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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덜컹”
셔터가 흔들리는 소리에 태린은 잠에서 깨서 도끼를 집어들었다. 셔터 사이로 살짝 훑어보니 좀비 한마리가 앞에서 계속 머리를 박고 있었다. 태린은 셔터를 열고 나가서 들어오려는 그 좀비의 머리를 도끼로 찍어내리고서 다시 셔터를 닫았다.
“하암~ 아침부터 난리네”
태린은 바로 옆 골목으로 가서 소변을 눈 후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태린의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주변에 있던 좀비 3마리가 태린에게로 달려들었다. 골목길이 좁았기에 태린이 상대하기에는 편했다. 한마리, 두마리 차례차례 깔끔히 처리를 하다가 세마리째에는 마구잡이로 도끼질을 하였다. 몸에는 땀이 흘렀고, 좀비는 여러 파편으로 쪼개졌다. 격렬하게 움직여서인지 담배는 다 태우지도 못한채 꺼졌기에 태린은 다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으아아아아”
얕은 비명을 지르며 양 팔을 위로 쭈욱 들어올려 스트레칭을 하였다.
“뚜둑뚜둑”
어제 활동을 많이해서인지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아침 운동 자알 했다.”
담배연기가 눈을 찔러 눈물을 훔칠때 셔터가 안쪽에서 덜컹거렸다. 셔터뿐만 아니라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렸다. 태린은 잠깐 경계 태세를 취했지만 후에 셔터를 열고 나온 것은 비틀거리는 태연이었다. 태연은 입구에서 쓰러져 어떻게든 하수구 앞으로 갔다. 그리고 속에 있는 것을 개워내었다.
“우웨에에에에에에엑”
먹은게 얼마 없어서인지 음식물은 별로 안 나오고 노란색 담즙이 보였다. 태린은 태연에게 웃으며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후로 두세번 더 게워내자 태연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발 저게 도대체 뭐야? 술 마시면 원래 저런거야? 도대체 술은 왜 먹는 거냐?”
역류된 담즙을 처음 본 태연은 놀라서 태린에게 물었다.
“담즙이야. 니가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 적당히 먹으면 재밌어. 토하는거보니까 1,2학년 때 생각나네”
태린은 재밌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재미는 개뿔… 시발… 대학생 때 술 많이 마셔?”
중학교 이후부터 태연은 제대로된 이후의 삶을 생각해본적이 없다. 할아버지로 인해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졌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이 남들과 같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느 고등학생들이 그렇듯이 대학에 대한 낭만은 있었다. 초록색 잔디밭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정겹게 술게임을 하는 그런 전형적인 낭만.
“술? 많이 마시지. 나 다닐때는 강권하는게 많이 사라지긴 했는데, 동기끼리 마시다보면 굳이 강권하지 않아도 엄청 마시게 되지. 나도 몇번 담즙 토해봤어. ”
더러운 얘기인데도 태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고 있었다. 태린은 그것을 눈치챘다.
“수업 끝나면 같은 동아리 사람들이랑 동아리 활동도 하고, 가끔 공부도 같이 하고, 그러다가 한강 둔치에 가서 치맥도 하고. 나쁘지 않았어”
태연의 눈은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과 사람들이랑은? 드라마 보면 과대도 있고, 과 사람들이랑 잘 놀던데?”
“난 과에서 아싸여서 동아리 사람들이랑 주로 놀았지. ”
태연은 과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약간 실망한듯 했다.
"그래도 대학생활 재밌었어. 여행도 가보고, 동아리 홍보도 하고, 번호도 따여보고"
마지막 얘기에 태연은 귀를 쫑끗했다.
"번호? 누구한테?"
어느새 태연 뒤에 서있던 태신이 물었다.
"언제 깼냐? 아 음 교양과목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잠든 미르를 안고 있는 태신을 본 태린은 서둘러 담배를 껐다.
"오 그래서 사겼어?"
태신은 질문을 이어갔다.
"아니 애매하게 끌다가 연락 끊으려다가 문자로 욕먹었어"
"개새끼였네"
태연, 태신이 동시에 말했다. 옷, 머리길이가 달라 쌍둥이라고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태린이였다. 그러나 똑같은 눈과 똑같은 목소리로 태린을 욕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쌍둥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어... 뭐 그때 그건 좀 그렇긴 했지. 쨋거나 대학 생활 나름 재밌었다고."
