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전에서 공격측이 방어측보다 피해가 막심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임
공성 병기로 돌, 불, 시체도 던져대며 최대한 내부나 성벽, 성문에 피해를 주다가
적절한 시기에 궁병과 공성 병기의 엄호를 받은 보병들이 사다리리나 공성탑을 끌고 성벽 한 부분을 점령하거나
충차 같은 것을 이용해 성문을 부셔 틈으로 밀고 들어가 내부를 정리하는 등등 여러 방법이 있어왔음
하지만 위치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불리한 곳에서 시작하는 공격측은 진입하는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밀리는 순간
수비측보다 더 큰 피해만 입고 후퇴해야 하니 공성에서 공격측은 항상 불리했음
근데 투석기 같은 것으로 성벽을 일점사해서 무너트리면 그냥 끝나는 것 아님? 하겠지만
영화나 소설과는 달리 목책이 아닌 제대로 된 성벽을 투석기 만으로 무너트리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진짜로 성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선 수많은 투석기 뿐만 아니라
땅굴을 파서 성벽과 지반을 동시에 약화 시켜야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집중해야 했기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음
거기다 엄청난 양의 돌덩이들을 던져 겨우 성벽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바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음
성벽이 무너져도 그 틈이 생각보다 좁기 때문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는 동시에 무너진 벽의 잔해 때문에
울퉁불퉁한 작은 언덕이 생기는 꼴이라 소설에서 볼 법한 커다란 틈 사이로 드라마틱한 기병의 진입은 커녕
보병들이 잔해를 밟고 올라가는 것 부터가 일이었음
게다가 높은 벽이라는 이점은 사라졌지만 무너진 틈이나 바로 뒤에 바리게이트를 설치해 벽을 만들어서
들어오는 적을 오히려 벽에 가두고 성벽 위에서 활과 돌을 던지면
좁은 틈 때문에 병목 현상으로 진입이 한층 더 어려워진 적에게 더 큰 피해를 강요할 수 있음
이 공성전에 돌풍을 불러온 것이 있으니
바로 대포임
초기의 대포들은 기존의 원거리 공성무기들처럼
땅에 흙이나 나무 토대를 올리고 그 위에 포를 얹는 방식으로 쓰이기 시작했음
기존의 공성병기들은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나무를 벤 후 잘 말리고 목수들이 달려들어 만드느라 시간을 소모해야했고
거기다 주변에 나무를 구할 수 없거나 나무의 질이 떨어지는 환경이라면
멀리서 나무를 공수해야 하는 등 전적으로 현지의 환경에 아주 크게 좌우 되었음
그마저도 못하면 그냥 손을 놓고 포위만해야 하지만 포는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운송 수단과 길만 있으면 어디든 끌고 올 수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땅을 파고 포대를 깔아 방열만 하면 되었기에
기존의 공성병기들 보다 매우 빠른 시간안에 공격이 가능했음
물론 초기였던 사거리와 파괴력은 기존 원거리 공성 병기보다 우월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성벽이나 성문에 원하는 만큼의 큰 피해를 주는 것은 힘들었음
그렇기에 성벽과 성문에 확실한 피해를 주기 위해 거포화가 진행되었고
특히 두각을 들어낸 오스만의 우르반 같은 무지막지하게 큰 공성 대포가 등장하게 됨
