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북부 창고(el deposito norte)
로스 메쎄도레스(Los Mecedores), 카라카스, 베네수엘라
계속 말없이 듣고만 있던
사쿠라바 잇토키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 출산....이요?”
“네.
출산을 하게 되면 능력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게 저의 제한조건이에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잇토키는
앤 챔버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짓말의 징후도
잇토키의 감각에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잇토키에게는
그녀의 말이 이질적으로 와 닿았다.
잇토키 자신도 능력을 가진,
저들이 말하는 기프티드이고,
본인 역시
능력이 발현되던 순간
자연히 알게 된
발현조건, 유지조건, 제한조건이 있었다.
다만
각 조건의 성격은 달랐다.
앤 챔버가 말해준
그녀의 조건들과
잇토키의 조건은
성격이 너무 상이했다.
그렇기에
잇토키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선뜻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 부분만은
삼인위도 전대 삼인위도 모르는 부분이었으니.......
그것은
오직 본인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도
자신처럼 똑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득이었다.
잇토키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앤 챔버의 말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두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능력자,
기프티드들은
잇토키,
그리고 앤 챔버와 마찬가지로
발현, 유지, 제한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조건들은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무작위적인 것일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 능력이 생기는지,
능력과 조건과의 상관관계라든지,
어떻게 하면
그 능력을 일반인들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등은
잇토키에게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백금산에서 접촉한 그 개자식이자
자신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그리고
삼인위의 최종 목표물이기도 한
그를
호위했던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서용식이
어떤 신분으로 바꿨는지,
지금 어디 있는지,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는지 뿐이었다.
앤 챔버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동안 생각해온,
자신과 같은 능력자가 더 있을수도 있다는 막연한 추측이
사실임을 알았고,
마찬가지로
자신처럼 특별한 능력을 지녔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던
그 개자식이자
자신과 삼인위의 최종 목표물이자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도
능력자,
기프티드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놈도
유지나 제한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괴물 같은 그놈에게도
약점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먼저 그 조건들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 조건들이
무작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앤 챔버의 경우처럼
각 조건들이
마약성분의 체내 축적,
하루 210ml의 액체흡입이라는 유지조건,
출산이라는 제한 조건처럼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힘들게 세 조건 중 하나를 알아낸다 하더라도
다른 조건들을 유추할 수 없다.
잇토키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결론이었다.
“....... 다른 기프티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지요?”
“네.”
앤 챔버가 말했다.
“하나만 더 묻지요.”
잇토키가 말했다.
앤 챔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당신의 조건들을 말해주는 거지요?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 텐데요.”
잇토키는
이제
그녀가 가진 카드를
전부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것보다 더 특별한, 중요한 정보는 없을 것이다.
제한조건을 방패로
지켜야 하는 정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다만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비밀들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녀가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그저 순진하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넘겨버리기엔
그녀가 스스로 말한 정보는
그녀의 목숨을
잇토키에게 맡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요.”
앤이 말했다.
“베르나를....
그 아이를 구해주는 조건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으니까.
그 아이가 이 능력보다 더 중요하니까.”
잇토키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알아요.
미국이... 미국이 날 보호하고 있는 이유는
내가 기프티드라서 그런 것임을.
이 능력을.......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저주받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만약 내게..... 이 능력이 없었다면.....”
앤 챔버가 고개를 돌렸다.
그 눈이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잇토키는
그녀가
동생과 마지막 놀이를 나갔던
그 언덕을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앤 챔버의 눈이
다시 잇토키를 향했다.
“평생을
그 사실을 부정하고 살았어요.
내가 내 손으로
동생을 죽게 만든 그 사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살았어요.
그리고
이 능력을 바탕으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동네에서
경제적으로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미국 정부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제가 행복했을까요?
동생을 죽게 만든 이 능력으로
지금 같은 삶을 살 수 있어서 행복했을까요?
기프티드?
아니. 커지드(cursed)에요.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요.
이 능력은 저주에요.”
저주라는 그녀의 말에
잇토키도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저주받은 이 능력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지워버리고 싶어요.
이 몸에서 뜯어내 버리고 싶어요.
출산?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애라도 가지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데.......”
잇토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 둘? 스물 셋?
“알아요.
베르나는 힐베르타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이 능력과 바꿔서
그 아일 구할 수 있다면,
이런 능력 따윈 얼마든지 버릴 수 있어요.
나는 세계를 지키는 히어로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아요.
그저...... 그저......”
그녀가 말을 멈췄다.
격앙된 자신을 진정시키려는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주먹을 꼭 쥔 채였다.
잇토키는
도밍게즈의 부하가 가져다 준
탁자 위의 생수병을 집어 들어
그녀에게 건넸다.
앤 챔버는
그 생수병을 받아 들어 뚜껑을 열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미안해요.......”
잇토키는
그녀가 무엇을 미안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당신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이런 것이 아니겠죠?
미안해요.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고작 이 정도... 뿐이어서....”
앤 챔버가
고작이라고 말했던 정보에
가격을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
지금 들은 정보들을
CIA에 다른 곳에 알리지 않을 테니
얼마를 내겠냐고 물어보면 얼마를 줄까?
베르나라는
빈민촌 아이의 목숨보다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금전적 가치를 가진 기프티드의 정보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다수일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어른스러운 사고과정이라고.
소보다 대를 중히 여기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그리고
앤 챔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감성적이라느니,
현실을 도외시한다느니,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한다느니 말할 것이다.
“고작 그 정도 뿐이군요.”
잇토키가 말했다.
생수병을 손에 들고
바닥을 보고 있던
앤 챔버가
고개를 들고는
잇토키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소년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고작 이 정도의 정보로는
베르나를 구해주지 못하겠다고 하려는 것일까?
베르나를 구하려면
뭔가를 더 내놓으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똑똑.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소리가 들린 문을 바라보자
곧 문이 열리고
도밍게즈의 부하 한 사람이 들어와 말했다.
“소령님이 모시고 오랍니다.”
잇토키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앤은
의자에 앉은 채
멍하니
그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문 앞까지 걸어간 잇토키가
뒤돌아서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앤 챔버에게 말했다.
“네?”
“베르나를 구하러 가야지요.”
잇토키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나갔다.
잠시 후
앤 챔버는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나
달려가
막 닫히려는 문을 잡고 열었다.
그녀의 눈에
복도를 걸어가는 잇토키의
누가 보기에도
평범한 소년의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넓은 등이 들어왔다.
본문
[연재] 유니콘 프로젝트 3 독립닌자요원 잇토키 (180) [2]
2023.04.07 (00: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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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니는 일본에서도 잘 모르는데...... 대단하십니다!!!!! | 23.04.07 19: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