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티로.
별로였다.
참 신기한 영화였음. 어떻게 88년 전 애니메이션보다 러닝타임이 26분 늘었는데 50분 넘게 지리멸렬할 수가 있는거지.
우선 좋은 점부터 꼽자면 마크 웹 감독 장점인 영상미가 발휘되는 부분, 특히 빛을 이용한 연출이 나올 때는 영상이 꽤 아름답고, 동물들이 엄청 귀엽게 나온다. 내 옆자리에 꼬마 여자애 하나가 앉았는데 얘도 동물들 나올때는 좋아하더라고.
그리고 초반에 나오던 공주 어린시절이 이쁘고 귀엽다.
근데 좋은 점은 이게 다다.
단점을 꼽자면 우선 백설공주역을 맡은 배우 레이첼 지글러.
의외로 연기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백설공주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한 티도 보이고, 노래 실력도 좋고, 표정도 풍부하고, 인터뷰에서 깽판친 걸 제외하면 연기는 딱히 흠잡을 거 없이 무난했음.
문제는 의상이 너무 안 어울렸다는 거지
백설공주의 옷은 소화하기가 상당히 빡센 패션임.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위주로 되어있어서 쿨톤이 아닌 사람이 입으면 촌티가 줄줄 흐르게 되는 극강의 공주룩이지.
근데 이걸 라틴계 사람인 레이첼 지글러한테, 심지어 파란색을 추가해가면서 입히니까 보는 내내 연기를 넘어 공주 코스프레를 한 것 같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두번째는 가사가 있는 노래들이 원작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이게 썩 좋지는 않다는 것.
노래가 나쁜 건 아닌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노래가 많고, 특히 마지막 노래는 난 기억해요. 난 기억해요. 하면서 과거를 반추하는 가사였는데 영화 완성도가 나쁘다보니 자승자박하는 느낌이 있어서 굉장히 찜찜했다.
세번째 문제는 앞서 말한 것 처럼 이야기가 지리멸렬해졌다는 것.
이번 영화는 리메이크 답게 스토리를 뜯어고쳐서 왕자를 삭제하고 대신 도적단을 거느린 두목인 남주 조나단을 추가해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는데 이미 이런 이야기는 최소 7번은 보지 않았나? 싶을 만큼 전개가 뻔하게 흘러갔고.(작년에 본 최악의 영화 위시도 떠오르더라)
원작에 없던 평등과 공존과 배려 등의 현대적인 메시지를 추가했는데, 이게 최악의 한수가 되었다.
동화의 마법을 지워버렸거든.
원작부터 이 백설공주 이야기는 사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임.(동화말고. 그건 진짜 판타지니까.)
왕비는 거울한테 말을걸고 거기서 되돌아오는 말을 믿는 나르시시스트 정신병자에 사과를 건네줄 수 있는 거리까지 가서 굳이 칼침을 안 놓는 이상한 사람이고, 공주는 호위 딱 한명만 데리고 성 밖을 돌아다니고, 난쟁이들은 집에 무단 침입한 공주를 환영하는데다가 왕자는 뜬금없이 나타나 시체에 입술박치기를 갈기고, 그걸 당한 공주가 또 부활을 하는.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말도 안되는 헛소리들의 집합체지.
하지만 이 모든 헛소리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만들어 낭만적인 환상의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바로 동화의 마법이야.
1937년작 애니메이션은 이 점을 잘 살려서 관객들이 동화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젖어 난쟁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환호성을 지르게 했지만,
이번 영화는 감독이 현대적인 메시지를 더한 덕분에 앞서 말한 것 처럼 동화의 마법이 지워지면서 이야기를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보이게 만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이 하나같이 미묘하게 어색하게, 특히 왕비의 행동들이 굉장히 이상해 보이게 됐음.
원작보다 무자비하고 수단방법을 안가리는 폭군인 것 처럼 행동하는 주제에 백설공주를 바로 앞에서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날려버리고, 성에 무단 침입한 사람과 명령 위반자는 자비롭기 짝이 없게 지하감옥에만 가두고, 하는 짓이라곤 꽃 말려죽이기랑, 보석 모으기랑, 변장하고 공주 잠재우기 밖에 없는 이상한 여왕에,
자칭 도적단이라고 하면서 기껏 하는 짓이라고는 두목이 성 안에 몰래 들어가서 감자나 훔치고, 단체로 칼 한자루 안 들고 다니는 이상한 도적단.
274년동안 보석을 캐고 살았다면서 겨우 집 한채에 옹기종기 모여 쌈박질만 해대며 7명이 모여 살고있는 난쟁이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노래나 불러제끼며 증거 하나 없이 여왕이 왕을 죽였다 주장하는 공주와 그걸 믿고 따르는 국민들.
마지막으로 '왕국'이라고 하면서 겨우 마을 하나 규모나 될까 싶을 만큼, 쓸데없이 중세 고증에 충실해보이는 작은 왕국까지.