"나도 나중에 대학생활 해보고 싶네"
태연 자신은 그저 지나가는 말로 쿨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태린과 태신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쨋든 30분 후에 출발할거니까 각자 짐 챙겨"
대화를 마친 태린은 골목 깊숙히 가서 다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생각에 빠졌다. 분명 그 둘은 자신을 두려워하고 꺼림칙해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태도는 태린 자신이 충격적인 행동을 했을때 단발성으로 나타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대단히 감정 회복력이 좋았다. 태린은 그것에 감탄했고, 동시에 그들은 배신하지 않을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담배를 다 태운 태린은 약국으로 돌아가 필요한 물품들을 추가로 챙겼다. 총기를 재정비하고, 도끼 날을 갈고, 애좀들의 목줄을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그 사이 태연은 태린이 준 항생제를 챙겨먹었고, 태신은 미르가 먹을 분유를 여러개 준비했다.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의 준비는 끝났고, 출발 전에 약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 이제 어디가는거야?”
태신이 물었다.
“아아 너한테는 얘기 안했었구나. 의정부쪽으로 갈거야. 그쪽 산에 외딴 농막이 있어. 거기에 있으면 일단은 안전할거야.”
태린은 다시금 태신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꽤 걸리지 않나?”
태신은 미르가 잘 버텨줄까 걱정되어 물었다.
“한 30km 되긴 하는데 이틀에 나눠서 천천히 갈거니까 걱정하지마”
그런 태신의 걱정을 눈치챈 태린은 태신을 안정시키려 했다.
“가기전에 혹시 모르니까 마트 들렀다 가자. 식량 더 챙겨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사실 태린의 속마음은 저번에 식인 무리의 형제가 말했던 군대가 대형마트를 폭발시켰다는 얘기를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태린을 선두로 중간에는 태신과 미르, 마지막에는 태연 순서로 대형마트로 향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곳곳에서 그을음이 심해졌다. 여기저기 전자제품과 진열대가 그을은 채로 널부러져 있었고, 아스팔트는 깨져 있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크레이터처럼 움푹파인 구덩이 위에는 건물 잔해가 너져분하게 널려 있었고, 군대의 것으로 보이는 차량과 몇대의 탱크가 잔해위에 널부러져 있었다. 주변에 검붉은 피가 흥건한 것으로 보아 잔해 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차량과 탱크에서 탈출하다가 좀비에게 먹힌 것으로 보였다.
태린, 태신, 태연 이 셋은 한동안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거대한 구덩이는 마치 혜성이나 UFO가 떨어진듯이 현실이 아닌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세명은 세상이 망했다는 것을 더욱 확실히 깨닫는다.
이렇게 세명 모두 상념에 빠져 있으니 미르가 무서웠는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덩이 반대편에 있던 열댓마리의 좀비 무리가 태린의 그룹을 눈치채고 달려왔다.
상념에서 제일 먼저 깨어난 것은 태린이었다. 좀비들의 맞은편으로 달려가서 도끼로 맨앞 좀비의 목을 찍어내리며 좀비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태린에게 좀비를 처리하는 일은 재밌고, 수월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더욱 수월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몇몇의 좀비들은 이미 태신이 쏜 활에 맞아 죽어있었고, 바로 옆을 보자 태린을 돕고 있는 태연도 보였다. 태린은 친근감, 따스함,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꼈다. 물론 태린 자신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말이다.
“팀웍이 생각보다 좀 되네? 다음번에도 이렇게 하자”
태린의 말에 태신과 태연은 고개만 끄덕였지만, 둘다 칭찬과도 같은 태린의 말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후 이들은 하천 옆 자전거 도로로 내려가기 위해 차도로 먼저 내려왔다. 차들이 워낙 빽빽하게 있어서 조심스럽게 차 사이를 지나가야했다. 태린은 앞장서서 먼저 따라올 길을 알려주었고, 이어서 태신이 따라 붙었다. 회색 아우디를 지나가려 할 때 잘못해서 태신의 아기용품가방이 백미러에 걸렸고, 차의 보닛 위로 가방안의 용품이 우루루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가 얼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몇십분 같던 몇초가 지나고 모두들 긴장을 풀 때 쯤 뒤늦게 아우디의 차량 도난 방지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난 방지음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고, 조용했던 풍경위로 쏟아져 내렸다. 태신은 서둘러 용품을 챙기고 태린 쪽으로 넘어갔고, 태연 또한 빠른 걸음으로 태린 쪽으로 넘어갔다. 저멀리 사방에서는 좀비들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시간에 따라 가까워졌다. 다시 아파트 단지 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제 식인무리들과 싸우며 큰 소리를 냈던 탓에 아파트 단지 쪽으로 많은 수의 좀비들이 몰렸기에 불가능했다. 그리고 자극 없는 상태의 좀비들에게는 애좀들로 피하는것이 가능했지만 이런식으로 자극이 큰 상태에서는 애좀들로 인한 유인책도 불가능했다.
