리, 짙게 드리워진 커튼 때문에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까닭이다.
“어라, 여기가 아닌가...?”
선생은 불을 켜기 위해 벽을 짚은 채 한 걸음씩 내딛었다.
버튼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실내에 한순간 섬광을 퍼뜨렸다.
콰광-
그리고 찰나의 빛 속에서, 거대하고 위압적인 형체가 번뜩 떠올랐다.
선생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스미...?”
“오셨군요, 선생님.”
반가움도, 긴박함도 없었다.
다만, 오래도록 기다리며 모든 것을 준비해 둔 자만이 갖는 무심한 평온이 깃들어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얼굴이 많이 어두워 보여.”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정말 좋아합니다.”
“응...? 나도 하스미를 좋아해.”
“이쪽으로 와주시죠.”
하스미는 잠자코 손을 들어 창문 너머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이 향한 곳에는 희미하나마 샬레의 집무실이 보였다.
불현듯, 등골을 따라 소름이 끼쳤다.
“선생님은 제 정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언제나,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습니다.”
“하스미, 너 정말 괜찮은 거니?”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께서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더렵혀진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말을 끝으로 하스미의 등 뒤에서 거대한 날개가 피어났다.
깊은 어둠 속에서도 피어나는 윤기, 새까만 깃털들은 오히려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제가 내린 결론은 하나입니다. 선생님을 철저히, 완벽하게 지켜드리자고.”
“자, 잠깐만!”
선생은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지만 어느새 부실의 구석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가까이서 본 하스미가 이렇게 컸던가?
그녀의 날개는 감옥처럼 선생을 가두었고, 몸은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
“부디, 맡겨주세요.”
검은 날개가 그를 감싸 안더니, 곧 그녀의 가슴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갈라진 깃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마지막 빛줄기마저, 그 틈새에 영원히 삼켜져 버렸다.
“아아, 다 젖어버렸네요. 곤란하게도.”
![[블루아카,소설] 정의실현부 하네카와 하스미의 고민_1.png](https://i1.ruliweb.com/img/25/05/13/196c7666c5e4df8a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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