만약 감독이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동화적으로 유지했다면 극적, 동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였을만한 요소들인데, 마법이 풀린 상태로 보니 전부 이상하게 느껴져서 굉장히 어색했다.
이걸 의도하고 만든건진 모르겠지만, 만약 의도한거라면 대실패였다고 말하고 싶네.
리메이크를 하고 싶다면 훨씬 과감하게 뒤집어 엎든가, 아님 재현률을 높여서 고전적인 양식미를 살렸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이도저도 아니게 리메이크해서 영 좋지 않은 꼴이 된 영화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결론은 별로였다는거지.
마지막 노래의 가사를 좀 빌리자면.
난 기억해요.
네. 기억합니다. 88년 전 테크니컬러를 통해 새 시대를 열고 영화사에 사라지지 않는 족적을 남긴 위대한 고전이 된 원작을.
난 기억해요.
네. 기억합니다. 모두가 희망차게 다음 작품, 다음 작품을 기대하며 디즈니를 사랑하던 위대한 디즈니 르네상스 시대를.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영화나 애니를 좀 잘 만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원작 팬이라면 애저녁에 저작권 만료로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원작을 한번 더 보는 걸 추천함.
내일은 고독한 미식가 보러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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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와! 잡지 수준의 리뷰다 하고 감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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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봐주는 사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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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더니 고통을 가하니 명문이 술술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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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티로 봤는데 불만족이면 진짜 문제가 있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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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니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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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 그대로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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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이 담긴 미생같은 작품이었냐고 | 25.03.19 22: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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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사회로 봤지. 재밌었어. | 25.03.19 21:5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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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는 무대인사로 보고왔었는데 잔잔하게 재밌었서 일본 관객보다 한국 관객이 웃을 포인트가 더 많을듯 | 25.03.19 21:5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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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X45
그럴 땐, 와! 잡지 수준의 리뷰다 하고 감탄하는 거야. | 25.03.19 22:0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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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니 ㅇㅇ | 25.03.19 22: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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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그 말인거 같은데, 오해 할 거 같드라 | 25.03.19 22:0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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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길어지더라. | 25.03.19 22: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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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티로 봤는데 불만족이면 진짜 문제가 있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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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 그대로 느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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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전까진 몰랐는데 쓰기 시작하니 내 생각보다 실망이 훨씬 컸나봐. | 25.03.19 22:2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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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더니 고통을 가하니 명문이 술술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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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쳐서 줄줄 쓰긴 했는데 술술 읽히긴 했나 모르겠음. | 25.03.19 22: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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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03.19 22:2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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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지 말고 쿠키영상 보고 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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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혁명 | 25.03.20 05:0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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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간과하게 되는가? '올바름' 이기 때문에 그렇고 '정치적' 이기 때문에 그럼 애초에 정치적 올바름이란 워딩 자체가 비꼬는 워딩이었는데, 정확히 그 비꼬는 의도를 따라가버리는거임. 올바르다 여기기에 오만해지고 정치적이기 때문에 편협해지는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정치적 올바름이 목적으로써 이야기하고자 했던 '소수의 가치를 위한 조명' 을 넘어서 '소수를 억압한 외부 다수층, 보편성에 대한 적대' 가 되어버리는거 이 메커니즘은 적대이기 때문에, '나' 와 '적' 사이에 있는 제 3자에게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 이분법적 구도에 참여하기를 강요함. | 25.03.19 22: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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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으로 호평받은 봉준호 감독이 전에 말하길, 영화에 메세지가 있으면 나쁠 게 없지만, 영화의 질적 완성도가 우선이 되어야하지, 그게 우선이면 안된다 했었지. 그러면 싸구려 선전영화처럼 되어버린다고... 복잡한 사상 관계를 떠나서 참 와닿는 이야기였음. | 25.03.19 22: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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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러함. 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가장 큰 문제로 적대성을 꼽는데 이 적대성, 대항관념은 봉준호 감독이 지적한 '우선순위' 에 대한 바를 뒤집어버리거든 그게 '관념' 이다 보니까 옳고, 대항해야 하니까 그걸 무조건 해야 됨 대항관념, 적대성은 '중간' 을 허용하지 않음 그러니까 너가 말했던 '간과하는 것' 이 생기는거고 봉준호감독이 이야기했던 메시지에 대한 우선순위가 뒤집히는거임 | 25.03.19 22:2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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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라
처음부터 욕하려고 보는 영화는 없음. 어디까지나 스스로 보고 제로부터 판단하자는 마음으로 보는건데 결과물이 저랬던거지... | 25.03.19 22: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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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개봉했을걸? | 25.03.19 22:3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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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네 | 25.03.20 02:0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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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줄여서 요약하면 현실에 동화적요소 판타지요소를 넣던게 디즈니였는데 지금은 동화이야기에 현실요소만 넣고 있음 | 25.03.19 23: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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