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3국 국경을 맞댄 지역에 도착한 시각은
일몰 직후였는데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 버금가는
사우다드 델 에스테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브라질이었다.
이 환락의 도시는
밤이 되자
진면목을 드러냈다.
길가에서
아예 대놓고 매춘을 종용하는 창부는 차치하고
패싸움이 벌어져
유혈이 낭자해도
마치 격투경기를 보듯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도시의 밤은
치안이 나쁜 정도가 아니라
공권력이 거의 붕괴한 수준이었다.
쿠도 신이치가 찾아들어간 곳은
성업 중인 나이트클럽이다.
미리 통보했기에
마중나온 사람이 있었다.
갱단의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와 문신으로 가득한 팔뚝,
관광객을 등쳐먹는 소매치기도 서열이 있듯
갱단의 핵심멤버가 되려면
경쟁갱단의 조직원을 죽이는 살인의식을 치러야 했다.
남미의 스트리트갱은
어영부영 운동 좀 했다는 애들을 모아 조폭이라고 으스대는
요즘 야쿠자나
한국의 폭력조직과는 폭력의 강도가 달랐다.
기본이 총질이요
기관총과 수류탄은 옵션이며
여기서 더 나아가면
로켓이 날아다니는
진짜 전쟁이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간혹 범죄와의 전쟁을 입에 담는 건
단순히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갱단을 소탕하려면
전쟁 수준의 무력을 동원해도 될까 말까였다.
이들은
매일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
“ 수호.”
“ 카를로스.”
델 에스테의 유령
카를로스 코스타는
화려한 문신은커녕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멋쟁이신사였다.
“ 안식년이라고 들었는데?”
“ 대체 내 소문은 어디까지 퍼진 거야?”
쿠도 신이치는
안식년이라고 떠들고 다닌 적이 없었는데
이미 알 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 아닌 척 하지만
모두 자넬 주시하고 있어.
수호.”
“ 이쪽에서 지나치게 주목받는 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
“ 하긴 유명세만큼 도전자도 많아지겠군.
그래도
자네라면
도전자가 누구든 상관없잖아?”
“ 불필요한 충돌이나 출혈은 피하고 싶다고.”
무시무시한 악명을 고려하면
매우 합리적인 대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를로스는
수호 아니
쿠도 신이치의 명성과 평판이
많이 축소됐다고 생각했다.
‘ 죽음의 천사.’
언제부턴가
블러드, 데스, 디스트로이, 데몰리션 같은 망측한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잔뜩 붙었고
화끈하고 호전적인 카르텔과 갱단조차
수호 아니
쿠도 신이치를 꺼렸다.
누군가의 수호천사는
누군가에겐 죽음의 천사인 셈이다.
“ 미국이 널 납치배후로 지목한 건 아나? 카를로스.”
“ 알아.”
“ 현상금사냥꾼들이 널 쫓을 거야.”
“ 어디 한번 와보라지.
내가 왜
델 에스테의 유령이라 불리는지 알게 될 테니까.”
사우다드 델 에스테는
카를로스 코스타가 왕으로 군림하는
그의 성이자 영토였다.
미국이
정규군을 보내
공성전을 치르지 않는 이상
이곳은
난공불락의 요새며
심지어
파라과이대통령도
도시를 방문하고
몸성히 빠져나가려면
카를로스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지역사회와 밀착된 범죄조직의 영향력은
공권력과 별반 차이가 없다.
“ 시답잖은 얘기나 하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의뢰를 받아들인 건가?”
“ 맞아.
근데 생각보다 복잡해서 곤란한 참이거든.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은 없나?
친구.”
“ 흠.
피씨씨애들 말론
브라질정부의 자작극이란 소문이 있어.”
“ 자작극?
별로 얻을 것도 없을 텐데?”
국제협력단 납치사건은
브라질의 국가신용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 부패공무원이 나라 걱정하는 거 봤나?
다 짜고 치는 포커지.
브라질이든 아르헨티나든
남미가 위험한 곳으로 인식될수록
쑥쑥 커지는 분야가 있잖은가?”
“ 용병?”
“ 상위 일 퍼센트끼리는
어떤 놀라운 이력을 가진 경호원을 고용하느냐를 놓고
경쟁이 붙는다더군.”
트로피와이프처럼 '
트로피경호원이 급증했고
남미에서
민간군사기업의 활동영역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 브라질정부로선 난감할 거야.
치안을 확보하려면 경찰력을 늘리는 게 정답인데
경찰 전반이 부패했으니
예산을 늘려봐야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지.
