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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기타] 후금 건국사)200편 : 1617년 1월 코르친 왕공 밍간 방문-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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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보기클릭)114.204.***.***

부인까지 끌고간건 신기하네. 만주족 풍습은그런가보네
23.02.14 20:43

(IP보기클릭)106.251.***.***

828
사실 부인까지 대동한 대규모 접견은 글에서도 언급했듯 누르하치가 상당히 성의를 보인거. | 23.02.14 20:44 | | |

(IP보기클릭)114.204.***.***

미하엘 세턴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끼리 소풍왔냐고 받아들일수도있자나. 저게 성의로 보이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밑바탕이 있어야하지싶어서. | 23.02.14 20:45 | | |

(IP보기클릭)106.251.***.***

828
보통 다른 문화권에서도 자신의 아들들(왕공 버일러), 왕비를 대동하고 100리까지 나서서 맞이하는 건 어마어마한 대우 아닌가 싶은데... | 23.02.14 20:46 | | |

(IP보기클릭)114.204.***.***

미하엘 세턴
생각해보니 그렇기도하네. 아무리 공식행사고 여성이라해도 왕비면 그게맞겟다 | 23.02.14 20:49 | | |

(IP보기클릭)106.254.***.***


갓-역사 컨텐츠 역시 단순히 마중 나가는것도 많은 외교적 계산이 필요하네요
23.02.14 21:00

(IP보기클릭)114.207.***.***

코르친 시조가 칭기즈칸 동생인 주치 카사르와 그 후예라는데 그럼 코르친부도 동방왕가로써 몽골 내부에서 큰 권위를 가진 편이었음?
23.02.14 21:01

(IP보기클릭)106.251.***.***

루리웹-8601576818
차하르와 칼카계 세력들에 비해 아무래도 중간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신흥세력인 후금의 탄생이 오히려 코르친으로서도 이득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에 코르친도 후금과의 외교에 적극적이었음. 물론 중간에 어긋나는 일이 없진 않았지만 그걸 다 설명하자면 후금 건국사를 꽤 오래토록 연재해야 다룰 수 있을 거 같고. | 23.02.14 21:09 | | |

(IP보기클릭)114.207.***.***

미하엘 세턴
투메드 알탄 칸이 경술변까지 터트려놨는데도 대칸 달지 못해서 다얀 칸이 만들어놓은 몽골 6투멘 분열되었다고 하던디 것도 내몽골은 내몽골끼리 외몽골은 외몽골끼리 갈라진거? 아니면 내몽골 외몽골 대표? 세력이 칼카부와 차하르부인거? | 23.02.14 21:14 | | |

(IP보기클릭)106.251.***.***

루리웹-8601576818
사실 알탄 이전에도 몽골의 투멘들은 늘 대칸의 권위 아래에서 수면밑 경쟁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함. 물론 각자도생으로 모든 투멘들이 모든 투멘들에 대하여 싸우는 약육강식의 상황이라기 보다는 차하르를 중심으로 하는 좌익과 알탄으로 대표되는 투메드계 중심 우익계가 빈번히 충돌했는데 여기서 대칸은 좌익계의 차하르 혈통이었으나 아무래도 알탄 이후 우익의 강력한 반동에 대해 견제하고 권위를 되찾으려는 입장이었고. 몽골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데다가 댓글로 빠르게 답변하기에는 이 정도가 한계일듯. | 23.02.14 21:23 | | |

(IP보기클릭)114.207.***.***

미하엘 세턴
ㅇㅎㅇㅎ ㄳㄳ 머 쨌든 몽골 몰락은 결국 베이징 못따서 그런거구만 | 23.02.14 21:2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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