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말죽거리에 가서 잠들다
―성수에게
1978년, 말죽거리, 은광여고 쥐색 항아리 치마를 태운
은빛 자전거가 내 검은 제복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난 발정이 날 때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로
날아가곤 했다,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에서 까치 담
배를 샀고
그떄마다 버스에 우산을 두고 내리듯, 가수와 난 노
래 속에
깜박 영혼을 두고 내리곤 했다 꿈속의 소니 카세트
한 졸부는 지루박에 미쳤고, 그의 아들과 난 부르스
리의
怪鳥音을 지르며 교련 선생 머리에 헤드록을 걸었다
노선버스 번호288 속에 말죽처럼 짓이겨져 요약된
청춘,
양산박, 반포 티엔티, 세븐 킬러, 체이놔 손도끼에
찍혀
난 혈인의 몰골로 한낮의 말죽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토박이 새들은 양아치가 되어 성남 방면으로 쫓겨갔고
압구정 배나무골 올빼미란 녀석은 여자 친구의 나체
사진을 팔아
퇴학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난 세운상가를 배회하며
과외비 줄 돈으로 펜트하우스와 수지 콰트로를 사거나
가끔은 밭벼 가득한 메뚜기를 잡아 시멘트 집마당에
풀어놓고
하나대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암흑의, 학교 담장 밑
에서
우린 모두 이상한 새들이었다 이 땅의 육체가 문득
족쇄처럼
느껴질 때, 키치의 날개를 퍼득이며 말죽거리, 세운
상가를 지나
태평양의 가로질러, 메스티조 미희들의 나라 아르헨
티나까지
아주 날아갔으면…… 그래, 난 세상의 끝 페루의 해
변에서
떠도는 부랑자처럼 통기타나 치며 일생을 보내야 했다
아니, 그것은 원위치의 기억을 내장한 고무줄의 안전
한 모험,
이탈의 욕망은 늘 컴컴한 독서실 속의 수음일 뿐이
었다
학교의 강렬한 불빛 아래서, 내 상상의 날개는 매번
겸연쩍은
부메랑이었고, 나는 뿌리깊은 귀소 본능을 저주하며
말죽거리의 울타리 속으로 되돌아아 말죽처럼 퍼진
영혼에
기다란 부리를 파묻고 잠드는 것이었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유하, 문학과지성 시인선 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