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출처 : 칼부림
1617년 음력 1월 누르하치는 코르친 좌익의 수장중 한 명인 밍간이 후금을 직접 방문하가 위해 예물을 가져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대해 누르하치는 자신의 동생, 아들, 조카, 부인들을 내포한 접견단을 구성하였고, 그 접견단을 스스로 이끌어 무려 허투 알라로부터 1백리 밖에서 밍간을 맞이하는 접견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누르하치로서는 최고의 예우를 보이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밍간의 방문 당시의 둘의 관계를 단순히 갑을관계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누르하치가 자신을 방문하는 밍간에 대해 이렇게 극진한 성의를 보이려 한 까닭은 밍간이 후금을 방문하려 한 이유와 마찬가지로 복합적 성격을 띄고 있다. 첫째로, 밍간의 위치였다. 이전까지 후금을 방문했던 몽골계 왕공들은 대부분 세력 수장의 아들들이었다. 바유트의 엉거더르, 자루트의 상투, 코르친의 상가르자이나 일두치, 하탄은 모두 세력 수장이 아니고 그보다 급이 낮은 이들이었다. 하지만 밍간은 세력의 수장이었다. 그것도 약소 세력의 수장이 아니라 여전히 영향력 있는 세력인 코르친의 수장중 한 명이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인물을 단순히 성에서 접견할 수는 없는 문제였고, 그렇기에 누르하치는 최초로 도성을 나서서 그를 접견, 후대하고자 했다.
밍간이라는 인물의 지위와 몽골 세계에서의 위치 때문만으로 누르하치가 이러한 예를 보인 것은 아니다. 이 이후에 밍간에 필적하는 위치에 있는 인물들의 방문 역시 몇 번이고 있었으나, 그렇다 하여도 후금의 수장이 무려 1백리나 나아가 접견하는 일은 존재치 않았다. 누르하치가 밍간을 무려 1백리나 나아가 맞이한 것은 당시 누르하치 역시 코르친과의 관계 진전을 무척이나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누르하치는 자신과 자신의 나라의 권위가 명나라에 의해 무시되고, 여허에 대한 병합 역시도 사실상 명과의 충돌을 각오하거나 혹은 명과의 충돌이 선행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요동순무 이유한은 비록 어느 정도 양보는 했을 지언정 월경인 살해 문제에 대하여 누르하치에게 책임을 인정케 했다.1여허에 대한 명나라의 지원과 공조 체제는 변함이 없었다. 점점 대후금 압박이 거세어지는 상황에서 누르하치는 점차 명을 상대로 한 도전이 필수불가결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몽골과의 연대는 필수적이었다. 명나라와 전쟁을 하게 된다면 그 전쟁에서 우군의 조력은 필수적이었는데, 거기서 가장 가능성 높은 조력자는 몽골계 세력들이었다.
명나라와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몽골과의 외교관계 진전은 고립의 탈출에 있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침 코르친 좌익의 수장중 한 명인 유력자 밍간이 허투 알라를 예방한다는 것은 희소식중의 희소식이었다. 밍간은 후금에게 있어서는 동맹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중 한 명이었다. 이미 정략혼 관계가 구축된데다가 사절 교류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누르하치는 밍간을 잘 접대하여 협력 관계를 확실히 맺고자 했다.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접견단을 구성하고 스스로도 1백리나 나아가 그를 접견하는 성의를 보이고자 했다.
