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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도 같이 다니는데 애칭은 붙여줘야하나?”
태린은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좀비 5명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애완 좀비.. 애완 좀비. 간단하게 ’애좀’으로 하자”
태린은 네이밍 센스가 최악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깨달았지만 귀찮았기에 박혜진을 제외하고 그냥 애좀 1, 2, 3, 4로 부르기로 결정한다.
“달라, 달라, 달라아아아~.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으음으음 으음 음”
걷기만 하니 심심해진 태린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를 흥얼거리니 지금껏 애좀 덕분에 달려들지 않던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많은 수가 한번에 다가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몸 풀기용으로 도끼를 한번씩 휘둘러주니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1시간 정도 걸으니 서울숲 근처의 동부간선도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들은 상당히 많았다. 4차선짜리 도로에 거의 차 6대가 껴있어서 차 사이로 지나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낑낑태며 겨우 하천 산책로로 내려올 수 있었다. 산책로에도 차, 오토바이, 킥보드 등이 많이 버려져 있었으나 도로보다는 훨씬 지나가기가 수월했다.
내리쬐는 햇빛, 맑은 하늘, 옆에서 흐르는 물 소리 이외에는 고요한 주위. 태린은 갑작스러운 평화로움에 지금의 좀비사태는 꿈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지만 뒤를 바라보자 태린 자신이 채운 목줄을 따라오는 애좀들이 보였기에 금새 현실로 돌아왔다. 어찌되었던 물놀이하기 좋은 날이었다.
문득 떠나기전 샤워를 못한게 생각난 태린은 애좀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는 그 위에 벗은 옷을 덮었다. 그리고 하천에 뛰어들어 온몸 곳곳을 닦았다. 특히 머리관리를 잘 못해주었기에 머리는 정성을 다해서 감았다. 비누로 두피 구석구석을 손톱으로 긁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다 감은 후에는 잠깐 뭍 쪽으로 가서 자주 쓰는 도끼와 칼 몇개를 들고와서 닦았다.
도끼에 스민 끈적한 피는 속에서부터 천천히 수면 위로 피어올랐다. 하지만 몇몇 피 얼룩은 손으로 박박 문질러도 좀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릿한 피냄새도 마찬가지였다.
적당히 닦였다고 생각한 태린은 물 속 큰 바위 주변에 무기들을 내려놓고는 수영을 시작했다.
“시원~하다~”
태린은 하천위에서 배영을 하며 유유히 떠다녔다. 맑은 하늘아래 단일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 가방을 놓아둔 곳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린은 배영을 계속하며 천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2명의 사람이 태린의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야, 야 먼저 죽이는게 낫지 않아?”
그중 한명이 속삭이며 말했다.
“저 멀리에 있는거 죽이고 누가 데리고 오게? 그리고 무방비 상태잖아. 올 때 죽이면 돼. 간단해. 좀 쫄지마 새끼야”
태린의 배영 소리에 속삭이는 소리가 묻힐거라고 생각했지만 귀가 예민한 태린은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내용은 더욱 확실히 들은 태린은 물속에 손을 넣고 도끼 손잡이에 달린 끈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도끼는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끈을 잡으며 일어서서 뭍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온다. 준비해”
그들은 여전히 몸을 숙인체로 한명은 일본도를, 한명은 야구방망이를 꽈악 쥐었다. 그들의 계획은 태린이 뭍에 도착할 때 한명은 야구방망이로 복부를 쳐서 쓰러트리고, 다른 한명은 그 후 목을 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6명의 사람들을 이런식으로 처리했기에 익숙했다.
마침내 태린이 뭍과 하천의 경계에 다다르자 그들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크게 방망이를 휘두르려 할 때 태린은 도끼 끈을 그대로 당겨 목을 가격하였다. 이어서 일본도를 휘두르려던 다른 한명은 그대로 발이 꼬여서 자기 편의 어깨에 칼을 박았다. 이때를 놓치지 않은 태린은 도끼의 손잡이를 제대로 잡고 일본도를 잡은 이의 발을 찍었다. 그들은 비명을 질렀고, 듣기 시끄러웠던 태린은 가방에서 테이프를 꺼내 입을 막고 로프를 꺼내 포박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피로 흥건해진 몸과 머리, 도끼를 하천에서 씼었다.