오랜만에 태린의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도망쳐야 하나?’
‘아니야, 미르도 있는데 위험해’
‘쟤네가 버틸 수 있을까?’
‘시발 모르겠다.’
“차태연! 차태신 데리고 굴다리로 뛰어!”
이태린은 말을 꺼내자마자 소총을 장전하고 아우디를 쏘기 시작했다. 탄알집 2개를 쏘고서야 아우디는 조용해졌다. 도난 방지음이 꺼진 것을 확인한 태린은 태신과 태연을 쫓아갔다. 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써 굴다리 입구에 버려진 자전거를 쌓고 있었다. 태린도 그들을 도와 자전거를 쌓은 뒤에 굴다리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하였다. 혹시 몰라 애좀들은 입구 앞에 세워두고, 쌓아둔 자전거에 천막을 꺼내 덮었다.
도난 방지음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좀비들은 빠른 속도로 진원지를 향해 달렸다. 수백마리인지 수천마리인지도 모를 좀비들이 다 같이 달리는 소리는 가히 도로를 울릴만 했다. 태린 일행이 있는 굴다리까지도 그 진동이 전해졌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숨을 곳이 많았고, 그 숨을 곳이 상당히 안전했다. 좀비들도 진정된 상태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숨은 곳도 상당히 취약해 언제 들킬지 모르고, 미르가 언제 울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좀비들이 흥분 상태였다.
태린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인 것은 인지하고 있었고, 언제 죽어도 굳이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엄마 유골은 엄마가 좋아했던 농막에 뿌리고 싶었다. 그리고 태연, 태신, 미르까지 같이 죽기는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다 보니 저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거의 10km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좀비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가 폭발음을 진원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점차 좀비들의 진동음은 약해졌고, 비명소리도 약해졌다.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미르가 울기 시작했다. 폭발음과 좀비의 비명소리에 조금 가려지기는 했지만 몇몇 좀비들은 그것을 눈치채고 쌓아둔 자전거를 마구 긁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리를 지은 좀비들 때문에 다른 좀비들도 그곳으로 눈길을 돌렸고, 결과적으로 굴다리 입구에 이백여마리의 좀비들이 모이게 된다.
“하아…. 일단 앞에 있는 놈들 처리할 테니까 길 뚫리면 우리 걸어가던 방향으로 뛰어”
이태린은 A팀장과 부팀장의 어깨 위의 K-1에 탄창을 결합하였고, 옆에 총알이 꽉찬 탄알집을 세워두었다. 권총 4개의 총알도 꽉 채워두고 차태신에게는 중대장에게서 빼앗은 리볼버를 주었다. 차태신은 미르가 떨어지지 않게 담요 여러겹을 이용하여 등을 꽈악 묶었다. 차태연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총과 K-1을 나름대로 점검하였다.
‘“준비됐지? 조정간 단발로 하고, 머리 노려서 쏴. 자신 없으면 그냥 뒤에 있어.”
“이 정도 거리에서는 나도 할 수 있어”
차태연이 심술이 난듯이 말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어느정도 정리되면 뛰어가야 하니까 준비 잘 하고. 태신! 뛰다가 힘들면 미르 나나 태연한테 넘겨라”
“안 힘들어”
태신은 자신의 아이는 자신이 지키겠다는 모성애로 꽁꽁 뭉쳐있었다.
“그럼 시작하자”
말을 마친 태린은 C팀장의 배에 구멍을 내어 휘발유를 좀비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을 붙인 뒤 좀비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사람 타는 냄새는 자욱하게 굴다리를 채웠지만 총을 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태린은 총알이 떨어질때마다 총을 바꾸어서 한발한발 좀비의 머리에 쑤셔박았다. 좀비가 모이는 속도보다 좀비가 죽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고, 입구앞에는 20여마리의 좀비만이 남게 된다.
“야 준비해!”
태린은 소리쳤고, 이어서 더욱 빨리 입구앞 좀비에게 총을 쏘며 한쪽에 쌓인 자전거를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다.
“지금!”