단순히 코르친과의 외교 관계 진전과 그로 말미암은 코르친 좌익과의 동맹 관계 구축만이 누르하치가 노리는 것이 아니었다. 누르하치는 밍간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을 대외적으로 선전하여, 그것을 다른 몽골 세력-요컨대 바유트등의 칼카 5부 세력과과의 협력 관계 구축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코르친과의 동맹은 물론 중요한 것이었으나 코르친 세력 하나와의 관계 구축과 연대만으로는 불안한 면이 존재했다. 다른 몽골 세력들, 특히 자루트, 바유트, 옹기라트, 바린, 우지예트로 이루어진 내 칼카 5부 연맹과의 연대는 당시 후금으로서는 필수 불가결했다. 누르하치는 이들 세력과의 관계 진전을 위해 자루트와 정략혼 관계를 구축하고2 엉거더르와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하지만 누르하치는 고작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밍간을 융숭히 대접하면서 몽골 각부 수장들이 후금과 연대할 시 후금으로부터 받을 대접, 그리고 후금의 존중 의사를 알리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들을 후금의 편으로 회유코자 했다고 판단된다. 하나의 세력과 그 수장을 융숭히 대접하여 다른 세력들 역시도 후금에 접근케 하는 파급 효과를 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복합적 이유들로 말미암아 누르하치는 밍간을 허투 알라로부터 1백여리 떨어진 풀기얀까지 나아가 이틀간의 야영을 불사하며 그를 기다리는 성의를 보였다. 그리고 음력 1월 10일 마침내 밍간이 대대적인 사절단과 더불어 풀기얀에 도착하자 말위에서 껴안는 포견례를 진행하고 뒤이어 큰 연회를 베풀었다.3 이 때 누르하치가 밍간을 말 위에서 껴안았다는 것은 누르하치가 밍간을 자신과 동격으로 대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웹툰 칼부림에서 묘사되는 포견, 위의 대상은 코르친 우익 수장 오오바, 그리고 누르하치의 오남 망굴타이다.)
기록을 살펴보자면 누르하치와 밍간의 직접적인 대면은 1593년의 전쟁 이후로 처음이었다. 1593년에 있었던 9부 전쟁 이후로 건주-후금과 밍간 산하 코르친 양측은 서로간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정략혼 관계를 구축하는 등 꾸준히 외교적 관계를 진전시켜 왔으나 지도자들간에는 서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누르하치와 밍간은 25년만에 다시 만났다.
1.관련글은 이전편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6558191?search_type=subject&search_key=%ED%9B%84%EA%B8%88참조
2.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58227888 참조
3.만문노당 천명 2년 음력 1월 10일, 청태조고황제실록 천명 2년 음력 1월 1일
200편인데 실례가 되더라도 베스트 함 보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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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인까지 대동한 대규모 접견은 글에서도 언급했듯 누르하치가 상당히 성의를 보인거. | 23.02.14 20:4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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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에 따라서는 가족끼리 소풍왔냐고 받아들일수도있자나. 저게 성의로 보이려면 어느 정도 문화적 밑바탕이 있어야하지싶어서. | 23.02.14 20:4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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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다른 문화권에서도 자신의 아들들(왕공 버일러), 왕비를 대동하고 100리까지 나서서 맞이하는 건 어마어마한 대우 아닌가 싶은데... | 23.02.14 20:4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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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그렇기도하네. 아무리 공식행사고 여성이라해도 왕비면 그게맞겟다 | 23.02.14 20:4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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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역사 컨텐츠 역시 단순히 마중 나가는것도 많은 외교적 계산이 필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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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하르와 칼카계 세력들에 비해 아무래도 중간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는데 덕분에 신흥세력인 후금의 탄생이 오히려 코르친으로서도 이득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에 코르친도 후금과의 외교에 적극적이었음. 물론 중간에 어긋나는 일이 없진 않았지만 그걸 다 설명하자면 후금 건국사를 꽤 오래토록 연재해야 다룰 수 있을 거 같고. | 23.02.14 21:0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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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메드 알탄 칸이 경술변까지 터트려놨는데도 대칸 달지 못해서 다얀 칸이 만들어놓은 몽골 6투멘 분열되었다고 하던디 것도 내몽골은 내몽골끼리 외몽골은 외몽골끼리 갈라진거? 아니면 내몽골 외몽골 대표? 세력이 칼카부와 차하르부인거? | 23.02.14 21: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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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알탄 이전에도 몽골의 투멘들은 늘 대칸의 권위 아래에서 수면밑 경쟁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함. 물론 각자도생으로 모든 투멘들이 모든 투멘들에 대하여 싸우는 약육강식의 상황이라기 보다는 차하르를 중심으로 하는 좌익과 알탄으로 대표되는 투메드계 중심 우익계가 빈번히 충돌했는데 여기서 대칸은 좌익계의 차하르 혈통이었으나 아무래도 알탄 이후 우익의 강력한 반동에 대해 견제하고 권위를 되찾으려는 입장이었고. 몽골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데다가 댓글로 빠르게 답변하기에는 이 정도가 한계일듯. | 23.02.14 21:2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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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ㅎㅇㅎ ㄳㄳ 머 쨌든 몽골 몰락은 결국 베이징 못따서 그런거구만 | 23.02.14 21:2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