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원은
어떻게 양성되고 운용되며
은퇴할까?
많은 이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
CIA에 근무한다고
제이슨 본처럼
살인기계가 되는 것도 아니고
MI6에 근무한다고
제임스 본드처럼
멋진 차와 미녀를 몰고 다니진 않았다.
99.9%의 요원은
책상머리로 시작해 책상머리로 끝났다.
오직 0.1%의 요원만이
제이슨 본과
제임스 본드가 된다.
쿠도 신이치는
시티 오브 갓이란 반어적인 별명을 가진
리우의 한 빈민가에서
비밀스런 모임을 주최했다.
이곳이
마약에 절은 빈민가만 아니었다면
오랜만에 만난
고동학교 동창모임쯤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이치의 초청에 응한 이들은
악명이든 뭐든
하나같이 명성을 떨치는 거물이었다.
CIA 부국장
제레미 이튼 오헤어를 필두로
MI6, DGSE, BND, FSB 등
이른바
서방측 정보라인이 있고
중국과 일본, 이란과 파키스탄 등
아시아계열 정보라인이 있다.
겉으로 보여주는
미국-이스라엘동맹의 단단한 결속으로
모사드를
서방측으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은
양쪽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건
미국-일본동맹도 마찬가지다.
바다암초를 사이에 두고 분쟁을 벌이는
중일외교관계가
최악으로 비춰졌으나
중국-일본은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대단히 돈독한 사이였다.
중일대립은
언론이 씌운 프레임일 뿐이다.
정보세계의 거물들과 더불어
용병세계와 범죄세계를 주름잡는
나름 핫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정말 기적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여기엔
FBI가 정한 10대 지명수배자도 있고
조직의 사활을 걸고 싸우는
경쟁자도 있으며
국제형사재판소나 인터폴이 쫓는
전범도 있으니까.
만약
지금 쿠도 신이치가 모은 이 사람들을
후루야 레이를 포함한
일본에서
쿠도 신이치를 아는
모든 경찰들이 보았다면
쿠도 신이치와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팬티도 안 걸친 알몸뚱이에
과일 찍어먹는 이쑤시개 하나로
굶주린 호랑이들이 득시글한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호랑이굴에 있는
모든 호랑이들과 싸우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하면
적어도
쿠도 신이치 손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그런 꼴이 되는 것보다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쪽이
그나마
고통이라도 덜할테니까......
아니면
쿠도 신이치를 상대하겠다는
후루야 레이의 용기를
가상하게 여겼을지도......
신이치는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누구 총이 더 크고 센지 자랑하진 말라고.”
“ 하하.”
신이치의 농담에
좌중은 작게 웃었다.
“ 자네 총이 가장 크고 세다는 걸 다 알아.
수호.”
“ 날 빨아준다고 뭐 나올 건 없어.
요즘 고향에서 잘 지내려고 하느라
허리가 휘거든.”
“ 허리가 휘어?
좀 보태줄까?”
“ 구린 돈은 안 받아.”
“ 왜 이래?
우리도
요즘 합법적인 장사만 한다니까.”
“ 퍽이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준법정신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마디로
걸리지 않으면 장땡이란 마인드다.
다들 정상은 아니었다.
“ 오늘 의제가 뭔가?
아라곤?”
“ 아니.”
신이치는 고개를 저었다.
“ 리터너그룹.”
“ 흐음.”
“ 음.”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어느 기관이든
은퇴번복자에 관한 문제들이 산적했고
제대로 해결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의 리터너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변절자야
그냥 죽이면 끝이지만
정년을 채웠거나
불의의 사고로 은퇴한 요원은
존중받아 마땅했다.
퇴역장성이
국방계약로비스트로 활동하듯
은퇴요원은
국가안보자문역으로
여기저기 안 끼는 곳이 없었다.
물론
대다수는
애국심을 앞세워
조용한 말년을 보내며 은퇴를 즐겼다.
그러나
정보를 이용해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흔들던
권력의 스릴과 쾌락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는 자도 꽤 많았다.
문제는
은퇴요원이
자칫 길을 잃는다면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리터너를 고용한 고용주를 들여다보면
뭔가 구린 것도 많고 적도 많은
트러블메이커였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
애국심과 사명감이란 신념을 잃어버린
고급정보요원은
금세 괴물로 탈바꿈했다.
“ 아라곤만 해도
리터너만 잘 관리했으면
이렇게까지 어긋나진 않았겠지.”
“ 인정해.
하지만,
관리랄 것도 없는 게
그들은
우리 전략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
“ 아마추어도 아니고...
그딴 건
아랫놈들을 쥐어짜면
어떻게든 방법이 생긴다는 걸 알잖아?”
여기에
그걸 모르는 인물은 없었다.
“ 처키는... 이제 없어.
그러니
너희가 스캔들에 휘말릴 가능성은 낮아졌지.”
“ 레안드로는?”
“ 그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어.”
브라질연방 치안장관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취조실에서 오가던 대화는
신이치가 비선을 동원해
곧바로
녹음기록을 훼손시켰다.
이제
신이치가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이해당사자들끼리
멱살 잡고 싸우는 일만 남은 셈이다.

(IP보기클릭)222.237.***.***
(IP보기클릭)203.210.***.***
말을 하지 못할 겁니다. | 22.08.22 19:3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