소리지름과 동시에 조금 남은 자전거를 발로 차며 입구를 뚫고 나왔고, 입구 앞의 좀비를 도끼를 사용하여 모두 처리하였다. 이어서 태신과 태연도 입구를 뚫고 나오고 모두들 뛰기 시작했다. 맨 앞의 태린은 앞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처리했고, 맨 뒤의 태연은 뒤에서 쫓아오는 좀비들을 처리하며 따라왔다.
달리면서 간간히 뒤에서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가까이에 있던 좀비들만이 달려들었고, 멀리 있던 좀비들은 폭발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한시간 정도를 사력을 다해 달렸을까, 더이상 무리를 지어 쫓아오는 좀비는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이제… 좀 … 쉬자”
미르를 안고 뛰던 태신이 말하기도 힘들었는지 겨우겨우 멈춰서서 말했다. 태연도 겨우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 태린에게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으나 미리미리 앞에서 오는 좀비를 처리하다 보니 태린 또한 지쳐있었다.
“하아, 하아. 그래. 크흠. 어어 ”
태린은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자전거 도로에서 주택 단지로 가는 길이 있었다.
“저기로가자.”
길을 따라 빈 편의점에 도착한 그들은 문단속을 한 뒤에 모두 가방을 머리맡에 내려놓고는 누웠다. 짧은 시간에 너무 힘을 쓴 탓인지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모두 별다른 부상은 없어보였다.
“으어어어어 죽을 것 같아.”
태연은 이상한 비명소리를 내며 말했다. 목이 말랐지만 수분 충족의 욕구보다 귀찮음이 더 컸기에 태연과 태신은 생각만 한 채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태연의 얼굴 위로 물이 떨어졌다. 태연은 놀랐지만 일어나지 않고 그저 입을 벌리고 받아 먹었다. 물이 끊기고 위를 보니 빈 페트병을 잡은 이태린이 보였다.
“개새끼 물 주는 것도 아니고… 고마워”
태연의 말에 태린은 크크하고 웃으며 태신에게 가서 똑같이 물을 따라 주었다. 태신 또한 가만히 받아 먹었다. 다 마신 태신은 물을 입에 머금은 채로 손가락으로 미르를 가르켰다.
“걱정마 미르도 줄거야”
태린은 미르를 태신에게 받아 물을 조금 주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태신의 등에 업힌채로 한시간 이상을 붙어있었으니 상당히 더웠을 것이다.
시계를 보자 이미 시간은 오후4시를 너머가고 있었고, 태린은 더이상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편의점 안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태신과 태연도 자연스레 다가와 돕기 시작했다.
“오늘은 고생했으니까 맛있는 것 먹자. 부대찌게 밀키트하고 스팸 있으니까 부대찌개 먹자”
A팀장 가방에서 식량을 뒤적거리던 태린은 기쁜 듯이 말했다. 태연과 태신은 햇반을 꺼내며 침을 흘렸다. 오래지 않아 식사 준비가 끝났고, 그들은 편의점 안의 간이 테이블에 앉아 스팸이 익기를 기다렸다.
“다 됐나?”
태연이 부대찌개 위에 잘라놓은 스팸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좀만 더 끓이자.”
태린이 국자로 찌개를 휘휘 저으며 답했다.
“그래?……….이제 됐나?”
태신은 끼어들며 말했다.
“아니… 아직이라고”
슬슬 태린은 답답함을 느끼며 말했다.
“아 그래.. 언제된다고?”
다시 태연이 물었다.
“후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애들아”
태린은 한숨을 크게 쉰 뒤에 부대찌개를 빤히 보고 있는 두명의 시야에 양손을 갖다대며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태린의 손을 자연스레 치운뒤에 다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다 되었다고 느낀 태린은 불을 줄였다. 불을 줄이자마자 태연은 국자를 낚아채며 세명의 그릇에 찌개를 급하게 담고 바로 식사에 들어갔다.
‘이상한 상황에서 예의 있네?’
태린은 픽하고 웃으며 태연의 행동에 대해 생각했다. 부대찌개는 맛있었다. 세명 모두 국물 한모금까지 남기지 않고 흡입하였다. 태신은 계속해서 국자로 찌개를 뜨려해서 냄비 코팅이 벗겨질뻔 했다.
“야야야야 그만해 이제 없어”
태린이 태신의 국자를 빼앗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다시 누웠다. 미르가 울먹이기 시작했기에 태신은 분유를 준비해서 먹였다. 그리고 그대로 모두 잠에 들었다.