( 참고로 워낙 오스만이 유럽의 병자나 당나라 군대로 유명해서 그렇지 거포를 비롯해서 이 당시 서방 최초로
머스킷을 도입해 전열 보병급은 아니지만 화망을 이루는 전술을 사용하는 유럽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화력 덕후임 )
대포들이 커지면서 파괴력과 사거리가 늘어나 더 먼거리에서
더 크고 파괴적인 석환을 발사하여 성벽이나 성문을 박살내버리니 수비측에선 답이 없었음
이전 같으면 일부 성벽이 조금 무너져서 그 틈으로 들어오는 적들에게 피해를 강요하겠지만
대포의 등장으로 성벽을 그냥 다 까부셔버리니 바리게이트고 일방적 출혈 강요고 나발이고 쓸모 없게 되어버림
그렇다고 대포가 완벽한 것은 절대 아니었는데 초기 공성포들은 위력을 높이기 위해
크기를 키우다 보니 장전하는데 한 세월이 걸리고 크기를 키우다 보니 내구도가 약해졌는데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환을 멀리 보내기 위해 꽉꽉 채운 화약의 충격이 커서
공성포가 크면 클수록 4~5번 정도 발사하면 포신이 갈라지기 시작하다 결국 그냥 고물이 됬음
거기다 비싸고 만들기 힘든 화약도 화약이지만 이 당시엔 석환이 쓰였는데 이 석환을 만들기 위해
석공 장인들이 손으로 직접 돌을 깎아 만들어야 해서 포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시간과 인력, 돈이 너무 많이 들었음
거기다 그렇지 않아도 비싼 청동을 마구 부어 만든 거포는
무지막지한 크기 때문에 끌고다니는 것도 일이었기에 여러모로 단점이 많아 거포들은 애물단지 신세를 면치 못했음
여기서 청동 대신 그냥 철을 부어서 쓰면 되지 않나?? 대포 하면 주철 아닌가? 싶지만...
사실 주철 대포는 청동 대포보다 좋지 않았는데 일단 주철은 부식성이 강해
비오는 날에 관리를 잘해주지 못하면 바로 녹이 슬어버리는 문제가 있어서
일단 해군이나 해안포에서 강도 높은 관리가 필수였음
거기다 내구도와 데미지 컨트롤에서 큰 차이를 보였는데
청동 대포는 데미지가 심해지면 쩍쩍 갈라져서 교체와 수리 시기를 알기 쉽고 더 오래 버틸 수 있지만
주철 대포의 경우엔 골로 가기 직전까지 겉으론 멀쩡해서 위험한 상황에서 모르고 발사했다가 포가 폭발할 위험이 컸음
물론 우리가 잘 알듯 결국 청동 대포 대신 주철대포가 그 자리를 차지 했는데
우리가 아는 주철 대포 보급화는 영국이 주도했음
영국은 질 좋은 철이 많은 대신 구리 생산이 엄청 부족했음
때문에 헨리 8세 때 청동 대신 주철 대포에 전력을 다하면서 유럽 전체의 기술자들과 운이 받쳐줘서
( 부식 문제는 남아 있지만 ) 양질의 주철 대포가 뽑히기 시작하면서 주철 대포의 시대가 찾아옴
물론 주철대포가 싸고 많이 뽑을 수 있다곤 하지만 성능의 차이로 보불 전쟁 전까지 청동 대포를 좀 더 선호했음
그렇게 시대는 더이상 비싸고 무겁고 내구도가 약한 애물단지 거포보다는 어느 정도 적당한 화력과 운송의 편의성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일반적인 전투에서도 가져와 쏘기 좋은 편한 밸런스를 고루 갖춘
비교적 소형화된 평사포와 박격포, 구포가 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거포 라는 과도기 거품이 꺼지게 됨
뭐 그렇다고 거포들이 막 사라진 것은 아니고 해안포로 자주 이용하게 되었고 전함의 시대가 오면서 다시 재조명되긴 함
덕분에 화포들은 이전보다 더 싸고 더 빠르고 쉽게 운용이 가능해지면서
공성전에서 더욱 빠르고 공격적으로 밀어 붙였고 곧 아무도 뚫지 못한다는 유명한 요새들이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함
중국을 시작으로 몽골 - 이슬람권 국가들에게 도착해 유럽을 충공깽으로 몰아간 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전을 거치며
