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6년은 누르하치가 아직 건주를 채 통일하기 전인 시기임과 동시에 누르하치가 빠른 속도로 주변의 적대세력들을 무릎꿇려가며 독보적인 수준의 세력 팽창을 도모하던 시기였다. 이 해 7월 누르하치는 당시까지 본인의 앞을 사사건건 가로막던 세력중 하나인 저천부의 토모호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출병했다. 당시의 누르하치의 세력은 1583년 막 거병했을 당시에 비교하자면 수치상의 비교가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이었고 토모호는 고작 하나의 성에 불과했던지라 누르하치로서는 낙승을 예상할 수 있었다.
누르하치는 토모호에 비해 숫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토모호의 사면을 포위하고 공성을 진행했다. 누르하치의 전략적 역량이나 그의 휘하의 군대의 수준을 생각해 보자면 토모호는 여기서 멸망했어야 정상이었지만, 하늘이 도와 토모호는 '공격을 통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성이 진행되던 도중 번개가 누르하치의 병사들에게 떨어졌고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자 누르하치는 더 이상의 공격을 포기하고 회군을 결정했다.1
하늘이 내린 자연재해가 본인들의 토모호에 대한 공격을 방해한 것에 누르하치 본인과 병사들이 불길함을 느낀 탓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기상조건이 악화되어 공성을 포기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둘 모두 가능성이 있고, 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 역시 크나 아무래도 좀 더 큰 원인은 기록의 맥락상 전자일 가능성이 좀 더 높을 듯 하며, 필자 역시 이전의 글에 그것을 주요 원인으로 기술했다.
이 때 누르하치의 진영에 떨어진 번개로 인해 누르하치는 병사 두 명을 잃었다. 피해는 적었지만 누르하치로서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때 떨어진 번개의 횟수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발생한다. 병사 두 명이 낙뢰로 인해 죽었다고 하자면 번개가 두 차례에 걸쳐 병사들에게 떨어진 것으로 판단하기 쉽고 실제로도 보통은 그렇게 분석되지만, 기록상에서는 번개가 연속해서 떨어졌다거나 2회 이상 떨어졌다는 기술이 보이지 않으며 단지 '번개가 쳐서 병사 두 명이 맞아 죽었다'2라는 기술이나 '폭뢰가 내려쳐 병사 두 명이 죽었다'3는 기술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번개가 복수로 내리치지 않고 한 번의 낙뢰로 인하여 두 명의 병사가 죽었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일단 번개에 의해 지형지물, 요컨대 나무나 성벽, 건물등이 파괴되어 넘어지면서 병사들이 죽는 형태의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문본 사료나 한문본 사료나 모두 번개에 의해 병사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당하여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보건대 번개는 확실하게 병사들에게 직접적으로 떨어졌고 그로 인해 누르하치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번개가 몇 번이 쳤는지는 확실히 파악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료의 기술을 보자면 번개가 연이어 쳤다거나 혹은 복수의 번개가 내려쳤다거나 하는 기술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당시가 공성전이 진행되던 상황이었음을 고려해 보면 병사들간의 간격이 좁은 상태에서 낙뢰가 발생하여 근접해 있던 병사 두 명이 한 차례의 낙뢰에 함께 피해를 입어 죽었을 경우 역시 충분히 고려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한 번의 번개로 두 명이 죽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기상사례상 낙뢰가 연속해서 내려치는 사례가 심심치 않을 뿐더러 보통 한 번의 낙뢰로 인한 사망자는 한 명인 경우가 많은 점, 지휘관인 누르하치가 해당 사태를 보고 사실상 함락할 수 있던 성을 포기하고 그대로 본거지로 회군하여 군대를 재정비할 정도로 사건의 여파가 컸던 점등을 고려해 보건대 연속해서 번개가 쳤고 그로 인해 두 명의 사망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번개가 연속해서 쳤다거나 2회 혹은 그 이상이 쳤다는 사료적 기술은 확실히 없지만, 단순히 번개가 쳤고 그로 인해 두 명의 죽었다는 기술만으로도 사건의 설명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러한 기술을 생략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료적 한계로 인해 토모호 전투 당시의 낙뢰의 횟수에 대해서는 두 가능성, 즉슨 누르하치의 진영에 번개가 한 번 떨어졌고 그로 인해 두 명의 병사가 죽었을 가능성과 누르하치의 진영에 번개가 2회 이상 쳤고 그로 인해 2명의 병사가 각각 낙뢰를 맞고 죽었을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유념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당시 토모호 전투에 대한 상황은 어느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당시의 기상은 누르하치로 하여금 '회군'을 마음먹게 할 정도로 누르하치와 그의 군대의 사기를 깎아냈고 그로서 토모호는 '전투를 통한 함락'이라는 최악의 복속형태는 저지할 수 있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토모호는 누르하치에게 복속되긴 했으나, 그 복속은 누르하치에게 항복을 하는 형태로 이루어 졌다.4 누르하치를 상대로 몇 번이고 공격을 했던 세력치고는 비교적 온건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1.만주실록, 청태조무황제실록 병술년 음력 7월.
2.만주실록 위와 동일
3.무황제실록 위와 동일
4.청태조고황제실록 병술년 음력 7월, 上復率兵往招撫之, 下其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