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꽤나 인텔리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에서 명동성당 옆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고 졸업까지 했다. 배우 김영옥과 우리 할머니가 동기다.
아마 그당시 교육의 실상이나 남녀차별을 보면 할머니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모든 것이 틀어졌다. 할머니는 폭격을 당해 지나가던 UN군이 구해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를 큰 상처를 입었고, 할머니와 가족들은 생이별을 했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에 부사관으로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역을 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결혼을 하고 장사를 시작한다.
아빠가 회고하기로는 그 당시에 장사의 규모가 꽤 컸다고 한다. 그 당시 공무원 월급의 몇 배는 돈이 일주일만에 왔다갔다고 했다.
장사가 망하기도 해서 아빠랑 작은아빠, 큰고모랑 작은고모가 다같이 단칸방에 나앉은 적도 있었지만, 어쨌건 할아버지는 수완이 있었기에 빈손에서 시작해서 단독주택 하나 마련할 정도의 부를 쌓아서 아빠에게 줬다.
그리고 아빠. 우리 아빠는 시발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작은아빠피셜로 우리 아빠 정말 똑똑하댄다.
아빠가 먼지가 잔뜩 묻은 파일철에서 꺼내온 시험지에는 수랑 우밖에 없었다.
아빠는 한예종 연희과를 수석으로 들어갔다. 아빠가 말하기론 '김덕수 선생님이 아빠 교수 만들어준다고 했어' 라고 했다.
집에 있는 한예종 요강을 보면 뭔가 종이 재질도 낡은게 아주 신기했다. 그 옆에는 굿과 관련된 전공서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아빠는 교수가 아니다. 아빠가 말하기로는 자기는 큰 일엔 뜻이 없고, 교수 중에선 자기합리화에 찌든 드러운 인간이 많아서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는 이랬다. 그 당시 IMF가 터졌고,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쓰러져서 아빠가 일을 안 하면 온 가족이 굶는 상황이었댄다.
그렇게 아빠는 한예종을 자퇴한다.
아무리 내가 힘들어도 그렇게나 힘들고 울화가 치밀어도 그렇게나 치밀까.
그건 그거고 아빠는 나는 시발 나만의 길을 간다 해서 앨범 4개를 프로듀싱하고 국악한마당에도 몇번 나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아빠가 앨범 작업을 하러 서울까지 갔다가 밤을 새고 새벽 3시쯤에 들어오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늦게까지 일하다 집에 오니 애가 잠도 안자고 자기 기다리며 엉엉 우는 기분은 어떨까.
남이섬에서 공연도 여러번 하고, 원래 우리 지역에서만 공연했는데 더 잘나가서 원주에서도 수원에서도 공연하고. 난 아빠가 공연할 때마다 그런 아빠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앨범이 완성되고 나서 아빠가 공연장에서 CD를 파는 걸 구경했던 기억도 나고, 내가 홍보를 하고 싶은 마음에 아빠한테 부탁해서 CD를 몇개 얻어다가 선생님들한테 돌렸던 기억도 난다.
엄마. 엄마는 잘사는 집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당시 양복점을 해서 형편이 좋았다고 했다.
양복점 하다가 세탁소를 하고, 유증기를 몇십년을 맡으시다 보니 여든이 넘는 나이에 폐암에 걸려서 돌아가셨다. 올해 초의 일이다.
엄마는 자기가 말하기를 머리가 안 좋다고 했다. 초등학교때 숙제는 큰이모한테 떠넘겼다고 했다.
아빠가 한예종을 수석으로 들어갔다면 엄마는 나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대학교를 나왔다.
외할아버지가 공부 못 하고 다녔던 것에 대한 한이 있어가지고 엄마더러 공부좀 하라고 들들 볶았댄다.
엄마는 공부를 하는 대신 환경 쪽 일을 택했다. 이걸 환경 쪽 일이라고 하는게 맞을진 모르겠지만.
우리 지역에 제주 올렛길처럼 도보로 걷는 길을 조성하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을 초청해서 다같이 길을 걷는 행사를 개최했다.
그 행사는 연례행사처럼 이어졌고, 엄마는 나중에 가선 그 길을 관리하는 단체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그걸 계기로 무슨무슨 조정위원도 되고,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도 나가고, 원전관련 자문위원으로도 나가고 아무튼 많이 했다.
환경부 차관한테 곶감도 받고 언급하면 북유게감인 사람한테 달력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욕심이 생기지. 엄마가 한 7년전인가부터 박사 한다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에 박사를 땄다.
나는 6년이 공익가니 땡 학교가니 땡 하니 지났는데 엄마는 그새 박사가 되었다.
우린 삼겹살집에 가서 조촐하게 소주와 삼겹살로 파티를 했다.
아마 달고 있는 직함은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지 않을까 싶다.
한 가정의 연대기는 다 이만큼 드라마틱하겠지?
근데 난 한게 없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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