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스타레일,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붕괴:스타레일 ‘제3장 페나코니’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어벤츄린-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모두에게 주어졌지만 각자 그 답은 평생 찾아야만 한다. 적당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 쯤 다시 흩어지고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했다 느낄 때 쯤 공허함이 밀려오곤 한다.
최근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말을 많이 접하는 것 같다. 코로나 19의 여파가 많이 사그라들었음에도 자살률이 반등하는, 이 실재하는 현상은 그저 ‘개개인이 나약하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 가질 용기로 살아라.’ 같은 근성론으로 때우고 넘어갈 단계는 이미 한참 지나버린 거 같다.
아케론은 공허의 사도다. 나도 전작을 해보거나 세계관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 것은 아닌지라 세세한 설정과 해석까진 모르지만 작품 전체에서 말하는 꿈이라는 상징과 라이덴 ‘보센모리’ 메이 라는 진명을 생각하면 아케론을 통해 이야기하고 보여주는 공허는 죽음 자체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사람의 결말은 정해져있다. 돈이 아무리 많은 자본가든 고치지 못할 병으로 고통을 받는 병상 위의 누군가든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엔딩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라면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사고든 병이든 자의적 선택이든 결국 우린 모두 무로 돌아갈 뿐인데.
뜻대로 되는 것도 별로 없는, 대부분의 시간이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것만 같은 이 삶은 정녕 가치 있는 것이 맞긴 할까.
여기 공허에 모든 것을 빼앗긴 소녀가 있다. 그리곤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앗아간 에이언즈의 사도가 되어버렸다.
감각은 무뎌지고 기억마저 흐릿하다. 사도로서의 힘은 얻었지만 결국 그것을 스스로를 위해 사용할 순 없다. 그녀에게 더 이상 ‘자신’은 없기에.
그럼에도 그녀는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사랑하던 것들, 소중히 하던 사람들을 모두 잃고 끝내 자신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운명에 빠진 그녀가.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다 해도 상관없어. 사람이 바꿀 수 없는 일은 정말 많거든.”
삶이 힘든 이유는 각자 다를 것이다.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해서, 처한 상황을 해결할 힘이 없어서, 혹은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어서 등등.
나도 살면서 나름 많은 일을 겪고 고생도 했지만 나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저 ‘죽는 건 나쁜 거니까 살아야 돼.’ 같은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일 것 같다. 나도 혼자 그런 일을 생각할 때 딱 그랬다. 허울 뿐인 위로와 이해할 수 없는 호소. 너무나도 텅 빈 말들은 오히려 반발심을 일으킬 뿐이었다.
“만약 운명의 주사위의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그것이 죽음이라는 결말이라면...우리는 왜 그것에 맞서야 하는 거지?”
-어벤츄린-
죽고싶다 보단 왜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다음주에 나올 애니메이션의 최신화를 보고 싶으니까 같은 가벼운 것으로 때우려 했지만 점점 그런 거 안 보고 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야 할 이유 같은 걸 주변인들이 슬퍼할 테니까, 어떤 식으로 죽어도 누군가가 치울 때 힘들테니까 같은 것들로 채워나가다가 생각했다. 죽으면 다 끝인데 그런 것들이 이유가 될까?
결국 그런 안타까운 결정을 스스로에게 내리는 사람들 중 일부는 그 때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작은 이유부터 하나하나 잃어가다가 마지막 이유마저 잃어버렸을 때. 그냥 사라지고 싶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 그런 의식의 흐름.
우리는 결국 모두 같은 결말로 나아간다. 죽음. 살아가며 해왔던 것들은 과정에 불과하고 죽음 이후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그럼 정녕 우리의 인생은 정해진 결말에 따라 의미 없는 일일 뿐일까.
“생명은 왜 깊은 잠에 빠지는가?”
페나코니를 여행하며 우리는 ‘생명은 왜 깊은 잠에 빠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각 등장인물들의 답을 듣게 된다.
누군가는 깊은 잠을 죽음으로 해석하고 누군가는 현실에 대한 도피로 해석한다.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선데이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깊은 잠을 선물하고 삶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지려 했고 개척자는 이에 반대하며 각자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고 답한다.
결국 깊은 잠에 빠지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든 끝은 죽음이라는 공허로 이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살아야할까?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도, 소중하게 생각하던 고향도, 스스로의 존재마저 끝임없이 소멸하고 있는 공허함 그 자체인 아케론은 그럼에도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네가 선택한 깊은 잠이 결국 언젠가 깨어나야 할 순간에 불과하다면 다시금 일어나 결국 살아가야 한다.
끝이 정해져 있더라도, 그 안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는 것 또한 많기에.
인생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우리는 지금 겪는 혼란, 역경, 고난 모두를 그저 지나가는 많은 순간들 중 하나로, 연출로 만들 수 있다.
