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부제 : 후금 최고위 정치지도자 4대 버일러의 임명 시기 추론
4대 버일러(duin amba beile), 한자로 사대패륵(四大貝勒)이라고 칭해지는 후금의 4명의 버일러들은 후금의 최고위 군주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누르하치의 아들, 혹은 조카로서 저마다 많은 전공과 기반지지세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혈연구조상 절대적인 권위를 차지하고 있던 아마 한(ama han, 아버지 한) 누르하치를 제외하고서는 후금내에서 무소불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장유구조상 제 1번순위의 누르하치의 차남 다이샨부터 시작하여 나이순서로 누르하치의 조카 아민, 누르하치의 오남 망굴타이, 누르하치의 팔남 홍타이지순으로 이어졌으며 다이샨은 암바 버일러/대 버일러, 아민은 자친 버일러, 망굴타이는 이라치 버일러, 홍타이지는 두이치 버일러로서의 직함으로 호칭되었다. 하지만 암바 버일러란 그들에 대한 통칭이기도 하였기에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들이 언제쯤 4대 버일러로서의 위치와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태조고황제실록의 누르하치의 겅기연 한 즉위에 관한 서술을 살펴보자면 여기서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는 즉위식 거행 이전에 이미 4대 버일러로서 호칭되고 있는 것 처럼 서술되어 있다.1이를 보자면 4대 버일러가 마치 겅기연 한 즉위 이전, 즉슨 팔기 체제가 성립된 1615년에 성립된 것과 같이 보인다.
팔기 체제의 확립에 따라 팔기에 대한 호쇼이 버일러의 분봉이 일차적으로 매듭지어지고, 그 호쇼이 버일러들 중 두두를 제외한 네 명이 4대 버일러로 선임되었기 때문에 1615년에 4대 버일러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시선은 일견 타당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1615년에 4대 버일러가 이미 성립되고, 4대 버일러가 성립된 이후에 누르하치가 겅기연 한으로 즉위하진 않았을 것 같다. 고황제실록에 서술되어 있는 즉위식 상에서 4대 버일러가 즉위식 이전에 미리 언급된 것은 아마도 당시 각 구사를 이끌고 누르하치 추대에 앞장선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를 4대 버일러로 소급 서술한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이러한 실록상 직함의 소급 적용의 사례의 경우 4대 버일러만 있는 것은 아니고, 밬시에 대한 '비트허시'직함 소급 적용과 같은 사례도 있기 때문에 타당성이 존재한다.2
보다 자세한 근거를 살펴보자. 청태종문황제실록의 1권을 보자면 누르하치가 천명 원년(1616년)에 다이샨, 아민, 망굴타이, 홍타이지등 4대 버일러를 임명하고 국정의 공동기무를 맡겼다고 한다.3 청사고의 태조본기를 살펴보자면 여기서는 좀 더 자세한 시기가 명시되어 있다. 청사고에선 1616년 정월에 다이샨을 위시로 한 4인이 4대 버일러로 임명되었음이 명시되어 있다.4이러한 서술을 보건대 누르하치는 자신이 겅기연 한으로서 즉위한 다음에 거의 곧바로 호쇼이 버일러 다섯 명 중 네 명을 4대 버일러로 임명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비록 확실한 일자가 서술되어 있는 기록은 필자로서는 찾지 못했으나, 현재 파악한 기록들을 통해 유추하자면 4대 버일러가 봉해진 시기는 아마도 겅기연 한 즉위식이 있었던 당일로 추정된다. 새해를 기념한 즉위식에서 호쇼이 버일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더니만큼 그들에 대한 봉작을 내리는 것을 당일의 즉위식에 바로 연이어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합당하고, 또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혹은 겅기연 한에 즉위하기 전의 동일(정월 1일)에, 먼저 4대 버일러에 대한 임명을 선행하여 진행하고 그 이후 자신에 대한 즉위식을 진행했을 가능성도 있다. 비록 이러한 순서의 즉위식 진행은 일부 사료와 일치하지 않게되나 또 일부 사료와 맞물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아무래도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추영이 소유하고 있던 구사인 백기의 분할 이후 그 구사중 하나를 물려받은 추영의 장남 두두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 역시 구사를 소유했으므로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째서 5대패륵(sunja amba beile)가 아니라 4대패륵(duin amba beile)가 된 것일까.
비록 구사를 물려받았다고는 하나, 부친인 추영이 반역혐의로 위리안치된 후 처형된 상황에서 그의 아들인 두두가 저들 사이에 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5 아민의 부친 슈르가치야 후금의 입장서 '공식적으로'는 죄를 용서받은 뒤 죽었으나 추영은 빼도박도 못하게 처형을 당한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장남인 두두가 최고위 버일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무리였다.
뭣보다도 두두는 위의 네 명과 항렬이 같지도 않았다. 다이샨, 망굴타이, 홍타이지는 모두 누르하치의 아들이었고 아민은 슈르가치의 아들이자 누르하치의 조카였다. 이들은 비록 나이차이가 있긴 하지만 왕실 항렬상 모두 동일항렬이었다. 하지만 두두는 추영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항렬상 아래였다. 두두에게 있어 다이샨, 망굴타이, 홍타이지는 숙부였으며 아민은 당숙이었다. 아마도 추영이 공식적으로'죄를 용서받고' 죽었다고 하더라도 두두가 저들과 동렬에 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이후 홍타이지의 아들 호오거가 홍타이지의 동생 도르곤, 도도등과 동렬에 섰던 전례를 생각해 보건대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터지만 그것은 홍타이지가 한/황제였고 호오거가 그의 장남이었던 데다가 연배상 오히려 도르곤을 능가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므로, 두두의 경우에 해당되진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누르하치가 겅기연 한에 즉위한 직후 각 구사의 소유주들 다섯 명중 추영의 아들이면서 항렬이 밀린 두두를 제외한 네 명에게 4대 버일러의 직함을 준 것으로 판단한다. 대부분의 사료들이 누르하치가 겅기연 한에 즉위한 이후 4대 버일러를 임명했다고 보고 있으며, 학자들 역시도 해당 견해에 찬성하고 있으므로 추가적인 사료가 파악되지 않는 이상 이 논지에는 변화가 없을 듯 하다.
1.청태조고황제실록 천명 원년 음력 1월 1일
2.이에 관하여서는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8619077 참조
3.청태종문황제실록 권1
4.청사고 권 1 태조본기 천명 원년
5.구만주당 갑묘(을묘)년 음력 8월 22일
---
후금 정치글

(IP보기클릭)39.7.***.***
(IP보기클릭)106.251.***.***
하지만 그게 용어인걸. | 23.03.07 01:3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