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서 별호를 쓰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별호는 남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이름 대신 쓰는 것이다.
복잡하게는 이름을 부르면 안된드는 고대~중세 중국의 사회적 약속 때문이다.
이를 알려면 유교의 관습 중 피휘를 봐야 한다.
피휘는 사람의 본명을 부르지 않는 관습이다.
이름은 효 사상에 입각해 부모(혹은 조부모, 증조부모)가 준 소중한 것이기에 막 사용하면 안되는 것에 해당한다.
본명을 부를 수 있는 건 일반적으로 부모, 스승, 군주 뿐이다. 군사부일체의 가르침에 따라 군주, 스승, 부모을 한 몸처럼 섬겨야 하기 때문.
그래서 가족이나 친척은 어린 시절에는 아호란 다른 이름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전무협이나 여러 창작물에서 마오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마오마오라고 굳이 두번 부르는 게 아호에 해당한다.
본명을 쓸 수 없으니 이름 처럼 써야 할 게 필요하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성인이 되면 편하게 쓸 수 있는 이름 자를 짓는다.
유교에서 성인은 나이가 차는 것 뿐 아니라, 경전에 적힌 여러가지 예법을 모두 배운 사람을 뜻한다.
농부가 쌀을 키울 때를 안다는 의미로 쓰는 "철이 들었다"를 유교식으로 하면 "성인(어른)이 됐다"라고 하는 식이다.
이때부터 자를 쓸 수 있는데, 자는 본명처럼 부모가 주는 것, 스승이 주는 것, 군주가 주는 것, 스스로 짓는 것 등이다.
이런 자와 달리, 완전히 남이 붙여주는 이름도 있다. 이를 통합해서 호라고 한다.
단 호는 관직, 성품, 생애 등을 포괄해서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중국 청백리의 대표이자 신선으로 추앙받는 포청천은
[성씨]포 [본명]증 [자]희인 [시호]효숙 [별호]청천 이다.
그래서 부모나 가까운 친인척은 본명인 포증, 가까운 친구는 성인이 되어 지은 이름 포희인,
관직상 하급자/민초/친하지 않은 사람/공적인 자리에서는 관직명을 붙여 포 대인, 포 부윤이라고 불렀다.
(무협식으로는 남궁 대협(어른), 남궁 소협(아이)와 비슷)
포증 사후에는 그의 공적을 기려 "맑은 하늘 처럼 공명정대했다"란 의미에서 청천이란 별호를 민초가 선물했다.
공문서나 공식적으로 쓰이는 이름은 아니지만, 별명으로 너무 잘 어울려서 일반적으로 포청천이라고 부른다.
무협지에서 "남궁 대협이다" "검치!!!"라고 합창하는 게 이 별호를 부르는 것.
이런 유교적 배경이 무협지에 쓰이는 별호라고 보면 되며, 무협지에서는 일반적으로 네임드=별호라는 매우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판타지에서는 이명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호처럼 별호 역시 무림인의 행적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무협지에 등장하는 광마는 미칠 광에 마귀 마자를 써서 "미친 마귀"정도의 멸칭이다.
사천제일검은 "사천에서 제일 칼 잘 쓰는 사람"이다. 이를 왜곡하면 "촌동네 사천에서나 1등을 논할 수준의 사람" 정도된다.
사천 사람이 사천제일검이라고 부르면 존경의 의미, 큰 도시인 북경이나 안휘 사람이 부르면 멸칭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시정잡배가 아니면 별호에는 왠만하면 지역명을 붙이지 않는다.
여기에 남이 지어줘야 한다는 규칙도 반영되야 한다.
무림의 동도, 세인, 민초가 지어준 별명만 별호로 자칭할 수 있다. 스스로 지은 건 자이기 때문이다.
무협지 초반부에 자주 등장하는 파락호 3인이 "우리는 광주삼협이다 크하하"하는 건 자다.
이후 다른 사람이 "저들은 광주에서 망나니로 소문난 광주삼견일세"라고 설명해 주는 클리셰가 있는데,
여기 쓰인 광주삼견이 별호다.
그래서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본좌는) 안휘에서 온 남궁 모라고 하네. 자는 검망이지만, 무림의 동도들은 나를 검치라고 부른다네"라고 하는 건,
1 나는 유교를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다. 이름을 밝히면 효에 어긋나니 대신 자칭하는 이름과 별명을 알려주겠다
2 너는 내 이름을 알 급이 안된다. 이 말을 이해 못할 정도로 배우지 못했다면 수치를 알고 꺼저라
정도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모든 규칙을 쓰면 복잡하기도 하고, 기억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별호+성+본명 축약해서 쓰는 것이 무협지식 네이밍이라고 결론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IP보기클릭)183.101.***.***
(IP보기클릭)27.35.***.***
비리를 저지른 방태사가 포증이라고 부르는 건 "우리가 남이야?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잖아? 봐줘" 정도의 청탁으로 보면 됨 | 24.10.11 16:3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