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강진 2
작은외삼촌이 큰외삼촌을 다시 만난 건
스무세살 봄날이라고 한다
중강진에서 이년간 벽돌을 굽다
형을 찾아 봉천으로 왔다고 한다
봇짐 하나 메고 왔는데
봇짐 속에서 말린 진달래 꽃잎 수북이 쏟아졌다 한다
조선 팔도에 진달래꽃 활짝 폈소
형이랑 진달래술 빚어 마시려고 꽃잎 말렸소
작은외삼촌도 큰외삼촌 따라 마적이 되었다 한다
말타기를 잘하고 총도 잘 쏘았지만
외삼촌은 음악을 사랑했다 한다
마적 중에 호림湖林이라 부르는 털복숭이 한족이 있었구나
그에게 얼후二胡를 배웠지
줄 두개인 작은 해금 같은 악기란다
십촉 알전구 불빛 아래 어머니 목소리는 흐려지고
오른쪽 어깨에 총을 메고
왼쪽 어깨에 얼후를 메고 말달렸다 한다
원족 나가지 않는 밤이면
호숫가 나무 아래서 얼후를 연주했다고 한다
재스민꽃 속
당신 걸어오네
꽃향기 속에서
지난밤 당신 생각만 해
동무들 목숨 하나 꺾인 밤이면
홀로 얼후를 안고 울었다 한다
진달래꽃 핀
달밤은 슬퍼
당신 얼굴 달 속에 있네
수수술 마시던 시간들
언제나 그리워
작은외삼촌의 꿈은 비엔나에 가는 것
그곳에서 바이올린과 가곡을 공부하고 싶었다 한다
그곳이 작은외삼촌이 가고 싶은 세상의 끝인가요?
아홉살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보고 말을 멈췄다
마적 삼년 만에 작은외삼촌 세상 떠났다 한다
신한촌에서 온 독립운동하는 조선사람 만나러 갔다가
매복 나온 일본군 총 맞았다 한다
스물네살에 세상 끝을 찾아간 사내
그의 흙무덤엔 얼후가 함께 묻혔을 거야
그의 흙무덤엔 봄마다 진달래가 활짝 피어날 거야
오른쪽 어깨에 총을 메고
왼쪽 어깨에 얼후를 메고
말달리던 조선 사내의 모습
아홉살 내 기억에서 떠나지 않았다
꽃으로 엮은 방패
곽재구, 창비시선 454