“하아~ 일이 끝나지를 않아”
태린은 긴머리를 두손으로 잡고 물기를 짠 뒤에 고무줄로 묶었다. 그리고 발가벗은체로 도끼를 들고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아저씨들, 입에 테이프 풀어줄테니 조용히해요? 시끄러운 거 싫어해요.”
태린의 말에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태린은 도끼로 입에 붙은 테이프에 구멍을 내주었다. 그들이 입을 벌리려하자 테이프는 찢어졌다.
“엄마~~~~~ 엄~….”
테이프가 찢어지자마자 그들은 소리를 질렀고, 이태린이 도끼로 그들 중 한명의 입을 찢고나서야 둘다 소리 지르기를 멈췄다. 정확하게는 한명은 겁을 먹고 그만두었고, 입이 찢어진 다른 한명은 목구멍으로 피가 흘러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아아. 이제 물어볼게요? 아까 데리고 온다는게 무슨 뜻이에요? 저 죽이려면 아저씨 등 뒤에 메고 있는 활로 물에 있을 때 죽이는게 편했잖아요? 뭐가 ‘누가 데리고 오게’에요?”
그들은 말이 없었다.
“한명 입 찢었다고, 다른 한명 입 찢기가 어려워진건 아니에요. 오히려 쉬워졌지”
태린이 도끼를 살피며 말했다. 옆에서는 입이 찢어진 남자가 입에서 난 피로 인해 질식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서든 코로 숨을 쉬며 피를 삼켰다. 오직 그의 거칠고 어색한 숨소리만이 주변을 덮었다.
“…. 먹으려고”
숨소리 때문에 겁에 질린 남자가 입을 열었지만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요? 먹 뭐요?”
태린은 다시 물어봤다.
“먹으려고요.”
이렇게 말한 남자는 고개를 떨궜다. 태린은 흥미롭다는 듯이 무릎을 굽히고 얼굴을 그의 앞에 들이댔다.
“먹으려고? 아직은 주변에 식량이 좀 남아있지 않아요?”
자연스레 말을 잇는 태린에게 놀란 남자는 태린을 바라보았고, 태린의 얼굴에는 경악이나 분노가 없었다. 그저 어떤 얘기를 할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은 오히려 남자를 더욱 무섭게 만들었다.
“어, 그, 어”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태린은 다시 도끼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황급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군인들이 소탕 작전 한답시고 이 주변 마트 여러군데에 감염자들 유인해서 폭파시켰어요. 그래서 이 주변에는 먹을게 별로 없어요.…. 그래도 이쪽으로 사람들은 꽤 지나다녀서 수급은 쉬워서…. 제발 살려주세요. 앞으로 그러지 않을게요!”
얘기를 다 들은 태린은 무릎을 피고 일어났다.
“에구구구구”
어느새 태린의 몸은 다 말라 있었다.
“여기 아직 서울이에요.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건물 몇개 무너진건 봤는데 편의점이나 소규모 상점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어요. 그리고 이 주변에 식량이 별로 없다고 해도 몇 킬로미터만 가면 다른 동네 나오고요.”
태린은 남자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남자는 그 기다림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태린을 바라보았다. 태린은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아마 어쩔 수 없이 먹었겠죠. 뭐, 예를 들어서 집에 갇혀있었는데 나가기는 무섭고 식량은 떨어져가고. 그러다가 한명이 먼저 죽고, 시도해봤겠죠. 가장 죄책감 없어보이는 부위인 팔이나 다리부터 입에 어떻게든 쑤셔넣으면서 맛을 봤겠죠. 그렇게 우걱우걱 먹다보니 어? 맛있는데? 그리고 허기짐도 채워지고요. 그런데 죄책감은 생겼겠죠. 어떻게든 정당화해보려해도 잘 안 되고”
태린은 말을 하며 애좀들 쪽으로 걸어가 옷을 챙겼다. 그들은 오감이 차단된 채로 목줄이 채워진 좀비들을 마침내 보게 되었다. 입이 찢어진 남자는 놀랐는지 컥컥되다가 피를 토했고, 찢어지지 않은 쪽은 놀라 동그랗게 된 눈으로 태린을 바라보았다. 태린은 바지부터 옷을 입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쨋거나 그렇게 살아남아서 운 좋게 살아가다가 또 비슷한 위기가 찾아오죠. 먼저 해봤으니 두번째는 더 쉽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일거에요. 그렇게 맘에 안드는 사람을 죽여서 식량을 확보하죠. 그러면 그룹내에서 자신의 위치 또한 올라가겠죠. 선을 넘은 사람이고, 식량보급도 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쉬울거에요. 사람 먹기가. 게다가 사람을 죽이면 이득도 있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식량이나 물품도 플러스 알파로 들어오니까.”