왜냐면 우리의 인생은 죽음이라는 엔딩을 아직 맞이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결말로 향하는 길 위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정말 많아.
그 결말은 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해.”
깊은 잠에 영원히 빠지는 것은 선데이의 말마따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도 있다.
누군가 희생해서 원하는 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완벽한 꿈에 빠지게 해준다면 무엇 하나 맘대로 하기 힘든 현실보다 나을지 모른다.
하지만 고통스럽고 숨차더라도 이런 삶을 해쳐나가는 여정이 모두 평등하게 맞이하는 결말의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바꿀 수 있는 무언가라면.
성공이 아닌 성장을 중요시하고. 위기 연출 하나 없이 맞이하는 클라이맥스만큼 김 빠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환상에 안주하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지루한 꿈보단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나가는 각자의 삶이 더욱 가치 있을 리라고 붕괴: 스타레일은 말한다.
그러니 우리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 진짜 아름다운 엔딩이 여정의 끝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 허무함에 빠지고 지금의 고난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끝을 스스로 정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거면 된다.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걸어가는 여정 자체가 삶의 이유이자 의미이니까.
"그리고 「결말」도... 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해.
그게 바로 「여정」에 담긴 의미야.
그 아름다움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해. 그리고 난......
그것이 우리가 햇빛 아래서 재회할 때까지 「공허」 의 끝에 계속 피어있으리라 믿어."
-라이덴 '보센모리' 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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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의 패배는 그 시점에서 정해진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결국에는 욕망을 억압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그 때문에 폭력과 다를바가 없다. 확실한 행복이건, 불행이건 내 손을 떠난 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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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페나코니 스토리가 좋긴하네요 여러모로 생각해보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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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서면 앉고싶고 앉으면 눕고싶으며 누우면 자고싶다. 채워진 욕망은 다음을 바란다. 선데이는 다음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음이 없기에, 그가 주는 주 0일제란 자신이 선그은 행복에서 영원히 만족하란 뜻이다. 그는 아내를 잃은 노인에게 아내의 환상을 줄 순 있으나,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미래를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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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삶을 바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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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결말이 정해진채 태어나고 시작을 정하지 못한채로 죽어감에도 우리는 여전히 욕망한다 선데이의 정체를 용납할수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욕망하지 못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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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삶을 바라냐고 | 25.02.10 01: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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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결말이 정해진채 태어나고 시작을 정하지 못한채로 죽어감에도 우리는 여전히 욕망한다 선데이의 정체를 용납할수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욕망하지 못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 25.02.10 01:2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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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 서면 앉고싶고 앉으면 눕고싶으며 누우면 자고싶다. 채워진 욕망은 다음을 바란다. 선데이는 다음을 제공하지 못한다. 다음이 없기에, 그가 주는 주 0일제란 자신이 선그은 행복에서 영원히 만족하란 뜻이다. 그는 아내를 잃은 노인에게 아내의 환상을 줄 순 있으나,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에게 미래를 줄 수 없다. | 25.02.10 01: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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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의 패배는 그 시점에서 정해진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결국에는 욕망을 억압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그 때문에 폭력과 다를바가 없다. 확실한 행복이건, 불행이건 내 손을 떠난 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 25.02.10 01:3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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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왜 깊은잠에 빠지는지, 어쨰서 일어날수 밖에 없는지도 명확하다. 더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러니 꿈은 꿈에서 멈출수 밖에. 그런 의미에서 페나코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공감했지만 정작 연출은 선택이 아닌 강제여서 플레이는 좀 짜쳤음. 개척의 의지를 왜 강요하는 건데... | 25.02.10 01:3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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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욕망이라는 관점에서의 해석도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2.2 마지막 연출이 강요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스타레일이 개척자와 은하열차의 의견'만'을 강요한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2.2에서는 선데이를 저지하면서 개척의 의지를 관철하는 대답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지만 페나코니의 이야기는 2.2에서 끝나지 않고 2.3버전의 반디,2.6 버전의 라파와 부트힐 그리고 로빈, 2.7버전의 개심한 선데이를 통해 또 다른 대답을 내놓는 것을 보면 그저 주인공 일행의 의견을 강요한다기 보단 여러 의견 중 하나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2.6버전 마지막에 로빈이 말하는 계속 꾸어야 하는 꿈은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는 욕망을 지지한다는 생각도 들구요. | 25.02.10 09:4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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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페나코니 스토리가 좋긴하네요 여러모로 생각해보게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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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페나코니는 생각할 여지를 많이 남기는 좋은 작품인 거 같습니다! | 25.02.10 09:4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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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삶의 이유이고 그 안에서 그려가는 모든 것들이 여정의 한 부분이라면 비율적으로 작더라도 조금씩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는 게 재밌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 25.02.10 09:4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