그렇다고
이대로 두면
갱단이 군벌로 변질돼
진짜 내전이 벌어질지도 모르거든.
그런 위기상황에 등장한 곳이.”
“ 아라곤 컴퍼니.”
“ 그래. 그들이지.”
브라질뿐만 아니라
근래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지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업이
민간경찰이었다.
말 그대로
강력범죄가 넘치는 우범지대의
문란한 치안을
민간군사기업 같은 용병집단에게 맡긴다는 계획이다.
다국적 용병이라면
적어도 예산을 가지고 장난치진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쿠도 신이치는 피식 웃었다.
“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네.”
“ 책상머리들이 용병의 생리를 알 턱이 있나?
어쨌든
아라곤의 사탕발림과 뇌물에 홀랑 넘어간 정치인이 꽤 많아.”
이권을 탐하는 조직적인 부패는
광범위한 사정司正 없이는 바로잡기 힘들었다.
문제는
그런 강력한 법치와 사법정의를 주장했다간
암살당하기 딱 좋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라고
총알이 비껴가는 건 아니니까.
“ 그들 입장에선
납치된 인질이 잔인하게 죽어주는 게 좋아.”
“ 딥브레스애들이 타락하긴 했어도
민간인을 함부로 죽이진 않아.”
“ 맞아.
그걸 알기에
아라곤도 딥브레스와 계약한 거야.”
“ 아라곤이 딥브레스와 계약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 생각을 해봐.
수호.
아무리
딥브레스가 실력이 좋아도
미군 최고의 특수부대를 이길 수 있을까?”
“ 야전이라면
여러 변수가 있어.
미군이 무적은 아니야.”
“ 그래.
미군이 무적은 아니지.
하지만,
그 씰과 델타일세.
수호.
씰과 델타란 말이야.
딥브레스할아버지가 와도
현역을 상대로 이기는 건 불가능해.”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살짝 미화되고 과장되긴 했지만
미군특수부대는
정말 무서운 집단이다.
“ 미국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실패를 덮어버리고 싶겠지.
아라곤은
그 빈틈을 파고들 거야.
구출작전을 시도하던 미군특수부대와 교전 끝에
양측 모두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 것이
그들 입장에선
최고의 시나리오일 테니까.”
수차례 실패로
이미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미국은
마지막엔
작정하고 달려들 것이다.
“ 양측에 한 발 걸쳐 정보를 얻고 이용해
결국 둘 다 버린다?
너무 위험한 계획인데...
미군이 알게 되면
아라곤이라도 무사하지 않아.”
“ 그것을 대비하려고
로비스트가 필요한 거지.
의회청문회가 시작되면
백악관은 초토화될 걸?
알잖아.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체면이 중요하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스펙터의 가장 큰 실수라고나 할까.
그들은
블로펠트를 맞교환할만한
고가치 인질이 필요한 상황인데
오히려
밑의 것들이
자존심과 돈에 환장하다보니
결국
이렇게 완전히
개판 오분전이 된 거지. "
맞다.
펜타곤은
군부의 위상과 권위를 지킨다는 명목 아래
작전의 전말을 묻어버릴지도 몰랐다.
“ 널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카를로스.”
“ 못 믿겠으면 전화해봐.”
쿠도 신이치는
휴대폰을 꺼냈다.
“ 제임스.”
“ 오! 수호.
이제야 연락이 닿았군.”
“ 미군이 새로운 작전을 전개 중인가?”
“ 음.
나는 반대했네만
위에서 밀어붙인 걸로 아네.”
“ 알았다.”
제임스 블래키는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는 얼른 끊고
새 번호를 입력했다.
카를로스 코스타와는
볼일이 끝났다.
쿠도 신이치는
비트코인계정과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놈에게 던져주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안 받아?’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았다.
그는
출입구로 향하는 대신
승강기를 타고
건물 위층으로 올라왔다.
비상구로 나오자
옥상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아
발로 차 문을 부숴버렸다.
사우다드 엘 에스테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때까지도
전화를 끊지 않았는데
1분이 지나도 2분이 지나도
상대는 받지 않았다.
쿠도 신이치는
그제야 종료버튼을 눌렀다.
‘ 음. 곤란하군.’
어지간하면 무력개입은 자제하려고 했다.
‘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곧바로
신이치는
미리 대기중인 자신의 사촌형과
모리 코고로에게
비상 실행 신호를
그들의 핸드폰으로 보낸 뒤
옥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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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진짜배기 전투가 나오니까요. | 22.08.16 19:5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