중세의 끝을 알리는 폭죽이 된 포와 화약은 유럽에 정착한지 겨우 100년이 안되는 사이에 정말 빠르게 발전함
이제 유럽의 수많은 트리뷰셋과 발리스타를 견디던 수많은 성벽들은 대포 앞에서 무력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대포가 올라오기 힘든 산 같은 곳에 세운 성이 아닌 이상 난공불락이라는 위명은 더이상 먹히지 않게 됨
하지만 공성전의 패러다임은 곧 또다시 바뀌며 새로운 방패가 등장하게 되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듯 성벽에 포를 배치하여 공격측 포대를 요격하기 시작했고
곧 누가 먼저 맞추나 운빨조옷망 포격 요격전으로 희비가 갈리기 시작함
수비측은 성벽이라는 고지와 언제든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두 맹점을 이용해
멀리서 오는 적을 보고 요격하여 적들의 보병들을 혹은 운이 좋다면 공병, 포병과 공성포를 박살내기 시작함
대포를 무력화하면 적이 다른 대포를 끌고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었으며 다가오는 보병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고
공격측은 숲 같은 엄폐한 곳이 없다면 희생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공병을 갈아 빠르게 포대를 만들고 방렬해 최대한 요새포를 노려야 했음
다행히(?) 공격 측에서 성의 포대를 잡게 된다면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수비 측 위치상 더 이상 대응할 수 없게 되니
요새포를 잡을 수 있다면 그 때부터는 천천히 요리를 하면 되었음
( 물론 방어측의 원군이 다가오고 있다면 공격측은 더 다급하게 몰아 붙여야 해야겠지만... )
그렇지만 아무리 대응법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날이 가면 갈수록 포의 기술과 전술이 발전하여
포대나 숲 등 보이지 않거나 단단한 엄폐물을 끼고 숨어서 더 멀리서 공격하니 답이 없었음
이에 대항하기 위해선 결국 거금을 들여 벽을 더 두껍게 만들던가
아예 포가 오지 못하는 산 같은 전략적인 위치에 산성을 쌓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참신한 방법으로 요새를 만들어야 했음
그 참신한 요새가 바로 성형 요새
툭 튀어나온 성벽들은 교차 사격이 가능했기에 총기나 요새포로 서로의 성벽을 지원하는게 가능하며
높이가 낮은 대신 낮은 만큼 흙과 돌로 벽을 더 두껍게 만들 수 있었음
여기서 두가지 포인트를 더해 가공할 위력의 요새로 만들어졌는데
바로 높이가 비슷한 가벽과 내벽 혹은 사진 같은 외부의 보와 벽을 나누고 둘의 각이 맞게 만들어진 것이 포인트
물론 모든 성형 요새가 이렇게 가벽을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가벽을 만들기만 하면 엄청난 방어적 이점이 생겼음
각과 가벽이 있다는 것은 직사로 쏘는 평사포로는 열심히 기도해서 진짜 잘 쏘지 않는 이상
포탄이 앞의 보나 가벽만 치기만하니 안쪽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였음
또한 방어측은 적들은 해자를 넘기 전 사격을 피하기 위해 엎드려도 사선에 전부 노출이 되기 때문에
방어측은 잘 보이게 엎드린 적들의 머리에 사격하기 편해서 공격하는 쪽에선 고스란히 피해를 다 입어야 했음
두번째는 바로 해자로 넓은 해자를 만들어 강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돈 지1랄의 끝판왕들도 왕왕 있음
이건 뭐 설명하지 않아도 진입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진 않겠음
그 외에도 처음부터 두껍게 지어놓거나 아예 물이 흐르는 강이나 습지에 지었기 때문에
