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어른도 사람이니까.
"네, 선생님도 사람이죠."
"그러니까 버틸 수 없는 것도 있고, 두려운 것도 있단다."
"그 정도는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 그 말에는 두 개의 맹점이 있네요."
"응?"
"버틸 수 없고 두려운 게 있는 사람이, 언제나 저희보다 앞장서 고통받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일하시나요? 자신이 행한 일들이, 이미 일개 개인이 이뤄내도 되는 영역을 넘어섰다는 건 모르시나요?"
맹점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하스미.
너야말로 간과하고 있구나.
"나는 어른이야."
"저희와는 다르다,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래."
"음, 음. 맞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면 말이죠. 선생님."
"응?"
"왜 도망치시는 거죠? 어른이시잖아요?"
스륵-
또 한번 콘크리트 먼지가 쓸리는 소리가 났다.
애석하게도, 하스미가 다가오는 소리가 아닌 내가 뒷걸음질치는 소리였다.
"아, 이건 되는데 저건 안 된다던가 그런 변명은 안 돼요. 어른은 강하니까 버틴다, 어른도 사람이니까 도망친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어요."
"억지를 부리는 건 어른의 특권인데 말이지."
"역시, 선생님은. 당신은 쓰레기에요."
자가당착이다.
어른도 약할 수 있다, 어른은 강하다. 내가 내뱉은 두 개의 말이 서로 모순된다.
서로가 서로를 마모시켜 끝내 논리의 형상도 갖추지 못한 톱니다.
또한 어른의 억지는 세상의 불합리함에나 부리는 것이지, 아이들의 의문을 꺾을 때 쓰는 게 아니다.
쓰레기다.
정확한 평론이다.
"오류투성이에, 저희를 어디까지고 어린아이처럼만 보네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됐어요. 어차피 여유롭지도 못하시면서."
하스미의 키가 얼마더라.
180? 아니, 179였나. 어차피 신발 굽을 생각하면 지금은 180이 넘겠네.
그에 비해 내 키는 177, 신발의 굽도 하스미보다 낮다.
내려다보고 있다.
학생이, 나를.
차라리 내 키가 160대라면 이 공포를 정당화할 수 있겠지.
끽해야 4cm, 그 차이에 겁을 먹고 물러나는 어른이라니.
"꼴사납네요."
"그러게."
서로의 흉부가 맞닿는다.
약간 위쪽에 있는 하스미의 가슴이지만, 아무리 속옷의 보조가 있어도 조금은 내려올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짓눌린다.
"당신을 안아도 되나요?"
"안돼."
"왜요?"
"나는 모순투성이에 쓰레기인 어른이거든. 너는 정의를 추구하는 올곧은 아이고. 심지어 나 따위의 가치에 비해 너무나도 매력적인 여성이란다."
"..."
"내게 쓸데없이 마음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잘 보이겠다고 발악을 해온 내가 할 말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지만."
"당신은-"
언제부터 순수한 선의로 바닥을 굴렀다고 생각하는지 원.
나는 어른이다.
사회적인 시선이 있다.
어른으로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면 내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확정이다.
반대로, 조금만 힘내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명예가 손에 들어온다.
그 정도라면 나 자신 정도는 보잘것없어도 되니까.
보잘것없는 나라도, 이왕이면 미녀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 뿐이다.
"당신은- 멍청이에요."
"그렇겠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뭘 위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시나요. 우리와 당신을 분리하고,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도망치려 들고.... 왜 그러는 거야?"
"하스미, 어른에게 반말을 함부로 쓰면 곤란해."
"아니, 어른이 아냐. 남자일 뿐이야. 총을 맞으면 그대로 구멍이 뚫려버리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남자일 뿐. 그리고 나는 그런 남자보다 키가 큰, 괴물같이 커다란 여자지."
"괴물이 아니야. 하네카와 하스미."
나 같은 것보다 훨씬 강인하고, 그런 주제에 아름답고, 정의롭고, 순수한 네가.
어떻게 괴물일 수 있어.
"내 학생은 괴물이 아니야."
"그럼 나랑 섹♡할 수 있어?"
"그런 건 사랑하는 사람이랑-"
"사랑해요, 선생님. 그 무엇도 바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이나 당신이 사랑스러워. 나약한 주제에, 나보다 커다랗지도 강하지도 않은 주제에 언제나 네 앞에 서려고 하는 당신은 사랑스러워. 제 말은 그냥 투정이니까. 당신을 쓰레기가 아니에요.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허름한, 만들어지다 만 콘크리트 건물이 드러난다.
나는 두려워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하스미는 그것을 허락지 않으니.
"크읍-"
"나를 보세요."
"하스미."
"다시 말해볼까? 내가 괴물이 아니라면, 나랑 키스하고, 내 몸을 어루만지고, 내게 만져지고, 서로를 껴안고 그 온기를 나누며. 서로 깊숙이 파고들며 눈앞의 상대만을 탐하는 섹♡를 할 수 있나요?"
"...안타깝지만, 너도 간과한 게 있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랑 섹♡해야 한다는 건, 쌍방이어야 한다는 소리니까.
미안하지만, 하스미.
오늘은 조금 상처가 될 거야.
"나는-"
"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죽일 거에요."
"...하스미,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선생님. 여기는 키보토스입니다."
"..."
"누구의 총이 강한지, 그건 인권보다 우선하거든요. 그리고 선생님은 사람이고."
무어라 할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점점, 기대와 쾌락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이내 검은 날개가 내 몸을 감싼다.
오른손은 내 뒤통수를 잡고, 왼손은 등을 껴안으며.
"츄웁 츄릅. 츕. 푸흐으.... 역시 내 손 안에 있어. 나와 다르지 않아. 아니, 나보다도 약해. 이런 당신을, 이런 당신이라서. 사랑해요."
![[블루아카,소설] 선생님을 가지려는 얀데레 하스미_1.png](https://i1.ruliweb.com/img/25/04/22/1965b4b5daf4df8a5.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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