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칼부림 中, 김충선의 서아지 참살. 고일권 작품)
김충선은 조선에 투신한 항왜들 중에서 그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는 1624년 부원수 이괄이 조정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에도 관의 편에 서서 반란을 진압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행록이나 행장, 묘갈비등의 사료뿐 아니라 관찬 정사 기술인 승정원일기에도 기술된 바 이므로 그의 이괄의 난 진압 참전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1
당시 김충선이 관군의 주력과 함께 하며 이괄의 주력군과 교전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괄의 난이 수습 국면에 접어든 뒤서부터 이괄의 휘하에 속해 있었다가 이후 관군의 추포를 피해 남부 지방으로 도주한 패잔병 항왜들을 경상감사 민성휘의 명에 따라 제압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 항왜들이 남쪽으로 도주한 까닭은 아무래도 조선에서의 생존이 반란 참여와 실패로 어려워지게 되자 본국으로 도피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도주한 반란참여 항왜 제압 과정의 자세한 전말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등에 기술이 되어 있지 않으나, 승정원일기에 기술된 바를 보자면 김충선의 조력으로 인하여 조선군이 이들을 상대적으로 큰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모하당문집의 행록에는 이러한 김충선의 항왜 제압 과정이 어느정도 소상히 기술되어 있는데, 행록, 행장, 묘갈비등의 사료의 경우 과장 및 윤색의 가능성으로 인하여 그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 김충선의 행록과 행장 역시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어 실제 정사 서술이나 상황과는 차이가 있는 내용이 눈에 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해당 기록은 어느정도 참고할 만 하다. 특히 '서아지'라는 인물에 얽힌 이야기가 꽤나 소상히 서술되어 있음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웹툰 칼부림 中, 비왜라는 호칭을 언급하는 서아지. 고일권 작품)
이에 따르면 항왜 서아지는 '비왜(飛倭)'라고 불릴 정도로 출중한 무예를 지닌 자로서 그의 용맹이 대단한데다 그가 가진 두 검이 대단하여 조선군이 잡기에 버거워하였다. 일례로 그가 휘하의 항왜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을 경상도의 병사들이 낙동강에서 잡으려 하였으나 서아지는 그것을 돌파하여 도주하는데에 성공했다. 이 때 서아지는 말을 탄 채로 휘하의 항왜들을 영솔하여 조선군을 크게 돌파하였다고 한다.
이에 경상감영에서 같은 항왜이자 서아지를 대적해낼 수 있던 김충선에게 그를 잡게 하니 김충선이 이를 따라 서아지를 잡으려 하였다. 김충선은 서아지가 일본으로 도피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리라 여기고 미리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한 뒤 밀양의 영남루숲 인근에서 그를 맞이했다.
서아지는 김충선을 보고 황급히 도망치려 하였다.2 그러자 김충선은 그를 붙잡고 이 곳에서도 반역자요 일본에서도 반역자로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나 이 곳에서 헤어지기 전에 (옛 동지로서) 술이나 나누자 하였다. 김충선은 서아지에게 독한 술을 연이어 먹이면서도 본인은 술을 마시는 척만 하였고, 그로서 서아지를 취하여 잠들게 한 뒤 자신의 종 대기를 시켜 그가 가진 검을 탈취하게 하였다.
서아지는 잠결에도 자신의 검이 없어진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김충선은 매복시켜둔 병사들로 무기가 없어지고 취하여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서아지를 붙잡았다. 이튿날에 김충선이 서아지의 반역의 죄상을 성토하니 서아지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을 자인하였다. 김충선은 서아지와 그의 휘하 항왜 10여명의 목을 베어 조정에 바쳤다.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크게 치하하며 본래 서아지의 소유였던 땅을 김충선에게 주었으나 김충선은 이를 다시 수어청의 둔전으로 바쳤다고 한다.3
윤색/미화의 기미가 살펴지는 행록기술이며, 실제로 이 행록을 쓴 인물 자체가 김충선의 장남인 김경원이니만큼 그 실상을 의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김충선이 민성휘의 지시를 받들어 이괄의 난의 패잔병, 특히 항왜를 제압하는데에 공훈을 세운 것은 '확실한' 사실이니만큼 이러한 기술을 모두 부정하기도 힘든 문제이다.
무엇이 되었건, 함께 조선에 항복하였으나 한 쪽은 반군의 편에, 한 쪽은 관군의 편에 서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항왜들의 운명은 기구하다고 할 만 하다.
1.승정원일기 인조 6년 음력 4월 23일, 본록 어영청등록
2.서아지가 김충선을 보고 도망치려 하였다는 부분은 행록상에서 그 '비왜' 서아지 조차도 김충선을 두려워 하였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3.모하당문집 권2 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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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가 안된다면 추천 하나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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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이후로 청나라랑 전쟁할 때도 참전했던데 조용히 쉬고싶어도 쉬질 못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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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때 이후로 청나라랑 전쟁할 때도 참전했던데 조용히 쉬고싶어도 쉬질 못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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