대포로 한참 때려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고 보병이 진입하기에도 힘들든 성형 요새들을 선호했음
그럼 공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성형요새 정통적인 공략법은 이럼
성형 요새를 빙 둘러싸는 포 진지와 참호를 만들어 요새포를 무력화하거나 언덕 위에 지었다면
일단 정면의 벽을 최대한 쏴서 최대한 무너뜨려야 했음
그런 다음 요새를 향해 지그재그로 참호를 팜
지그재그로 파는 이유는 일자로 파고 들어가면 요새의 원거리 무기에 노출되고
곧 공격을 받으면 일렬로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가 때문임
지그재그로 파고 들어가다 중간에 초소를 만들어 구나 박격포를 설치해 내부에 마구 쏴 안쪽에 피해를 주고
그런 다음 병력들을 최대한 성벽에 가깝게 판 참호에 배치하고 기습이나 정면 돌파를 하여 요새를 함락시켰음
보기만해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이 작전은 실제로 엄청난 양의 돈과 인력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공격 입장에선 성형 요새를 만나면 머리부터 쥐어 뜯어야 했음
그나마 많은 성형 요새들은 성, 기존 요새들과 달리 높이가 낮고 해자나 외부 보가 없이
언덕에 있더라도 낮게 지어져 있거나
야전에서 방어를 위해 임시로 흙과 목책 등으로 만든 경우도 많기 때문에
차라리 맞지도 않을 평사포로 마구 갈기기 보다는 모든 벽에서 쏟아지는 총 포탄에 의한
큰 피해를 기꺼이 감수하고 보병으로 빠르고 무식하게 들이 박는게 더 빠를 지경이 됨
가끔 기발한 아이디어로 마을 하나 습격해 성형 요새에 들어갈 난민들 만들고 인파에 섞여 숨어 들어가
내부에서 공격하는 기발한 사례도 있지만 그런 것은 소수 사례임
이렇게 수비측이 다시 유리해진 상황을 뒤집은 것이 등장하니
바로 고폭탄, 작렬탄임
직사 화기의 무력화는 곧 곡사 화기의 부흥을 의미했음
사실 그동안 구나 박격포 등의 곡사화기들도 사용되어 왔지만 고폭탄 같은 환에 화약을 넣는 일은 참 힘들었음
이유는 포 안에 화약을 집어 넣었는데 거기에 화약이 가득 든 포탄을 넣어 발사할 때 자폭하는 일이 잦았고
발사에 성공해도 불발하거나 시한 신관이 짧아 공중 폭발하거나 하는 일도 많아서 아직 연구가 많이 필요했었음
또한 자폭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화약도 적게 넣어 위력이 낮았고
기존의 성벽은 철환으로도 충분했기에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음
하지만 평사포로는 도저히 성형 요새나 포가 올라가기 힘든 지형에 있는 성을 뚫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참호를 파거나 공격이나 수비가 만든 가벽의 사각지대에서 숨어서 발사해
내부에 일방적 피해를 주는 박격포나 큰 구포의 중요성이 커지게 됨
그러다보니 포탄 내부에 화약과 덤으로 철편도 넣어 2차 피해를 주는 고폭탄과 작렬탄의 연구가 빠르게 진행됨
고폭탄과 작렬탄이 안정성과 화력이 둘다 잡히자 곡사화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됨
고폭탄의 발전은 곧 성, 요새 내부를 초토화시켰고 재수 없이 화약 창고라도 맞으면 그대로 끝난거나 마찬가지였음
이로써 성형 요새 또한 앞선 성벽들처럼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되어가기 시작함
여기서 또 구포의 대형화가 진행되며 직경과 포탄의 크기도 커지면서
강력한 포탄으로 적의 사거리나 시야 밖에서 안전하게 장거리 사격이 가능해짐
물론 훗날의 발전된 박격포나 곡사포, 야포에 비해 거리, 정확도 차이가 심해지면서 결국 도태되었지만...
