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7년 제주도의 김대황/김태황과 고상영등은 제주목사 이상전이 진상하는 제주의 진상마들을 인솔하는 임무를 맡고 배를 타고 본토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어 안남 레 왕조의 영토까지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구휼을 받은 그들은 이후 레 왕조의 국왕 희종의 배려에 따라 쌀과 돈을 하사받았으며 레 왕조 조정으로부터 조선으로 돌려보내질 방법을 제안받았다. 표류로부터 거의 1년여간 이어진 표류-타지 생활 끝에 고상영을 비롯한 표류민들은 우여곡절끝에 1688년 청의 상인 주한원, 선주 진건, 항해사인 고전등과 함께 청으로 향하는 배를 탔고 그해 12월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1
이 표류사건의 주인공 김대황/김태황의 이름은 기록상 앞에서 언급했던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김대황(金大黃)이며 또 하나는 김태황(金泰璜)이다. 비슷한 이름이지만, 이름의 중간 한자가 대(大)이고 끝글자가 누를 황(黃)이냐, 혹은 중간글자가 태(泰)이며 끝글자가 패옥 황(璜)이냐에 갈린다고 볼 수 있다.
김대황/김태황과 고샹영의 표류 사건을 자세히 서술한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에서는 그의 이름을 김대황으로 서술했다. 한편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서술한 송정규의 해외문견록에서는 그의 이름을 김태황으로 서술하였다. 두 기록중 김대황/김태황의 실제 이름과 그 이름에 쓰인 한자와 관련하여 보다 신빙성이 높은 기록은 무엇일까.
탐라문견록과 해외문견록에 실린 해당 사건에 대한 기록간 차이와 각 기록의 전체적인 신뢰성을 세세히 비교하는 것은 힘들지만, 최소한 이름의 경우 필자는 해외문견록의 신빙성이 보다 높다고 판단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해외문견록을 작성한 송정규의 경우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 초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1656년 효종 시기에 태어나 1710년 숙종 시기에 죽었다. 한편 탐라문견록을 저술한 정운경의 경우 그보다 좀 더 후대의 인물이다. 그는 1699년에 태어나 1753년에 죽었다. 거시적 시각으로 볼 때에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차이는 기록의 저술 시기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송정규의 서적 찬술과 정운경의 서적 찬술간의 시기에 20여년 이상의 시간차가 발생하는 것이다.
저술 시기가 실제 사건의 발생 시기와 가깝다고 하여 무조건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명에 관하여서는 오기의 가능성이 보다 줄어든다고 생각된다. 정운경의 기록이 쓰인 시기와 비교하여 송정규의 기록이 쓰인 시기는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기인 1687년~89년에 20여년 이상 근접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송정규의 기록상에서 언급된 이름인 김태황이 김대황/김태황의 실제 이름에 가까울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해당 사건에 대한 짧은 기록이다. 해당 사건이 꽤 큰 규모였던데다가 안남 조정과 청나라까지 연관되어 있던 문제이다보니 조선 조정에서도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의 기록을 보자면 전라감사 권시경의 장계에 그의 이름이 '김태황(金泰璜)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이는 해외문견록의 해당 기록과 일치한다.2
조선 역사의 정사 기본뼈대가 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되기를 장계서 표류자의 이름이 김대황(金大黃)이 아닌 김태황(金泰璜)으로 서술되었다는 것을 보자면 아마도 김대황/김태황의 실제 이름은 김태황일 가능성이 더 높을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해서 이름에 오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문견록과 실록이 모두 해당 인물을 '김태황'으로 서술했다는 것을 보건대 교차적인 파악도 되니 김태황이라는 이름이 실제 '김대황/김태황'의 이름일 가능성이 보다 높아지는 것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여러 사료에서 발견되는 숙종시기 안남에 표류했던 제주인 김대황/김태황의 본명은 김태황이 더 가까울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탐라문견록의 인명 기술 역시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며 다만 해당 기술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술로 파악하는 정도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정운경, 탐라문견록, 정민 역, 휴머니스트, 2008, pp.47~58 참조. 송정규, 해외견문록. 김용태/김새미오 역, 휴머니스트, 2016, pp.28~38 참조
2.조선왕조실록 숙종 15년 음력 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