옷을 다 입고, 모자까지 쓴 태린은 스트레칭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망한 이 세상에서, 사람을 먹음으로써 우월감도 생기겠죠. 자신은 보통 사람이랑 다르다고. ”
태린은 싱긋 웃었다.
"어때요? 몇개나 맞았어요? "
그들은 말이 없었다.
"대충 맞죠? 제가 추측하는 능력이 뛰어나서요. 전에 들은것도 좀 있고"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울지 마세요. 솔직히 이해가 안 가지는 않아요. 미쳐버린 세상에서 살기 위해 사람을 먹을수도 있죠? "
그들은 훌쩍이며 '혹시?'하는 마음으로 태린을 쳐다봤다.
"그런데... 전 저한테 적의를 내비추는건 용납 못해요. 가방만 가지고 갔으면 별일 없었을 거에요"
끝내 눈물과 침이 흐르기 시작했고, 태린은 그것으로 도끼 끝을 적셨다. 도끼를 크게 위로 올려 내리치려 할때 다른 생각이 스쳤다.
"근데. 아까 엄마 불렀죠? 몇명이나, 어디에 있어요?"
"저.. 저희 포함 20명이요. 근처 아파트가 있는데 거기에 있어요. 그런데 복잡해서 저희가 안내해드릴 수 있어요. 네? 안내하게 해주세요. 제발, 제발."
생존 본능 때문이었을까, 남자는 랩을 하듯이 빠르게 말했지만 처음 외에는 말을 절지도, 더듬지도 않았다. 눈물을 흘릴듯한 얼굴로 입은 최대한 웃고 있었다. 어떻게해서든 태린의 맘을 돌리려는 듯이.
"꼬르륵"
이때 애좀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쟤들도 배가 고픈가? 먹어야 하나? 하긴 칼로리가 있어야 움직이긴 하겠지’
'쟤들 무리 어딨는지 알아내는게 낫나? 귀찮은데….. 그래 그냥 무시하자'
며칠전만 해도 이런일이 일어났다면 식인 그룹을 찾아가 설득(=협박)하거나, 죽이거나 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겠지만 현재는 그정도까지 하기에는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으으으으음...."
태린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저씨들? 살려줄까요?"
그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다만, 우리애들이 배고파해서 조금만 먹게두고 놓아줄게요"
태린은 다시금 씨익 웃으며 애좀들쪽으로 걸어갔고, 두 남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의미를 깨닫고 버둥대며 소리를 질렀다.
"엄마~~엄마- 엄마 아아아아악"
"조용하는게 좋을텐데..."
태린은 중얼거리며 애좀들의 재갈을 푼 후에 나무 뒤로가서 매듭도 풀었다. 자신들을 속박하던 밧줄이 느슨해진것을 느낀 애좀들은 마구잡이로 뛰쳐나가다가 비명소리와 피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그정도로 시끄러우면 귓구멍 막아도 들려요"
어느새 나무 그늘에 위치한 태린은 말했다.
그들은 비명을 멈췄지만 애좀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 몇분동안 살점 뜯기는 소리와 뼈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비명소리도 다시 들려왔지만 이내 쌔액 거리는 숨소리로 바뀌었고, 숨소리마저도 빠르게 사라졌다.
애좀들이 식사 때문에 정신 뺏긴 틈을 이용하여 하나하나씩 다시 재갈을 물리며 통제권을 찾았다.
"배부르면 다시 가자"
태린의 손수건으로 혜진의 입가를 닦아주며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