tmi로 고폭탄의 안정성과 폭발력이 진화함에 따라 곡사화기에 이어 해군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음
목선이라는 한계 때문에 지상에서보다 더 적은 화약을 사용하거나 좀 더 작은 포를 사용하던 해군은
주로 구멍을 내는 철환이나 인명피해를 최대한 주기 위한 포도탄, 돗대를 부시기 위한 사슬탄 등등을 사용해
근접전에서 물리력으로 해결했지만 고폭탄을 이용해 원거리에서 배를 날려버리기 시작하였음
무울론.. 동판이나 철판으로 선박에 두르거나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철갑선 같은 것이 나온 후엔 고폭탄의 한계 때문에
다시 근접해서 연돌이나 갑판 맞추기 운빨조옷망겜이 다시 시작하긴 했지만 일단 넘어가자
그럼 또 여기서 방패는 무너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님
예시인 섬터 요새
벽돌을 이용한 축성 방식이 등장하면서 또 다시 달라졌는데
재료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충분히 단단하며 비교적 자유롭게 설계와 건설이 가능한 요새를 만들 수 있게 됨
중세 시대부터 일부 성벽들에 구멍을 뚫어 기습적으로 창문을 열고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고 숨던 방식을 이용해
이젠 아예 대포 포대 구멍을 만들어 모든 방향에서 쏠 수 있는 요새들이 등장하게 됨
그리고 구포, 박격포가 공격측에서만 쓰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수비측에서도 당연하게 쓰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성형 요새 공략법으로는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
그리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포를 고정만 할 수 있는 시대에서 벗어나 피벗 마운트라는 무거운 대포를 쉽게 돌리게 해주며
상하 각도까지 조절해줄 수 있게 해주는 부품이 개발되어 특히 해안가에서 배들을 상대로 강력한 위력을 뽐냄
남북전쟁의 첫 전투인 섬터 요새 전투가 아주 좋은 예시임
바다 위에 섬터 요새는 단단한 벽돌 벽과 사방으로 뚫린 포대와 상층에는 피벗 마운트가 달린 직사포가 있고
요새 내부에는 강력한 곡사포도 있어서 배들이 함부로 지나갈 수 없게 되어 한 때 남군의 보급선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함
그렇기에 남군의 모든 해안 포대들은 섬터 요새를 말 그대로 없애버릴 기세로 대포를 마구 쏘았음
작렬탄에 의해 내부의 목조 건물이 불에 타고 해안포의 공격으로 외벽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요새는 무너진 곳 없이 버티고 서 있었고 병력도 완전히 보존할 수 있었음
섬터 요새는 전투 2일만에 항복하게 되는데 제대로 된 보급만 가능하다면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워낙 남군의 화력이 우세하기도 했고 애초에 섬터 요새 자체가 배를 막기 위해 만든 섬 요새인지라
본토의 해안포에 제대로 반격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음
그리고 탄약도 2일의 전투 끝에 전부 소모하기도 해서 더 큰 인명피해를 피하기 위해 항복하게 됨
사상자가 있긴 있었는데 섬터 요새를 향한 남군의 공격으로 생긴 것이 아니고
북군이 항복 의식 하다가 예포가 터져서 최초의 전사자가 생겼으니 벽돌 요새의 그 힘을 가히 체감할 수 있음
이렇게 창과 방패는 끝 나느냐?
이후엔 참호와 기관총, 콘크리트와 야포, 철갑탄과 탱크와 비행기 등등이 있지만
이것은 성과 대포의 이야기니 이만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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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성폭행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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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 경우엔 워낙 산이 많고 적들은 들어왔다고 하면 속전속결을 원했기 때문에 적의 허리를 견제하기 위해 유격대를 꾸려 기회를 노리면서 본대가 모일 대까지 버틸 좋은 산성을 추구 해서 산성이 많음 이는 주 상대가 짧게 치고 빠지는 북방 오랑캐와 왜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임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해 천혜의 요새와 강력한 화력으로 대비를 하는데 이게 적당한 규모의 적을 상대하기엔 좋지만 임진왜란처럼 대규모 드랍이나 병자호란처럼 너무나 빠른 공격에 수도가 쉽게 취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음 고려나 조선이 바보가 아닌지라 계속해서 축성을 연구하고 만들었지만 돈과 인력 동원의 문제로 더 크게 발전하지 못함 일본의 경우엔 거기에도 산이 많기도 했지만 적들이 오는 곳을 강제하며 견고하게 만든 산성을 만드는 것을 선호했음 거기다 적들이 산성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참신하게 지으려는 시도가 많았고 대도시의 경우엔 아주 커다란 해자를 지어 공성전이 벌어지면 적이 들어올 길을 원천 차단하였음 일본의 대포의 경우엔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1. 