저녁 7시가 되기도 전에 잠들었기에 모두 새벽 5시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 태린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면서 아침으로 먹을 스프를 중탕했다. 태연은 스프와 같이 먹을 크래커를 편의점 내에서 찾아 준비했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태린은 모두들 계속해서 이동했기 때문에 피곤이 쌓였을 거라고 생각해 빨리 한 군데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장소로는 농막이 베스트였다. 지도를 보니 대략 15km정도가 남아있었다. 이정도 거리는 충분히 가고도 남았다.
“자! 다시 가자”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제의 폭발음 때문인지 거리에는 좀비가 거의 없었다.
태린은 어제의 폭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전투기나 헬기 소리는 없었다. 폭발음 외의 그 어떤 소리도 폭발 후나 전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유소 폭발이나 가스 폭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폭발은 일정 시간 동안 연속적이었으므로 의도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폭탄을 설치해서 폭발한 것이라는 것이 타당한데 어차피 이미 좀비가 가득한 서울의 건물이나 거리를 폭발 시키는 것이 무슨 이득이 있을지 궁금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또 폭발된 마트를 맞딱드렸다. 거기에도 군용차량과 자주포 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가졌던 의구심이 들었다.
‘너무 적은 것 아닌가?’
태린이 군대 전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폭발 규모에 비해 탱크나 군용 차량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살아남아서 다른 곳에 있나? 거기는 안전할까?’
여러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어차피 어딜 가든 사람이 포화되면 수용하기 어려워질 것이고, 많은 인원 때문에 좀비 검사하는 것도 어려워질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곳도 위험해질 것이다. 게다가 태린은 이미 무리를 이뤄본 후에 배신을 겪었기에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기가 싫었다.
계속해서 길을 걷다 보니 전봇대 위에 사람형상이 보였다. 태린은 손짓을 통해 태연과 태신의 움직임을 막고 도끼과 권총을 꺼냈다. 사람형상의 머리에 조준을 한 채로 천천히 다가갔다. 사람의 형상은 점점 또렷해졌고, 태린은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머리는 ’V’자 모양으로 쪼개져 있었으며 셔츠는 가슴 밑까지 찢겨져 있었고, 가슴 밑에는 빨간글씨로 써진 표지판이 있었다.
‘값을 치를 것이다.’
태린의 심장은 다시 빠르게 뛰었다. 얼마전 김춘자와의 싸움, 김춘성의 목 위에서 맥이 뛰는 느낌.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하지만 태린은 일단 진정을 했다. 이 꼴이 난 세상에서 이런 일은 앞으로도 많아질 것이고, 굳이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흥분할 필요는 없었다.
‘후우우우~~~~…….. 됐다.’
숨을 길게 내쉬고 진정된 태린은 생각을 시작했다.
일단 여기까지는 식인 무리가 올 수도 있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표지판은 식인무리가 오는 방향을 향해있었다. 식인무리가 세운 표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태린은 다시금 뚫어져라 시체를 보았다. 느낌일수도 있지만 김춘성과 닮은 것 같았다. 김춘성의 남매나 딸, 친척이라면 식인무리와 적대적인 무리일 것이고 상대적으로 이태린 일행에게는 안전할 것이다.
“시발 저게 뭐야”
어느새 뒤로 온 태연은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태신은 미르를 더욱 꼭 안았다.
“계속 가자”
태린이 내뱉은 말에 태신과 태연은 흠칫 놀랐다.
“저걸 보고 계속 가자고? 미쳤어? 아니지, 니가 반쯤 미친건 알겠는데 이건 아니지. 저게 정상적으로 보여?”
태신은 자신의 다친 팔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걍 나 한번만 더 믿어봐. 어차피 이제부터 주변이 산이야. 미르 안고 데리고 가는데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나. 그리고 봐바 저 사람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아저씨하고 닮지 않았어?”
태신과 태린은 거북해하면서 시체의 얼굴을 살폈다.
“아….”
탄식을 내뱉은 그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동의라고 생각한 태린은 다시 길을 나섰다. 태신과 태연은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주변에는 농지와 산이 뒤섞여 있었고, 곳곳에서 태린 일행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길을 가로로 막아둔 트레일러가 보였다. 운전석에서는 휙하며 무언가가 사라졌다.
사방에서 갑자기 샤샤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나타났다.
“야야 다들 손 들어라”
태린은 태연과 태신에게만 들리게 속삭였다.
“무기 내려놓고 손들어!!!!!!!”