빠르게 언덕이나 산 위에 요새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목책과 돌만으로 쌓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디자인과 보수엔 좋았지만 오래 사용하기엔 영 메롱했음 2. 산성을 선호하다보니 서양에서 수입한 평사포의 경우 고각으로 발사 할 수 없을 뿐더러 일본의 기술로 구포나 대포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음 3. 운송의 수단인 말의 개량이 더디었고 비리비한데다 길이 워낙 좁고 험해 대도시를 제외하고 산성으로 끌고가기 힘들었음 4. 대포를 쓸 시간과 적절한 장소가 부족했음 뭔 말이냐면 임진왜란 때에 서양의 대포를 쓰려고 사긴 했는데 임진왜란이 생각보다 일찍 터트리는 바람에 서양 대포를 살 전비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음 거기다 내전이 터졌을 때 그 유명한 오사카 전투에서 대량의 대포를 가져와 마구 쏘았는데 그때 말고는 본격적으로 공성용으로 포를 쓴 것이 없다보니 훈련부족과 해자 문제로 기대한것보다 피해를 주지 못함 때문에 대포를 쓸 바에야 그냥 나무 대문이나 돌 벽을 충분히 박살내고 운송하기 편한 조총의 크기를 크게 키운 1~2명이 오오즈츠를 선호하게 되면서 대포를 잘 쓰지 않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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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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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 경우엔 워낙 산이 많고 적들은 들어왔다고 하면 속전속결을 원했기 때문에 적의 허리를 견제하기 위해 유격대를 꾸려 기회를 노리면서 본대가 모일 대까지 버틸 좋은 산성을 추구 해서 산성이 많음 이는 주 상대가 짧게 치고 빠지는 북방 오랑캐와 왜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임 그래서 미리미리 준비해 천혜의 요새와 강력한 화력으로 대비를 하는데 이게 적당한 규모의 적을 상대하기엔 좋지만 임진왜란처럼 대규모 드랍이나 병자호란처럼 너무나 빠른 공격에 수도가 쉽게 취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음 고려나 조선이 바보가 아닌지라 계속해서 축성을 연구하고 만들었지만 돈과 인력 동원의 문제로 더 크게 발전하지 못함 일본의 경우엔 거기에도 산이 많기도 했지만 적들이 오는 곳을 강제하며 견고하게 만든 산성을 만드는 것을 선호했음 거기다 적들이 산성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참신하게 지으려는 시도가 많았고 대도시의 경우엔 아주 커다란 해자를 지어 공성전이 벌어지면 적이 들어올 길을 원천 차단하였음 일본의 대포의 경우엔 몇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1. 빠르게 언덕이나 산 위에 요새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목책과 돌만으로 쌓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디자인과 보수엔 좋았지만 오래 사용하기엔 영 메롱했음 2. 산성을 선호하다보니 서양에서 수입한 평사포의 경우 고각으로 발사 할 수 없을 뿐더러 일본의 기술로 구포나 대포를 만드는데 한계가 있었음 3. 운송의 수단인 말의 개량이 더디었고 비리비한데다 길이 워낙 좁고 험해 대도시를 제외하고 산성으로 끌고가기 힘들었음 4. 대포를 쓸 시간과 적절한 장소가 부족했음 뭔 말이냐면 임진왜란 때에 서양의 대포를 쓰려고 사긴 했는데 임진왜란이 생각보다 일찍 터트리는 바람에 서양 대포를 살 전비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음 거기다 내전이 터졌을 때 그 유명한 오사카 전투에서 대량의 대포를 가져와 마구 쏘았는데 그때 말고는 본격적으로 공성용으로 포를 쓴 것이 없다보니 훈련부족과 해자 문제로 기대한것보다 피해를 주지 못함 때문에 대포를 쓸 바에야 그냥 나무 대문이나 돌 벽을 충분히 박살내고 운송하기 편한 조총의 크기를 크게 키운 1~2명이 오오즈츠를 선호하게 되면서 대포를 잘 쓰지 않게 됨 | 24.04.07 17:2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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