대장처럼 보이는 근육질의 중년의 사내가 소리쳤다. 태린은 도끼를 내려놓고 천천히 손을 올렸다.
“총도 내려!!”
총을 발견한 사내는 다시한번 소리쳤다.
“아씨 귀찮게… 태연! 너도 내려”
가방과 총기끈이 엉켜있던 태린은 귀찮아하며 낑낑대며 총을 내려놓았다.
“미친새끼야, 믿으라며?”
심술이 난 태연은 태린에게 욕지거리를 하며 총을 내려놓았다.
“야 총 내려놓으라고!!!!!!”
사내는 애좀 등에 있는 총을 보고 말했지만 애좀들은 가만히 있었다. 태린 또한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개새끼야 내려 놓으라고!!”
사내는 더욱 흥분해서 태린 무리에게 다가오며 소리쳤다. 그러나 여전히 애좀들은 가만히 있었다.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잡았을 때서야 깨달았다. ‘좀비네?’
사내는 빠르게 뒤로 빠지며 가지고 있던 칼을 뽑았다.
“뭐하는 새끼들이야!!!”
주변의 모인 사람들중 애좀들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도 경악하며 더욱 경계하기 시작했다.
“좀비들이에요. 이러고 다니면 좀비들이 조금 덜 달려들어요. 짐꾼으로 쓸 수도 있고요.”
“그게 말이돼? 이 미친새끼!”
“일단 소리 좀 줄입시다. 듣고 옵니다. 그리고 왜 말이 안돼요 제가 여기 있는데”
태린은 왜인지 비웃는 태도로 빙글빙글 웃으며 얘기했고, 사내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근데 보자보자하니까 이새끼가”
사내는 칼을 태린의 목에 겨누었다. 태린은 칼을 살포시 밀며 얘기를 이었다.
“수림 1단지, 알죠?”
“왜”
뜻밖의 단어에 사내의 표정의 차가워졌다.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다고요. 저희가 다 없앴으니까.”
“뭐?”
“거기 무슨 씨족 사회처럼 다 가족들이잖아요. 사람들도 먹고. 그래서 저희가 다! 죽였어요.”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여전히 손에 힘을 빼지 않은채로 사내는 말했다.
“저희 동부간선 도로쪽 통해서 왔어요. 오는 중에 거기 보스 아줌마 아들래미 2명하고 마주쳐서 죽였고요. 그 다음에 수림 1단지로 갔어요. 입구 지키는 2명 죽이고, 나머지는 수류탄으로 죽이고. 아줌마는 제가 도끼로 죽이고, 아줌마 동생은 목 졸라서 죽였고요. 이정도면 되지 않아요? 어차피 제가 증거로 드릴건 없어요.”
태린은 귀찮아졌는지 목소리에 힘을 빼며 말했다. 사내는 유심히 듣고 태린의 눈을 보더니 슬쩍 힘을 뺐다.
“그렇다고해도 우리가 너희를 어떻게 믿어? 저렇게 좀비 묶어서 다니는 정신 나간 놈들인데”
그래도 여전히 의뭉스러운 부분이 많은지 사내는 말했다.
“하아~. 아까 전봇대 위에 시체 봤어요. 머리를 브이자로 쪼개 놓으셨더라구요? 그 지랄 해놓으신 분이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시게요?”
“뭐? 아이…. 시발 이새끼 또. 야! 김준환 이새끼 데려와!”
사내의 얼굴을 울그락 푸르락 해졌고, 모인 사람들 중 한명이 빠르게 뛰어가더니 저 멀리서 다른 사람 한명을 잡아끌고 오고 있었다. 사내는 저벅저벅 걸어가 그 사람 앞에 섰고, 멱살을 잡고 뺨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이 미친새끼야. 내가! 사람으로서! 지켜야할게 있다고 했지! 니가 그새끼들이랑 다를게 뭐야 이 새끼야!”
얼핏 사내가 분에 못이겨 김준환을 때리는 듯했지만 화가 난 것 보다는 슬픈 것처럼 보였다.
“아 놔! 놓으라고! 형도 자식 잃어봤으니까 기분 알거 아냐!!!! 내 눈 앞에서 우리 엄마가 죽었어! 그런데 내가 그정도도 못해?”
김준환은 자신의 멱살을 잡은 손을 뿌리치며 말했고, 사내는 더이상 때리지 않았다.
“준환아…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그래…”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말했다.
‘아아~~ 염병 빨리 가긴 글렀네’
태린은 속으로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